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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 68호 녹슨 기억

생선비늘처럼 벗겨내고 싶어도쉽사리 벗겨지지 않는담담하게 쌓인 기억들 사이짙푸른 고요가 점점 더 두꺼워지고 있다햇살도몸을 숨기고픈 날들이 있었던 것일까 지독하게 부끄러운 날들이 스며들어 뚝, 뚝 눈물을 흘린다떨어지는 빗소리에 고해하듯 중얼거리며 간신히 하루를 버티고 있다,쓸쓸하게 빛을 잃어가며 쓰러져 누운 채은은하게 퍼져오는 에스프

  • 이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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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 68호 두줄시 5편

1. 방아깨비방안속이마냥궁금해방범창에 네 발로 매달려 있다2. 폭포산이 비를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앙가슴 열어젖히고 막 토하고 있다3. 봄바람봄바람 나무 가지들 흔들어 새싹들 불러내고 꽃 몽우리마다 깨어나라 깨어나 간질이고 있다4. 그리움작별은 떠나는 게 아니라 남겨지는 거 메아리로 돌아와 머무는 그리움5. 홍수멈출 수 없는 질주의 본능산

  • 黃普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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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 68호 백두산 천지에서

굽이 굽이 몇십 굽이를 돌아천지 가는 산등성에듬성듬성 천년을 녹이지 못하고곰발딱지처럼 굳힌 아픔 안고광활한 벌판을 한눈에 내려다보며모질게도 추운 겨울 내내품에 안고 키워낸 키 작은 야생화들따스한 봄 햇살 아래 옹기종기 앉아 있다수많은 발길들 속에 밀려서 오른 천지 하늘과 맞닿아 있는한 폭의 수채화 속 그림처럼해발 2744m 산꼭대기에잔잔한 하늘 호

  • 전경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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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 68호 칠갑산(七甲山)의추억

내어린시절차령의 자락칠갑산 맴돌며자랐다.따스한 봄날산 정상에 오르면아지랑이 아른거리는 산 능선 멀리아스라이 백마강이 눈앞에 아른해저길 언제 가 볼 수 있을까하염없이 마음 다지며 꿈을 꾸다가진달래꽃밭 헤집고장곡사(長谷寺)로 하산하길 그 몇 번이던가여름천장리 얼음골 여울 따라 헤엄치며 고동도 잡고 개울가 집채만 한 바위말발굽 자국 깊게 파여진

  • 이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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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 68호 컬러풀 원더풀

노랗거나 살구색이거나 빨강이거나 혹은 연두와 하양 하양동그랗거나 길쭉하거나 새끼손톱의 거스러미 만큼이거나흰 속살 눈치껏 드러낸 반으로 쪼개진 분홍세 개의 봉지와 플라스틱 원통에 든일용할 파스텔 한 줌 털어 넣어야 시작되는 하루가끔 한두 개 알약이 목구멍을 거부하고 그 언저리를 배회할 때의 쓴맛 생기는 직선 대신 오불꼬불한 나선형이다노랑이 녹을 동안

  • 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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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 68호 슬픔이 그리는 선

공인가 했다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니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길고양이다 털이 검은다가가도 가만히 있다달아나는 법을 잊은 것처럼어디가 불편한가 다쳤나아예 고양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본다 구부러진 몸이 고양이 같다고개만 돌려 나를 보는 눈동자에 눈 한 번 꿈뻑이면 부서질 것 같은 동글게 말린 슬픔이 비친다구깃거리는 불청객에 놀라미동도 없던

  • 최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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