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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쉼표

한국문인협회 로고 정인자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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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관광객이 구름처럼 몰려간다는 베트남의 다낭, 경기도 다낭 시라는 별칭까지 얻었다고 해서 웃은 적이 있었다. 건강 때문에 해외여행은 포기하고 산 지 오래다. 어느 날, 남편의 팔순 기념으로 자식들이 다낭 여행을 함께하자고 제의해 왔다.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이란 말에 용기를 냈다. 손주 넷, 막내딸 내외, 우리 부부 도합 여덟 명이다. 큰딸이 갑자기 맹장 수술을 하는 바람에 그 내외만 빠지게 되어 서운함이 컸지만 취소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중학생인 막내손녀를 제외하곤 손주들 모두 어느새 훌쩍 커서 대학에 재학 중이다.
베트남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나의 선입견은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동족 간의 긴 전쟁이다. 우리 군인들도 참전해 수천 명 목숨을 잃은 곳이다. 미국과 남베트남이 손을 들면서 사회주의 국가로 통일이 되었다. ‘보트피플’, 그때 조국을 탈출해 작은 배로 바다를 표류하던 베트남 난민들의 참상은 결코 남의 나라일 같지가 않았었다. 공산국가지만, 그들의 개방정책으로 자유롭게 그 땅을 드나든다는 사실이 왠지 기적 같게만 느껴졌다.
다섯 시간 비행 끝에 내린 다낭 공항은 후덥지근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겨울이지만 이곳 날씨는 여행하기에 최적의 기후라고 한다. 모두 파카를 벗어 들고 마지막 검사대를 통과하는데 어깨에 붉은 별을 단 인민복의 군인이 지키고 있어 순간 섬뜩했다. 그러나 호텔로 향하는 차창 밖의 풍경은 전쟁의 상흔을 다 씻은 듯 평화로워 보인다. 강을 사이에 두고 고층과 저층 건물이 적당히 어우러진 풍경은 낯익은 어느 중소도시에 온 듯한 친밀감마저 들었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야자수 잎들만이 이국임을 실감케 한다. 강 이름이 서울의 ‘한강’과 발음이 같다는 게 신기했다. 아직 일몰 직전이라 호텔에 여장을 푼 후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오토바이는 이 나라 주요 교통수단인가.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굉음을 내지르며 달리는 오토바이 행렬, 러시아워의 물결치고는 참 요란하다 싶었다. 오히려 일반 차들이 그들을 존중하며 조심스레 운전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풍긴다. 어둠이 스며들자 온갖 조명과 불빛으로 단장한 강변은 몽환적이리만치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이 잔잔한 정취를 휘저어 놓는 훼방꾼이 또 있었다. 확성기가 찢어질 듯 뿜어대는 고성방가였다. 뽕짝 비슷한 가락인데 일종의 호객 행위인 모양이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식당가는 인도까지 자리를 점령하며 손님 맞기에 혈안이다. 그렇다고 현지인 누구 하나 단속하거나 불편해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최선의 삶’이라는 명제 앞에선 웬만한 건 눈감아 주고 포용이 되는 무질서 속의 질서가 생활화된 느낌이랄까. 붐비는 관광객들 때문인지 밤이 훨씬 활기차 보이는 다낭의 첫날이었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호이안은 베트남 전통 가옥과 풍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북적거리는 인파가 소문대로 우리나라 사람 천지다. 발 빠르게 베트남 전통 의상으로 갈아입은 손녀들은 싱그러운 젊음을 한껏 즐기고 있다. 저마다 소원을 빌며 강물에 띄운 오색 연등으로 투본강은 간절한 염원의 강이 되어 흐른다. 우리 아이들은 과연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가게 앞에 샛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낑깡나무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까닭인즉, 새해가 되면 그 나무를 집안에 들여놓고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풍습이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바나산 국립공원의 바나힐과 골든 브릿지는 여행의 백미였다. 골든 브릿지는 발상 자체가 흥미롭다. 거대한 손이 다리를 받쳐 들고 있는 조형물이다. 바나힐은 유럽의 고풍스런 한 마을을 통째로 옮겨 놓은 듯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웅장한 데 놀랐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더위를 피하기 위한 프랑스인들의 휴양지였다고 한다. 해발 1500미터나 되는 그 높은 곳까지 어떻게 그 육중한 자재를 나르며 공사를 할 수가 있었을까. 유적지에선 늘 그렇듯, 많은 사람의 노역과 희생을 떠올려 본다. 침략자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더욱 발전시키며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느껴졌다.
베트남은 다낭처럼 수평선이 포물선을 그리는 광활한 바다를 보석처럼 간직하고 있는 나라다. 백사장을 따라 이어지는 호텔, 리조트의 시설은 휴양지로서도 손색이 없다.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을 바라보노라니 온 세상 평화와 행복이 거기 머물러 있는 듯하다. 손주들이 어릴 적, 60도 못 된 나는 할머니 소리를 들으며 걸핏하면 그들의 놀이 대상이 되곤 했다. 소꿉놀이, 숨바꼭질, 병원놀이…. 천사 같던 그네들 모습과 새순처럼 여리던 숨결 체취까지도 내 인생의 향기로 기억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저들은 모르리라. 해외 경험도 많고 영어에 능통한 막내 사위 덕에 아무런 불편 없이 여행을 마칠 수 있어 감사했다. 한 가지 서글픈 건, 앙금처럼 남아 있는 ‘통일’이란 두 글자를 여행 내내 떨쳐낼 수 없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들이 조금은 부러웠고, 돌아올 조국이 있음에 새삼 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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