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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 675호 단상Ⅲ

산다는 게뭐 그리 대수라고몇년에한두번정도바람처럼 왔다가돌아서던 처갓집에라, 이 사람아천만년 오롯이 살고지고호롱불 밝혀새벽잠 설치시던구석구석 고단한 기억들한스러운 세월을 잊으라는 듯푸석푸석 헐리는구나!격세지감(隔世之感)붙박이별처럼오글쪼글 쌓아 둔 사연그리움의 행간이 되고회한이 되어안동호(安東湖) 푸른 물결을 유영하고 있다.

  • 권영호(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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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 675호 왕버들

왕버들 나무에 황금빛 꽃이 환하다저 나라는 백성들 얼굴이 환할 것 같다환한 웃음 속에농담도 가닥가닥 흐늘어지고근심 걱정은 전지 하지 않아도저절로 삭정이 되어 떨어지고새순들이 초롱초롱 눈망울 굴리며여기저기서 으앙으앙 태어나새벽 울음소리로 세상을 채우고굵은 줄기일수록 정직하게 뻗어서뿌리의 물을 곧은줄기 속 수관으로가지가지 끝까지 불평 없이 나누어주고가지들은 서

  • 정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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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 675호 아! 안중근 의사

만주 땅 그 하얀 설원손가락 끊어 핏방울로 쓴 대·한·독·립 단지동맹, 그 맹세 가슴에 붉게 새긴다수많은 동지의 죽음 값 대신 사는 목숨어떠한 두려움도 뚫고 나갈 조국이 준 목숨늙은 늑대의 검은 심장을 정조준하여하얼빈역에서 내던진 그 고귀한 투혼한반도를 발판 삼아 대륙을 침략하려던허울뿐인 동양 평화를 명중시킨다이토 히로부미의 급소 세 발하늘 닿게

  • 박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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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 675호 그날 저물녘 배추밭

발자국 끊긴 깊은 적요다슬며시 가을볕도 사그러든 빈 들 너머저무는 배추밭이 시리다몇 고랑에 선심 쓰듯 남겨진 몸이숨어 울다가, 뽑힐 일 없어지지리 못난 것끼리 땅에 남겨진쓸쓸함을 차마 견디는 일흙 속으로 심어진 너의 편지 읽으며물감 같은 노란 속울음 들키다가산골 얕은 곳까지 내려온 개밥바라기에내 슬픔까지 대소쿠리에 떠나보내는 것이다밭너머길잠시 휘황한 꿈 꾸

  • 한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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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 675호 패트리샤 야네츠코바*의 죽음

패트리샤 야네츠코바의 근황이 문득 궁금해져인터넷을 뒤져본다 샅샅이─잠시 후,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이 툭! 눈앞에 날아든다 이건 난데없는 도비탄이거나 블랙 스완이지만오오 그녀의 죽음은 사실이다그녀의 삶과 죽음이 어느새 대과거(大過去)가 돼 있다 그녀가 암과의 전쟁 끝에 전사했다는 음울한 전언은 그녀가 죽은 지 십팔 일이나 지난이날

  • 하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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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 675호 산책길을 가다가

산책길을 가다가 낙엽 위에 앉는다나를 이렇게 앉힐 수 있는 힘이또 어디 있는가나무의 생리로 떨어져 내리고도 나무의 품보다더넓고하늘을 받쳐 올리는 가지들보다 한참이나더 넉넉하다낙엽 위에 앉아, 좁은 길로 나가는 것이 나가는것일 뿐주변도 아니고 사색도 아니라는 걸 셍각한다인생도 아니고 이력도 아니라는 걸 생각한다떨어져서 나붓 나붓 흔들리며 떨어진다면더 좋으리떨

  • 강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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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 675호 서리의 추억

내가 초등학생 시절의 서리는 주로 배고픈 시골 농촌의 아이들이 남의 밭에서 콩이나 감, 수박, 고구마 등을 몰래 가져다 먹는 정도였고, 심각한 손해를 입히는 도둑질과는 다른 것으로 서리를 당한 쪽에서도 아이들의 장난으로 보아 대개 그냥 모른 척 넘어갔다.그 시절 농촌 마을의 집들은 부유한 몇 집 외에는 대개가 초가지붕이어서 추수가 끝나면, 초가지붕의 썩은

  • 김호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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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 675호 눈물

눈물은 울음이기에 눈물을 거둔다는 것은 울음을 그친다는 뜻이며, 눈물을 삼킨다는 것은 울음을 참는다는 뜻이고, 눈물을 짠다는 것은 나오지 않는 울음을 억지로 운다는 뜻이다.눈물은 슬픔의 상징이다. 효성이 지극한 자식이 부모님이 떠나가셨을 때나 사랑하는 배우자를 잃었을 때나 사랑하는 형제자매를 떠나보낼 때 우리는 한없이 슬프기에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가족이

  • 김호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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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 675호 이웃을 행복하게 해주는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부모님이 어렵게 살아가는 것을 보았고, 해방 후 콜레라 같은 전염병과도 싸우면서 배고픔과 병마의 고통을 이겨 내야 했다. 그런 중에 이 나라가 육이오 전쟁을 겪었고, 휴전 후 우리는 자기 자신은 가난과 병마로 고난 속에 살았지만, 자손들은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자기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였고, 생활에서는 아끼고 절약하면서

  • 김호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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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 675호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내가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보면 기쁜 일보다 슬픈 일들이 더 많았던 세월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1939년 일제강점기 때 태어나 1945년 조국의 광복을 맞았으나, 1950년 동족상잔의 육이오 전쟁이 일어났다. 휴전된 후 폐허가 된 국토 위에서 온 국민은 배고픔을 달래며 전후 복구에 온 힘을 다해야 했던 시절과 4·19와 5·16 등 역사의 격동기를 겪으

  • 김호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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