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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26 -한국 보수 진보와 한미동맹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먼저 개념을 정리해야 한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서구적 관점에서 보면 둘 다 보수 성향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공유한다.

서구의 진보는 복지국가·분배·반군사주의를 핵심으로 한다.

서구의 보수는 시장·전통·강한 안보를 핵심으로 한다.

한국의 이른바 진보는

재벌 해체를 주장하지 않는다.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다.

국보법 폐지를 관철하지 않는다.

서구 기준으로는 중도 우파에 가깝다.

한국의 이른바 보수는

미국의 지시에 순응한다.

재벌 이익을 대변한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정치 도구로 쓴다.

서구 기준으로는 극우 민족주의에 가깝다.

이 전제가 중요하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 모두

한미동맹의 근본적 재편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한 보수적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여의도 여야는 차이가 있다.

보수는 반북을 정치 도구로 적극 활용한다.

한미동맹 강화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다.

남북교류를 적대시하고

개성공단·금강산 같은 평화 인프라를 폐쇄했다.

진보는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한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근본 재편을 요구하지 않는다.

국보법을 건드리지 않는다.

전작권 환수를 미룬다.

전략적 유연성을 묵인한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의 지향점은 동일하다.

여야 모두

한미동맹의 불평등 구조를 재생산한다.

보수는 적극적으로 재생산한다.

진보는 소극적으로 재생산한다.

방향이 다르고 속도가 다르지만

도착점이 같다.

그 동일한 귀결이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지속적으로 보장한다.

분단을 영속화한다.

주한미군 주둔을 정당화한다.

한국의 군사 종속을 유지한다.

진보, 보수는 한미동맹의 불평등과

국치스런 국가간

예속 구조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질문인데 왜 그럴까.

몰라서 그런가?

아니다.

한미동맹 구조가 불평등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안다.

그런데 왜 말하지 않는가.

다섯 겹의 침묵 구조가 있다.

첫 번째 겹: 국보법

미국 비판이 친북으로 연결된다.

그 공포가 입을 막는다.

두 번째 겹: 선거

안보에서 약하다는 인상을 주면 진다.

그 두려움이 말을 막는다.

세 번째 겹: 관료

외교부, 국방부, 국정원이 반대한다.

관료사회와 제도가 저항한다.

네 번째 겹: 언론

주류 언론이 종북으로 프레이밍한다.

여론이 돌아선다.

다섯 번째 겹: 재벌

경제 피해를 우려한다.

자금이 끊어진다.

이 다섯 겹이 동시에 작동한다.

어떤 정치인도

이 다섯 겹을 동시에 돌파할 용기를 내기 어렵다.

보수와 진보는 한미동맹과 관련해서

쌍둥이처럼 닮았다.

미국이 요구하면

보수도, 진보도의 결론은 대부분 같다.

둘은 사사건건

피 터지는 싸움을 하는 체질인 점을 고려하면

기이한 현상이다.

보수는 원래 친미다.

트럼프 일방주의에 당연히 순응한다.

가끔 자주를 외치는

진보도

트럼프가 요구하면 순응한다.

둘이 경쟁하지 않는다.

누가 더 잘 순응하는가를 경쟁한다.

그것이 한국 외교, 한미동맹의 비극이다.

한국 외교의 언어는 관리의 언어다.

"원만한 협력."

"굳건한 동맹."

"상호 이익."

협상의 언어가 없다.

"이것은 불평등하다."

"우리도 원하는 것이 있다."

"이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

그 언어가 없는 외교가

끌려 다니는 외교가 된다.

진보, 보수의 한미동맹 속 특이점을 살펴보자.

진보 진영의

내부 모순 가운데

한미동맹과 관련해 가장 심각한 것

그것은 말과 행동의 괴리다.

그들이 표방하는 가치는 자못 진취적이다.

자주.

평화.

인권.

남북 교류.

그러나 실제 행동을 보라.

국보법을 완전히 폐지하지 않는다.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전작권 환수를 말하지만 목매달고 달려들지 않는다.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공개 반대하지 않는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수용한다.

왜 말과 행동이 다른가.

진보 진영 내부에 두 개의 흐름이 있다.

강경 자주파가 있다.

“한미동맹을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한다.

전작권을 즉각 환수해야 한다.

국보법을 폐지해야 한다.”

온건 실용파가 있다.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찾자.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개선하자.

급진적 변화는 역풍을 만든다.”

온건 실용파가

다수라서 당을 장악하고 있다.

그들의 현실주의가

구조적 종속을 영속화한다.

그리고

그들의 현실주의에는

개인적 이해관계도 있다.

미국과 관계를 유지하면

미국 방문이 쉽다.

미국 싱크탱크와 협력할 수 있다.

미국 대학에서 강연할 수 있다.

국제 네트워크가 유지된다.

그 개인적 이해관계가

정책적 온건함과 맞물린다.

진보는 왜 국제사회가

손가락질하는 국가의 위상에 대해 의 침묵하는가.

미국의 한반도 군사전략이

미국익을 챙기는 것이 제일 목표인데

왜 갑질 하는 미국에 반격하지 못하는가.

정치적 득실 계산을 최우선하기 때문이다.

미래지향적이거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 독립 운동하던 식의 정치를 진보는 하지 않는다.

진보 정치권이

보수의 "친북" 공세에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는다.

비판하거나 반대할 경우

종북, 친북으로 역공당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보의 구조적 딜레마다.

한미동맹이 불평등하다고 말하면

"반미 = 친북"이라는 등식으로 공격받는다.

국보법이 문제라고 말하면

"국보법 폐지 = 간첩 보호"라는 프레임으로 공격받는다.

전작권 환수가 당연하다고 말하면

"전작권 환수 = 안보 포기"라는 공격을 받는다.

그래서 진보는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하지 못한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진보가 한미동맹의 불평등을 말하지 않으면

보수가 그 의제를 독점한다.

"한미동맹 강화"가

국가 정책의 당연한 방향이 된다.

진보도

집권하면 그 방향을 따른다.

침묵이 구조를 재생산한다.

정치권 전체가

정권 장악, 재창출, 정국 주도의 달콤한 맛에 취하면서

한미동맹 문제에서도

정치규범, 정치윤리 등에서

아무런 차별성이 없다.

다 내로남불, 아빠찬스, 엄마 찬스, 자기 찬스를

활용한다.

진보는 무능하지만 청렴하다는 말은

먼 과거의 옛 이야기다.

여의도 3백 명은 당 간판만 다르지

털면 다 엇비슷한 악취 나는 먼지만 나온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서비스보다

진영과 자기 이익을 위해

멸공봉사 하는 자들만 득실거린다.

더 좋은 자리, 더 비싼 아파트, 더 좋은 자식의 진학과 취업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고위공직자 청문회 때마다 확인되는

진보, 보수의 흠결은 너무도 닮은 꼴이다.

진보 집권은

남북교류를 추진하면서

한미동맹 공고화를 요구하는 미국에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진보 정권이 남북관계를 추진했다.

김대중의 햇볕정책.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노무현의 평화번영정책.

2007년 10.4 선언.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

전작권 환수 합의.

문재인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2018년 판문점 선언.

2018년 평양 공동선언.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미국이 반대급부를 챙겼다.

김대중 정부 시기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동안

미국은 한국에 F-15K 전투기 구매를 요구했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 전략 참여 압박이 시작됐다.

노무현 정부 시기

전작권 환수를 합의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을 얻어냈다.

2006년 1월 19일, 반기문 외교장관과 라이스 국무장관이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

“한국은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 논리를

이해하고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하되,

미국은 한국민의 의지에 반해 동북아 분쟁에 개입되지 않는다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했다”

미국 측 행동이 한국 측이 보기에

'국민 의지에 반한다'고 판단될 경우,

이 문서는 어떠한 제재, 보상, 종료 조항도 규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법적 기술적 관점에서

이것은 법적 구속력이 아닌 정치적 약속이다.

전략적 유연성.

주한미군이 한반도 방어만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어디든 투입될 수 있다는 것.

중국을 향해.

대만 유사시에.

중동으로.

한국은 전작권 환수라는 성과의 대가로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더 큰 것을 미국에 줬다.

문재인 정부 시기

2018년 남북 합의들이 이뤄졌다.

그러나 미국이 한미워킹그룹을 가동했다.

한미워킹그룹.

2018년 11월 설치.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미국이 사전 심의하는 기구.

한국의 대북 정책 자율성을 구조적으로 제한하는 장치.

개성공단 재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등등

이 모든 것이

한미관리가 참가하는 워킹그룹의 심의를 거쳐야 했다.

실질적으로 미국의 거부권이 제도화된 것이었다.

진보 집권의 역설이 여기에 있다.

남북관계 진전을 추구할수록

미국이 한미동맹을 미국 쪽으로 더 기울게 만들었다.

진보가 주는 것이 보수 집권 때보다 더 많았다.

다음은 보수를 살펴보자.

그들은 태생적 친미 DNA를 지닌 것이

미군정이 키운 세력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보수, 즉 국민의힘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남한에 점령군으로 진주한 미군정과

미국의 냉전 극동전략에

간까지 내주며 협조한 이승만이후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국민의힘으로 이어진다.

그 계보의 공통점이 있다.

미국의 지지가 권력의 기반이다.

미국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분단 속의 기득권을 독식했고 거기에 지금도 거기에 취해 있다.

그것이 태생적 DNA다.

