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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 672호 음치

나는 음치다. 음치뿐만 아니라 박치와 몸치다. 사실 내가 왜 음치인지 잘 모른다. ‘솔솔 미파솔 라라솔’ 음을 제대로 냈다고 생각되는데 타인이 듣기에는 ‘솔솔 솔솔솔 솔솔솔’로 들린다고 한다. 나의 음감은 영 형편없나 보다.얼마 전 지인들 모임에서 백두산 관광을 간다고 한다. 남편에게 나도 백두산에 가고 싶으니 보내 달라고 했다. 남편은 위험해서 안 된다고

  • 우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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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 672호 전망에 대하여

나는 전망이 있는 삶을 좋아한다. 전망이 있는 삶을 살고 싶어 전망이 있는 집을 찾아다녔다. 몇 번의 이사 끝에 자연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둥지를 틀었다. 창을 열면 백운산을 물들인 여명이 도시의 끝자락 너머 서해의 노을로 눕곤 했다. 겨울 햇살은 거실 깊이 들어와 오수를 즐겼다. 눈앞엔 긴 몸을 드리운 수리산이 철따라 옷을 갈아입었다. 잉어가 뛰노는 안

  • 방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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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 672호 그 영혼의 해후

삼십 대 중반 무렵 직업군인 시절의 일이다. 중대원들과 야외 주둔지 작업을 하면서 해안 초소 주변을 보수하던 날이었다. 여러 명이 구역을 나누어 톱과 낫으로 가지를 치고 지저분한 것을 솎아내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대원 한 명이 겁먹은 표정으로 내게 달려왔다. 작업장에 죽은 고양이가 있다는 것이다. 별로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확인차 가보니 눈을

  • 정문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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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2025.2 672호 망객산

하얀 목련이 하늘 춤을 추는 날, 아버지가 집을 나와 아카시아 향기 섞인 새벽공기를 마시며 신평정유소에 갔다. 서울 가는 직행 버스를 타고 용산 시외버스터미널에 와서 다시 완행버스로 갈아타고 강화에 도착했을 때 해가 서쪽 하늘에 기울어 있었다.그때 나는 집 안마당에서 아기와 놀고 있었다. 반쯤 열린 철 대문 사이로 한 노인이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순

  • 이은용(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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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 672호 꽃샘추위

3월이 되자 목련나무의 하얀 봉오리가 옹골차고 탐스럽게 피어난다.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리는 봄기운에 마음은 한량없이 가볍다. 하지만 ‘올해는 덜 춥네’ 하는 순간 매서운 추위가 뒤통수를 친다. 3월에 부는 차가운 바람은 이미 봄이 왔다고 설레발치는 나에게 어디 감히 알랑거리냐고 따지듯 냉기를 거침없이 퍼붓는다. 잊고 있던 겨울의 매서움이 꽃샘추위라는 이름으로

  • 윤국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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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2025.2 672호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어떤 기억은 흩어진다. 어떤 기억은 강하게 남는다. 기억이 사라지고 남는 건 나의 의지와 무관하다. 어떤 기억은 잊으려 해도 계속 남고, 어떤 기억은 고이 담아두려 해도 사라진다. 나에겐 소중한 어떤 기억이 있다. 너무 소중한 나머지 사라질까 두렵고, 또 너무 소중한 나머지 영영 사라지지 않을까 두렵다. 사라지는 것은 곧 잊는 것이고, 사라지지 않는 것은

  • 도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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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 672호 씨앗을 심는 일

출발 하루 전, 마음이 들떴는지 잠이 쉬 오지 않는다. 새벽녘까지 뒤척이다 비몽사몽 일어나 시간 맞춰 공항으로 나간다. 대한불교 조계종 민족공동체 추진본부장 태효 스님을 비롯해 회원들 60명과 떠나는 3박 4일의 평화 순례길로 백두산 및 북중 접경지역을 도는 일이다.선 그은 복잡한 세상과 다르게 하늘길은 맑고 환하게 열려 있다. 하얼빈 공항에 도착해 곧바로

  • 강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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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 672호 울타리

오빠가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삼십 년 전 오빠는 학교가 끝나면 또래들과 함께 소꼴을 먹이러 산으로 갔다. 해 질 무렵이면 배가 불뚝해진 소가 먼저 마당에 들어서고 그 뒤에 칡넝쿨을 짊어진 오빠가 따라 들어왔다. 그날은 소는 안 보이고, 오빠가 훌쩍이며 마당에 서 있었다. 엄마는 소는 어디 있냐고 오빠를 닦달했다.그제야 오빠는 소를 풀이 많은 근처 나무에

  • 이순미(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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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 672호 그날의 기억

조카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예약한 미장원을 가기 위해 경의중앙선 지하철을 탔다. 코스모스가 가냘프게 손을 흔들면서 철길에 가을이 온다. 좋은 일로 만날 친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맑은 하늘을 본다. 응봉역에 도착하니 가끔씩 오는 안전안내문자가 핸드폰에 ‘띵’하며 떴다.‘영등포구 한○화 씨(여, 66세)를 찾습니다. 160cm 53kg, 꽃무늬 원피스’.둘

  • 한명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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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 672호 벚꽃을 싫어한 사람과 벚꽃이 싫어하는 것

봄이 다가온다. 지난해 봄 어느 주말 전국이 핑크로 물들었을 때다. 집에서 한 발짝만 나가도 핑크빛 벚꽃이 만개했다. 유모차의 애기부터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까지 벚꽃이 핀 곳이면 어디든 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만개한 벚꽃은 몸과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풀기에 딱 맞는 치료제인 것 같다. 꽃 속에 파묻히니 영혼까지 깨끗해지고 아름

  • 장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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