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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에 안겨

한국문인협회 로고 金貞義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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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주고 싶고, 받으면 기쁘고 감사한 것이 선물이다.
내가 엄마의 자궁을 통해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미 나는 선물 속에 안겨 있었다. 부모님은 내게 하늘 같은 선물이며, 나 또한 그분들의 사랑으로 찾아온 선물이다. 게다가 햇빛과 공기, 물과 불, 대자연과 계절의 순환까지-, 그 무엇 하나 내가 값을 치르고 받은 것이 아니다.
젊은 날엔 이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숨 쉬는 일은 너무도 자연스러웠고, 해가 뜨고 지는 일은 그저 반복되는 현상일 뿐이라 생각했다. 철 따라 자연이 베푸는 색색의 꽃들과 초록 잎사귀, 옹골찬 열매들은 또 얼마나 풍성한 선물인가.
이처럼 생명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은 누구나 똑같이 무상으로 받아 누린다. 이는 창조주의 특별한 은총이라 생각된다. 큰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실상 값비싼 반지나 보석은 없어도 삶에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햇빛과 산소 없인 잠시인들 어찌 살겠는가. ‘거저 얻는 선물보다 비싼 것은 없다’는 몽테뉴의 말을 실감하게 된다.
내가 ‘선물’이란 말을 처음 체감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6·25 전란 중 그해 겨울, 우리 집으로 피난 온 서울 소년의 선물을 잊을 수 없다. 오빠의 대학교 은사이신 교수님과 중1인 아들은 무거운 책 보따리를 짊어지고 내려왔다. 소년은 나보다 한 살 위였지만, 아는 게 많았다. 시골뜨기인 내게 영어도 가르쳐주고 시도 읊어주었다. 봄꽃이 피어나던 어느 날, 그는 생일 선물이라며 아미치스의 『사랑의 학교』를 슬그머니 내 곁에 놓았다. 가슴 뛰는 감동의 첫 선물이었다.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하양, 보라, 노랑의 들꽃 한 묶음을 물병에 꽂아 나는 말없이 그의 책상에 올렸다. 부끄럽고 쑥스러웠지만, 그의 선물에 대한 답례였다.
엄마 아빠로부터 받은 그 많은 것들은 그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선물로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친지들로부터 선물을 받으면 반드시 나도 무언가를 주어야만 마음이 편하고 기뻤다. 그런데 황혼기로 접어든 언제부턴지 나는 받기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명절이나 생일이 돌아오면, 손아래의 친지나 오래전의 제자가 나이 든 나를 살뜰히 챙기며 정성 담은 선물을 보내온다. 한 후배는 손수 담근 된장 고추장 간장까지도 묵직한 사랑의 마음을 담아 보내줘 가슴이 뭉클했다. 이는 친정엄마 아니면 줄 수 없는 애정이라 싶다. 그 상자들을 열기 전, 나는 보낸 이의 이름 위에 두 손을 얹고 잠시 감사와 사랑의 기도를 올린다. 내가 무슨 베푼 일이 있다고 이런 사랑을 받는 것인지 송구스럽기 그지없다. 그 선물에 대한 보답이 무얼까를 생각하며 그들의 건강과 평안을 간절히 염원하게 된다.
지금까지 받아온 모든 선물은 물질적인 것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힘들 때 건네받은 위로의 시선, 갈길 잃었을 때 잡아준 손길, 때로는 책 한 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고, 우연한 만남이 필연 되어 내 삶의 여정을 이끌어 주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여기까지 무사히 데려온 사랑의 선물이다.
이 소중한 선물들 속엔 받는 이를 생각하며 쏟은 시간과 정성과 사랑이 켜켜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안겨졌다’라고 느낀다. 내가 있어 상대가 행복하고, 그들로 인해 나 또한 기쁘고 즐겁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우리의 초록별이 먹구름 속에 신음하고 있다. 나라마다 그 땅에 주어진 것들 서로 주고받으며 최선을 다해서 살면 될 텐데, 무엇이 더 욕심나서 누굴 위한 싸움질인가. 천하보다 귀하다는 생명이 수없이 희생되고 있으니, 전쟁은 분명 악마의 선물임이 틀림없구나.
그동안 여러 선물에 안겨 살아온 나, 이젠 길섶의 풀꽃만큼이라도 이웃에게 기쁨을 주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 어린 관심, 조용한 기도가 누군가의 삶에 스며들어 그의 하루를 밝힐 수 있다면 좋겠다. 여행에는 선물이 따르는 법이라 했는데, 인생 여행 끝내고 가는 날, 나는 어떤 선물을 남기고 가야 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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