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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 675호 자유를 기다리며

겨우내 웅크리고 떨며몰래 울었던 긴 밤두려움의 시간 잊었는가한 겹 두 겹 벗어던지고아무렇지 않은 듯 녹아봄이 부르는 이슬 되어촉촉이 스며든 숨결은자유를 기다리고 있었나외로움을 말아먹은 채보듬어 줄 수 없는 모퉁이버려진 삶이라고아무도 돌아보지 않았지얇은 입술 파르르 떨며 무뎌진 가슴 일으켜바람 부는 강변 걸어오는 봄 손님 맞으려 하네

  • 박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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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 675호 흘러 흘러

이 세상 구경값은 평등의 죽음이다한 번을 봤든 만 번을 봤든 상관없다버들가지는 유유하게 하늘거리고나비와 잠자리 하염없이 창공을 날아도한번 나고 죽는 사이 무지개 같은 삶 굳이 내가 이름을 지어 무엇하리금세 사라지는 빛이고 어둠인 것을 기쁨이라고도 하고 허망이라고도 하고우주의 빛과 평화의 바람에 의해 서로가 꼬리를 물고 달리는 것을

  • 김영규(기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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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 675호 도시의 유목민

끝내는집 없는 노인이 되었다2년마다 오르는 월세한 번 연장하고 나면폭탄처럼 치올라 떠나야 한다20여 년 전,들이닥친 빨간 딱지에 놀라 떠난 아내를사람들은 그저 황혼이혼이라고 말해줬다지방 공장에 다닌 아들의 송금은 끊긴 지가 오래 술 좋아하던 친구들도 슬금슬금 멀어지고문화센터에서 만난 영숙 씨까지 움찔하며 집 있는 강 씨로 갈아탔다찬밥에 물

  • 김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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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 675호 아버지의 향기

“느거 아버지는 법 없이도 살 분이야” 고향 사람들 그 말이 싫지 않았네맑은 모습에 듣기 좋은 웃음 소리누가 봐도 지순한 얼굴이지만세상 모든 풍파 휩쓸린 듯잔주름이 물결치고 있었지낡아 해어지기까지 오래도록 신던 구두 아무리 멀리서 봐도 누군지 척 알아볼 모자 절약이 몸에 배었지만조금이라도 더 나누고 싶어작은 손을 한탄하시던 모습어

  • 하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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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 675호 개성을 잃어버린

화장대 앞에 앉아 있다거울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나는 내 얼굴을 보지 않고 살았을 텐데4천여 년 전부터였다면경(面鏡)이 세상에 나오면서부터거울은 인간의 얼굴에 시비를 걸어왔다저 얼굴 좀 봐코는 매부리코눈은 단춧구멍턱은 주걱턱넌 왜 저렇게 못생겼지의사는 예쁜 그미(美)의 사진을 내 코앞에 들이밀고“어떻게 할 겨? 공사해야지”성형은 이렇게 시작된다칼로 째고깎

  • 이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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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 675호 결빙된 세상

저녁 강을 건너창문에 걸린 우직한 세상과 조우한다어제도 그제도 그 먼 곳에서 날아와해빙된 흙탕물이잠깐 환한 세상에 머물러 있다언제 또다시 닥칠지 모르는이미 내팽개진 마음이아슬아슬 숲 그늘에 걸터앉아 있다어둠이 잦아들고또다시 달과 별을 가두어마지막으로 어떤 황홀을 경험하지 못한엄청난 빗줄기가 밤새 춤을 추었다고 하더라몇 번이고 오르는 숨을 안정시키고지난 여름

  • 안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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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 675호 내재율

할머니 겨드랑이에 돋은 날개가 투명하지 않았다면나는 부끄러워 울 뻔했다우리는 삼박자 음악에 맞춰 율동을 했고할머니는 무대 아래서 춤을 추셨다할머니 흥의 징후는 언제부터 내 마음에 번져 왔을까한집에 살지도 않았는데어느 날 내게서 발화된 내재율순례길에서도 나는 삼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곤 했다쇼윈도를 빠져나온 음악과뭉툭한 구두굽 소리가 겹칠 때면나는 빨간 스커트

  • 박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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