국민의힘 정치인이 미국을 비판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 기반을 부정하는 것이다.

보수에게

반공 이데올로기는

엄청난 불로소득을 안겨주는 정치적 자산이다.

반공과 친미는

보수가 휘두르는 정치적 도깨비 방망이다.

그것으로 손쉽게 지지층을 결집하고 반대세력을 겁박한다.

보수 지지층에게

한미동맹은 종교다.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불경이다.

한미동맹을 신성불가침으로 유지하는 것이

보수, 국민의힘의 정치적 생존 조건이다.

불평등한 조약이라는 것을 알아도 말하지 않는다.

전작권이 없는 것이

주권국가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아도 말하지 않는다.

방위비 불용액 2조 원이

미국 은행에 있다는 것을 알아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것과 말하는 것이 다르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진실이 선택된다.

보수 주요 인사들의 개인적 네트워크를 보라.

미국 국무부 관료들과의 개인적 연결.

랜드연구소, 헤리티지재단, CSIS와의 협력.

미국 방산업체들과의 관계.

월가 금융기관과의 연결.

이 네트워크가

정치적 자산이다.

정보를 준다.

자금을 준다.

국제적 명성을 준다.

미국을 비판하면

이 네트워크가 끊어진다.

개인적 이해관계가

정책적 비판을 막는다.

헤리티지재단에서 강연한 인사가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을 주장할 수 있는가.

CSIS에서 발표한 학자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을 비판할 수 있는가.

개인과 네트워크가

구조적 종속을 강화한다.

보수의 개성공단·금강산 폐쇄는

미국이

원하던 최대의 선물이었다.

그들은 미국의 한반도 전략의 기본 전제 조건인

남북평화공존을

원천 봉쇄하는 전략의 집행자 역할을 한 것이다.

금강산 관광.

이명박 정부가 2008년 중단했다.

관광객 피격 사건이 직접 원인이었지만

그 이후 재개 협상을 거부했다.

전작권 전환

노무현 정부는 2006년 미국과 전환 합의와

2012년 목표 시한을 정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

이명박 정부는 전작권 전환을 2015년으로 연기했다.

박근혜 정부는 전환 시한을 없애고

조건 충족 방식으로 바꿔 전환 자체가 어렵게 만들었다.

미 정가에서는 주한미군의 특권이

미국익 증진에 엄청난 기여를 한다는 점에서

전작권 전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고

미 의회는

주한미군 철수는 물론 감군도 반대하는 법을 계속 만들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는

미국 국익을 챙기는 자들을 기쁘게 한 것이다.

문재인·윤석열 정부는

전환 의지를 재확인했지만 시한은 미뤄졌고,

이재명 대통령은 현재 전환 추진을

정상 간 논의로 이어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작권 전환이후에도 미국 국내법에 의해

주한미군과 유엔사는

미국익을 위해 미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의 대만, 아태지역에서의 작전을 가능케 하는 것이어서

한국이

원치 않는 전쟁에 휩쓸려 들어가는 등

군사적 자주권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이 미 본토 수호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를 위해 전작권 전환이후에도

남한에서 배타적 작전권을 행사할 방침이지만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침묵하는 기이하고 참담한 모습을 지속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의해

한국민이 죽고 다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에

정부가 침묵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헌법적 책무를 저버린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자초한다.

개성공단.

박근혜 정부가 2016년 전면 폐쇄했다.

북한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 두 사업의 의미를 다시 봐야 한다.

개성공단이 있던 곳은

원래 북한군 기지가 있던 곳이었다.

금강산 관광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이 그 군사 지역을 남북 경제협력 공간으로

개방한 것이었다.

이것이 단순한 경제 협력이 아니었다.

북한이 군사적 완충 지대를

남북 평화공존의 공간으로 바꾼 것이었다.

그것을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 긴장 완화가 주한미군 명분을 약화시킨다.

남북 경제협력이 활성화되면

한국이 미국 안보 우산에 덜 의존한다.

두 곳은 미국 입장에서는

미국익과 직결된 한미동맹에 역행하는 것이어서

보수 정권의 두 곳 폐쇄가

미국의 한반도 분단 지속 정책에

부합하는 결과를 낳았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흥미로운 것은

김문수가 한때 주장했다.

"휴전선 155마일을 개성공단처럼 만들자."

보수 정치인도 민족간 재결합 가능성을 두 곳에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주장은 보수 내에서 주류가 되지 못했다.

전두환 정권도 1985년

이산가족 상봉과 예술단 교환을 성사시켰다.

보수도 필요할 때 남북교류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이것이 보수와 진보 모두의 공통점이다.

남북관계를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집권과 정국 주도를 위해 이용한다.

보수에게

북한 위협은 정치적 활용 불쏘시개가 된다.

그들에게 남북평화는 기피 대상 최우선순위다

예를 들어보자.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른다.

안보 위기가 보수 결집을 만든다.

"정권을 진보에게 맡길 수 없다."

보수에게

북한 위협의 상시화가 정치적으로 유리하다.

평화가 오면 그 이득이 사라진다.

남북이 대화하면 안보 이슈가 약해진다.

한미동맹이 약화되면 국민의힘의 정체성이 흔들린다.

그러므로.

국민의힘은 구조적으로

평화보다 긴장을 선호한다.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행동이 말해준다.

남북 교류, 대북 지원은 북한 퍼주기라며 반대한다.

개성공단 폐쇄를 지지했다.

금강산 관광 재개를 반대한다.

북핵 협상에 회의적이다.

그 모든 행동의 기저에

"긴장이 유지되어야 우리가 산다"는

의식화 된 무의식적 계산이 깔려있다.

보수는 탄핵 이후의

생존 전략으로 미국을 구원자로 삼는 방법을 택했다.

박근혜, 윤석열이 연이어 탄핵을 당한 후

선택한 전략이다.

장 모 국민의힘 당 대표가

2026년 6월

지방선거라는 중차대한 시기에

워싱턴을 방문하면서

보수의 속내를 대내외에 확인시켜주었다.

“미국에 더 밀착한다.

미국이 지지해주면 살아남을 수 있다.

미국의 눈 밖에 나면 또 무너진다.”

그 전략이 이재명 정부를

미국의 요구에 더 순응하게 만든다.

탄핵으로 약해진 보수가

미국이라는 외부 권위에 기대면서

미국의 한미동맹을 앞세운 요구의 강도는 더욱 집요해지고 있다.

그것이 구조적 종속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만든다.

이재명 정부에게도

미국과의 관계가 핵심 과제가 됐다.

왜인가.

한국 정권의 안정에는 미국의 묵인이 필요하다.

그것이 역사가 증명하는 공식이다.

1961년 박정희 쿠데타.

미국이 묵인했다.

그래서 성공했다.

1980년 전두환 쿠데타.

광주 학살.

카터 행정부가 허락했다.

그래서 권력을 잡았다.

미국이 반대한 정권은

버티기 어려웠다.

미국이 지지한 정권은

안정을 유지했다.

그 역사가 한국 정치인의 무의식에 새겨졌다.

"미국의 지지를 잃으면 위험하다."

이재명 자신이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

대장동 의혹.

수많은 재판들.

그 상황에서

미국과 정면충돌하는 것은

엄청난 정치적 리스크다.

미국의 눈 밖에 나면

국내 보수 세력이 결합된 입체적 압박이 온다.

검찰이 움직인다.

언론이 공격한다.

여론이 흔들린다.

그 구조가

이재명으로 하여금

미국의 요구에 순응하게 만든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전략적 유연성 묵인.

북핵 문제에서 미국 라인 추종.

이것들이

정권 유지의 비용이다.

이재명이

트럼프 앞에만 가면 손 비비고 설설 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한미동맹의 대미 예속은 더 심화되는 쪽으로 치닫고 있다.

보수와 진보가

한미동맹에서 유사한 태도를 취하는

구조적 원인의 하나는 관료 시스템의 친미 체질이다.

정권과 정치인이 바뀌어도 관료가 남아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미관계를 유지, 강화하는 대미 정책을 챙긴다.

외교부.

국방부.

국정원.

이 기관들의 핵심 관료들이

미국과의 협력 속에서 성장했다.

그들의 경력이 한미동맹 유지에 달려있다.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정보를 받는다.

인사에서 유리하다.

퇴직 후 자리가 생긴다.

한미동맹을 흔드는 정치인은

관료 시스템의 저항을 받는다.

노무현이 전작권 환수를 추진했을 때

군 수뇌부가 집단 반발했다.

외교부가 협조하지 않았다.

국정원이 정보를 제한했다.

정치인이 바뀌어도

관료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다.

관료들은 5년 임기 대통령보다

미국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대통령은 5년 후 떠나지만

미국과의 관계는 계속된다.

그 관료 시스템이

어떤 정권이 들어와도

한미동맹 종속을 재생산한다.

언론의 친미 프레임도

구조화되어 있어 대중매체에는

한미동맹에 대한 비판의 언어가 없다

공영방송, 국가기간통신사는 물론 보수진보라 하는 신문사 모두

한미동맹을 신성불가침처럼 취급한다.

국내 언론들이 미국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는가.

거의 없다.

한미동맹이 불평등하다는 분석을 하는가.

거의 없다.

전작권 환수를 촉구하거나

미국의 과도한 태도를 비판하는 사설을 쓰는가.

거의 없다.

대신 이런 프레임이 반복된다.

"한미동맹은 한국 안보의 근간."

