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미쳤다 상식에 젖은 내가 있는 곳에서 보면내 안에 내가 많아 언제부턴가 무척 달라진 그를 보았다 엉뚱한 말에 대수롭잖게 생각하며 무시도 했던 그가오늘은 마치 태양처럼 보인다 아니 보름달 같으다어디 무슨 한마딘들 다 꿰뚫고 있다 달관처럼날카로운 질문과 자답마다 어리둥절하다우물 밖의 크고도 굵은 한줄기 빛은 강렬하다얼마나 낮은 곳까지 내려갔을까
- 최두환
생각이 미쳤다 상식에 젖은 내가 있는 곳에서 보면내 안에 내가 많아 언제부턴가 무척 달라진 그를 보았다 엉뚱한 말에 대수롭잖게 생각하며 무시도 했던 그가오늘은 마치 태양처럼 보인다 아니 보름달 같으다어디 무슨 한마딘들 다 꿰뚫고 있다 달관처럼날카로운 질문과 자답마다 어리둥절하다우물 밖의 크고도 굵은 한줄기 빛은 강렬하다얼마나 낮은 곳까지 내려갔을까
기억을 떼어내는 아버지 느린 걸음 촘촘한 시간조차 느슨하고 아득해져 헐렁한 반지 사이로찬바람새어나가그 여름 창백하게 구름도 내려앉아 묵상의 같은 날을 지피고만 있었다 말없이 구겨진 밤이꽃길을 재촉한다하얀 꽃 피는 시간 고요하게 깔리고 내 안의 모든 것이 허망하게 주저앉아 찢기듯 삼킨 울음을한 소절씩 지워
엄동설한 살을 에이는 가혹한 아픔을 참으며 눈 덮인 땅거죽에 육신을 묻고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함에그저 이 혹한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무엇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북풍한설과 맞서려니 참으로 혹독하고 가혹하다그래도 숨이 붙어있고 헐떡거릴 수 있는 약한 맥(脈)이라도 있으니 천만다행 아닌가이 또한 내가 살아가야 할 길이기에그저 참고
아주 오래 전 窮민학교 때웅변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그때 원고의 내용은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소리가쌀독에서 바가지 긁는 소리라는 것이었다 저녁을 준비하시던 어머니가쌀독에서 쌀을 푸시며푸념처럼 하시는 말이었다그 소리는 나뿐만 아니라우리 가족 모두에게 절망적인 소리였다 난 그 이후로쌀독을 열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바가지 긁는 소리가 나
왕조실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옛진성(鎭城)의 수호신이덮개도 다 열어젖히고버려진 배춧잎처럼 엎드려 있다큰 물동이 작은 물동이 항아리가 자리다툼 하고 온 마을 생명들이 매달리던 자리에지나가던 강아지가 투덜투덜 적막의 무게를 달고 길고양이가 긴 꼬리로 기다림의 깊이를 잰다그 옛날 포작선 타고까막만 불볕과 싸우고 돌아온 병사들, 뱃일 마
동해 수평선 온통 불에 탄다천길 만길 화염 속에밤새 바닷물에 몸을씻고 거센 파도를 쫓고나와 새해를 맞는다끓은 피 목에 두루고 불끈 해가 솟는다 폭포수처럼 떠오르는 저 붉은 용기매일 하던 일이지만 새해에도 처음처럼 팔을 벌려 오천만 국민을 안는다자기 몸을 불사르는 밝고 뜨겁게 온 우주세상
밖을 보기 위해 커튼을 열자숲이 움직인다너는 새보다 뾰족한 부리도 없지만먹이를 찾듯 무작정 두리번거린다밖을 장식한 사물이 요람처럼너의 날숨을 재우고거듭 진정되지 못한 갈등을 일으키다너와의 거리는 변수가 있는 만큼 주춤거린다지척이다가 수만리 먼 곳까지산에서는 붉은 잎들이 아우성이지만내려와선 은행나무만큼 아늑한 빛깔도 없다옆으로 내려진 커튼 자락 보고 있다가&
손잡고보폭 맞추고 싶다사소한 일로금이 간 상처메우고 지우고 싶어 두텁게 덧칠하고 싶다삐거덕 삐거덕부딪는 소리날카로운 바늘은밑동 갉아먹는 구새다허심의 낯으로어제는 모조리 잊고 깊어가는 패인 골매울 수 있으면 좋겠다.
어제의 강이 아니다겨우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흐르던 강 봄비 깊숙이 스며들어강은 봄의 품에 안긴다연푸른 바람소리 강물에 젖어 살얼음 조용히 녹아내린다 우주가 흐른다
가난한 뜨락에 얼굴 내밀며마른 나뭇가지 끝에서 솜털 멍울 투욱 툭아직은 청량한 바람이 머물고 있는데솜털갑옷 하나 둘 벗어 내리더니어느 사이 명주드레스 입고나플나플 춤사위로 봄 향기 전하네하얀 손바닥 흔들며 봄꽃을 부르고그 부름의 손짓에 따라온 산야에 각색꽃들이 봄 향연 벌이고봄산또봄의마을에서 꽃 잔치 알리는데아 목련화여! 이제 시작인데 너는 떠나가고 있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