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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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가 갖고 놀던 풍선이 집 안 곳곳을 굴러다닌다. 고사리 손놀림의 기억 때문에 쉽사리 치워버리지 못하던 중이다. 꽤 여러 날이 지나도 뾰족한 물체에 스치지 않은 탓으로 적당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신기하다. 손자의 체취가 풍선에 서려 있는 듯해서 수시로 눈맞춤을 이어간다. 거기다가 색색의 모양새이니 싫증도 없을뿐더러 굳이 치울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숨이 멎어버리듯 공기가 빠진다면 휴지통에 던져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풍선은 아직도 거실에서 몇 주째 거주하고 있다.
오늘도 발길을 비껴갈 만큼 이곳저곳 제 혼자 옮겨 다닌다. 간간이 문을 여닫는 공기의 흐름에도 자연스레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이다. 그러던 중 팽팽하던 몸짓은 어느새 작아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불현듯 풍선에서 무엇인가 발견하게 되었다. 그토록 가볍게 날아오를 것처럼 떠다니더니 기운을 쭉 빼고는 힘없이 주저앉아 있다. 마치 사람의 맥 빠진 형상이다.
근래 들어 고민거리가 심상을 흔든다. 친구들 때문이다. 갑론을박의 상태가 계절과 해를 거듭 넘겨 가는 중이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어도 모두 가까운 친구 사이니 어찌할지를 몰라 중간에서 곤란한 입장이 되고 말았다. 화해를 시키고 싶었어도 옛말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생각나서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했다. 멀찍이서 볼 수밖에 없었다.
방관자가 된 기분이다. 결국은 가만있는 것도 도리가 아닌 듯해서 나섰다. 양쪽 친구를 따로 만나 조심스레 화해를 종용했다. 우선은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혹시라도 내 의중이 둘의 마음에 상처를 더할까 말을 아끼고 또 아꼈다. 어느 정도 화해의 손길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듯했다. 그러기를 또 여러 날이 흘러갔다. 웬걸 양쪽 친구에게서 연락이 빗발쳤다. 좋은 결과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실망과 함께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멀어진 둘의 사이를 시간에 맡겼다. 누군가 말했듯이 나이를 더할수록 단단해지는 자아의 형상은 쉽사리 허물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도 간절히 친구들에게 화해를 권했건만 허사가 된 상태에서 안타까움은 커졌다. 만약 내가 그 입장이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간곡한 내 마음을 그들이 모르는 것도 속상했다. 사람 관계에 이렇게 크고 작은 일에도 갈등의 골이 생기게 마련이니 우정을 지켜 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조용히 낮아져 가는 자세의 풍선, 바람이 빠져나간 형상을 문득 사람과 비교한다. 언젠가는 친구들의 팽팽한 마음이 저리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 분명 우리는 나이만큼 조금씩 사위어 가고 있는 순간이 아니겠는가. 풍선의 형체가 공기로 인해 부풀어졌다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작아지듯 여러 가지 오해와 편견에서 해방되는 것을 원하고 있다.
풍선은 아직도 거실 구석구석에서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미세한 자기만의 웅얼거림을 드러내는 듯하다. 외부의 공기가 닿을 때마다 잠깐씩 옮겨 다니기까지 한다. 흔한 풍선이지만 공기의 작용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떠오르게 하고 있다. 무심코 볼 때와 달리 새로운 느낌이다. 바람 빠져 가는 모양을 절대로 초라하게 여기고 싶지가 않다. 오히려 겸손을 지닌 상태로 보인다. 사람 사이에 생겨난 대립과 갈등이 저리 소멸해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다. 저 모습이 친구들의 관계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서로의 각을 내려놓고 예전처럼 평온한 상태로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풍선이 또렷하게 말하고 있다. 공기의 확장이 좋은 작용을 한다지만 때로는 소멸하는 과정도 합당한 일이라 전한다. 반드시 친구들에게 화해의 손을 마주 잡게 될 날이 찾아오리라 믿고 싶다. 솔직한 심정은 괜스레 말리는 시누이처럼 보일까 봐 염려스러웠었다. 그렇지만 수십 년의 우정을 지켜주고 싶어서 어떤 행동으로 다가서야 할지를 나름 골몰했던 시간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곤란한 지경에 이를 때가 있다. 이번 같은 경우에 오해의 실마리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다. 제삼자 입장으로는 그들이 소꿉친구 사이인 만큼 관대한 마음이기를 바란다. 작아지는 풍선처럼 원망의 마음을 모두 비워냈으면 좋겠다. 아직도 서로가 물러서지 않는 안타까움에 내 눈은 뜨겁고 가슴마저 쓰리다.
풍선이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나를 향해 미세하게 움직임을 보인다. 제 몸을 한껏 부풀리며 가볍게 오르던 때는 이제 지나갔다며 조용히 말하는 듯하다. 외부의 개입 없이 스스로 공기를 빼내는 일도 상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전해 온다. 풍선은 사물이었지만 움직이는 의식의 세계를 알게 했다. 그 순간 터득한 것은 감정의 폭을 유연하게 다스리며 지혜를 구하는 자세였다.
날지 못하고 얌전히 앉아 있는 풍선이 나를 향한다. 이상하리만큼 초라함은 묻어나지 않고 있다. 문득 친구를 대하듯 팽팽히 날아오르던 기억을 화해로 바꾸면 어떨지 묻는다. 힘과 같은 공기가 소멸해서 이제 날지 못한다 해도 패배가 아니라는 대답을 대신 해주고만 싶다. 다시는 서로가 날 선 주장을 주고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늘이 평온한 지붕처럼 보이는 날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호흡에 필요한 공기지만 때로는 부피를 줄이고 아끼며 살아가는 방법, 그것은 오해와 편견의 무게를 거침없이 내려놓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친구들이 따뜻하게 잡는 두 손을 꼭 보고 싶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며 풍선이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