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품은 엄마 젖가슴 같다. 천둥번개와 함께 몰려오는 비바람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내리쬐는 땡볕도 두렵지 않다. 미친듯 몰아치는 눈설레가 가슴속으로 파고들 때도 그에게 매달리지 않았던가. 이렇듯 몸도 마음도 젖지 않게 해주는 그는 삶의 풍파를 막아주는 비받이임에 틀림없다. “나 죽으면 우째 살거요.”귀에 따까리가 앉을 만큼 들어온
- 위상복
그의 품은 엄마 젖가슴 같다. 천둥번개와 함께 몰려오는 비바람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내리쬐는 땡볕도 두렵지 않다. 미친듯 몰아치는 눈설레가 가슴속으로 파고들 때도 그에게 매달리지 않았던가. 이렇듯 몸도 마음도 젖지 않게 해주는 그는 삶의 풍파를 막아주는 비받이임에 틀림없다. “나 죽으면 우째 살거요.”귀에 따까리가 앉을 만큼 들어온
1989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연수할 때에 중등학교 수학 교육 방법론의 첫 시간이었다. 정년이 가까워 보이는 칼슨 교수가 들어와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내가 코리아를 소개했으나 아는 이가 없다. 다시 88년 올림픽이 열렸던 서울이 우리나라 곧 남한의 수도라고 말했더니 그들은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오! 88 올림픽, 아, 서울 코리아”라고 큰 소
그저 듣고 있다. 아무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 정자 곁에 서 물소리만 들리고 있다. 고독이 침범할 때 더 깊은 고독으로 던지는 것이 나만의 해법이다. 마지막 남은 겨울눈을 찾아 흙마저 꽁꽁 얼어 버린 계곡을 따라 들어갔다. 그곳엔 한 해 마지막 내렸던 눈이 냉동된 채로 정적을 만나고 있었다.<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알려진 안동 만휴정이다. 조선
사람의 신체는 쓸모없는 부위가 하나도 없다. 조물주가 사람을 탄생시킬 때 쓰레기로 버려지는 일이 없도록 엄청난 노력을 하셨을 것이다. 모든 인체는 매우 느리게 성장한다. 빨리 성장했다가 잘못되는 일이라도 있으면 도로 물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빨리 자라고 어느 정도 자라면 잘라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이 머리카락이다. 이런 일
수타사를 품은 공작산 자락엔 어느새 옅은 녹음이 우거져 싱그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계곡의 물줄기가 건장한 남성처럼 박력 있게 쏟아져 내린다. 물살이 흐르는 한쪽 모퉁이에 쌓인 모래밭에 누가 만들었을까? 크고 작은 돌탑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은다.돌탑을 처음 보았던 오래된 기억이 흑백 영상처럼 떠오른다. 엄마 손에 이끌려 뒷산에 있는 보덕사에
오늘따라 벽에 걸린 여러 사진들 중 1973년 10월 9일 가족 친지들과 수십 명이 모여 찍은 결혼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반짝반짝 빛나던 사진과 틀은 흐릿하고 누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마침 아내가 저녁 먹으라며 다가와 사진을 바라보는 나를 향해 묻는다.“뭘 보고 있소?”“응, 당신도 좀 보구려.”둘은 서로 마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사진보다는 더 기막힌
김포 아트홀이다. 한 달 전 가까운 인천 공연예매를 놓친 까닭이다. 국지성 소나기가 퍼붓겠다는 소식을 들으며, 찜통더위를 안고 도착하였다.<고도를 기다리며> 9개 지역공연은 전석 매진이다. 연극 시작 1시간이 지나 인터미션 때에 느낀 몽매한 상황이 처음이 아니다. 그때도 1막이 끝날 즈음에 이런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무대 위 허
강한 것과 연약한 것의 대비를 본다. 상호보완 관계라거나 어울리는 부분이 전혀 없을 듯한데 그 중심에 자리한 공생을 본다. 억세고 강하여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고철의 본질에서 이성을 발견하고, 여리디여려 작은 충격에도 쉽게 꺾이는 꽃의 본질에서 감성을 발견한다면 억지일까. 이성과 감성. 두 성질의 분배가 사람에게 균등하게 주어질 때 참된 인간성이 성
녹음이 짙어가는 여름이다. 담장의 능소화는 초록빛 운동장에 붉은 물감을 붓끝에 흠씬 눌러 찍은 듯하다. 걸음을 멈칫하고 마주한 꽃이 교정 벤치에 나란히 앉아 팔을 걸고 사진을 찍었던 친구들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며칠 전 고향 친구를 만난다며 무궁화호 왕복권을 폰에 저장하고부터는 벌써 동면하던 의식이 눈치를 채고 스멀거리며 학교 앞 들녘을 가로지른 지평선과
어머니는 한껏 차려입고 학교에 가는 나를 보며 “내도 마음은 니하고 똑같다” 하셨었다. 그러면서 어머니 눈에는 내가 예뻐 보였는지 등교하는 나를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파트 복도 난간에 기대서서 바라보시곤 하셨다. 아파트 모퉁이를 돌아서며 위에 계시던 어머니께 손을 흔들고 등교를 하곤 했는데 그 당시는 어머니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