"주한미군은 한반도 평화의 보루."

"미국을 비판하면 중국·북한을 이롭게 한다."

이런 프레임이 여론을 만든다.

그 여론이 정치인의 행동을 제약한다.

정치인이 한미동맹을 비판하면

언론이 공격한다.

여론이 돌아선다.

선거에서 불리해진다.

그 구조가

침묵을 강요한다.

재벌의

대미 의존은 경제가 정치를 제약하고

한미동맹의 물줄기가 지속적으로 강하게 흐르게 만든다.

정권은 유한하되 재벌은 영원하다고 한다.

재벌은 정권의

가장 큰 손인 경제적 우군이라

정치는 재벌의 말에 귀를 열어 놓고 있다.

삼성이 미국 시장 없이 살 수 있는가.

현대차가 미국 공장 없이 살 수 있는가.

SK하이닉스가 미국 기업 없이 살 수 있는가.

재벌들이 미국 시장에 크게 의존한다.

정치가 미국과 갈등하면 재벌이 피해를 입는다는

공식이 오래전부터 확립되어 있다.

관세가 오른다.

시장 접근이 막힌다.

기술 협력이 끊어진다.

재벌이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자금을 통해.

로비를 통해.

언론을 통해.

재벌의 로비가

한미동맹 강화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약속의 보증은 누가 서는가.

한국 정부와 국민이다.

한국의 미래 자원이다.

그러나 그 비용은 재벌의 장부에 잡히지 않는다.

시민사회와 한미동맹의 관계는 어떤가?

두 번의 탄핵을 이뤄낸 시민들이 있다.

탄핵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고

시민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한미동맹 개혁을 요구하는 운동이 있는가.

전작권 환수를 촉구하는 운동이 있는가.

국보법 폐지를 요구하는 운동이 있는가.

있다.

그러나 주류가 아니다.

광장의 1700만 명이 그 운동에 있지 않다.

왜인가.

첫째. 국보법의 친북 프레임이 시민들을 분열시킨다.

한미동맹을 비판하면 친북으로 몰릴 수 있다는 레드컴플렉스

그 두려움이 시민들을 조용하게 만든다.

둘째. 한미동맹 관련 이슈가 복잡하다.

탄핵은 단순했다.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다."

그것이 명확했다.

한미동맹은 복잡하다.

조약 조항과 협정 등을 알아야 한다.

예속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국제 정치를 알아야 한다.

그 복잡함이 시민의 참여를 막는다.

셋째. 생활이 먼저다.

집값.

물가.

취업.

그것이 시민들의 일상을 지배한다.

한미동맹 개혁은 추상적으로 비춰지면서

발등의 생활 문제가 앞선다.

한국 교육 시스템은

한미동맹의 사실관계도 밝히지 않아

국치스런 한미관계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국사 교과서를 보라.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미국의 권리'를 설명하는가.

필리핀, 일본과 비교하는가.

불평등 조항을 분석하는가.

아니다.

"한미동맹은 한국 안보의 근간"이라는

결론이 먼저 주어진다.

그 결론을 의심하도록 가르치지 않는다.

비판적 사고가 교육에서 배제됐다.

의문을 제기하는 능력이 길러지지 않았다.

그 교육을 받은 세대가

정치인이 됐다.

관료가 됐다.

언론인이 됐다.

그들이

비판적 분석 없이

기울어진 동맹 구조를 재생산한다.

한국 여야 정치권의 미국에 대한 협조 일색 속에

미국이 원하는

동북아의 나토, 즉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이 강화된다.

이는 중국, 러시아, 북한을 적대진영으로 삼은

집단 안보 체제로

남북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의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든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해

남북관계 개선을 표방했다.

북미대화 중재를 추진했다.

단계적 비핵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운신의 폭이 좁다.

이유가 있다.

전략적 유연성의 구조적 제약

노무현 정부 때 합의한 전략적 유연성이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을 제약한다.

주한미군이 대만 유사시 투입될 수 있다.

중국이 그것을 안다.

중국이 한국에 압박을 넣는다.

이재명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그 줄타기가 대북 정책의 자율성을 제한한다.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의 심화

캠프 데이비드 합의.

2023년 8월 바이든-기시다-윤석열 정상회담.

한미일 정례 군사훈련 합의.

실시간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 공유 체계.

3국 공동 군사훈련 정례화.

이 합의들이

이재명 정부도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었다.

전쟁 범죄를 부인하는 일본이

한미일 3각 협력의 핵심 파트너가 됐다.

한국의 대북 정책이 일본의 동의를 사실상 필요로 하는 구조.

일본이 남북교류에 우호적인가.

일본에게 남북통일은 전략적 이익이 아니다.

통일 한국을 일본은 두려운 경쟁자로 여긴다.

한미일 3각 협력에 깊이 개입할수록

일본의 이해관계가 한국의 대북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유엔사의 통제

유엔사가 비무장지대를 통제한다.

유엔사는 미국 정부의 군사기구다.

남북 철도 공동점검단이 군사분계선을 넘으려 했다.

유엔사가 막았다.

2018년의 일이다.

이재명 정부가 남북교류를 추진해도

유엔사의 허락이 필요하다.

유엔사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따라 결정한다.

이 구조 속에서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은

원천적으로 제약돼 있다.

한국 보수, 진보와 북한의 2국가론은 무관한가?

그것은 지난 몇 년 간의 과정만으로도

남북관계라는 구조가 만든 결과물이라는 점을 부인키 어렵다.

북한이 2023년 2국가론을 공식화했다.

김정은이 헌법에 명시했다.

남한을 "제1의 적대국"으로 규정했다.

통일 조항을 삭제했다.

왜 이 지경이 됐는가.

남북관계의 역사를 보면

북한의 계산이 보인다.

2000년 6.15 합의.

2007년 10.4 합의.

2018년 판문점·평양 합의.

합의들이 이행되지 않았다.

이행되려 할 때마다 미국이 제동을 걸었다.

한국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합의가 폐기됐다.

북한은 학습했다.

"남한과의 합의는 의미가 없다.

남한은 미국의 허락 없이 아무것도 못 한다.

남한의 보수와 진보는 큰 차이가 없다.

미국과 직접 거래해야 한다."

그 학습이 2국가론으로 나타났다.

2국가론은 북한이 먼저 선택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구조적 대미종속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남한이 미국의 허락 없이 북한과 대화할 수 없는 구조.

한국 보수 정권이 합의를 뒤집는 구조.

유엔사가 군사분계선 통과를 막는 구조.

그 구조가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과의 대화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한미동맹과 관련한

보수와 진보 지향성을 살폈는데

그것을 개선할 출구는 있는가, 없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여야가 바뀌어도 결과가 같다.

하지만 출구의 조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보법 개폐

"종북" 공세의 법적 기반을 제거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비판하는 것이

법적 위험 없이 가능해야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를 재협상한다.

미군이 한국의 허가를 받아 기지를 사용하는 구조로 바꾼다.

필리핀처럼.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재검토.

유엔사의 비무장지대 통제권 이전.

전작권 즉각 환수

헌법 74조를 이행하는 것.

조건 없이. 지금 당장.

한미일 3각 군사협력 재검토

일본의 역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을 포함한 3각 군사협력은

한국의 대북 정책 자율성을 제한한다.

독자적 대북 채널 복원

미국의 허락 없이 북한과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유엔사의 비무장지대 통제로부터 독립이 필요하다.

이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이재명 정부도

문재인 정부의 선례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남북대화를 추진하고.

미국이 제동을 걸고.

전략적 유연성이 더 강화되고.

한미일 3각이 더 깊어지고.

북한이 더 강하게 등을 돌리는.

그 반복을 끊는 것이

이 시대 한국 정치의 핵심 과제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북마크
171 2026.10.11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25 - 한미동맹과 한국의 무뇌아 정치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보 사회가 있다.

손끝 하나로

지구 반대편이 보이고,

스마트폰 하나로 우주의 진리를 검색하며,

몇 번의 시민혁명으로

민주주의의 정상을 찍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나라에서 감춰진 진실이 있다.

교과서에도 오르지 못하고,

신문 1면에도, 방송 헤드라인에도,

국회 본회의장에도, 대통령 연설문에도

단 한 줄 새어 나오지 못한 이야기.

"한미동맹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시민혁명을 두 번이나 치른 광장의 민족이

왜 이 하나는 묻지 못하는가.

청와대 참모도 모르는 척하고,

여의도 의원들도 입을 다물고 산다.

약속이나 한 듯.

그들은 모두

같은 꿈을 꾸는 것일까.

아니면

같은 침묵을 나누는 것일까.

정보의 바다 위에 세워진 나라에서

단 하나의 정보만이

금기의 영역에 갇혀 있다.

국권이 미국의 손에 장악된

준 식민지 상태라는 사실

이것은 음모론의 결과물이 아니다.

국제 정치학의 상식이고

세계가 손가락질하는 국치다.

그런데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

교과서에도, 참고서에도,

신문과 방송에도,

외교부 백서에도

한미동맹의 예속성은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

외교부의 중간관리층조차

한미동맹의 진짜 구조를 모른다.

그들은 배운 대로 말하고 행동할 뿐,

배우지 못한 것은 말할 수 없다.

투명사회라 하고,

몇 번의 시민혁명을 겪으면서

민주주의가 선진국 수준 이라는데

국권이 미국의 손에 쥐어진

준 식민지 상태라는 사실에

국민은 무지하거나 무관심하다.

