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식의 병은 불면증과 더불어 왔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 어떤 조짐 같은 것들이 없지 않았다. 혼잣말로 중얼거린다든지 공연히 화를 벌컥 낸다든지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명순은 눈치채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점 더 고통스러워했다. 무엇보다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걸핏하면 죽여야 돼. 죽이고 말 테야 하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명순이 그
- 홍성암
윤식의 병은 불면증과 더불어 왔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 어떤 조짐 같은 것들이 없지 않았다. 혼잣말로 중얼거린다든지 공연히 화를 벌컥 낸다든지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명순은 눈치채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점 더 고통스러워했다. 무엇보다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걸핏하면 죽여야 돼. 죽이고 말 테야 하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명순이 그
등장인물_ 한복일(68세)|오미자(64세)|주민센터 복지과 직원(45세, 목소리) 때_ 늦가을곳_ 허름한 단독 주택. 거실과 단칸방무대_ 낡은 주택. 거실 중앙에 유일하게 빛이 드는 작은 여닫이 창호문이 달려 있다. 비가 들친 듯 누런 창호지가 헤어져 나불거린다. 낡은 비닐로 막긴 막았으나 역부족이다. 그 앞 중앙에 무대 쪽을 향해 낡은 철제 침대
현대시 중에서 사유의 깊이가 가장 깊은 시를 고르라고 한다면 「겨울 자연」을 들고 싶다. 이 시는 뜻을 가늠하기 어려운 난해한 시도 아니면서 읽으면 읽을수록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리하여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작자는 익히 알고 있는 천재 시인 이근배 선생이다. 1960년대에 5대 일간지에 신춘문예 장원으로 뽑혀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
봄은햇살 낚싯대 들고봄을 낚으러 나섰다. 먼 땅위에낚시를 드리우면민들레 올라오고 마른 나뭇가지에햇살 걸어 두면싹이 나고 꽃이 피고 산등성 길모퉁이낚아 올린 진달래온 세상시끌벅적….
내 어릴 적 봄이면고향 앞산에노란 개나리꽃분홍 진달래흐드러지게 피었지 여름이면산밑 개천가에동네 아이들 대여섯 명쯤 모여 송사리 떼 쫓으며신나게 물장구치며 놀았지 먹장구름 몰려오고갑자기 소나기 쏟아지면널따란 호박 잎사귀 따서우산 대신 머리에 쓰고큰 노송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재잘재잘 비를 피했지 가을이면 고추잠
뚜뚜뚜뚜뚜뚜삐삐삐삐삐삐번호를 누르면차알칵, 소리내며현관문이 열리지아무리 단단한 문도활짝 열리지. 친구야, 우리도마음 번호 나누자오해가 생겨 마음 닫혔을 때 삐삐삐뚜뚜뚜 누르면스르륵, 찰칵마음 열리는너와 나, 마음 번호.
비 갠 뒤조르르물방울들이 모여영차영차반달 모양 다리를 만들자 구름 뒤에서숨어 보던 해님이 빨주노초파남보물감을 풀어 놓았다 곱디 고운 미끄럼틀이 하늘 도화지에 생겼다
아카시아 향내음 따라파아란 하늘 열리는5월이 오면 파아란 하늘 만큼이나그리운 어머님 얼굴 까닭 없이 보채이던 어린 시절에 토닥토닥 다독이던어머님 마음 지금도 내 가슴에오롯이 뜨네 뻐꾸기 울음소리 따라 파아란 하늘 깊어만 가는 5월이 오면 파아란 하늘만큼이나 그리운 어머님 마음&
누군가 어깨를 툭 친다.돌아보아도아무도 없는데…. 이번엔머리를 철석 때린다. ‘아유, 깜짝이야!’ 쳐다보기도 전에또 한 번눈꺼풀을 건드려볼 수가 없다.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꼼작거리다가한꺼번에 얼굴을 때려 화들짝 놀랐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그게 바로 비책인 듯 사면이 눈부시게 반사되는 빛의 파편 뭇시선 차단 완벽한 빌딩숲 지나간다 불 밝힌 하루가 빼곡 박힌 층층마다허리띠 대롱대롱 매달린 포도처럼벌건 입 모이 나르는 날갯짓이 쉼이 없다 냉혹한 추위만큼 서슬 퍼런 전운 박아 투명도 캄캄하게 둘러친 유리의 벽 철커덕 족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