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여름호 2025년 6월 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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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 숨어든 바람이 추운 밤 모퉁이를 붙들고 있다
바람은 젖은 등처럼 휘어지고 시멘트 바닥에 한숨이 깔린다
한숨은 보이지 않아도 무겁고 길 위로 천천히 흘러가 사람들 창문마다
서성이며 잠든 얼굴들을 만지고 간다
막차가 끊어진 정류장엔 바람이 남긴 한숨이 고인다
흐릿한 등불만이 떨리듯 서 있고 한숨은 길을 잃은 아이처럼 아무도 모르는 골목을 떠돈다
그 바람 소리에 깨어난 사람들 창밖을 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단지 밤뿐, 단지 바람뿐이다
한숨을 따라 밤이 흐른다
누군가는 귀를 막고 잠을 청하고 누군가는 가슴 열고 듣는다
보이지 않는 한숨의 그림자를 바람이 골목을 떠나도 한숨은 길 위에 남아
밤이 깊어 갈수록 더 무겁고 바람은 깊은 골목을 떠날 수 없다
바람 속의 한숨은 늘 조용히 남겨진 이야기
누구도 붙잡지 않고 누구도 다가가지 않지만 한숨은
이 거리의 밤을 품고 바람과 함께 오래오래 걷는다
잠든 사람들이 깨어나기까지 한숨은 그렇게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