"미국이 베풀었고,

한국이 신세 졌다."

이 한 줄의 가짜뉴스가

칠십 년 동안

국민의 뇌리에 대못처럼 박혔다.

진실은 무엇인가.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여한 것도

미국의 국익을 위한 선택이었고,

주한미군을 주둔 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타국을 위해 봉사하는

외교 국방정책을 가진 나라가 아니다.

미국은 결코

자국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국 지배층이 바보라서 모르는 게 아니다.

알면서 침묵한다.

그 침묵이

그들의 밥그릇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으로

미국이 부당 이익을 취해가는 것에

침묵하면서

개개인의 이익을 챙기는 체질

이것이 한국 지배층의 만성 질환이다.

미국이

철군과 감군으로 위협하면 정치와 언론이 합창한다.

"큰일 납니다.

미국이 떠나면 어떻게 됩니까."

과천에서부터 기는 그 모습,

자동으로 반복되는 그 굴욕,

보수 정권도 진보 정권도 한 치 다르지 않다.

어느 누구도

묻지 않는 질문이 있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미국은 무엇을 잃는가?"

이 질문 하나가

칠십 년 동안 금지되어 왔다.

영토와 국권, 그리고 군사 작전의 운명이

외세의 손에 장악된 국치를

어째서 이 땅의 영혼들은 깨닫지 못하거나 눈을 감는가.

그것은

가짜 뉴스의 유령들이 교실의 교과서를 채우고

방송과 신문의 마이크를 장악하여

"미국이 은혜를 베풀고 우리는 신세만 진다"는

비열한 집단 세뇌의 주문을 70년 동안 읊어댔기 때문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이들조차

기울어진 운동장인 동맹을 마땅한 운명이라 여긴다.

투명한 사회라는 허울 좋은 간판 아래

가장 치명적인 진실만이 철저히 매장된 아이러니,

그 거짓의 성전 위에

한국 민주주의는 미완성의 계곡에서 허덕이고 있다.

침묵하는 지성은

역사 앞의 직무유기 아닌가.

시대의 나팔을 불어야 할

지성들은 자주의 성 앞에 나서지 않는다.

입담으로 정평이 나있고 말의 비수로 천하를 주름잡는

유투브의 거목들

유시민, 한동훈, 이준석, 김어준, 진중권 등등

자신의 이익과 진영의 울타리 속에서 핏대를 세우던

그 입술들은

왜 가장 본질적인 주권의 문제에 하나같이 침묵하는가!

문단의 거장

고은과 황석영 등의 붓끝은 어디로 향해 있는가,

노벨문학상 한강의

관심은 한미동맹의 실체와 그 질곡까지는 왜 미치지 못하는가.

세계의 광장을 요동치게 한

K-팝의 신화 BTS의 울림은

어째서 민족의

아픈 목줄을 푸는 일에는 다다르지 못하는가.

당신들이

한목소리로 동맹의 거대한 기만을 외쳤더라면,

21세기 지구촌의 수치는 단시간에 증발하고

자주와 주권의

선명한 아침을 맞이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양지 만을 쫓을 뿐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눈앞의 안위에 연연하니,

훗날 후손들이 오늘날의 기록을 펼치며

당신들의 이름 위에 던질

손가락질과 번득이는 비판이 두렵지 않으신가.

만약 대중 매체가

진심으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대미 종속성의 현실을 외국의 정상적인 국가관계와 함께

한 달만 잘 보도하면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국민주주 신문이며 진보매체라 하는

한겨레신문도

국가기간통신사로 국민의 세금 지원을 받는

연합뉴스도

공영TV라 하는 KBS, MBC도

한미동맹의 국치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한반도, 한미, 남북문제 전문가라며

단골로 TV에 나오는 정세연, 문정인 등은

한미동맹의 종속성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잘 나가는 유명인사와 예술인은 물론

언론매체, 전문가들의 침묵은 언젠가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물론 정치를 보면 그들의 문제는 일견 가볍게 보인다.

헌법의 책무로 국민을 섬긴다 하면서

정작 기득권의 밥그릇을 지키려

‘무뇌아’의 탈을 쓴 여의도의 정객들이여!

당신들이 저지른

대국민 기만극은 역사의 법정에서 탄핵받아 마땅하다.

세상사 지피지기(知彼知己)라 했다.

국가관계에서는 필수 사항으로

상대를 정확히 알고 나의 위치를 직시하는 것이

국제정치 불변의 법칙.

미국이 동북아의 땅에 군화를 올린 것은

가난한 동방의 나라를 향한 자혜로운 봉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국의 생존과 패권을 위한

냉혹하고도 철저한 국익의 선택이었다.

보라

평택 험프리스의 거대한 인프라를!

군산과 오산의 공군기지가 품은 가공할 타격력을!

중국 베이징을 불과 수백 km 턱밑에서 겨누는

고정항공모함,

러시아의 동부 전선을 압박하는 서태평양의

최전방 거점,

주한미군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떠받치는

대체 불가능한 핵심 축이다.

미국 국방부와 의회가 국방권한법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막아서는 이유를 보라.

주한미군의 철수는

미국의 글로벌 패권과 미 본토 안보를 타격하는

치명적인 자살골이자

대중국 봉쇄망인 제1도련선이 산산조각 나는

대참사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위정자들이

철수 카드를 들먹이는 속내를 아는가?

그것은 진짜 철수가 아니라, 분단 기득권 상실의 공포에 질린

한국의 정객들을 쥐어짜

매년 수조 원의 방위비를 뜯어내고,

주한미군을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로 자유롭게 차출하려는

‘전략적 유연성’의

족쇄를 채우기 위한 추잡한 말 폭탄에 불과하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한국 방어"라 부르는 것은 외교적 수사일 뿐

진짜는

미 본토를 지키는 전략적 유연성의

최 전진기지.

한국은 매년 1조 원 이상을 방위비로 부담하고,

주한미군에 기지와 인프라를 내주고,

전략적 통제권까지 내준다.

그런데 미국은 말한다.

"미국이 한국에 은혜를 베풀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미국의 해외 주둔 원칙은 일관 된다

핵심 국익 중심, 선택적 개입, 본토수호를 목적으로 한 전방 전개,

동맹 신뢰성 제고는 맨 아래다.

주한미군은

한반도 억제·대응 능력을 제공하는

동시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과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전략적 자산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여의도에는 친미 정상배만 가득하다.

트럼프가 철군 카드를 꺼내면

정치권은 공포에 질리고,

"절대 안 됩니다"를 외치며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왜?

미국 영향력이 약해지면

자신들의 정치, 경제적 기득권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국익을 외면하고,

국민의 권리를 짓밟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정치 카르텔에 안주한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어느 의원도,

한미동맹의 기울어진 현실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점령국과 피점령국을 닮은 관계를

수평적 관계인 양 포장하며

국민을 속여 온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대국민 사기이며, 탄핵 사유 아닌가.

정치는 국민에게 제공되는

공공 서비스이며,

국가의 존엄과 안위를 지키는

헌법적 행위라는 본질에 비추어 볼 때

정치권의 태도는 심각하기 짝이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66조 제2항은

대통령과 위정자에게

국가의 독립과 영토의 보전,

헌법을 수호할 엄중한 의무를 부여한다.

국가의 외교적 위신과

주권적 결단이 걸린 문제 앞에서도

표 계산과 자신의 입신출세, 진영 내 입지 확보만을

염두에 두는 것은

공공재로서의 정치를 사유화하는 처사다.

여야가

종북이라는 이념적 공세가 두려워

부당한 외교적 현실을 묵인하는

집단적 기회주의는

국민에 대한 명백한 직무유기다.

국치는 미국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한국 정치가 스스로 만든다

반대하고 반발해야 할 때 침묵하면 국치는 완성 된다

정상적인 자주국의 자세로

반대하고 반발할 때

비로소 대등한 관계가 시작 된다

주한미군이 미국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산이라면

한국은 그 사실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6조

조약 종료를 통고할 수 있는 조항은

단순한 파기 위협용이 아니다

미국의 과도한 수탈과 독단을

막는 최후의 강력한 카드다

6조가 발동되면

미국의 동북아 최전진기지의 합법성이 상실되고

1차 도련선이 구조적으로 붕괴되며

미국 내부에

“자국 우선주의 때문에

핵심 기지를 날렸다”는 책임론이 들끓게 된다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면 위험하다는

고정관념이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그럴까?

해외의 경우를 살펴보자.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섰던 국가들의 경우는 한 둘이 아니다.

캐나다는

트럼프가 자국산 제품에

50% 관세를 부과하자

즉각 반발했다.

"자유무역협정 정면 위반이다.

괴롭히는 자에게 굴복할 수 없다."

그러면서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캐나다 GDP는 한국보다 작다.

군사력도 한국보다 약하다.

그러나 당당했다.

멕시코의 경우

트럼프의 관세 압박에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이

말했다.

"멕시코는 주권 국가다.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다."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목록을 공개했다.

필리핀은

1992년

미군기지 철수를 관철해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했다.

2014년

미국과 새 군사협정 EDCA를 합의해

미군의 필리핀 재진입을 허용했지만

조건을 달았다.

"미군의 필리핀 영구 주둔 금지,

필리핀 법 적용,

핵무기 반입 금지."

