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여름호 2025년 6월 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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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가 지나간다 오리가 제비꽃을 세우고 지나간다
어느 곳에선 벌써 봄이 흐르고 한가로이 비가 내린다는데
당신은 나무처럼 서서 오리가 지나간 저녁을 바라본다
꽃무늬 벽지를 뜯어낸 자리, 어둠의 여백이 무겁다 냉기처럼 올라온 말들이 굽은 강줄기를 타고 흐른다
둥근 침묵이 당신의 이마를 짚어본다 비명 같은 당신, 휘청거리는 당신, 헐어버린 당신, 흩날리는 당신
오리가 지나가고 길이 지워지고 봄빛이 번지고 슬픔은 슬픔도 없이 자라고 당신은 흰 눈처럼 아득하다
오리가 지나간다 멀고 먼 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