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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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세월의 추가 오십여 년 전으로 돌아간 꿈을 꾸었다. 1950년 6·25로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였다. 1961년 박정희 군부가 정변을 일으켜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며 전국적으로 새마을운동의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가꾸세∼.”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남녀노소가 이 노래를 즐겨 불렀으며 국민 모두의 마음속에는 도약의 서기가 넘쳐흘렀다.
교육 공무원들도 새마을에 관한 연수를 받아야 했다. 그때 경상남도 교육 공무원 새마을연수원은 울산 방어진에 있었다. 1972년 여름, 중등학교 교사였던 나도 새마을연수에 차출되었다. 경남 시·군에서 모여든 150명 연수생들은 연수원에서 지급하는 새마을 옷을 갈아입었다. 당시에는 시설이 열악하여 사복 보관함은 없었으며 합동 침실 공간 좁은 구석에 질서 없이 적당한 곳에 자기 옷을 놓아두었다.
새마을연수는 군사훈련 비슷한 교육이었지만 불평하는 연수생은 아무도 없었다. 부국을 꿈꾸며 추진하는 정부 시책에 흔연히 따랐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내는 4박 5일간의 보람찬 연수였다. 합동 강의실에서 수료증도 받고 새마을 노래를 합창하면서 수료식 절차가 끝났다. 모두들 자기 사복을 챙기려고 동작이 빨라졌다.
학창 시절, 모처럼 시골길을 지나가는 완행버스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 섰는데 애써 헤집고 갔지만 항상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늘 사복을 찾으려 가는 모습도 옛날 그대로였다. 다들 자기 옷을 갈아입고 삼삼오오 조잘대며 홀가분하고 만족한 표정이었다. 한바탕 장꾼들이 서성이다 흩어진 것 같은 을씨년스러운 연수원 침실 공간, 회색 남방 윗도리는 그대로 있었으나 약간의 비상금이 든 검정색 바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허름한 베이지색 바지 하나가 구석에 남아 있었다. 색맹인 어느 분이 실수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 옷이라도 챙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그 옷을 집어 드는 순간 호주머니에 두툼한 무엇이 만져졌다. 직감으로 지폐인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돈을…. 아내와 두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흥분된 마음,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무도 보지 않은 후미진 곳으로 가서 지폐 뭉치를 끄집어내었다. 겹겹이 한지로 싸인 지폐, 조심스럽게 벗겨보니 그것은 발 담배(말린 담뱃잎) 묶음이었다.
“에잇! 재수 없게시리!”
한 마디 내뱉으며 그 담배 묶음을 멀리 허공에 던져버리는 순간 잠을 깨었다. 한바탕 꿈이었다.
어리석은 주인공아, 어쩌자고 남의 것을…. 투도 중죄 참회합니다. 옴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참회진언을 수없이 외쳤다. 하늘 땅 보기가 부끄러웠다. 현실 아닌 꿈속의 사건이니 별 것 아니라며 다른 한쪽 식(識)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바보 같은 소리!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이거늘!
가) 우리는 자면서 꿈을 꾼다. 꿈속의 사건이 현실인 줄 안다. 그러나 꿈꾸는 의식이 본 의식(6식)으로 돌아왔을 때 그것이 꿈이었음을 안다.
나) 우리는 의식(6식) 작용으로 생활하고 있다. 의식 작용 속의 사건이 현실인 줄 안다. 그러나 참 나(견성)를 깨닫고서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안다. 그러므로 밤 꿈도 꿈이요,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낮 꿈도 꿈이라고 금강경에서 누누이 가르치고 있다.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다시 태어나지 않고 열반, 즉 부처에 이르는 것이다. 부처 경지에 이르려면 첫 단계인 예류과(預流果)를 거쳐야 한다. 불법을 믿고 존중하며 계율을 지켜야만 예류과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고승어록에 ‘계를 지키지 않고 성불을 바라는 것은 증사작반(烝砂作飯)이라’ 하였다. 지켜야 할 계는 승속(僧俗)에 따라 차이가 있다. 재가 불자가 지켜야 할 계는 불살생, 불사음, 불투도, 거짓말하지 말고 과음하지 말라는 5계이다. 불투도는 단순히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는 뜻만이 아니고 직접 손에 쥐어주지 않은 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옛날 벼가 누렇게 익은 들녘을 지나가던 어느 한 스님이 무심결에 벼 열매 한 톨을 까먹은 악업으로 삼세의 축생보를 받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불가에 전해오고 있으니 이는 투도 중죄를 상징하는 일화이다.
나는 오십여 년 전 삼십대 중반, 조계사에서 7일간 표교사 교육을 받은 대한불교조계종 표교사 제1기생이다. 그때 동기는 40명이었다. 소년 시절부터 긴 세월, 부처님 법을 받들면서 성실히 살아온 재가 불자이다. 젊은 시절, 한창 정진할 때는 식이 맑아 법열을 느낀 때도 더러 있었다. 연륜 탓인지 이제는 식이 흐리고 잠재의식이 자주 꿈으로 드러난다. 꿈속에서 투도한 발 담배 사건은 세세생생 쌓아온 탐욕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현재 나의 자화상이다.
아흔 살을 목전에 둔 가련한 중생! 옴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초당에 촛불 켜고 향 사르며 진참회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