프랑스는

1966년

드골 대통령 시절

나토 군사통합사령부에서

전격 탈퇴하고

미군을 철수시켰다.

자체 핵전력을 바탕으로

자주외교를 펼친 프랑스는

43년 후인 2009년,

대등한 지위를 확보한 채

나토에 복귀했다.

독일은

나토 회원국으로

미군이 주둔한다.

그러나

독일 의회가

미군 관련 사항을

공개 토론하고

전략적 유연성에 독일이 동의해야 한다.

다른 나토 회원국들도

미국과의 군사관계는

대등한 주권국가간의

합리적인 것으로

미군의 군사력 배치, 작전 등에서

주군국과 사전협의해야 한다.

이들 국가 모두

미국과 마찰을 빚었지만

국가 존립이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국의 레버리지를 활용해

동맹 내에서

더 대등하고 유연한 협상력을

확보했다.

그런데 한국만이

"반발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공포에 질려 있다.

바보 같은 짓 아닌가.

한국만 유독

존립 위기를 두려워하며

무릎을 꿇을 이유가 없다

미국에게 한국은

대체 불가능한 필수 자산이다

군산과 오산 기지가 없다면

대중국 견제 전략에

치명적인 구멍이 뚫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없이

미국의 AI 대전환은 작동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역량도

한국이 가지고 있다

스스로의 가치를 저평가한 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파트너가 아니라

식민지 하청국으로 전락하는 길이다

동맹은 국민 위에 설 수 없다

동맹도 헌법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미관계에서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동맹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국익과 주권,

국민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반도에는 실제 군사적 위험이 존재하고

미국의 확장억제와 연합방위체계가

한국 안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쪽의 사실만 반복될 때 발생한다.

한국이 미국에 제공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와

산업적 가치와

기지와 인프라의 가치는 무엇인가.

미국이 주한미군을 통해 얻는

전략적 이익은 무엇인가.

이 질문까지 함께 설명해야

국민은 비로소 판단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정답을 주는 제도가 아니다.

국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하는 제도다.

그러나

동맹이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역으로 버티고 있다.

독재시절이

시민혁명에 의해 종식되고 민주화가 진행된 뒤에도

동맹을 비판하면

반미라고 불릴까 두려하고,

미국의 요구에 의문을 제기하면

안보를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될까 두려워하며,

주한미군의 역할을 다시 묻자고 하면

한미동맹을 흔드는 사람으로 몰릴까

정치권은 조심스러워한다.

그렇게 질문은 여전히 우리 곁에 없다.

질문이 사라면 관성이 대신한다.

관성은 가장 편리한 정치다.

어제 그렇게 했으니

오늘도 그렇게 하고,

지난 정부가 그렇게 했으니

이번 정부도 그렇게 하고,

보수가 그렇게 말하면

진보도 다른 표현으로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고,

진보가 동맹을 강조하면

보수는 더 강한 동맹을 주장한다.

정권은 바뀌고

대통령도 바뀌었다.

국회의원도 바뀌고 정당의 간판도 바뀌었다.

그러나 한미관계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틀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시민은 다시 묻는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왜 외교의 질문은 바뀌지 않는가.

정치인에게는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통령에게도

헌법이 부여한 책임이 있다.

국회의원에게도

국민의 대표라는 무거운 이름이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국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가 아니다.

친미냐 반미냐의 선택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국익을 계산하는 능력이다.

미국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한국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상대방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한국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그 모든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협상하는 것이다.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이 있다.

국가에는

영원한 국익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한국의 국익을 말해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한국 사회는 흔들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질문을 거꾸로 던져보자.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하면

한국만 손해를 보는가.

미국도 잃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 손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계산해 보아야 한다.

주한미군의 군사적 위치.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공간.

한반도에서의 정보와 감시 능력.

미국의 공군력과 해군력의 전개 편의성.

동맹국과의 연합작전 능력.

인도·태평양 전략에서의 거점.

그리고 미국의 글로벌 군사 네트워크 속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치.

그렇다면

철군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한국이 무조건 두려워할 이유만 있는가.

아니면 미국이 잃는 것도

함께 계산해야 하는가.

바로 그 순간

협상의 지형이 달라진다.

미국 의회가

주한미군의 규모와 관련해

국방권한법에서 여러 제한을 둬온 사실도

이러한 논의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 대통령이 언제든

해외 주둔군을 크게 줄일 수 있도록

완전히 자유롭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은

미국 내부에서도 해외 주둔군이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는 논리와 연결된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가 이 사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두려움으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협상의 자산으로 바라볼 것인가.

물론 그것을

단순한 협박 카드로 사용할 수도 없다.

동맹은 감정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필요를 이해하지 못하는 협상은

협상이 아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

미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이유를 알고

한국이 미국을 필요로 하는 이유도 알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한미관계는 조금씩 대칭을 향해 간다.

그러나 여기서

더 깊은 질문이 나온다.

주한미군은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가.

한반도 방어를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더 넓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부인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확대된다면

한반도를 넘어 다른 지역의 분쟁에

한국 내 기지가 활용될 가능성은 어떻게 되는가.

대만해협에서 위기가 발생한다면?

남중국해에서 충돌이 발생한다면?

미국이 다른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확대한다면?

한국에 있는 미군 기지가

그 작전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면?

한국은 어떤 위험을 부담하는가.

중국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북한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한국 국민은

원하지 않았던 강대국 무력충돌의 불길 속에

어느 순간 휩쓸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은

미국을 비난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한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관한 질문이다.

그래서 전략적 유연성은

단순한 군사 용어로만 다룰 일이 아니다.

그것은 주권의 문제이고

국민의 안전에 관한 문제이며

동맹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동맹은

모든 것을 자동으로 허용하는 백지수표가 아니다.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서로의 국익이 충돌할 수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은 공론화와 협상이다.

국민에게 설명하고

국회가 검토해서 법적 절차를 밟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안보라는 이름은

국민의 동의를 대신할 수 없다.

안보가 중요할수록 더 투명해야 한다.

왜냐하면

안보정책의 실패는

보고서 한 장의 실패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이 사라지고

도시가 파괴되며

경제가 흔들리고

미래 세대가 그 대가를 치른다.

트럼프의

광기어린 좌충우돌 속에

한미간 경제문제가 심각하다.

수천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논의될 때

그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달러라는 숫자 뒤에는

공장이 있고,

공장 뒤에는

노동자가 있으며,

노동자 뒤에는

가족이 있고,

그 가족 뒤에는 인간의 삶이 있다.

국가가 해외에 거대한 자금을 투자한다면

국민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 투자는 왜 필요한가.

수익은 어떻게 보장되는가.

국내 투자와 비교하면 어떤가.

한국 산업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일자리는 늘어나는가.

기술은 확보되는가.

미국 시장 접근은 개선되는가.

그 대가로 한국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위험은 누가 부담하는가.

이 질문을 하는 것은

미국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 간 거래를 정상적인 거래로 만드는 것이다.

필리핀, 프랑스가

트럼프와 대치하면서 국익을 지킨

사례들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의 지정학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다른 나라와 다르다.

그러나 한 가지 교훈은 있다.

동맹국이라고 해서

국익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한미관계의 모든 이익과 비용을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누가 얼마를 부담하는가.

무엇을 얻는가.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가.

어떤 법적 권리가 있는가.

어떤 합의가 이루어졌는가.

국민이 알아야 한다.

둘째,

국회가 외교와 안보의 중요한 결정에

더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외교는 대통령의 전유물이 아니다.

안보 역시 정부만의 비밀영역일 수 없다.

헌법질서 안에서

국회와 국민의 통제가 작동해야 한다.

셋째,

한국은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스스로 낮추지 말아야 한다.

한국은 단순히

미국의 보호를 받는 공간이 아니다.

한국은 미국에도 필요한

산업국가이며

동북아의 핵심 지정학적 공간이고

세계 공급망의 중요한 축이다.

넷째,

동맹과 자주는

서로 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강한 동맹은

강한 주권국가끼리 맺을 때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한미관계가

정상화 되기위해

중요한 것은 정치만이 아니다.

시민의 질문이다.

시민이 묻지 않으면

정치는 설명하지 않는다.

시민이 검증하지 않으면

권력은 편리한 논리를 선택한다.

시민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외교는 소수의 전문가와 관료와 정치인의

영역으로 굳어질 수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는

언제나 시민이다.

광장이다.

언론이다.

토론이다.

투표다.

그리고 질문이다.

왜 그런가.

누가 결정했는가.

국민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가.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가.

다른 선택은 없는가.

이 다섯 가지 질문만

끊임없이 던져도

정치는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이미 여러 차례

거대한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

권력이 스스로 내려오지 않을 때

시민이 광장으로 나왔다.

정치가 길을 잃었을 때

시민이 질문하고 행동했다.

그리고 역사의 방향을

다시 바꾸었다.

그렇다면 그 힘을

외교와 안보에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을 미워하거나

중국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직 하나.

대한민국의 결정은

대한민국 국민이 알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원칙을 위해서다.

만약 어느 날

과도한 외교적 부담이

국민의 삶을 짓누르기 시작한다면,

국민의 일자리가 줄고

청년의 미래가 어두워지고

물가가 오르고

주거비가 상승하고

소상공인의 삶이 무너지고

복지와 교육에 쓸 재원이 줄어든다면,

그때 외교는

더 이상 외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생의 문제가 되면서

국민은 묻게 된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정부는 누구의 삶을 먼저 지키는가.”

