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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 664호

비가 오면막걸릿집에 앉아낭만을 마시고도란도란 사랑이 익어 가는밀담을 나누며노릿하게 잘 구워진파전 한 점에버얼겋게 달아오른미소들이행복을 가져다 주건만마주 앉은 부부가걸치는 한 잔 속엔원망과 미움만 가득하여취기가 오를수록서로의 허물만 물어 뜯으며피를 토한다등을 돌려 바라보는각자의 이상은가깝지만 머어언동쪽과 서쪽한 사람은 해가뜨기만을 기다리고한 사람은 해가지기만

  • 손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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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 664호 가을 장마당

북쪽 하늘이 얼마나 힘을 주었던지 시린 바람이 날아와 버석버석 말라가는 시간을 재촉한다 문필봉 아래 바깥마당, 적막을 털어내고 장이 선다 찬바람이 일제히 낙과(落果)를 흥정하고 나뭇잎들은 돌아갈 주소를 쓰는데 다람쥐가 밤송이와 거래하면서 비명을 지른다 장마당 속으로 입점한 단풍잎, 은행 호두 도토리 늙은 호박은 가장 넓은 평수를 차지했다 빛의 각도에 따라

  • 박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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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2024.6 664호 사라진 입들

입을 열면 마리오게임을 하듯 톡톡, 쏟아지는 말들 혀의 안쪽 어둡고 깊숙한 곳에 사막이 살고 있다 불모의 땅 조슈아의 잎보다 더 뾰족한 혀들이 모여 사는 동굴 건기가 되면 닫힌 문이 열리고 전갈들이 꼬리를 들고 사냥을 나선다 평화롭던 허공, 뿌리를 잃어버린 혀들이 날치처럼 날아 오른다 반사처럼 부서지는 섬광들의 끝 바스락 바스락 마른 잎 부서져 내리는 소리

  • 강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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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 664호 섬을 둔다

바다를 가진 사람은 섬을 두고 있었다별밤, 해변에 누워한 뼘씩 별을 이어 썼던 편지를보내는 것 보다간직하는 것이 더 아프다는 걸 안다수평선 걸친 채집어등을 밝히는 배가 되었어도닻이 허락하는 바다를 떠 갈 뿐이다.정박하지 못해 서로에게 외롭다이른 아침 부둣가 향하고해당화가 해를 끌어 올리면물비늘이 만들어 섬마다 이어지는 길,이야기가 꽃 다스린 바람으로 밀려든

  • 이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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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 664호 18cm

단단한 바닥이라고 믿는 지금 겨울 땅 납작 엎드린 개망초 일어나야지 다짐할 낯선 직각이 보인다 한밤중 택배 포장을 뜯어 모자를 쓴다 이리저리 불면을 덮어도 삐져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는데 딛고 오를 높이를 가늠하는 시간 온몸 조각내어 반듯하게 받쳐주는 새살고리 두툼한 나무 흉터를 밟으면 찌그덕 신음 소리 들린다 밖에 놓인 것은 누구나 만만하다 안으로 들

  • 임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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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 664호 우리 예술의 현실과 좌표

1.예술은 왜 존재하는가예술이라는 큰 틀 안에서, 문학에 초점을 맞추어 최근 동향을 살펴보고 미래를 조망한다. 예술의 세부 분야가 각기 그 표현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으나, 모든 예술이 추구하는 목표, 기능, 영향은 동일하다. 그렇다면 우선 예술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BC.384년에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비극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함으로써,

  • 김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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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
2024.6 664호 봄은 침묵의 종착역

겨우내 움츠리고 비목처럼 견디며 말 못한 속사정은 옹이눈이 되었다 절망 속에 다가서는 희망 기대만큼 커지는 절망 속에 잔인한 겨울은 감옥이 되었다 죽은 듯이 감추어 두었던 강인한 생명력은 희망의 씨앗이 되었다 절망과 체념 속에 자유의 상념을 붙들고 조개처럼 입을 굳게 다물고 기다렸다 몰아쉬는 숨이듯 한숨으로 부는 봄바람을 타고 마침내 터지는 외침은 감당할

  • 류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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