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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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 산자락에 연분홍 진달래가 피고 아파트 산책로에 봄바람이 불어오면 내 마음을 밖으로 불러내는 것 중에 하나가 운동이다. 이제는 골프도 대중의 운동이 되어 누구나 공을 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굳이 경비가 좀 드는 필드에 나가지 않아도 스크린골프를 비롯해 실버를 위한 강변의 미니 골프장까지 있는 세상이 도래했으니 말이다.
필드에 가면 승부욕의 발동으로 라운딩이 중요하지만 골프장 주변 경관이나 넓은 잔디가 주는 시원함, 자연의 풍광을 바라보며 느끼는 시선의 황홀감, 그리고 답답한 마음이 자연의 선물로 뻥 뚫리는 힐링 때문에 골프는 여러 가지 행복감을 충족시켜 주는 운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가 공을 치러 가자고 연락이 왔다. 이들 부부와의 인연은 몇 년 전 골프연습장에서부터이다. 친밀한 인연을 맺고 연습장에서는 물론 카페에서도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마침 계절도 좋고 시간도 맞기에 약속을 하고 며칠 후 그 집 승용차 편으로 함께 골프장으로 떠났다.
첫 티업이라 어두컴컴한 새벽을 뚫고 고속도로를 달려 골프장 근처까지 왔다. 이른 새벽 출발이라 시장해서 우선 민생고 해결 차 하차를 했다.
골프장 근처에는 골프를 치기 위해 찾아온 골프 매니아를 위한 조식 식당이 있다. 입구부터 토속의 구수한 냄새가 풍기는 이 식당의 해장국은 일미다. 잘 우려낸 사골국과 함께 잘 익어 흐물흐물 입에 넣으면 부드럽게 넘어가는 우거지와 시원한 콩나물 국물이 참으로 일품이다.
기분 좋은 배부름, 새벽 맑은 공기, 넘치는 승부욕 등등으로 만족감이 충만할 즈음에 아침 해가 먼 동산 위로 둥실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골프장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내가 차에서 내렸는데 주차 경비원의 손짓이 보이며 차를 빼라는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운전자가 그의 말을 듣고 당황했는지 곧바로 액셀을 밟자 승용차가 발진하며 차바퀴가 내 오른 발등을 치고 덜컹 앞으로 가는 게 아닌가?
숨이 막히듯 악! 하고 정신이 아찔한 순간, 차가 멈추고 바위 같은 게 내 발등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 이 광경을 근거리에서 보던 경비원이 재빨리 달려와 나를 부축하여 로비의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혔다. 운동을 하려고 상기되었던 기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머릿속은 먹구름으로 가득 찼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해보험이 들어 있다는 둥, 치료비는 걱정을 말라는 둥, 골프장 직원과 주변 사람들 말,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의 걱정들로 소란스럽지만 아무 말도 내 귀에는 위로로 들리지 않았다.
앞으로 내가 운동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이대로 불구 장애인이 되어 걷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얼마 전 바람결에 들었던 앞동 주민이 자동차에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평생 불구자로 산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몹시 불안해서일까?
사고가 난 순간부터 아직 내게 닥쳐 오지도 않은 내일의 불행을 그렇게나 많이 생각하고 있다니…. 좌우간 마음이 무겁고 우울했다. 그런데 내 눈에 보이는 건 내 상처보다 노랗게 얼굴이 질려 있는 아파트 친구 부부였다. 사고를 당한 나보다 더 후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보이자 침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황해서 정신을 잃거나 소리를 지르면, 이들 부부가 금방 졸도할 것 같은 분위기는 내게 더 무서운 공포였다.
119를 부르네 마네 하는 순간, 나는 친구 부부에게 괜찮다며 안심시키려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더 난리법석을 떨며 나에게도 친구 부부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시끄러움이 요동을 쳤다.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한다, 어서 빨리 가서 MRI를 찍어 자세히 검사를 해야 한다는 등등, 사람들은 남의 사고에 왜 이렇게 감 놔라 배 놔라 관심이 많은 건지….
오히려 남편과 내가 친구 부부를 안심시키고 말리는 상황이 되었다. 우선 직원이 응급조치를 해준 덕분에 긴급 의료 조치를 하고 조금 쉬었다가 일어나 발걸음을 내디뎌 보았다. 내 어깨를 부축하며 도와주는 이들이 힘이 되어 절뚝거리며 살살 걷고 있는데, 잔뜩 긴장을 하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친구 부부가 내 모습을 살피고 있었다. 사실 전혀 모르는 남이라면 나도 119를 타고 병원으로 갔을지 모르나 이들 앞에서 차마 그리 할 수 없었다.
직원들이 오늘은 다리에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공을 치지 말고 경기를 멈추라고 하는데 앞동 주민이 장애인으로 휠체어를 타고 지낸다는 소문이 다시 또 떠오르니 내 속이 복잡 미묘했다.
아! 그런데 이상하다. 시간이 좀 지나자 웬일인지 통증이 없고 그러나 발등은 무감각했다. 그래, 어차피 이곳까지 왔는데…. 나는 과감하게 일단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시간이 다른 날보다 훨씬 더 걸리긴 했지만 내 발 상태를 살피고 참아 가며 18홀을 마치고 집으로 왔다. 병원 문을 닫은 시간이라 자기 전 발등에 뜨거운 찜질을 충분히 해주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발에 감각이 없었다.
우선 내가 다니던 한의원으로 달려갔다. 큰 병원에 가라는 그 부부에게 비밀로 한 채, 평소 신뢰감이 있던 한의원 원장에게 치료를 맡겼다. 침을 꽂고 물리치료를 계속 했더니 기적처럼 좋아졌다. 그렇게 원장은 온 정성으로 나를 일주일 넘게 치료해 주었다. 의사는 천행을 넘어 기적이라고까지 하며 몇 주간 더 치료를 요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다시 돌아봐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를 도우신 부처님의 가피일까? 기적의 은총인가?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적이 있나? 여하튼 내 남은 생은 이웃을 생각하며 올바르게 잘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뉴스를 보면 지구촌 곳곳에서 기적 같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지만, 사실은 사람이 밤에 자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 하루를 보내고 잠을 자는 것, 즉 먹고 자고 숨 쉬는 것 등등 하루하루의 일상이 기적 아니겠는가? 무의미가 의미이고, 평범이 비범이고, 일상이 기적임을 자각하는 그날, 기적적으로 찾아온 봄날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