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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 664호 사라진 입들

입을 열면 마리오게임을 하듯 톡톡, 쏟아지는 말들 혀의 안쪽 어둡고 깊숙한 곳에 사막이 살고 있다 불모의 땅 조슈아의 잎보다 더 뾰족한 혀들이 모여 사는 동굴 건기가 되면 닫힌 문이 열리고 전갈들이 꼬리를 들고 사냥을 나선다 평화롭던 허공, 뿌리를 잃어버린 혀들이 날치처럼 날아 오른다 반사처럼 부서지는 섬광들의 끝 바스락 바스락 마른 잎 부서져 내리는 소리

  • 강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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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2024.6 664호 섬을 둔다

바다를 가진 사람은 섬을 두고 있었다별밤, 해변에 누워한 뼘씩 별을 이어 썼던 편지를보내는 것 보다간직하는 것이 더 아프다는 걸 안다수평선 걸친 채집어등을 밝히는 배가 되었어도닻이 허락하는 바다를 떠 갈 뿐이다.정박하지 못해 서로에게 외롭다이른 아침 부둣가 향하고해당화가 해를 끌어 올리면물비늘이 만들어 섬마다 이어지는 길,이야기가 꽃 다스린 바람으로 밀려든

  • 이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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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2024.6 664호 18cm

단단한 바닥이라고 믿는 지금 겨울 땅 납작 엎드린 개망초 일어나야지 다짐할 낯선 직각이 보인다 한밤중 택배 포장을 뜯어 모자를 쓴다 이리저리 불면을 덮어도 삐져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는데 딛고 오를 높이를 가늠하는 시간 온몸 조각내어 반듯하게 받쳐주는 새살고리 두툼한 나무 흉터를 밟으면 찌그덕 신음 소리 들린다 밖에 놓인 것은 누구나 만만하다 안으로 들

  • 임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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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24.6 664호 우리 예술의 현실과 좌표

1.예술은 왜 존재하는가예술이라는 큰 틀 안에서, 문학에 초점을 맞추어 최근 동향을 살펴보고 미래를 조망한다. 예술의 세부 분야가 각기 그 표현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으나, 모든 예술이 추구하는 목표, 기능, 영향은 동일하다. 그렇다면 우선 예술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BC.384년에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비극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함으로써,

  • 김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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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2024.6 664호 봄은 침묵의 종착역

겨우내 움츠리고 비목처럼 견디며 말 못한 속사정은 옹이눈이 되었다 절망 속에 다가서는 희망 기대만큼 커지는 절망 속에 잔인한 겨울은 감옥이 되었다 죽은 듯이 감추어 두었던 강인한 생명력은 희망의 씨앗이 되었다 절망과 체념 속에 자유의 상념을 붙들고 조개처럼 입을 굳게 다물고 기다렸다 몰아쉬는 숨이듯 한숨으로 부는 봄바람을 타고 마침내 터지는 외침은 감당할

  • 류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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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024.6 664호 고배의 잔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 매 시간마다 시험지를 받아들었지만 함박눈을 뒤집어 쓴 듯 머릿속은 온통 새하얗기만 하다 조바심에 손가락 저리도록 볼펜을 굴려도 펼쳐진 문제들은 먼 메아리처럼 낯설고 아득하다 소홀했던 시험기간을 말해주듯 책갈피의 대혼란이 몰려온다 훅, 목덜미를 타고 오르는 불같은 열기 결국 동댕이치듯 손을 털고 청계천 눈길을 터덜거리다, 조팝나무가

  • 최정은(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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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024.6 664호 지우개도 몸살을 앓는다

꽃이 아무리 어여쁘다 한들웃음꽃만 하랴광명학당연필과 지우개가고통을 호소한다아직 늦지 않았다며 우리글을 배우는늦깎이 학생들이들과 함께뼈를 깎는 고통을 함께 겪는 연필살을 에는 아픔을 고스란히 체험하는 지우개받아쓰기 시간은 아예 책을 펴놓고눈이 침침하다는 핑계로웃음이 만발하다연필 탓하며 지우개로 팍팍 지우니책상 위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작아지는 지우개의 모습에서

  • 김춘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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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2024.6 664호 연꽃

돌확 속에 연꽃 한 송이 박혀있다 어느 석공의 해탈이 저처럼 우아한 연꽃을 꺼냈을까 올려다보는 꽃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하필이면 돌절구에,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차가운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진다 얼음 같은 시간이 밀려가고 드디어 연(蓮)의 시간 칙칙한 먼지가 걷히고 돌확에 흠뻑 피어나는 염화미소 그 연의 미소에 한동안 마음을 빼앗긴다 돌보다 암담했던

  • 최경순(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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