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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유연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6월 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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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새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푸르른 계절, 초록빛이 쏟아지는 잔잔한 강을 만나리라. 인적이 끊긴 듯한 한강 가는 터널로 들어서려는데, 반대쪽에서 두 사람이 내 쪽을 보며 서 있다. 무언가 대화를 나누더니 그쪽으로 가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다.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는데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이지? 불안해진다.
“저, 사진 한 장 찍어 주세요” 하고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민다. 선한 사람을 다르게 생각한 내 속마음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고요한 한강길을 그들과 동행하며 나는 사진을 찍어주었다. 배경을 바꿔 가며 얼마나 찍었을까, 한 청년이 미소 지으며 “우리 연인이 되자”고 한다. 파란 하늘에 핀 하얀 구름꽃이 곱다. 생동감 넘치는 푸른 들판 갈대밭을 스쳐가는 싱그러운 바람을 따라가면 저 남자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지금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먹을 때나 잠잘 때나 그가 보고 싶어진다. 내 마음은 온통 그이로 가득 차 있다.
짧은 연애 기간에 장점만 보아 오다가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가족애를 만끽하고 싶다. 팔베개를 해주는 신랑, 푸근하고 화목이 깃들게 하는 가슴, 부부만의 비밀스러운 원시인이 된다. 아담 하와가 이래 아름다웠을까! 결혼하면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 되고 영원토록 단꿈에 젖을 줄 알았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으니 성격이나 취미, 원하는 마인드가 다를까? 신혼 초부터 뜻밖의 일들을 겪었다. 신랑은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는데 “우리 집 딸”이란다. 나는 하나님의 딸이지, 내 엄마 딸이지. 도대체 내가 선택한 남자가 평생 동반자인 자기 아내를 딸이라니! 하루는 작정을 하고 따져 묻는다.
“내가 딸이야? 창피해서 못 살겠어요.”
불평을 늘어놓을 참인데 자기 입으로 내 입을 막고 안아 버린다. 신랑은 주방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내가 할 수 있다 해도 시원찮단다. 음식을 장만하다가 손가락을 베고 나서부터는 칼질은 맡아 주기 일쑤다. 하늘만큼 넓은 가슴인 그이인데 베풀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구름 속에 가려진 좁은 하늘처럼 그의 마음을 인색하게만 보았다. 신랑에게 받은 것은 작기만 하고 내가 준 것은 크게 보이는 내 자신을 알면서도 아내로서 당연하게 여겼다. 오히려 신랑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다.
솔로몬 왕이 술람미에게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 내 사랑하는 자요…’라면서 사랑을 고백한 말을 나도 듣고 싶다. 그보다 더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남편과 함께 같은 꿈을 꾸는 것이다. ‘무소의 뿔’ 같은 내 남자가 날 위하여 별을 따주겠다고 했는데 그 많은 별 중에 어느 별을 따려나? 내가 원하는 것은 시리우스가 아니고 소박하고 작은 별이다. 남편이 마음만 바꿔서 함께 교회에 다닌다면, 그건 내 소망의 별이 될 것이다. 그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을 것이다. 내 가정을 나의 선교지로 생각하고 남편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서 나는 딸처럼 낮아져야 할까. 그리라도 하고 싶다.
어느 날 새벽 ‘전도 편지를 쓰라’는 말을 듣고 몽환이 아닌 하늘의 말씀으로 받았다. 그 말씀이 나의 사명으로 믿어졌다. 편지글을 쓰기 위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국문학을 공부했다. 남편은 말없이 배려해 준다. 청춘도 마음도 다 준 내 남자에게 나는 아내의 본분을 뒷전으로 하면서 글을 썼고 예술인협회에서 감사하게도 수필에 이름을 올려준다. 드디어 나의 에세이집 『웃음이 머무는 뜨락』을 세상에 내놓았다. 묵묵히 지켜준 남편이 고맙다.
동생이 사랑하는 교회로 날 인도한다. 찬송을 부르는데 많은 성도들이 일어나 손들고 춤을 추며 부른다. 찬양 속에 기쁨이 충만하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릴 적부터 교회 출석을 잘했던 모범생(?)이 아니었던가. 느릿한 동작으로 춤을 춘다. 사랑으로 섬기며 사랑을 위해 모인 사랑을 하는 교회인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다. 교회에 등록하고 예수님과 동행하자는 편지를 쓰게 되었다. 내 글을 두 증인 클럽에서 읽어 주며 보람을 안겨 주신다.
개미가 먹이를 힘들게 물고 느리게 가는 걸 본다. 돕기 위해서 먹이째 들어서 개미집 가까이 옮겨 주었다. 개미는 놀라 먹이를 놓고 혼비백산 도망가 버리는데 언젠가는 먹이를 가져가겠지 했다. 다음날 그다음 날도 먹이가 그대로 있다. 다른 개미에게도 알렸는지 어느 개미도 그 먹이를 가져가지 않는다. 개미가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아기는 놀다가도 엄마인 것을 어떻게 아는지 제 엄마 품에 안긴다. 애기가 엄마를 알 듯, 우리를 지으시고 안겨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하겠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도 편지를 쓰자.
지인이 ‘꽃길만을 걸으세요’ 하며 나를 축복한다. 꽃길을 걸으면 상쾌하다. 예수님은 꽃길이 아닌 잃은 자를 찾기 위해 가시밭과 같은 길을 걸으셨다. 남편과 함께 예수님 가신 길을 걷고 싶다. 천사도 흠모할 증인의 길을.
높은 차원으로 부르시는 하나님! “쉐카이나*” 영광으로 임하여 주소서.
*쉐카이나: 히브리어 하나님 영광 하나님의 임재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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