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번데기 날개를 달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최영아

책 제목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조회수9

좋아요0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고려말의 성리학자 야은 길재의 시조 한 구절이다. 옛사람들은 산천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아니다. 땅도 강도 바다까지도 변하는 시대에 우리는 산다. 그래서인가, 어느 시인은‘산천 의구란 말 옛시인의 허사로고’라고 읊기도 했다.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 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버혀지고 없구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의 <옛 동산에 올라>란 가곡이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어린 시절에 놀던 옛 동산에 올라가 보니 그 자리에 섰던 큰 소나무는, 어느 누군가에 의해 베어져 버려, 결국 산천도 의구하지 못하다는 탄식 조의 노래가 되었다.

뚝섬과 성수동 일대는 참 많이도 바뀌어 있었다. 요즈음 성수동 일대가 핫 플레이스여서 먹거리나 볼거리가 많아 가끔 친구들과 거기서 모임을 하곤 한다. 역에서 내려 걸어서 쭉 지나가다가 본‘경동초등학교’라는 작은, 나무 안내판이 생각났다. 처음 발견했을 때는‘와! 경동초등학교가 아직도 있네’,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뚝섬의 경동초등학교는 내가 1학년부터 4학년 중반까지 다녔던 학교이다.

그 가난한 빈민촌이 번데기 허물을 벗듯, 거리는 정비되었다. 이렇게 화려하게 변신을 하다니!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십 년이 몇 바퀴나 돌았으니 그럴 수밖에.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우리 가족의 삶도 내동댕이쳐졌다. 전쟁 전의 엄마는 초등학교 교사, 아버지는 육군 소령이었으나, 아버지는 재산 하나도 없이 이북 함흥에서 내려온 실향민이었다. 엄마는 아버지의 그 당시 전도유망한 직업과 믿음직한 인품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통에 아버지는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모든 생활이 무너져내렸다.

전쟁이 끝나고 차츰 안정이 되어 가자, 재산 한 푼 없이 친할머니, 나와 남동생을 책임져야 했던 젊은 엄마가 우리 가족 모두를 이끌고 정착한 곳은 바로 뚝섬이었다. 당시에 뚝섬은 가난한 사람들이 주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그 당시는 뚝섬 강가에서 빨래를 했었다. 학교가 끝난 후, 커다란 함지박에 빨랫감을 머리에 인 할머니를, 나와 남동생은 쫄래쫄래 뚝섬 강으로 쫓아다녔다. 할머니가 빨래를 하시는 동안 나와 동생은 모래사장에서 놀았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멀리 보이는 곳에는 우거진 숲이 있었다. 그때는 강 너머 울창한 숲 사이로 멀리 절이 보였다. 지금의 봉원사이다. 우리가 놀던 모래사장에서 멀리 보이던 곳도 진초록의 숲으로 덮여 있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그쪽으로 가지 말라고 늘 주의를 주셨다. 특히 남동생에게 더 강조하셨다. 거기 가면 나병 환자들이 남자아이들‘꼬추’따 간다, 그쪽으로 가지 말라고 밑도 끝도 없는 말씀을 하셨다. 전쟁 직후엔 걸인들과, 나병 환자들이 빽빽이 우거진 숲에 숨어있다고도 했다. 그때 할머니는 혹시라도 어린 손자의‘꼬추’가 사라질까 봐 걱정된 나머지 일부러 겁을 주신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인가부터 뚝섬 강의 모습이 달라졌다. 유원지가 조성되고 사람들이 수영하러 몰려들었다. 여름이 한창일 때, 주말이면 유원지에 수영을 하려고 가족이나 친지와 함께 사람들이 빽빽이 몰려 왔다. 작열하는 태양은 뜨거운 기운을 뿜어내고 포장 안 된 대로를 마른 먼지 풀풀 날리며 콩나물시루처럼 많은 사람을 태운 버스가 사람들을 유원지에 연신 쏟아내었다.

집 앞에 나와서 달리는 버스를 보고 있을 때면, 나도 수영하러 가고 싶었다. 수영하러 가고 싶은데, 수영복이 없었다. 그러나 엄마한테 수영복을 사달라고 조를 순 없었다. 나는 소극적이고 말이 없는 아이였다. 뭘 사달라고 엄마한테 졸라본 일이 없었다. 도전정신이 없었던 건지, 어린 마음에도 고생하는 엄마를 배려한 건지는 분명치 않다. 그렇게 뚝섬에서의 내 초라한 어린 시절은 끝이 나고 4학년 중반에 서울의 중심지, 을지로 입구에 있었던 청계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집안 형편이 조금 나아졌나 보다.

지금의 뚝섬과 성수동 일대는 평일이나 주말 할 것 없이 MZ세대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우리의 눈을 홀리는 각종 화려한 옷가게와 카페, 식당들이 즐비하다. 성수동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서울의 숲을 산책했다. 6월 초의 날씨 좋은 주말이어서 공원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푸른 하늘과 싱그러운 초록색 나무들, 다양한 색채의 향기로운 꽃들과 사람들이 하나 되어 광대한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 돗자리를 깔아놓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깔깔거리며 웃는 사람들, 가족끼리, 연인끼리 즐거움을 선사하는 휴식과 여유의 공간이 되었다.

가난한 빈민촌이었던 곳이 지금은 연예인들이 선호하는 주상복합이나 아파트가 세워진 비싼 땅이 되었다. 한때는 구두 공장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지저분했던 곳에서 깨끗이 정비된 문화의 거리가 되었다. 무분별했던 숲과 강이 새로 태어났다.

나 또한 변신했다. 말이 없는 아이에서 수다쟁이 할머니가 되었고, 수영복이 없던 아이에서 너무나 많은 옷이 옷방에 가득하다. 외톨이였던 어린 소녀가 아들·딸·사위·며느리·손자·손녀를 거느린 집안의 총수로 변신되어 있다. 인간이 존속하는 한, 산천도 인간도 알게 모르게 빠르게 느리게 변신해 갈 것이다. 마치 번데기가 허물을 벗고, 날개를 달아 날아가듯이.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