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1월 6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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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구 주택을 지으며 마당가 귀둥이에 작은 미니 정원이 생겼다. 남편이 좋아하는 단감나무 한 그루, 대봉감 한 그루, 이 고장 특산품 대추나무, 소나무, 블루베리를 심고, 정원 바닥에는 머위, 곤드레 부추 국화를 심었다. 모두 두루두루 노래하며 작은 미니정원에 좁은 바닥이지만 사이좋게 물과 양분을 함께 나누며 둥개둥개 십 여년을 우리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남편은 나무를 사랑하여 늦가을에는 볏짚을 구해 어린 나무를 볏짚으로 싸매어 겨울에 얼어 죽지 않도록 보살피고, 봄이면 퇴비를 뿌리고 가끔 막걸리 영양제로 해충 소독을 하고 공을 들였다.
어느 날은 어두울 때까지 남편이 안 들어와 물었다.
“어두운데 왜 주차장에 계셔요?”
“내가 들어가면 자동차 주차를 함부로 하여 감나무 가지 다쳐 감 떨어질 것 같아 지키네.”
“들어가요 늦게까지 있으면 모기 물어요.”
보는 것도 사랑스럽고 가을이면 가을볕에 감이 붉게 익어 미니 정원을 밝히는 등이 되었다. 붉게 낙엽지는 감잎 단감은 따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아사삭 식감 별것은 아니지만 내 집 정원에서 가꾸어 따는 기쁨 자부심 수확하면 이웃집에 몇 개씩 나누곤 하였다.
그런데 올해는 남편이 몸이 편치 않아 소독을 못해 아들을 불러 첫 소독을 하고, 두 번째는 이웃집 아저씨 도움으로 또 한 번 소독을 했다. 그 덕인지 감이 많이 열어 중간에 퇴비를 더 뿌려주고는 남편의 애정이 깃든 감나무를 보고 있자니 터줏대감처럼 마음이 든든했다.
어느 날 벨소리에 현관문을 여니 안면이 있는 분이었다.
“웬일이세요?”
“제가 일을 저질렀습니다. 나와 보셔요.”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라더니, 작은 정원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움직이는 동물만 교통사고를 당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 집 정원에 대추나무는 뽑히고 단감나무는 밑동이 잘려 나가 뒹굴고 올해는 단감이 많이 열어서 기뻐하였는데 이게 웬일인가. 정원에 나무들은 여행을 간 것도 아니고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 있었는데 교통사고라니요, 이런 기막힌 일이 있을 수 있나요?
가스 배달하는 큰 탑차가 우리 집 마당에 후진하여 정원 앞에 놓고 가스 줄로 옆집 가스를 넣어야 하는데 운전 부주위로 정원으로 들이밀어 우리 집 단감나무가 잘리고 대추나무가 뽑히고 말았다. 내가 화가 나 펄펄 뛰어도 죽은 나무는 살릴 가망이 없고 좁은 지역에서 서로 얼굴 스칠 텐데 난감하였다.
남편이 그렇게 사랑하는 단감나무. 누가 가지라도 상하게 할까 저녁 늦게까지 지키는 남편이 기억나 단감나무를 끌어안고 통곡을 하였다.
남편이 위중하여 중환자실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고 있는데 끔찍이 아끼던 단감나무가 죽은 줄 알면 얼마나 슬플까.
“이것은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요. 남편이 심고 이제껏 애지중지하던 나무입니다.”
여름에는 감 떨어질까 저녁 내내 주차하는 걸 지키고 겨울에는 차를 바짝 대면 가지 부러질까 노심초사, 하필이면 단감나무를 죽이다니 함께 10년을 살았는데 더운 날 한 사람 부주의로 두 나무가 죽게 되었으니 병원 있는 남편이 알면 상실감에 충격이 얼마나 클지 비통한 노릇이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제가 큰 차를 갔다 두고 바로 오겠습니다. 그동안 주변에 있던 이웃분들이 보고서 산 나무를 두 그루나 죽였으니 경찰서에 신고를 하시지요.”
같은 지역 좁은 곳에 살면서 스치면 서로 불편한 일을 만들지 않으려 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느라 입술이 금방 부르트고 혓바늘이 돋았다. 조금 보상 받는다고 10년 동안 함께 산 나무가 둥지가 잘렸으니 살아올 리 없고, 병원 입원한 남편 건강이 더 악화되는 것은 아닐까 불길한 마음이 스치고 한쪽으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는데 남편의 액운을 단감나무가 대신 지고 죽은 걸까, 이상한 상상 속에 헝클어진 머릿속을 정리하며 애를 못 삭여 정원 앞을 왔다갔다 하는데 그 기사분이 자기 친구와 함께 왔다.
엎어진 물 주워담을 수 없듯 죽은 나무를 살릴 방법 없으니 뿌리가 뽑히고 둥치에 겉껍질이 벗겨진 대추나무는 그냥 심기로 했다. 뿌리는 있으니 혹시나 살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희망을 걸어본다.
“단감나무는 이미 둥치가 잘려 나가 살릴 수 없으니 가을에 단감나무 한 그루 사다 심어 드리지요.”
전기톱으로 단감나무 가지를 자르는데 내 팔 자르는 듯 소름이 돋으며 저려오는 느낌이었다. 자기들도 미안하니 단감이 참 많이 열었는데 안 되었다는 표정이다.
가슴 쓰린 내 마음을 당신들이 무엇을 알겠소. 저기들이 가지고 온 트럭에다 단감나무 자른 걸 싶더니 이번에는 뽑힌 대추나무를 땅을 파고 다시 심어 주었다.
큰 나무가 뽑힌 걸 심으니 중심을 못 잡고 나무는 옆으로 기우뚱 서니 아까 잘린 단감나무 둥치를 잘라 받침대로 대추나무를 양쪽으로 고정시키고 갔는데 슬픈 일이다. 점심 때까지 푸르게 살던 나무가 죽을 줄 누가 알까. 죽어서도 정원을 못 떠나고 이웃 친구 왕대추를 위하여 지줏대가 되어 있는 힘을 다해 친구 대추나무 둥치를 받쳐주며 우리 행복까지 살아주렴. 사랑의 사모곡!
하루에도 생각지 않은 사고로 평안한 삶이 깨지고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사람들이 다치고 생명을 잃는데 사람이 더 소중하지…. ‘잊어버리자. 10년 사랑 한순간에 잊을 수 없지만 사람이 더 귀하지.’ 마음을 다독이며 다시 심은 대추나무가 잘 살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막걸리를 희석한 물을 뿌리에 부어 준다. 언제쯤 단감나무가 심겨 자라 서 열매 주렁주렁 열려 가을볕에 붉게 익어 우리 집 정원에 행복의 붉은 등 또 밝혀질까.
사랑의 노래, 행복한 연주곡이 불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