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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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쯤 새해 인사차 은사님 댁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제자들에게 새해 아침에 있었던 농담조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해가 선생님 연세가 80세 되던 해였으니까 이 제자의 올해 나이와 같다.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사모님께 큰 소리로 “여보! 내 눈 떠도 되나?” 하니, “눈 떠도 돼요!” 하는 대답을 듣고 일어났다는 우스갯소리였다. 그때 항간에는 여자들끼리 모여 농담하면서 남자 나이 80이 되면 눈을 떠서는 안 되고, 그냥 저세상으로 가야 고생하며 살아온 여자들이 마음 편히 좀 더 살다 간다는 뜻이리라.
그러고 보니 내가 그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상황이 좀 달라 아내가 오랫동안 건강이 좋지 않아 그런 소리할 형편은 못 되었지만, 해가 바뀌었으니 뭔가 새로운 게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도 별다른 변화나 새로운 삶의 계획이 나올 것 같지 않다. 정년퇴임 이후 해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수년째 되뇌이며 기도하는 말은 언제나 그 말이 그 말이다.
건강하다고 자랑 안 할 테니 제발 아프지 않게 해 주소서.
욕심내어 횡재 바라지 않을 테니 낭패 보지 않게 해 주소서.
여법(如法)하게 살려고 노력할 테니 남의 손가락질 받지 않게 해 주소서.
성내고 짜증 내지 않을 테니 가끔씩은 큰소리로 웃게 해 주소서.
어려워도 참고 견딜 테니 반가운 얼굴 자주 만나게 해 주소서.
그냥 그냥 얼구어서 남은 생애 조용히 살다 가게 해 주소서.
내 나름의 기도다.
며칠 전 직장 후배였던 친구가 안부차 들렀길래 차 한잔하며 주고받은 이야기다. “형님, 별고 없으시죠? 요즈음 안부는 어디가 편찮으시냐, 어디가 아프시냐고 묻지 않고, 아프지 않은 곳이 어딥니까? 하고 묻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하던 말이 생각난다. 팔십이면 산수(傘壽)라 하여 예전에는 이승에서 자기 나이의 한계로 보아 팔십이 넘으면 남의 나이를 먹는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의학의 발달로 신체의 문제되는 부분을 고장난 기계의 부품 갈아끼우듯 고쳐나가니까 수명이 연장될 수밖에.
그래도 이 나이에 어려울 때 의논드릴 수 있는 멘토가 있는 나는 나름 복 받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은사 스님께서 가끔씩 인용하시는 말씀 중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제자라 할 수 있는 ‘사리불 존자’의 이야기다. “나는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죽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품팔이가 품삯을 기다리듯이 나는 내게 올 인연을 기다리며 산다”는 말이 생각난다. 내게 올 ‘인연’은 무엇일지? 나는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인연을 맺으며 살아왔는지? ‘너의 과거(전생)를 알고 싶으냐. 너의 현재를 보라. 너의 미래(내생)를 알고 싶으냐? 너의 현재를 보라.’ 현재의 나의 삶이 과거의 연장선에 있고, 미래의 삶은 현재의 연장선에 있으니 미루어 짐작하면 과거와 미래도 유추되리라. 조용히 생각하건대 크게 벗어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인연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을 인정하면 편해지는데 억지로 무리하게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 무리수를 쓰면 쓸수록 삶의 방향은 전혀 다른 엉뚱한 곳으로 갈 수밖에 없으리라.
얼마 전 선배님의 병원 앞에서 선배님과 고등학교 동기생인 다른 선배를 만났다. 그날이 동기생들의 만남의 날이라고 들었기에 모임에 오시나보다 해서 인사를 드렸더니, “나를 아십니까?”라는 의외의 답이 왔다. 깜짝 놀랐다. 선배님들과 식사도 술자리도 같이한 적이 있기에 아차 싶었다. 적당히 얼버무리고 자리를 피했다. 얼마 뒤 그 병원에 들러 선배님께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글쎄 치매기가 있어서 그날 이후 모임에도 못 오신다고 했다. 언제 어떻게 우리의 모습이 변해 갈지 자못 걱정스럽다.
그래도 어쩌랴. 인(因)과 연(緣)의 원인에 따라 인연과보가 일어나는 인연법(因緣法)과 원인에 따른 결과가 나타나는 인과법(因果法)을 믿고 사는 수밖에. 병오년 새해 스님으로부터 받은 입춘방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의 대구(對句)는 ‘복래만방(福來萬方)’이었다. 복이 만방으로부터 온다는 뜻이리라. 복된 삶을 살려면 만방으로부터 복을 받기 전에 만방에 복을 지어 베풀어야 하고, 만방의 사람들이 복을 누리면 나도 우리 가정도 저절로 복을 누리게 될 것 아닌가. 좁게는 나와 우리 가정으로부터 만방에 사는 사람들이 복을 받아 누리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가 연말연시에 흔히 하는 인사로 ‘복 많이 받으십시오’는 ‘복 많이 지으십시오’로 바꾸는 게 맞지 않을까.
지난 연말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5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국민을 상대로 희망하는 한국의 미래상을 묻는 조사에서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가 31.9%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 28.2%를 앞지르는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 조사가 1996년 시작된 이후 ‘경제 성장’의 가치가 줄곧 1위를 지켜왔는데, 지난해 처음으로 ‘민주주의’에 자리를 내어준 것이다. 경제도 복지도 국민의 삶의 질도 중요하지만 작금의 정치 상황을 바라보는 국민의 정서를 그대로 나타낸 것 같다. 이제는 국민의 일상과 삶이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정치적 민주주의가 국민의 삶을 지켜가는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우리 같은 소시민이 정치를 논할 형편은 안되지만, 정말 새해는 정치가 국민을 걱정해 주는 게 당연하지만,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