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2025.2 672호 웅진강(熊津江)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담당 관청에 찾아가 통발을 돌려달라고 하면 오히려 불법 조업으로 몰려 벌금을 부과받을 것이다. 통발을 쉽게 찾으려고 놓은 부표가 단속반원들에게 표적이 될 줄은 몰랐다. 나는 거금 칠십만 원을 들여 산 통발을 모두 빼앗기자 삶의 의욕까지 잃었다. 물고기를 잡을 수 없어 운영하는 매운탕집까지 타격을 입었고, 낚시꾼들에게 사정해서 물고기

  • 이길환
북마크
237
2024.12 69호 비너스리본

종로 한복판 인사동 거리에는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행인들을 신비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역사의 흔적만큼이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여드는 문화의 거리이자 모임 마당이 펼쳐지는 곳이었다.큰 도로 한 블록 뒤편에 위치한 ‘라파엘카페’는 유방암 환우회인 ‘비너스리본’ 회원들의 쉼터이자 사랑방이었다. 치열하고 전쟁 같은 삶으로부터 우아함으로 부드러움을 채워주는

  • 김진명(서울)
북마크
257
2024.12 69호 비틀림의 경계

1. 비틀린 남자쪽팔린 소문으로 주검이 의식 없는 자들의 입쌀에 오르내린 남자는 그가 기거하며 살았던 대도시 일대에서 지독한 인사로 알음알음 알려진 사람이라고 했다. 이 남자의 주검이 마치 기묘하게 비틀린 나뭇가지처럼 말랐다더라는 소문이 발 없이 천리를 벗어나 만리를 향해 달릴 때쯤, 유언비어라며 소문을 주워 담으며 강력하게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남자의 아

  • 박하경
북마크
295
2024.12 69호 연화도 가는 길

이명준 선생님께 드립니다.저는 통영시청 문화예술과에 근무하는 박수현입니다.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라서 여러 날을 망설이다가 이렇게 당돌한 편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내년에 회갑을 맞이하는 저의 어머니는 지금 이곳을 떠나 작은 섬에 가 계십니다. 뜻하지 않는 병고로 요양차 가 계시는 어머니는 장연화씨입니다. 설령 선생님의 기억 속에 저희 어머니가 남

  • 이인록
북마크
324
2025.2 672호 假面놀이

위에서 쏟아지는 시원한 물줄기가 전신을 고루고루 씻어주며 자긋자긋 누르듯이 안마를 하는 것 같았다.“아이 시원해….”윤희(允嬉)는 머리를 풀고 샤워기에 디밀다가 갑자기 발작이라도 된 것처럼 샤워꼭지를 돌려 어느 한 지점을 향해 갈겼다.그곳에는 비닐로 포장되어 붙어 있는 허연 종이가 비명을 지르듯이 바르르 떤다.<말자 시리즈 1號>1. 바른말 하되

  • 김경자(마포)
북마크
269
2025.2 672호 변치 않는 사랑

오래 기다린아지랑이 향기 머금고이른 봄 따스함으로깊숙이 들어온내 마음에 품어진 너 눈 가득 쿵쿵 들어온 그리움뭉게뭉게 피어난 하얀 사랑에머랄드 파도에 담아너에게로 너에게로개쑥부쟁이1) 한 아름 보낸다 갈남 해변2) 모래 가늘어지고푸르른 잎새 이슬 엷어져도뭉클뭉클 다가온 마음속살랑살랑 봄바람 그윽한인삼벤자민3) 본다 나 이름 없는

  • 김종명(청향)
북마크
184
2025.2 672호 저녁이 걸어오고 있다

저녁 밥상에 마주 앉아하루의 소소한 일들을 이야기하던다정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따뜻하게 집 안을 채웠던 말소리들이벽 속으로 꼭꼭 숨어버렸나 보다 텅 빈 거실에 혼자 남아 있는 날이면언젠가 맞이할 머나먼 이별을 생각하게 되고창밖의 청보랏빛 저녁 하늘이 짙어 갈수록한 마리 벌레 울음소리도 더 쓸쓸하게 들린다 얼마 전 남편을 하늘로 떠나보내고

  • 김은희(광주)
북마크
280
2025.2 672호 맛깔스러운 생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땅으로 내려와소금꽃으로 피고 질 때어머니 굽은 등이 펴질 틈도 없이별을 주워 담는다 달콤 짭짜름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단맛을 증가시키는 소금을 넣어야 하듯이삶을 맛깔나게 하기 위해서 소금꽃 한 줌 넣으면밋밋하고 쓸쓸한 날도 간이 딱 맞는아름다운 맛으로 하얗게 핀다 음식에 소금이 빠지면 제맛을 내지 못하듯땅 위에 피어난

  • 김화연(성북)
북마크
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