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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673호 유혹의 세레나데

밤 1시가 지났다.‘너 그럴 수 있니?그 남자로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 줄 알면서 그와 카톡하고 전화하고 왜 그렇게 하니?’문자를 읽고 어리둥절 멍했지만 허리 통증으로 만사가 귀찮아 눈을 감고 찜질팩으로 허리를 달래며 누워 있었다.전화벨이 울렸다.“무슨 이런 사람이 있어?상식 이하의 이런 형편없는 인격자였던가?”혼잣말을 뱉으며 전화기를 꺼 버렸다.아침

  • 김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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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673호 명함

우리는 하루의 생활 속에서 많은 명함을 받게 된다.그 명함을 받으면서 명함이 없었던 때를 생각해 본다.교직으로 오기 전에는 타인들한테는 직업을 나타낼 수 없는 입장이었기에 명함이 없었고, 교직으로 와서는 선생님이란 처지가 명함하고는 어울리지도 않고 또 필요하지도 않으니 없었다.지금은 명함의 전성시대인 것 같다.때론 하루에도 몇 장씩 받을 때가 있으니 주는

  • 조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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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673호 봄바람

이른 아침, 산에 올랐다가 느긋하게 내려온다. 어느덧 바람이 바뀌었다. 살갗을 파고드는 꽃샘바람이다. 그야말로 봄바람이다.바람치고는 이놈의 봄바람이 조금 묘하다.괜히 가슴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 같다.따지고 보면 봄과 바람은 엄연히 다른 의미의 명사다.그러나 이걸 붙여서 합성어를 만들어 놓으면 그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사실 우리말에 바람이 들어가면 왠지 부정

  • 이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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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673호 정말 다 보고 계시는지요

관세음보살님 정말 다 보고 계시는지요.이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를 다 보고 계시는지요.세상 사람들이 정말‘그렇게까지’해야 하는 까닭을 다 보아 알고 계시는지요.얼마나 고고한 마루에 오르려기에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그 눈물을 다 보아서 아시는지요.정말로 세음(世音)을 관(觀)하셨는지요.답답하다.정말 답답하다.답답한 내 안을 드러내 보일 수 없어서 답

  • 이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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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673호 청보리밭 축제장에 가다

산천의 나뭇잎들이 연초록으로 봄의 기운이 완연한 이때 서울에서 막내 동서 내외가 승용차로 왔다.올해 농사 준비를 돕고, 그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구경하고 싶어도 못 가던 고창 청보리 축제장을 같이 가자고 해 아침을 일찍 먹고 그곳을 향하여 세 시간여 운행하여 도착하였다.우리가 너무나 일찍 도착한 데다 주요 행사가 없는 날이어서인지 관람객이 별로 없다.그

  • 김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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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673호 할머니의 지팡이

오늘 저녁, 할머니의 파제(罷祭)와 함께 헤어져야 하는데 걱정이 태산이다.일 년에 단 한 번이지만 지팡이를 통해 할머니의 숨결과 함께 어렸을 적 베풀어 주셨던 따뜻한 마음이며 손길을 다소나마 느낄 수 있었는데, 이젠 이마저 맘매로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착잡하기 그지없다.사실 할머니 제사 주제를 처음 맡게 되었을 때 참사(參祀)한 가족들은 모두 한마디씩 구시

  • 鄭正吉(正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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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673호 폭설의 추억

내일모레 추석 명절에 귀성전쟁이 시작된다고/ 작은 나라가 들썩들썩이는데/ 우린 결혼 10년 만에/ 참으로 한가로운 추석을 맞는가 보다// 경상도 의성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 서울 가까이 사는 두 아들들/ 해마다 겪는 귀성길 초죽음에/ 우리가 올라갈란다 선처하시고// (중략)// 들이며 산들이 묵묵히 내어 놓은 터에/ 삐죽삐죽 솟아오른 신도시 큰아들네로/ 시

  • 김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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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673호 뒤바뀐 그림

하릴없이 빈둥댄다. 그마저 따분하다. 동네 한 바퀴 돌듯 인터넷 마을에 접속한다. 유장한 강물의 물빛과 쏟아지는 달빛이 내 손길을 잡아챈다. 무심히 클릭한다. 잡념은 어디론가 흘러간다. 부랑자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가난해도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 히말라야산맥을 넘고 아무르강을 건너며 벼랑길을 걷는 사람들.그들은 가족의 주검을 독수리에게 내어주면서도 결코

  • 강돈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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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673호 호반에서 만난 사람

걷기가 건강에 도움 되는 것이야 익히 안다.일본 저명 의사의 저서『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도 읽어 보았다.살아온 햇수가 시렁에 올려놓은 이불처럼 수북하게 쌓이면서 알던 사람도 시나브로 멀어지고 가끔씩 주고받던 소식도 뜸해진다.시간이 남아돌아 시작한 걷기가 이태나 된다.일주일에 서너 번 꼴로 걷기 운동을 하는데 거리를 따져 하루에 3킬로미터 남짓

  • 권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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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673호 세월·Ⅶ

깊어 가는 가을, 코발트 빛으로 투명해진 하늘을 바라다보고 있으면 이따금 그려진다.눈썹이 참숯처럼 짙고 눈동자가 가을 별빛같이 맑았던 H선생님의 모습이.선생님은 내가 초등학교 육 학년 시절의 담임이었다.다섯 자 오 푼이 될까 말까 한 그리 크지 않은 키에 소년티가 풍기는 때 묻지 않은 얼굴 모습, 그리고 은방울처럼 낭랑한 목소리를 지닌 분이셨다.선생님은 틈

  • 곽흥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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