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월 6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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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눅눅한 기억으로 낯선 모텔에서 도망친 적이 있다
아니 텅 빈 꿈을 꾼 것인지도 모른다
끌려간 것도 갇힌 것도 아닌데 그랬다
간밤에 몰아친 폭풍우를 비웃기라도 하듯
깜찍하게 맑은 아침에 놀라
손우산으로 태양을 가린 채
도망쳐야 했었다
태풍으로 자란 바람의 소용돌이에
울타리에 뚫린 구멍이 하나둘 늘어났다
밤새 전화기는 배신감에 부들부들 떨었고
예보를 허풍이라 둘러댔던 나는 허둥댔다
뽑히고 부러진 이정표
뭉개진 사진 속 웃는 표정들
서랍에 묻혀 있다 휩쓸린 오래된 약속까지
탁한 황톳물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아니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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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몰아치던 폭우가 그치고
묽어진 어둠에 다시 평온해진 하늘
휩쓸리고 무너지고 헝클어진 TV 속 절규와
시치미를 뗀 말간 햇살이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부조화라니
‘호우주의보 발령,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기상캐스터의 당부에 네에∼ 답하는
참으로 맹랑하게 맑은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