“왜 국민에게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면서

국가의 대외적 부담은 계속 커지는가.”

그 질문이 쌓이면

시민사회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온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인내심은 무한하지 않다.

그러므로 정치권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 번의 이견을 내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국민이 정부의 설명을 믿지 않게 되는 순간이다.

국민이

“저 결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고 묻기 시작했을 때,

정부가 아무리

“국익을 위한 결정이었다”고 말해도

국민이 더 이상

그 말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외교의 위기이기 전에 민주주의의 위기다.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동맹은

신뢰 위에서 존재한다.

그러나 신뢰는

침묵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설명과 검증에서

상호주의에서 만들어진다.

국민의 동의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에 당당하게 질문하는 것은

동맹을 깨뜨리는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동맹을 건강하게 만드는 과정일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렵다.”

“우리는 이만큼 제공한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므로

국회의 검토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국가의 장기적 운명을 바꿀 수 있으므로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것이

주권국가의 언어다.

그래야

한미관계가 건전한 문턱에 도달할 수 있다.

미국은 한국에게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할 수 있다.

더 많은 투자를 요구할 수도 있다.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를 요구할 수도 있다.

한국은 그때

무조건적인 수용과

무조건적인 거부 사이에서

선택할 필요가 없다.

제3의 길이 있다.

협상이다.

한국이 가진 것과

미국이 가진 것을 계산하며

서로의 필요를 인정하고

서로의 레드라인을 존중하면서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그것이 국제정치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역시

영원히 손댈 수 없는 성역이 아니다.

국제법과 헌법에 따라

모든 조약은 그 자체의 법적 절차를 가진다.

따라서 조약의 존속과 변경 문제도

감정이 아니라

법률과 헌법과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당장 무엇을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필요한 경우

자신의 법적 권리와 선택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은 협상할 수 없다.

자신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모르는 국가는

상대방의 선택만 기다리게 된다.

그것이

외교에서 가장 위험한 상태다.

대한민국은

미국을 더 잘 알아야 한다.

미국의 국익을 알아야 하고

미국 의회의 역할을 알아야 하며

미국 국방부의 전략을 알아야 하고

미국 사회의 여론과

동맹정책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동시에

한국 자신도 알아야 한다.

한국의 군사력.

한국의 산업력.

한국의 기술력.

한국의 지정학.

한국의 경제력.

한국 시민사회의 힘.

그리고 한국 국민이 가진

민주주의의 눈높이.

그 모든 것이 외교의 자산이다.

어쩌면 한국이 지금까지

가장 과소평가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인지도 모른다.

전쟁 직후의 한국은

정말 약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다르다.

세계적인 기업이 있고

세계적인 기술이 있고

세계적인 문화가 있고

세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세계가 한국을 바라본다.

K-pop이 세계의 무대에 서고

한국 영화가 세계의 이야기가 되며

한국의 반도체가 세계 산업을 움직이고

한국의 조선소가 세계의 선박을 만든다.

그런 나라가

외교에서만 자신을

가난했던 시절의 나라처럼 취급한다면

그것은 현실과 인식의 간극이다.

이제는

국가의 크기를 다시 계산해야 한다.

그렇다고

미국과의 관계를 끊자는 것도 아니다.

더 오래 가는 동맹을 위해

더 대등한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쪽이 항상 주고

한쪽이 항상 요구하는 관계는

언젠가 피로가 쌓인다.

한쪽이 항상 보호자이고

한쪽이 항상 피보호자로 남는 관계도

영원히 지속되기 어렵다.

성숙한 동맹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관계다.

필요하기 때문에

존중한다.

존중하기 때문에 협상한다.

협상하기 때문에

서로의 선을 인정한다.

그 선을 넘지 않기 때문에 신뢰가 쌓인다.

그리고 그때

주한미군의 존재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한국은 한국의 주권을 지키고

미국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확보한다.

한국은 필요한 경우

자신의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미국도 그것을

동맹국의 정당한 국익 주장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관계라면

오히려 동맹은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은

정치인 몇 명의 결심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언론이 질문해야 한다.

학자가 연구해야 한다.

시민단체가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국회가 토론해야 한다.

청년이 질문해야 한다.

노동자가 질문해야 한다.

기업도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이 알아야 한다.

외교가

국민의 삶과 무관한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대미투자 하나가

국내 산업과 일자리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방위비 하나가

국가재정과 민생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군사적 합의 하나가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외교는

결국 국민의 밥상으로 돌아온다.

안보도

결국 국민의 삶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이제

새로운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유지할 것인가?

그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한미동맹을 만들 것인가?

이것이 더 중요한 질문이다.

일방적 동맹인가.

상호주의적 동맹인가.

침묵하는 동맹인가.

국민에게 설명하는 동맹인가.

한국의 주권을 제한하는 동맹인가.

한국의 주권을 존중하면서

공동의 안보를 추구하는 동맹인가.

이 질문은

누군가 대신 대답할 수 없다.

국민이 판단해야 한다.

정치인도

이제 시민에게 선택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언론도

한미관계, 남북관계를

선악의 구도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학계도

동맹의 이익뿐 아니라

비용과 위험과 비대칭성까지 연구해야 한다.

정부도

협상의 과정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도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어쩌면

대한민국이 맞이한 가장 중요한 외교적 과제는

미국과 중국 가운데 누구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대한민국은

자신의 국익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은

강대국과 협상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은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대한민국은

국민에게 외교의 비용과 편익을

솔직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 때

한국은

진정한 의미의 주권국가로

한 단계 더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의 마지막에는

시민이 있다.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다.

권력자가 아니라

주권자다.

광장의 수많은 촛불.

비 내리는 거리의 우산.

차가운 겨울밤

서로의 손을 잡은 사람들.

그들은 거대한 군사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외교관도 .

대통령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옳지 않다.”

라고 말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우리는 다르게 할 수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힘.

그 힘이

민주주의를 움직였다.

그러므로 외교의 민주화도

결국 시민에게서 시작된다.

“왜?”

라는 질문 하나.

“누가 결정했는가?”

라는 질문 하나.

“국민에게 무엇이 돌아오는가?”

라는 질문 하나.

“다른 선택은 없는가?”

라는 질문 하나.

그 질문들이 모이면

정치의 막힌 벽에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빛은

미국, 중국을 향한 빛도 아니다.

그 빛은

대한민국 스스로를 비추는 빛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지킬 것인지

우리 스스로에게 묻는 빛이다.

그 빛 아래에서

동맹, 안보와

주한미군, 대미투자와

전략적 유연성도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의 역할도 다시 보게 된다.

정치는

국민을 대신하여 결정하는 권력이 아니라

국민의 뜻을 모아

국가의 방향을 정하는 공공의 행위다.

외교는

강대국의 요구를 전달받아

국민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아니라

국익을 지키면서

국가 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과정이다.

동맹은

국가의 주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국가가 선택한

안보협력의 수단이어야 한다.

그리고 안보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국민이 안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미동맹의 미래를 묻는 것은

어떻게 하면

한국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동맹이 되는가.

어떻게 하면

미국 국민도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두 나라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면서

동북아의 군사적 충돌 위험을 낮추고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며 행보지수가 높아질 수 있는가.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질문이다.

지난 70 여 년 동안

시민 통제를 벗어난

한미 간의 밀실·관성 외교는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국내 정치가

외교를 핑계로

국부와 안보 주권을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그것이

고물가·고금리·고용 불안이라는

민생의 위기로 이어지는 순간,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치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할 것이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고

한미동맹의 정상화를 통한

자주의 확보와

제도적·체계적 개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민생 외교'로의

프레임 전환과

시민사회적 공론화를 추진한다.

외교·안보 문제를

일부 엘리트나 신념의 영역에

맡겨두지 않고,

"퍼주기 외교가

내 일자리와 삶을

어떻게 위협하는가"라는

민생 문제로 일상화해야 한다.

노동계, 소상공인,

시민단체, 학계가 연대하여

대미 투자의 조건성,

방위비 분담금의 적정성,

전략적 유연성의 위험성을

데이터와 삶의 언어로 공론화해야 한다.

둘째,

국회의 외교·안보 통제권을

강화해야 한다.

통상 및 안보 합의의

국회 비준 의무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수조 원대 기업 투자 및

군사적 관할권 변경에 준하는

한미 간 주요 합의는

반드시 국회의

사전·사후 동의를 거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자국민의 생존권과

직접 결부된

전략적 유연성의 한계나

핵심 기술 자산의 유출에 대해

법률로 가이드라인을 지정함으로써

외교적 협상에서 정부의 입지를 강화해 주어야 한다.

셋째,

협상의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미국이 요구하니

들어줄 수밖에 없다"가 아니라

"한국이 제공하는 전략적 가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다"로 전환해야 한다.

넷째,

'민주적 선거'를 통한

외교·안보 정책의

심판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정치권이

미국 요구에 대한 저자세를

반복하는 근본 이유는

'외교 성과'를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삼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국익과 주권을 지키지 못하는 외교,

민생을 위협하는 대외 합의를 한

정치 세력은

표로 심판받는다"는 원칙을

선거를 통해 명확히 각인시켜야 한다.

다섯째,

당당한 동맹을 요구하는

'주권자 행동'의 조직화가 필요하다.

21세기 들어

두 차례 광장 혁명을 달성한

한국민의 민주주의 에너지를

이제는

"대등하고 지속 가능한 한미동맹,

국익에 기반한 당당한 자율 외교"를

요구하는

상시적 시민 행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외교의 기본은

국익과 상호주의다.

