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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미소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형수(부산)

책 제목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2월 6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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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향하는 문턱인 백로(白露)의 절기가 지났지만 환경 오염으로 인한 기후 온난화가 불러온 이상 고온 현상으로 낮에는 폭염이 계속되고 아침저녁으로도 후덥지근하다. 추석 연휴를 며칠 앞두고 김치냉장고가 고장이 났다. 구입한 지 20년이 지난 오래된 것이라 수리하여 쓸 수가 없게 됐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김치냉장고는 나의 아이가 대학 시절 부두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노동 아르바이트를 하여 번 돈으로 지네 엄마에게 사준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김치냉장고에 애착이 강했고 더욱 속이 상한 것 같다.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기에 낙심하고 어찌할 줄 모르는 아내 모습을 보며, “속상해하지 마, 결혼기념일 선물로 추석 안에 내가 다시 좋은 것으로 사줄게.” 했다. 그리고 아들에게 전화해서 김치냉장고를 알아보라 했고 아들은 쿠팡 물류를 통해 몇 종류의 모델을 알려왔다.
스탠드형과 뚜껑형으로 대략 100만 원대이다. 아내는 LG 브랜드 제품 ‘디오스 김치 톡톡’ 모델을 선택했다.
주말인 토요일 오전 9시 30분경에 김치냉장고를 설치하러 온다고 한다. 아침이 되자 방문설치 기사분들의 초인종이 울리고 밖의 마당에는 사다리차가 사방 바퀴를 내리고 준비하고 있다. 고장 난 냉장고가 먼저 사다리차에 실려 내려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김치냉장고가 놓였다. 설치하는 과정이 전문적이고 친절하다. 30분도 채 안 되어 설치를 마치고 떠나는 기사 분들께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쿠팡물류시스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냉장고 고장으로 상한 반찬들을 버리고 새로운 냉장고에 차곡차곡 담아내는 아내의 손길과 얼굴에는 어둠이 사라지고 기쁨의 미소가 넘쳐난다. 결혼기념선물로 사준 것이기에 연신 고맙다 하며 행복한 몸짓을 한다.
추석날 아침 추석가정 예배를 함께 드리고 아침을 먹었다. 추석 연휴 기간 중 결혼 42주년을 맞는다.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거제도로 드라이브하기로 했다. 부산의 ‘해솥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거제도로 향했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부산의 가덕도 거가대로에 접어드니 추석연휴라 차량이 몰림으로써 병목현상이 일어난다. 거가대로*는 사장교 2곳(4.5Km)과 해저침매터널*(가덕도-대죽도) 3.7Km을 잇는 사실상 부산-거제 간 고속도로라 할 수 있다. 기존의 통행시간 2시간 30분에서 40여 분대로 단축시킨 것이다. 그래서 거제 통영 등지에서 장을 보러오거나 문화생활을 즐기러 부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다. 
차가 서행하는 동안 부산신항만을 지난다. 거대한 크레인들도 멈추어 섰다. 부산항만의 크레인이 멈추어 선 날은 구정설날과 추석날 이틀뿐이라고 한다. 해저침매터널을 지나니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거대한 사장교는 저도*를 관통한다. 남해의 하늘 닮은 푸른빛 쪽빛 바다, 파아란 가을하늘,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사이로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어둡고 힘든 시기에 42년 동안 가정을 지켜온 아내는 자신의 병마와 싸우면서도 가정 살림살이에만 전념하고 가족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살아왔다.
거제도 입구 ‘시방리 CAFE’ 안에서 바라본 거제도 해안과 주변 풍경들은 참으로 싱그럽고 아름답다. 빨갛게 익어가는 석류꽃, 화려한 꽃을 피우는 능수화가 그리움을 더해준다. 푸른 숲속별장과 수많은 펜션들. 아들은 창 넘어 바깥 풍경을 배경으로 아내의 사진을 찍어 휴대폰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담아주니, 아내는 마음에 들어 너무나 기뻐한다.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서 아내 손을 잡고 위로하며 감사했다.
나는 기도한다.
‘사랑이여! 결혼 50주년(금혼식)까지 만이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의 축복으로 행복하니 금혼식을 맞이할 수 있도록 지켜주십시오. 심장의 박동이 강렬하여서 신체의 모든 곳에 피가 잘 흐르고, 미세한 뇌세포에 피가 잘 통하여 뇌경색, 뇌졸중, 뇌출혈, 치매와 같은 질병을 예방하여 주십시오. 또한,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건강의 축복을 허락해주십시오.’
김치냉장고로 인해서 아내가 새로운 삶에 의욕을 느끼며 결혼기념일에 행복한 미소 지으니, 아내의 기뻐하는 모습이, 마치 염화시중(拈花示 衆)의 미소처럼, 서로가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이 통하여 그윽한 미소를 짓게 한다. 나 또한 이 기쁨 무엇에 견주리.
내 사랑이여!

*거가대로 : 경남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에서 출발해 죽도, 저도를 거쳐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에서 끝나는 총 길이 8,215m의 교량 터널 복합도로.
*침매터널 : 육지에서 만든 대형 함체(침매함)를 바다에 가라앉혀 연결하는 공법으로 만든 터널로 수심 48m에 이른다.
*저도(猪島) : 경남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에 있는 섬. 대통령 별장인 청해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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