바다는 안다속세를 떠나 수행하는 암자의 선승처럼태고부터 내 조상 대대로바다와 함께 살아왔다창공을 나는 날개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고 은빛 고기들의 꿈을 다독이며적막한 이불 속에 파묻혀 잠들다가종종 바람인 듯 스치는 말씀‘절대로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마라’ 알 수 없는 악연의 고리들욕망의 세상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고독과 함께 사는
- 조숙형
바다는 안다속세를 떠나 수행하는 암자의 선승처럼태고부터 내 조상 대대로바다와 함께 살아왔다창공을 나는 날개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고 은빛 고기들의 꿈을 다독이며적막한 이불 속에 파묻혀 잠들다가종종 바람인 듯 스치는 말씀‘절대로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마라’ 알 수 없는 악연의 고리들욕망의 세상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고독과 함께 사는
뜨거운 태양이 쉬던산기슭 샘은 시가 되어한 모금에 읽는 영혼의 기쁨으로목마름 달래주던 그 세월은 정이라고가시 돋친 계절에도하늘 흐린 날들에도 꽃은 필 거라고 별을 가리키는 풀향기에아끼는 것에 대한 생각이란햇살이 내리는 바위 곁에는너무 뜨거워 너무 뜨거워도쓰러질 수 없는 풀에게 줄 거라며 밤새 이슬 모으는 당신은그렇게 너무 아름다웠
세면대 위에 꽂혀 있는아내의 칫솔모가 벌어진 채 신음하고 있다1년 전인가, 한국을 방문할 때대한항공 기내 안에서 받은 미니 칫솔을 지금껏 쓰고 있었다니남편과 자식을 울타리 삼아그 안에서 걱정 모르는 줄 알았더니볼품없는 칫솔과 함께 분주하였구나아하, 그렇구나아름다움과 행복이이것에서 나왔구나이 작고 휘어지고 갈라진 칫솔에서.
소나무만 찍는 사진작가를 안다그가 이끄는 외길 따라나선 길뭉클 명치끝 뻐근한 서러움이 만져졌다한 호흡을 위한 절묘한 쉼표처럼그때그자리오래지켜지극히 절제된 혼의 리듬을 담는페이지의 적요를 넘기려다 말고붙박이듯 순간에 매료당하고 마는질긴 고집이 독야청청 소나무를 닮았다뼛속에서 발화시켜 고독한 춤의 경지에 든 마침내 그가 나무의 숨결이 되었을 때멈춘 아
아마도 그때부터인 것 같습니다처음에는 그저 아무 말 없이 눈앞의 숲길을 걸었지요당신도 나도 서로의 길에서 앞만 보고 걷기만 했었지요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때 말없이 건네준 손수건 한 장밑그림 없는 하얀 무명천에 조금씩 색깔이 더해질 때당신과 내가 숲속에 있다는 사실도 잠시 잊었습니다콩닥거리는 가슴이 들킬까 
여름의 끝 무렵 입원실에서창밖의 신갈나무를 바라본다눈부신 아침햇살에저마다 빛나는 나뭇잎들지난밤 어둠 속에 떨던 두려움은모두 까맣게 잊었다산들바람에 나부끼며죽은 소나무 곁에서부지런히 광합성 운동을 하고 있다 |나뭇잎 하나가 생명이다더러는 달랑거리며 매달려 있는갈색 나뭇잎들그 아래 그늘진 곳에아, 너무 일찍 떨어져 내린 저 잎새들나무는 계절을 이해하는
흐드러진 꽃향기눈 콧등 간지럽히고꽃비 맞으며 함박웃음 짓던그날이 엊그제 같은데 갈바람 춤사위오색물결그리움가득 품은 낙엽들공허한 마음갈 곳을 찾는다무향 꽃들도잎새 뒤 숨어얼굴 붉히는 계절자기만의 사랑법을홀로 배우고한 해 두 해 한 잎 두 잎…살아온 세월만큼익어가는우리네 인생과 닮아버린 낙엽 밟으며잠시 숨을 고른다
세상을 흔들어강 건너 언덕배기 할미꽃 하나하늘에 깊게 깊게 심었는데그영혼거꾸로 살아가고흔들거리는 허수아비향기 없는 머저리들세상 무게도 모르고 울렁거린다날빛도 돌고 도는 세상굴절되어 곤두박질치다가삶의 부스러기들처럼 떨어지는 눈물 넋 나간 사람은 오색 빛깔로 유희를 하고 슬픈 곡조도 없이줏대도 없이 온 천지가 너울거린다세상은 조용히 살려고 애
일없이 경의중앙선 열차를 타고왕십리역까지 갔다가그대로 돌아오는 일은 슬프다왜 그러는지생각을 버린 채돌아오는 역의 순서는아무리 외워도 헷갈린다노년에 깊이 들어선 노부부가서로 어깨를 내주며종착역에 다 오도록 졸고 있다누가 먼저일지는 순서가 없다고 했지내일 모레가 설이다북한강은 내리는 눈을 더 안기 위해안간힘으로 꽁꽁 얼어붙는다품을수록 더 빨리 녹아내릴 것을모르
지게꽃 피는 계절이 돌아오면겨울 동안 벽에 걸려 있던 지게는 바쁘다그시절상동마당백년도 훌쩍 넘은 세월 간직한어둠이 내리고모기의 성가심이 시작되면아버지는 짚과 풀로 모깃불을 피우시고별은 반딧불이와 함께 한 폭의 그림을 그렸다낮이면아버지는상동 뒷산 소풀을 지게 가득 싣고지게 끈으로 질근 묶는다달랑대는 끈 꼬리를 잡은 나는지게 진 아버지 뒤를 따르며 마냥 해맑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