한국 정치가

해외의 당당한 외교 사례를

외면한 채

일방적 수용만을 거듭하는 것은

국치이자 민주주의의 후퇴다.

한국 정치의 위기 속에

늘 길을 찾아낸 것은

주권자 시민이었다.

과도한 대미 투자와

안보적 양보가

민생의 삶을 압박할 때

시민사회가

광장을 밝히는 빛으로 뿜어져 나올 것이다.

그 힘이야말로

정치권의 관성적 저자세 외교를

끊어내고,

한국을

'하청국'이 아닌

'대등하고 당당한 주권국가'의 위치로

올려놓을 가장 확실한 동력이 될 것이다.

먼 훗날

후손들이

오늘의 한미동맹을 평가할 때

그들은

묻지 않을 것이다.

"왜 미국은 그랬는가."

그들은

물을 것이다.

"왜 한국은 침묵했는가."

동시에 그들은

오늘의 정치인이나 영향력 있는

사회 유력 인사와

언론 등을 향해 물을 것이다.

“왜 당신은 딴전을 피웠는가?”

이들 질문에 대한 열쇠는

지금,

우리 손안에 있다.

한국사회의 21세기 구성원들이

한미동맹의 진실에 대해

한 소리로 외친다면

단시간 내에

한국 사회가 정상화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구조의 변화는

그 제약을 깨뜨리려는

개인과 집단의 결단, 의지에서 출발했다.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

눈앞의 정치와

잘 나가는 문화, 예술, 전문인들이

사회의 목탁이

공익과 공공선에

기여하도록

촉구하고 추동하는 것은

결국

깨어있는 시민사회의 몫이다.

특히 정치권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 서비스를

제공하게 만들려면,

구조적 한계를 핑계 삼아

안주하며 딴 짓하는 청와대와 여의도를 향해

시민사회가 엄중한 비판과 책임을

강하게 지속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북마크
284 2026.10.02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24-서울과 워싱턴의 ‘동맹’ 거리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태평양은 넓다.

서울에서 워싱턴까지 거리가 멀지만

워싱턴에서 나온 한마디는

서울까지 오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동맹이라면 함께해야 한다.”

그 말은 비행기보다 빨랐고,

군함보다 빨랐으며,

때로는 외교관보다도 빨랐다.

백악관에서 나온 말이

국무부를 지나고,

국방부를 지나고,

의회를 지나고,

신문사를 지나고,

텔레비전 화면을 지나고,

서울의 정치권과 관료사회를 지나

마침내 국민의 귀에 도착하는 데에는

하루도 걸리지 않는 날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이

서울에 도착했을 때에는

처음의 말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미국이 요구했다.”

잠시 뒤에는

“동맹국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한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한미동맹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마지막에는

“한국이 선택해야 한다.”

처음에는 부탁이었던 말이

도착할 때쯤에는

강력한 요구로 변신해 있었다.

어느 날

누군가 말했다.

“호르무즈가 위험하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

“세계 경제가 위험하다.”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석유 수송로를 지켜야 한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다음 말이 문제였다.

“그러므로 한국도

도와야 한다.”

서울은 잠시 침묵했다.

한국은

호르무즈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석유는 필요했고,

무역도 필요했고,

세계경제도 중요했다.

그러니 질문은 어려웠다.

호르무즈를 지키는 것이

한국의 국익인가.

그렇다면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가.

군함을 보내야 하는가.

병력을 보내야 하는가.

호위만 하면 되는가.

정보만 제공하면 되는가.

미국과 함께하면 되는가.

아니면

미국의 전쟁에

한국군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문제는 완전히 달라지는가.

서울의 회의실에서는

수많은 문서가 펼쳐졌다.

헌법이 펼쳐지고,

국제법이 펼쳐지고,

파병 관련 법률이 펼쳐지고,

한미동맹 관련 문서가 펼쳐지고,

국익을 계산하는 보고서가 펼쳐졌다.

그러나 회의실 밖에서는

이미 다른 계산이 시작되고 있었다.

미국은 한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질문이었다.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말했다.

“동맹국들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그 말은 짧았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그 한마디를 해석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였다.

외교관들은 의미를 분석했고,

국방부는 군사적 의미를 분석했고,

경제부처는 경제적 파장을 분석했고,

정치권은 정치적 파장을 분석했다.

언론은 제목을 뽑았다.

“미국, 한국에 역할 확대 요구.”

다음 날에는

“한미동맹 시험대.”

그다음에는

“한국의 선택, 동맹의 미래 좌우.”

신문 제목은

점점 커졌다.

대통령의 말보다

신문 제목이 더 큰 목소리가 되었다.

그리고 국민들은

신문 제목을 통해

미국 대통령의 말을 알게 되었다.

미국대통령의 뒤를 이어

관료들이 등장했다.

국무부의 관리가 말했다.

“동맹의 책임분담이 중요하다.”

국방부의 관리가 말했다.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상원 의원이 말했다.

“동맹이라면 더 기여해야 한다.”

전문가가 말했다.

“미국은 동맹의 기여를

중요하게 평가할 것이다.”

한 사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사람의 말이 이어졌다.

마치 합창단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휘자는 보이지 않았다.

누가 첫 음을 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해 노래했다.

그러자 미국관리가 평화를 강조하는 세탁작업을 벌였다.

"우리는 그냥 동맹의 역할을 강조할 뿐이다."

이 말은 겉으로는 합리적이지만,

속으로는 "니들이 알아서 무서워하라"는 의미였다.

이것이

미국이라는 제국주의가

민주주의 가치를 앞세워 국익을 취하는 외교적 압박의 선순환 구조라 한다.

서울 사람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정책 토론처럼 들렸다.

그러나 오래 들으니

압박처럼 들렸다.

더 오래 들으니

경고처럼 들렸다.

마침내 어느 순간부터는

송곳 같은 질문처럼 들렸다.

“한국은 어느 편인가?”

그 질문은

참으로 이상한 질문이었다.

한국은 이미

동맹국이었다.

그런데 왜

매번 충성을 증명해야 하는가.

한국과 미국사이

태평양을 건너는 또 하나의 존재가 있었다.

언론이었다.

미국의 신문과 방송에서

한국에 대한 기사들이 나왔다.

어떤 기사는 한국의 소극적인 태도를 지적했고,

어떤 기사는 한미동맹의 부담분담 문제를 분석했으며,

어떤 기사는 한국이 미국의 전략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가운데에는

미국 정부와 전혀 관계없는

독립적인 기자의 기사도 있었고,

정치적 견해를 가진

칼럼니스트의 글도 있었고,

싱크탱크 연구자의 분석도 있었다.

모두가 정부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서울에 도착한 뒤에는

이 모든 목소리가 한데 섞였다.

“미국이 한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언론은 다시 보도했다.

“미국 전문가들도 한국의 역할 확대를 주장한다.”

또 다른 언론이 받아썼다.

“워싱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러자 정치권이 움직였다.

“미국과 관계가 악화되는 것 아니냐.”

관료사회가 움직였다.

“미국의 다음 조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여의도가 움직였다.

“혹시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것 아닌가.”

한국 정치와 언론은

한미동맹 아니면 한국이 존재할 수 없으며

미국의 한반도 전략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의도

거대 여야당 의원 거의 전부가 한미동맹을 합창하는 현상은

미국이

1945년 점령군으로 진주한 뒤

한국 지배층을 철저히 훈련시켜

세뇌상태가 세습화되게 만든 공작적 노력의 결과라 할 것이다.

이른바 검은 머리 미국인이 된 그들은

남북교류협력과 평화통일 노력도

미 국익에

비춰 판단하고 행동하는

미국의 한국 거주 애국자 역할을 하고

광화문에 태극기와 이스라엘기가 등장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배를 움직인다.

여론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를 움직인다.

미국에서 나온 한마디가

서울의 신문과 TV에 실리고,

인터넷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정치인들이 그 논쟁을 인용하기 시작하면,

처음의 한마디는

완전히 다른 힘을 갖게 된다.

그 결과 미국 정부가

직접 한국 국민에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 사람들이

서로에게 그 말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화났대.”

“미국이 한국을 문제 삼는대.”

“동맹이 흔들릴 수도 있대.”

“그러니 빨리 결정해야 한대.”

어느 날

워싱턴에서 청구서가 날아왔다.

서울은 봉투를 열었다.

첫 번째 항목은

방위비였다.

두 번째 항목은

투자였다.

세 번째 항목은

무역이었다.

네 번째 항목은

방산협력이었다.

다섯 번째 항목은

중동이었다.

여섯 번째 항목은

우크라이나였다.

일곱 번째 항목은

인도태평양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항목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동맹의 책임

서울은 계산기를 들었다.

더하기를 했다.

또 더했다.

그러나 합계가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지막 항목에

가격이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맹의 책임은 얼마입니까?”

서울이 물었다.

워싱턴은 대답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러면 어디까지입니까?”

“필요한 만큼이다.”

“필요한 만큼이 얼마입니까?”

“동맹이라면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서울은 다시 계산기를 내려놓았다.

참으로 편리한 청구서였다.

가격은 없는데

지불기한은 있었다.

청구서의 다음 장에는

우크라이나가 적혀 있었다.

전쟁은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이름도

그 전쟁의 문서에 등장했다.

