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2025.2 672호 낡은 피아노의 오후

소나기다. 밀려 들어온 바람이 창가에 둔 책을 거칠게 들추며 빗줄기가 안으로 들이쳤다. 창문을 닫다 보니 아파트 광장 한쪽 분리수거장에 검은 피아노가 비를 맞는다. 아파트 상가 내 피아노 학원 간판이 부서진 옆에 돌아보는 이 없는 피아노가 비를 맞다니. 오랜 세월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던 서툰 손길들을 피아노는 아직도 기억할지 모르는데 오늘은 혼자 비에 젖

  • 염혜순
북마크
30
2025.2 672호 어느 날의 투도를 참회합니다

얼마 전, 세월의 추가 오십여 년 전으로 돌아간 꿈을 꾸었다. 1950년 6·25로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였다. 1961년 박정희 군부가 정변을 일으켜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며 전국적으로 새마을운동의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가꾸세∼.”지금은

  • 최명림
북마크
28
2025.2 672호 소소한 독서 운동

워킹 맘이라면 누구나 동병상련의 아픔을 가지고 있으리라. 일과 가정,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교육이냐 생존이냐 하는 지난한 이 문제 앞에서 한 번쯤은 동동거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나는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십여 년 넘게 상담실장으로 근무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의 세태와 정서를 여느 엄마들보다는 좀 더 많이 알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 안영숙(강원)
북마크
28
2025.2 672호 정아

열세 살 정아의 피부는 유난히 검고 거칠었다. 양쪽 귓불이 살짝 보이는 밝은 갈색 단발머리는 항상 헝클어져 있었지만,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참 예뻤다. 쌍꺼풀이 굵은 눈엔 물기 먹은 검은 포도알이 또랑또랑 빛났다. 체구는 작아도 당차고 손재간이 야무졌던 아이, 정아네는 일곱 식구였다. 정아의 아버지는 철길을 보수하는 막노동을 했고, 정아의 엄마는 미군부대

  • 하현숙
북마크
32
2025.2 672호 따뜻한 말 한마디의 여운

가슴을 울리는 말 한마디는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다. 세상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를 감싸고 안아주는 포용과 포옹의 말이다. 우리를 껴안아주는 진실한 말 한마디다. 진실한 말 한마디는 생명을 살리는 약이 되기도 한다.시들지 않는 꽃다발을 걸어둔 것처럼‘교수님 안녕히 계세요.’‘교수님 잊지 않겠습니다.’‘여성을 보는 시각이 달

  • 현중순
북마크
32
2025.2 672호 사유석(思惟石)

수석은 사람을 끌어안은 매력이 있다. 그런 만큼 한번 빠져들면 멀리하기 어렵다. 이는 막연히 남에게 들은 말이 아니라 내가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일이다. 그만큼 한번 빠져들면 멀리하기 어렵다.애석생활은 취미생활이다. 하지만 일종의 도(道)에 가깝다. 그런 만큼 해찰 부리듯 대할 것은 아니고 진중한 가운데 진정한 마음으로 다가서야 한다.한데, 애석생활을 하

  • 임병식
북마크
27
2025.2 672호 고독을 넘어선 아름다운 보쌈

나는 오늘 고전을 읽다가 언뜻 요즘 점차 변해 가는 총각들의 결혼 의식이 떠오른다. 비록 기혼녀라 할지라도 정신이 건전하고 생활력이 있는 자라면 이를 개의치 않고 그녀를 선택하여 결혼하려는 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외적 의식세계보다 내면의 정신세계를 더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 아닐까. 아무튼 건전한 정신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존중받고 있음을 볼 수

  • 하재준
북마크
28
2025.2 672호 아버지, 그리고 두 분의 선생님

서울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나는 경기도에 있는 남양주의 소박한 마을로 아버지를 따라 이사했다. 지금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큰 도시로 변했지만, 그때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봄이면 연분홍 진달래꽃이 뒷동산마다 아름답게 물들었고, 왕숙천 맑은 물이 개천 둑을 따라 굽이굽이 흘렀다.초등학교 3학년 어느 봄날이었다. 학교에서 오던 길에 활짝 핀 진달래꽃

  • 박명정아동문학가
북마크
45
2025.2 672호 리어 파고다 공원에 오다

등장인물 : 조한필(회장)|한빈(첫째딸)|한주(둘째딸)|한솔(셋째딸)|비서실장|친구장면1건장하지만 얼굴에 주름이 깊은 조한필 회장이 세 딸을 불러 앉히고 무대 중앙에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다. 재벌회사를 일구어낸 자신의 업적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탓인지 다소 부자연스런 권위의식을 드러낸다. 조한필은 낮고 힘이 있는 어조로 딸들에게 중대한 발표를 하려는 듯 비서

  • 박정근
북마크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