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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박보순

책 제목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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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흩날리던 어느 봄날. 코로나가 막을 내리며 우리 무대의 막은 다시 올라갔다. 내가 속한 도서관 자원봉사단은 지역 아이들에게 그림책 읽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일 년에 두 번은 크게 잔치를 여는데 아동극과 인형극, 악기 연주와 율동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해마다 봄과 가을에 열리던 공연은 코로나로 3년 동안 휴식기를 가졌고 코로나 종식과 함께 공연은 다시 시작되었다. 무대를 준비하면서 긴장과 설렘이 함께했다.

이번 공연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아동극의 주인공인‘투덜 부엉이’였다. 눈썹이 치켜 올라간 부엉이 옷을 입고, 대사는 시종일관 투덜거리는 것이다. 표정에서부터 불만이 가득하다. 친구도 놀이도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 얼굴이다. 그러면서도 토끼와 곰, 그리고 파랑새가 함께 노는 모습에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부엉이는 다른 동물들과 함께하고 싶지만, 방법을 몰랐고 그 마음을 투덜대며 방해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부엉이가 등장하여 매번‘싫어’,‘마음에 안 들어’하며 투덜거리자, 관람하던 아이들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

“부엉아, 그만 좀 투덜대! ”

목에 힘이 들어간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부엉이를 때렸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는‘부엉아, 이제는 괜찮아? 친구들하고 잘 지낼 거지?’ 하며 어느새 다정하게 다독인다. 대여섯 살짜리 아이들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에 웃음이 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뭉클했다. 배역이 어쩌면 그렇게 찰떡이냐며 사람들이 칭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말들을 해 주었다.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찹쌀떡처럼 녹진하게 퍼져 있는 겨울 이불 두 덩어리 옆에 내 몸뚱어리를 던져 놓았다. 눈썹이 치켜 올라간 투덜 부엉이가‘이제, 그만 겨울 이불을 치우시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밀린 집안일을 할 시간이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이불을 들고 집 근처 빨래방으로 갔다. 바구니에 딸려 온 투덜 부엉이가 커다란 세탁 통 안에서 자유롭게 거품 놀이를 즐긴다. 할 일을 마친 부엉이의 모습이 더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이불 빨래를 마치고 나니 얼마 전 남편이 어디선가 얻어 온 육쪽마늘이 생각났다. 텔레비전이나 실컷 보면서 마늘을 까야겠다고 다짐했다. 부엌 베란다에 던져 놓은, 알맹이가 실하고 단단하고 싱싱하고 귀한 육쪽마늘이다. 언제부턴가 시골에서 오지 않는 채소들, 쌀, 참기름, 들기름 그런 것들이 아쉬워졌다. 잔뜩 실려 올 때는 둘 곳이 없다며, 잘 먹지 않는다며 투덜거렸던 것들이다. 냉장고에서 흐물흐물 시들어 가던 상추, 호박, 부추, 이런 것들.

오늘 육쪽마늘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살려야지, 잘 먹어야지. 시들게 두지 말아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까지 않은 마늘을 담을 통, 껍질 통, 알맹이 통, 이렇게 준비를 해 두고, 넷플릭스를 켜서 시리즈를 하나 골라 격파하고 말겠다는 결심을 한다. 요즘 뜨는 드라마 한 편을 고르고 마라톤 바통을 건네받은 것처럼 리모컨을 들고‘준비, 시작!’을 외치며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눈은 텔레비전을 보고, 손은 마늘을 깐다. 몸통을 쪼개고 작은 알맹이마다 껍질을 벗긴다. 예전 같지 않은 허리,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들어진다. 소파와 바닥을 오가며 마늘을 깠다. 다 깐 마늘을 물에 헹구어 채반에 담고 신문지를 덮어 놓으며 허리를 펴니 어느덧 서녘 하늘로 곱게 노을이 물든다. 물기가 마르면 내일쯤 믹서에 갈아 냉동해야겠다. 까고, 씻고, 갈고, 소분하면 귀하고 비싼 마늘 까기의 노동은 끝난다. 요즘은 비싸지 않은 것이 없다. 음료수 하나, 아이스크림 하나도 그렇다. 비싸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문뜩 나의 글에 값을 매겨 본다.

한때 노동하지 않는 죄책감에 빠져 있었다. 글을 써보겠다고 종일 헤매다가 집에 돌아오면 지쳐 쓰러졌다. 손목은 아프고 목은 거북이처럼 일자가 되어도, 허리는 비틀어지고 무릎은 시큰거려도 문장은 언제나 오리무중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완성하지 못한 글들이 시들거나 버려졌다.

겨울 이불은 할 일을 마치고 제자리를 찾아 장롱 깊숙한 곳에서 여름 잠을 잔다. 잘 빻아진 마늘은 냉동고를 아름답게 채운다. 있어야 할 곳을 알지 못하는 것은 ‘나’뿐이다. 펴지지 않는 비틀어진 몸을 힘겹게 일으켜 끝을 알 수 없는 노동을 시작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며 여기가 나의 자리가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머릿속 어딘가에 소분해 둔 이야기들이 있어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 쓸 수 있다면 좋겠다.

마늘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잘 지어진 밥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다. 자기의 자리를 알고, 자기의 목적을 알고, 그렇게 제 자리에 있는 모든 사물을 바라본다. 제자리에 있는 것은 아름답다.

한때 인터넷에 떠돌던 말이 있다. “아름답다”는 말의 어원에 관한 것이다. ‘아름’이 ‘나’를 지칭하는 말로 ‘나답다’는 말이 아름답다가 되 었으니 나다운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다. 가장 나다운 것, 나를 아는 것이 아름답다는 말에 매혹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답게 살고 있나 질문해 보았다. 나다운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 출처가 불확실한 말을 붙잡듯 확신 없는 삶의 목적에 기대어 흔들리며 어디쯤 어떻게 서 있어야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고 변명을 뱉어낸다. 창밖으로 어느새 동이 튼다. 마늘 껍질과 함께 바닥을 뒹구는 말들을 쓸어 담는다. 눈이 맵다.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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