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이젠내게만 있던 아픔이 아닌 걸 내 눈물이 너무 커서그 누구의 눈물도 보이지 않았죠 그런 찬바람이라도 업고 가니 어느새 등줄기 따스한 걸음입니다 당신 길에도 그랬을 텐데어디서 잠시 쉬었나요 이젠 다 괜찮아요겨울을 견딘 가지가 새싹 피우듯 마주 보며 얘기해요우리가 웃음꽃 전부 전부 피워요
- 임하초
괜찮아요 이젠내게만 있던 아픔이 아닌 걸 내 눈물이 너무 커서그 누구의 눈물도 보이지 않았죠 그런 찬바람이라도 업고 가니 어느새 등줄기 따스한 걸음입니다 당신 길에도 그랬을 텐데어디서 잠시 쉬었나요 이젠 다 괜찮아요겨울을 견딘 가지가 새싹 피우듯 마주 보며 얘기해요우리가 웃음꽃 전부 전부 피워요
청포도를 매만지다가푸른 송이 사잇길에서육사를 만났다 하이얀 세마포를 입은 그가 은쟁반에 모시 수건을마련해놓고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오랑을 기다리는 세오녀처럼 주렁주렁 포도알 너머바다 빛 하늘을 담을선한 눈빛의 귀인이 오기를 넝쿨 사이마다 그림자가 내리고 바닷바람에 향기는 익어갔지만 풍문이었는지
아메리카노 한 잔에 오롯이 담긴 가을풍경 빨갛게, 노랗게, 파랗게 그리고… 가을을 찾아 떠나온 사람, 사람들단풍 속에서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첫가을과 끝가을은소리도 없이익을 만큼 익어흔들리는데 화들짝 풍경에 젖어버린 나는 어디로너는 어디로우리는 어디로가고 있을까
골목에 숨어든 바람이 추운 밤 모퉁이를 붙들고 있다바람은 젖은 등처럼 휘어지고 시멘트 바닥에 한숨이 깔린다한숨은 보이지 않아도 무겁고 길 위로 천천히 흘러가 사람들 창문마다 서성이며 잠든 얼굴들을 만지고 간다 막차가 끊어진 정류장엔 바람이 남긴 한숨이 고인다흐릿한 등불만이 떨리듯 서 있고 한숨은 길을 잃은 아이처럼 아무도 모르는 골목을 떠
무슨 일이 있었길래갑자기 저리 얼굴을 붉히시나이까 길고 긴 여름날에도차분하게 냉정을 잃지 않으시더니 그 뜨거웠던 여름날에도오로지 초록만을 변치 않고 간직하시더니 여름 다 가고뜨거움도 다 사라졌는데 서늘한 바람 불어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차분히게 냉정한 이성의 기운을 찾아가고 있는데 무슨 일이 있었길래오로지
밤새 그리움만 남긴채떠나갔던 당신 당신이 가고 난 빈자리달과 별이 함께여서 조금은 위로가 되었지만그래도 못내 그리워 선잠에 뒤척였지요 오늘 새벽도 어김없이 당신은나의 창을 또 두드리는군요꽃비 같은 당신 정열의 눈빛에 온몸이 떨려 오고뜨거운 당신의 입김에 이 한몸 기쁨에 희열합니다 그렇게 당신은 또 다시 내게로 왔습니다오면 가고 갔
멈추면 안 되겠니 바람아 올곧이 뿌리박은 나무들산짐승 산새들까지 태워서야 비라도 사나흘 내리 퍼부었으면
시골 동생네 집에 왔다마당가에 줄맞춰 피어 있는 빨강 노랑 튤립들이 유럽의 어느 정원에 와 있는 듯오가는 사람들 발길을 잡는다 꽃구경에 정신을 놓고 있을 즈음미나리를 뜯으러 개울둑을 걷다보니동생의 발밑에 깔려 아프다 말도 못하는노란 민들레가 눈에 들어왔다귀한 대접받고 고고하게 핀 튤립보다발아래 수수하게 피어 바람의 손을 잡아야만
지인의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국화 한 송이 숙연히 헌화하면서 몹시도 외람되지만한 생이 어떠셨냐고여쭤본다 가장의 무게를 덜어내면남편이며 아버지의 자리는 참괜찮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밥한번먹자고했던약속의 시간이 아직많이 남은 줄 알았어요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귀띔이라도 해 주시지요 그렇게 훌쩍 가시면퍼렇게
장마에 핀파란 하늘 맑은 햇살 이웃으로 내달려 “해 났어요!” “뭐?” “해 났다고요!” 하늘 보고 우와! 마주 보며 이야! 아이처럼.*이야: ‘형’ 또는 ‘누나’의 경남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