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라!”그 한마디에 가마솥 안에서는 오래된 고향이 들끓기 시작한다. 갯벌의 숨을 머금은 망둥이와 우럭이 우리 5남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주었다. 무와 양파, 대파가 어우러진 갈무리 뒤로 알싸한 청양고추가 정점을 찍는다.한소끔 끓어오르는 생동감 위로 푸릇한 날배추를 숭덩숭덩 썰어 넣는다. 낡은 가마솥의 무쇠 벽을 뚫고 나올 듯, 고향의
- 박정분
“모여라!”그 한마디에 가마솥 안에서는 오래된 고향이 들끓기 시작한다. 갯벌의 숨을 머금은 망둥이와 우럭이 우리 5남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주었다. 무와 양파, 대파가 어우러진 갈무리 뒤로 알싸한 청양고추가 정점을 찍는다.한소끔 끓어오르는 생동감 위로 푸릇한 날배추를 숭덩숭덩 썰어 넣는다. 낡은 가마솥의 무쇠 벽을 뚫고 나올 듯, 고향의
오랫동안 달려왔다. 언제부터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멈춰 서 있던 때보다 달린 시간의 기억이 더 또렷하다. 멈추지 않는 것이 성실이라 믿었고,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빈틈없는 삶이라 여겼다.달리기는 그런 나의 삶과 가장 닮은 행위였다. 출발선보다는 결승선에 익숙했고, 과정보다는 기록에 더 민감했다. 힘들어도 숨이 가빠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야만 아직 무언
인천역에 내리니 12시 30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간신히 찾아가니 모임이 12시인데 1시간이나 늦었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십 명의 동창들의 모습이 들어왔다.마침 전임 회장에게 신임 회장이 상패를 전달 중이었다. 머쓱하게 손을 흔들고 빈자리에 앉았다. 족히 40명은 넘어 보이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36명이라 했다. 눈에
어제 일을 사과하며 맺는 김씨 전화가 얄궂다. 형님도 이젠 혼자 노는 법을 익혀야 하신다며 서먹하게 충언한다. 뭔 말이지? 게임 중간에 걸려온 친구 전화에 얼씨구나 내빼더니 뚱딴지같이 혼자 놀라니. 게임에 져서 기분이 상한 건가? 그래도 그렇지 형님 아우 하는 사이에 그깟 승부가 뭐라고. 2년 세월이 허수하다.70 중반 들어 등산이 힘들어진 뒤로 나는 대신
분홍색 벚꽃이 바람에 날려 춤을 추듯 바닥으로 떨어진다. 벚꽃 나무 아래에서 두 팔을 벌려 꽃비를 맞는다. 은회색 머리칼 위에도 검정색 코트에도 분홍 벚꽃 잎이 나비처럼 내려앉는다. 순간 천국의 입구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꽃잎이 떨어진 도로는 분홍빛 천을 깔아 놓은 것 같다. 비가 후드득 내리자 꽃잎들은 낮은 곳으로 흘러 내려가며 분홍
난 밖에 나가 노는 아이가 아니었다. 집 안에서 뒹굴며 책 읽기를 좋아했고 체력도 약해서 몸 쓰는 놀이엔 영 소질이 없었다.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던 고무줄놀이는 젬병이었고, 술래잡기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든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같이 놀던 아이들이 가끔 ‘깍두기’로 끼워줘서 놀이의 맛은 봤지만, 놀이의 정수를 제대로 체험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한 장 남은 달력이 내 눈을 잡는다. 지나온 시간 돌이켜보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나이만 보태지는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엊그제만 해도 꿈이 많은 소녀 같은, 그래서 목소리도 쨍쨍하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세월이 내 등 뒤에 올라앉아 나를 짓누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까, 사는 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하
무궁화, 즉 나라꽃〔國花〕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대개 북한의 꽃은 무엇일까? 하고 한번쯤은 생각하고 또 알아보았을 것이다.일반적으로 우리는 북한의 국화를 ‘진달래’인 것으로 지금까지 알아 왔다. 그런데 그것은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얼마 전 신문의 보도를 비롯, KBS TV <남북의 창(窓)>을 통해서 확연히 드러났다.원래 북쪽에는 국화라는
세월은 흘러 한 해도 저물어 가고 있다. 74살의 미선은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도림천변을 천천히 걸어간다. 그녀의 살아온 세월이 평탄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게 살아왔다고 자위해 본다. 험한 산도 무사히 잘 넘었고, 혼자 지기에는 너무 버거운 짐도 결국버티어 냈음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는다. 위기는 수시로 문 앞에 놓여 있었
서막…낮은 동녘 하늘에 애드벌룬만 한 달이 아래가 조금은 일그러진 채 떠 있다. 아니, 정말 달이 아닌 애드벌룬인지도 모른다. 저처럼 큰 달을 본 적이 없다.남자와 여자가 함께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 유리창에 비친 여자는 아름다웠고 남자는 잘생겼다. 그야말로 선남선녀를 뛰어넘는 용모의 소유자들이다.둥근 달이 환영처럼 차 앞유리창에 가득 찼다. 안으로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