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5월 6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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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을 가다가 낙엽 위에 앉는다
나를 이렇게 앉힐 수 있는 힘이
또 어디 있는가
나무의 생리로 떨어져 내리고도 나무의 품보다
더넓고
하늘을 받쳐 올리는 가지들보다 한참이나
더 넉넉하다
낙엽 위에 앉아, 좁은 길로 나가는 것이 나가는
것일 뿐
주변도 아니고 사색도 아니라는 걸 셍각한다
인생도 아니고 이력도 아니라는 걸 생각한다
떨어져서 나붓 나붓 흔들리며 떨어진다면
더 좋으리
떨어지다가 부스럭거리다가 비비적거리다가 소리를 내면
더 좋으리
그 소리 타고 추억이 되돌아오고 마음 부비고 떠나간 일들
되돌아온다면
나는 오래 오래 앉아 과거를 묻지 않으리 과거가 비록 한 잎
누추히 바랜 빛깔이 되어 온다 하여 구구히
탓하지 않으리
아, 나를 이렇게 앉힐 수 있는 힘이
또 어디 있는가
앉아서 파묻혀서 내가 하는 일들 분잡한 일들
손에서 내려놓게 하는 힘이
또 어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