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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정희(성남)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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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남은 달력이 내 눈을 잡는다. 지나온 시간 돌이켜보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나이만 보태지는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엊그제만 해도 꿈이 많은 소녀 같은, 그래서 목소리도 쨍쨍하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세월이 내 등 뒤에 올라앉아 나를 짓누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까, 사는 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하고 지나온 시간을 끄집어내 보니 그 속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경쟁의 줄에 서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경쟁은 먹고사는 일이 먼저였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혼자서 나를 가꾸어 갈 수 있는 여가생활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면서 결혼하고, 아이를 출산하다 보니 나를 챙길 시간 없이 삶에 충실했던 시간이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보니 그때서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가 희끗거리는 나이였다.
흰 백지 위에 마음을 펼쳐보며 풋풋했던 소녀처럼 웃어 본다. 그것이 문학의 힘이었다. 문학은 나를 깨우치는 스승이고 친구였다. 늘 혼자라고 생각했을 때 살며시 나를 어루만져주는 다정한 친구, 그래서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펜을 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또한 나를 놀라게 했다.
어느 가을날, 단풍이 물들어 가는 계절에 날아온 문학상 수상 소식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내가 문학상을 받는다고, 그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내 손에 놓인 전화기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혹여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래야 했다. 얼마 만에 느끼는 기쁨인가 이런 날도 내게 일어나는구나 하면서 한참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치열하게 살아온 삶이었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려 노력했던 내 삶의 현장은 눈물과 한이 섞인 것이기도 했다. 가슴속 깊이 쌓인 그것을 알 턱이 없는 아이들은 성장하여 이제는 나이 먹은 나를 살뜰히 살펴주려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나이를 먹은 노년의 삶에서 상을 타는 일이 흔하지는 않은 일이다. 그것도 팔십을 눈앞에 둔 노인인데 말이다. 그런데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행복한 시간을 맞았다. 황홀했다. 아니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상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자식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다. 예전 아이들의 보호자였던 내가 이제는 자식들이 곁에서 보호자 역할을 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혹여 생길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해 조심성을 강조하는 자식들이다.
노년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자식들이 내 곁에서 남편이면서 친구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주니 힘들었던 지난날에 비하면 그래도 괜찮은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주변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하며 너한테 그런 재주가 있었니 하며 반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누구도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몰랐다. 먹고사는 일에 매진해야 했고 아이들과 살아내야 하는 무게가 무거웠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또다시 삶의 현장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문학 사랑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까마득한 기억으로 머물고 마는가 싶었는데 나를 이곳으로 불러 다시 일으켜 준 고마운 선생님이 있어 가능했다.
늘 무엇인가 허전하고 잃어버린 것 같은 마음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글을 씀으로써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의 한을 풀어내는 도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힘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고, 생각 없이 달려들었다는 자책감이 들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자식들이 용기를 주었다. 엄마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세요 라던 딸의 말에 다시 놓았던 펜을 잡았다. 그 용기가 오늘에 생각지도 못한 상을 받게 되어 기쁨이 컸다.
글을 쓰면서 문학상을 받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어찌 보면 나이 먹은 사람에게 더 열심히 쓰면서 살아가라는 격려의 상으로 받아들였다. 그 상이 내 삶의 희망을 주는 빛이었다. 그래서 더욱 값진 상임을 안다. 내 삶의 글은 남편이고, 자식이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나의 재산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어 머리가 희끗거리는 할머니의 삶, 노년의 빛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삶의 방향이 바뀌고 그러면서 희망을 품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건강이 허락되는 날까지 나를 사랑하고 열심히 글을 쓰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살아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삶의 끝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자식들이 나를 응원해 주는 한 나의 글쓰기는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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