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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리고 두 분의 선생님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명정

아동문학가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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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나는 경기도에 있는 남양주의 소박한 마을로 아버지를 따라 이사했다. 지금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큰 도시로 변했지만, 그때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봄이면 연분홍 진달래꽃이 뒷동산마다 아름답게 물들었고, 왕숙천 맑은 물이 개천 둑을 따라 굽이굽이 흘렀다.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봄날이었다. 학교에서 오던 길에 활짝 핀 진달래꽃 몇 송이를 꺾어들고 집으로 왔다. 평소 온화하던 아버지가 정색하며 화를 내셨다.

“산에 그대로 두면 이쁘게 피어 있을 꽃을, 하루 이틀 나만 보자고 꺾어와 죽이느냐?”

그 말씀에 섭섭하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배나무 과수원을 하셨다. 배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하얀 배꽃으로 물든 과수원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마루에 던져두고 과수원으로 달려가면 아버지는 “우리 막둥이 왔네!” 하며 배꽃 같은 환한 미소로 안아주시곤 했다.

아버지는 겨울방학이 되면 참나무를 30센티미터 길이로 잘라 밑에 굵은 철사를 대고 그 위에 송판을 얹어 썰매를 만들어 주셨다. 그러나 썰매보다는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예쁜 스케이트가 갖고 싶었다. 스케이트를 사달라고 날마다 조르니 아버지는 내 발 크기를 손으로 대충 잰 다음 나무를 이리저리 열심히 깎고 다듬으셨다. 얼마 후, 정교하지만 투박한 나무 스케이트를 들어 보이며 내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나막신처럼 생긴 핸드메이드 스케이트였다. 신발 밑에 날카로운 날도 달려 있었다. 잘 달릴 거라며 신어 보라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이런 스케이트는 창피해서 절대로 신지 않겠다”며 울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오후가 되어 돌아오셨다. 마을에서 30분을 걸어 버스로 두세 번 차를 갈아타고 서울에 있는 장충체육관 앞 스케이트 판매점에서 빨간 스케이트를 사 오셨다. 그 스케이트는 너무 예뻤다. 나는 스케이트를 들고 마을 앞 얼음이 언 곳으로 달려가 친구들의 부러워하는 눈빛을 받으며 스케이트를 신었다. 겨울 햇살을 받은 내 모습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몇 번이나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어도 마냥 즐거웠다. 아버지는 어디를 가든 나를 데리고 다니셨고 우리는 단짝처럼 늘 함께 다녔다. 내가 동화를 쓰면서부터 아버지와의 어린 날의 기억들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자전거에 나를 태우고 논둑길을 달리다 넘어져 깨진 아버지의 무릎, 그 아픈 무릎으로 나를 업고 냇가를 건너 주시던 모습까지…. 다정하며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온화했던 아버지는 나의 스승이자 영원한 그리움이다. 그렇기에 인생을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삶의 굴곡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아버지의 배꽃 같은 환한 미소를 닮으려고 노력했다. 미소는 필연적인 삶의 고통과 번뇌를 견디어내는 나만의 삶의 방식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 교실 문이 열리고 멋진 남자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여러분의 담임을 맡게 된 김현우입니다. 국어 과목을 가르칩니다.”

첫 발령을 받고 우리 학교에 오셨다는 국어 선생님을 우리는 열렬히 환호하며 맞이했다.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하고 국어 과목을 특히 좋아했던 나는 멋쟁이 국어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 되어서 무척 설렜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는 ‘시 한 편 써오기’ 숙제를 내주셨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산 중턱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아카시아 꽃향기가 짙게 풍겨왔다. ‘이 꽃향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이 떠오른 나는 얼른 가방에서 공책과 연필을 꺼내 들었다. 기다리던 국어 시간이 돌아왔다. 선생님께서는 내 글을 읽고 입가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간결한 표현이 참 좋다. 일일이 설명하기보다는 상상의 여백이 좋아, 잘 썼어.’

그 뒤로도 선생님은 기회가 될 때마다 내 글에 칭찬과 조언의 말과 함께 ‘책을 많이 읽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나는 문학 소녀의 꿈을 꾸었다. 날마다 시를 쓰고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아버지가 사주신 한국 문학 전집을 읽으며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그 시절 책은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되어 담임 선생님은 바뀌었어도 국어 선생님은 내 고등학교 진학까지 챙겨주시던 고맙고 잊지 못할 선생님이다. 그러나 인생의 성장통을 겪으며 나는 문학 소녀의 꿈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이 나의 꿈과는 다른 길이었지만 나는 적당히 삶에 안주하는 것을 택했다.

내가 다시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엉뚱하게도 경기 민요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 민요 가사 속 서민들의 희로애락 등의 스토리가 내 정서와 잘 맞았다. 인생길의 고단함을, 슬픔을, 한을 담은 구절이 한 편의 시였고 내 가슴을 두드렸다. 그 가사를 청아한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 좋았다. 가끔 아버지에게 들려 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셨다. 몇 년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민요를 들려 드리는 봉사를 했다. 즐거워하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 아버지와 함께했던 날들이 떠오르곤 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매일 나를 기다리고 계실 그분들에게 좀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무언가를 해드릴 것이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고, 생각 끝에 동화 구연을 배우기로 했다. 옛이야기를 접하고 들려 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어르신들은 희미해져 가는 기억 속에서도 옛날이야기를 들려 드리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나는 한국 문협 평생교육원 동화 구연 강의에 등록했다. 이곳에서 시인이며 아동 문학가인 홍성훈 선생님을 만났다.

동화 구연 지도 교수인 홍 선생님은 내게 ‘거친 세파를 이겨온 지혜와 경륜이 글을 쓰는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으니 이제부터라도 글을 써보라’고 하셨다. 홍성훈 교수님은 동화를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 마음속에는 누구나 어린아이가 있다. 행복한 아이, 상처받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 외로움에 울고 있는 아이, 그 아이는 자기 자신이다. 그 아이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료해 주어야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다. 동화야말로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동심으로 돌아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상처를 치유해주는 문학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 나이에 무슨 글을 쓰겠냐’고 나는 몇 번이나 웃어넘겼다. 그러나 교수님은 나이 많은 제자를 끈기 있게 지도해 주시며 “좋아하면 열정이 생기고 무엇을 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라고 하셨다. 그 말씀에 힘을 얻어 나는 늦은 나이에 경희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과에 다시 늦깎이로 입학했고, 아동 문학의 참된 스승이신 엄기원 선생님이 발행하는 『아동 문학 세상』을 통해 「국어 선생님」이란 동화로 등단해 뒤늦게 문학 소녀의 꿈을 이뤘다.

어린 시절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티 없고 순수한 동심을 심어주신 아버지의 온화한 사랑과,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의 칭찬과 관심, 숨겨져 있던 문학의 열정을 일깨워주신 홍성훈 교수님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아버지가 내 삶의 첫 번째 스승이라면 두 분의 선생님은 내 생애 가장 소중한 인연이라 생각하고, 깊은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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