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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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품은 엄마 젖가슴 같다. 천둥번개와 함께 몰려오는 비바람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내리쬐는 땡볕도 두렵지 않다. 미친듯 몰아치는 눈설레가 가슴속으로 파고들 때도 그에게 매달리지 않았던가. 이렇듯 몸도 마음도 젖지 않게 해주는 그는 삶의 풍파를 막아주는 비받이임에 틀림없다.
“나 죽으면 우째 살거요.”
귀에 따까리가 앉을 만큼 들어온 말이다. 주말이면 아내에겐 계 모임이 기다릴 때가 더러 있다. 점심은 혼자 해결하라며 이것저것 알려주고 나가건만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목 빼고 기다리기 일쑤다. 식욕도 아내를 따라나섰는지, 때가 지나도 딱히 배가 고프지도 않고 먹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아무리 단단히 일러주어도 건성으로 듣는다며 불만 섞인 아내의 잔소리가 예약해 둔 알람처럼 반복한다.
아내가 여행을 다녀올 때도 마찬가지다. 여러 날 걸리는 긴 여행일 때는 밑반찬도 몇 가지 만들고 국도 두어 냄비 끓여놓건만, 하나도 제대로 비우지 못한다. 혼자 먹을 땐 반찬 꺼내기도 귀찮고 국이 없어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 때에 따라 식성도 변하는지 밥 한 공기에 반찬 하나면 족하다. 아내의 한숨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하루라도 내가 먼저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내 대답을 아내는 오래전에 달달 외워 버렸다.
백종원의 요리 프로그램이 한창 주가를 떨칠 때 일이다. 서양 사람들은 남자들도 한두 가지 요리는 필수라는 말도 들었던 참이라 은근히 마음이 끌렸다. 퇴임하면 시간도 때우고 아내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생각보다 낯설고 복잡한 요리도 많았지만, 이름도 익숙하고 조리법도 단출해 보이는 멸치볶음을 보는 순간 번개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 몰래 냉장고를 뒤져 깊숙이 숨은 멸치 봉지를 찾았다. 정답해설처럼 명쾌했던 TV 화면을 떠올리며 작업에 들어갔다. 아뿔싸! 순간 자신감 넘치던 콧노래가 사라졌다. 똑같이 한다고 했는데도 모양도 맛도 이상했다. 보기에도 지저분하고 짜기만 한 게, 방금 봤던 군침 도는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세상에서 가장 못난 멸치볶음이라고나 할까. 뒤늦게 알아차린 아내 왈, 자꾸 하면 된다며 거드는 목소리가 편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 집안 살림은 하나도 모르는 것을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무관심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밥하기도, 청소하기도, 빨래하기도, 장보기도, 은행일보기도 담을 쌓은 채 살아왔다. 어지간한 맞벌이 부부들은 집안일을 쪼개서 나눠 가질 정도로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나만 모른 걸까. 살림은 나 몰라라 하고 밖으로만 나돌다 보니 더러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오늘 병원에 잘 다녀왔나?”
“이비인후과에서는 많이 좋아졌다는데, 정형외과는 알다시피….” 척추관협착증으로 고생하는 아내가 최근 이석증까지 더해 어려움을 겪는다. 나이 들어 두세 가지 질병 달고 사는 게 대단한 일은 아니겠지만, 궁합이 맞지 않으면 아주 곤란할 때가 있다. 정형외과에서는 허리 치료를 위해 적당한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이비인후과에서는 고개를 조금도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추란 말인가. 아내에게 달라붙은 질병들이 자기 잇속만 챙기느라 환자 처지는 모른 체 하는 게 안타깝다.
파편이 내게로 튄 건 그즈음이다. 갑자기 내 손발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개똥도 약에 쓴다고,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요긴히 쓰일 때가 있는 것 같다. 지금 내 꼴이 옥을 가는 돌이나 금을 닦는 소금이 된 기분이다. 청소는 말할 것도 없고 장보기나 간단한 은행일까지, 어지간한 잔심부름은 몽땅 도맡은 신세다. 신랑 복이 아주 없지는 않다며 요즘 들어 한 번씩 너스레 떠는 아내를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뒤늦게 철이라도 든 것일까. 아니면 든든했던 뒷배가 사위어간 것일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생각만 한 것 같다. 옆에 있는 사람인들 도움청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을 터인데, 아무런 말이 없다고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닌지. 어설픈 손놀림을 볼 때마다 몸은 아내가 아픈데 병치레는 내가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어지럼증이 조금씩 가시면서 정형외과만 쳐다보면 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모범 가장이 아니었나 보다. 돈이나 여자 문제로 속만 썩이지 않으면 잘하는 걸로 알았다. 얄팍한 월급봉투였지만 꼬박꼬박 아내에게 건네주었고, 터무니없는 보증으로 가족을 거리로 내몰지도 않았다. 더구나 캠퍼스 커플이었던 아내 외에는 곁눈질도 하지 않았으니 마음 고생도 크게 시킨 편이 아니다. 어쩌면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것 같다. 남자와 여자를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 탈이었다. 어릴 적부터 부엌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은 세대이고 보니 내 능력 밖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세상이 변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내 잘못이 더 크지 않겠는가. 집안 살림을 하나씩 가까이 하고 보니 여태 포근한 온실에서만 자란 화초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젊은 작가 조기현의 외침이 떠오른다. 가난한 청년 보호자의 십여 년 기록인『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보면 세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은 듯하다. 그는 자신의 꿈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치매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보호자가 되었다. 스무 살부터 아빠의 우산으로 살아온 그를 생각하면 뒤늦게 살림에 손을 담근 나는 운수 좋은 놈이라고나 할까.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았던 내 자리가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크게만 보였던 아내의 자리는 눈에 띄게 줄어든다. 흐릴 때는 비가림막이 되고, 맑은 날에는 그늘막이 되었던 시절을 뒤로한 채, 슬그머니 내게로 기대어 온다. 이제부턴 내가 아내를 보호하는 우산이라도 된 건가. 이 세상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