한국의 방위산업,

한국의 무기,

한국의 탄약,

한국의 생산능력.

누군가는 말했다.

“한국은 자유세계의 일원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한국도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또 다른 질문이 나왔다.

“역할이란 무엇인가.”

무기를 생산하는 것인가.

무기를 판매하는 것인가.

군수지원을 하는 것인가.

직접 병력을 보내는 것인가.

어디까지가 경제이고

어디부터가 전쟁인가.

어디까지가 동맹이고

어디부터가 참전인가.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워싱턴에서는 답이 간단했다.

“동맹국이라면

기여해야 한다.”

서울의 시민은 혼잣말했다.

“기여라는 말은

참으로 넓구나.”

그 말 속에는

돈도 들어가고,

무기도 들어가고,

군함도 들어가고,

병사도 들어가고,

때로는

한 나라의 외교정책 전체가

들어갈 수도 있었다.

동맹에는

두 얼굴이 있었다.

하나는

함께 방어하는 얼굴이었다.

전쟁이 나면

서로를 돕고,

침략이 발생하면

함께 대응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군사력을 협력하여

공동의 안보를 지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다른 얼굴이 있었다.

한쪽의 세계전략이

다른 쪽의 지역정책으로 내려오는 얼굴이었다.

백악관에서 시작한 동맹이

어느 순간 중동으로 가고,

중동에서 다시 유럽으로 가고,

유럽에서 인도태평양으로 돌아와

마침내

한국의 군사정책과 경제정책과

외교정책까지 연결되었다.

서울은 두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느 것이 진짜 동맹인가.

둘 다 동맹인가.

아니면

하나는 동맹이고

다른 하나는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청구서인가.

어느 날

한미연합훈련 이야기가 나왔다.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이란 관련 태도를 문제 삼으면서

연합훈련 축소를 언급했다.

그 말은

한국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물었다.

“이란과 한미연합훈련이

무슨 관계인가.”

어떤 사람은 말했다.

“미국의 동맹정책이다.”

다른 사람은 말했다.

“동맹에는 대가가 따른다.”

또 다른 사람은 말했다.

“미국이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조용히 말했다.

“그렇다면

동맹이란 서로의 국익을 존중하는 관계인가,

아니면 상대방의 행동을 평가하여

혜택을 조절하는 관계인가.”

그 질문은

아무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서울의 어느 관청 회의실에는

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한쪽에는

외교관이 앉아 있었고,

다른 쪽에는

군인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경제관료가 앉아 있었다.

탁자 가운데에는

태극기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미국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

“국익도 생각해야 한다.”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국내 여론도 중요하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이 말했다.

“헌법적 절차도 필요하다.”

모두 옳은 말이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 사람은 워싱턴을 보았고,

한 사람은 국민을 보았고,

한 사람은 법률을 보았고,

한 사람은 전쟁을 보았다.

그때 회의실 벽에 걸린 태극기가

바람도 없는데

조금 흔들렸다.

누군가 창문을 확인했다.

창문은 닫혀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태극기를 흔든 것인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여의도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모였다.

어떤 의원은

미국과의 동맹을 지켜야 한다고 외쳤고,

어떤 의원은

한국의 주권을 지켜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한쪽은 말했다.

“동맹이 무너지면

안보가 무너진다.”

다른 쪽은 말했다.

“주권이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진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침묵했다.

어쩌면

두 사람 모두 틀리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동맹과 주권을

서로 적대적인 단어로 만들어버린

정치의 구조에 있었다.

동맹은 주권을 지키기 위해 존재해야 하고,

주권은 동맹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존재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만들어졌다.

그 순간

동맹은 신앙이 되었고,

주권은 반역처럼 오해받았다.

미국에는

수많은 전문가가 있었다.

외교 전문가,

국방 전문가,

중국 전문가,

북한 전문가,

한국 전문가,

동맹 전문가,

핵무기 전문가,

인도태평양 전문가.

그들은 보고서를 썼다.

보고서는

정교했고,

자료가 풍부했으며,

문장은 전문적이었다.

서울의 관료들은

그 보고서를 읽었다.

언론은

그 보고서를 인용했다.

정치인은

그 보고서를 근거로 말했다.

국민은

신문을 통해 그 보고서를 알았다.

그러자 어느 순간

미국의 전문가가

한국의 정책논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전문가가

한국의 선거에 직접 개입한 것도 아니고,

한국 정부에 명령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한국 사회의 정책 선택지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만들었다.

“이 선택은

워싱턴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압력은

언제나 손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

더 강한 압력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말한다.

“기억하겠다.”

한국의 정치권이 긴장한다.

미국 국방부가 말한다.

“동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의 관료가 계산한다.

미국 언론이 분석한다.

한국의 언론이 다시 보도한다.

미국 전문가가 경고한다.

한국의 정치인이 다시 인용한다.

그리고 아무도

한국 정부에 직접 명령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국정부의 책상 위에는

하나의 질문이 놓인다.

“미국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 질문이

정책의 출발점이 되는 순간,

외부의 압력은

내부의 판단으로 바뀐다.

바로 그때

보이지 않는 힘이

가장 강해진다.

서울에서도

목소리가 있었다.

“미국이 요구했다고 해서

모두 들어줄 필요는 없다.”

“동맹과 파병은

별개의 문제이다.”

“한국군의 해외파병에는

헌법적 절차가 필요하다.”

“국익을 먼저 따져야 한다.”

“동맹은 상호적인 관계여야 한다.”

이 목소리 역시

언론을 통해 퍼졌다.

미국의 요구를 비판하는 기사도 나왔고,

미국의 정책을 분석하는 학자도 있었고,

동맹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시민도 있었다.

서울의 밤이 깊어졌다.

뉴스에서는

또 새로운 속보가 나왔다.

“워싱턴에서

한국의 역할 확대를 요구했다.”

다음 뉴스가 이어졌다.

“미국 언론은

한국의 선택을 주목하고 있다.”

또 다른 뉴스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한미동맹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그리고 마지막 뉴스가 나왔다.

“한국 정부는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텔레비전이 꺼졌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새벽이 되자

다시 봉투 하나가 도착했다.

서울은 봉투를 열었다.

이번에는

아무런 항목도 없었다.

방위비도 없고,

파병도 없고,

투자도 없고,

무기도 없고,

훈련도 없었다.

종이 한가운데

딱 한 문장만 적혀 있었다.

“동맹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서울은

오랫동안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답을 적었다.

“동맹은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잠시 생각한 뒤

한 문장을 더 적었다.

“동맹은 복종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다음날

서울의 누군가 동맹의 가격표를 만들었다.

안보는 얼마인가.

평화는 얼마인가.

주한미군은 얼마인가.

방위비는 얼마인가.

미국 시장은 얼마인가.

대미투자는 얼마인가.

반도체 협력은 얼마인가.

군사정보는 얼마인가.

그리고

한국의 정책 자율성은 얼마인가.

사람들은 가격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지막 항목에는 숫자가 없었다.

누군가 물었다.

“왜 가격이 없습니까?”

가격표를 만든 사람은 말했다.

“주권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말에

누군가 물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매번

주권의 일부를

다른 항목과 함께 계산하고 있는가.

태평양은 여전히 넓다.

워싱턴과 서울 사이에는

또 다른 바다가 있다.

그 바다 위로

대통령의 말이 날아오고,

관료의 발언이 날아오고,

신문의 기사가 날아오고,

전문가의 보고서가 날아오고,

정치인의 해석이 날아온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그 모든 말을 받아

다시 국민에게 돌려보낸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요구가

하나의 여론이 되고,

하나의 여론이

하나의 압력이 되고,

하나의 압력이

하나의 정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목소리가 너무 많을 때

누구의 목소리가

정책을 움직이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대통령의 목소리인가.

관료의 목소리인가.

언론의 목소리인가.

전문가의 목소리인가.

기업의 목소리인가.

동맹의 목소리인가.

아니면

국민의 목소리인가.

호르무즈의 바다는

오늘도 출렁인다.

우크라이나의 전선에도

밤이 찾아온다.

워싱턴의 회의실에서는

내일의 전략이 만들어진다.

서울의 회의실에서는

그 전략에 대한 답을 준비한다.

그리고 광화문에는

사람들이 오고간다.

그들은

외교전략이라는 말을 잘 모를 수도 있고,

동맹의 구조를

복잡하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가 실패해서 전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그들의 삶이 바뀐다.

평화가 깨지고

살육전 속에 생명이 꺼지면서

지형이 바뀌고

어떤 가족에게는

돌아오지 않는 아들의 이름이

가슴에 새겨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전쟁을 결정하는 말은

가벼워서는 안 된다.

동맹을 말하는 사람도

가벼워서는 안 된다.

국익을 말하는 사람도

가벼워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제 모두 질문해야 한다.

미국이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한국이 무엇을 원하는가.

미국이 한국을

어떻게 평가하는가가 아니라,

한국 국민이

자신의 국가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질문을 닫지 말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질문할 수 있는 동맹이

진짜 동맹이고,

반대할 수 있는 동맹이

건강한 동맹이며,

협상할 수 있는 동맹이

지속 가능한 동맹이고,

서로의 주권을 인정하는 동맹이

비로소 동맹이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주권국가의 최종적인 대답은

그 나라 국민의 목소리여야 한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북마크
278 2026.09.26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23-한국 자주 쟁취와 사회과학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한국은 혼자다.

경제 중심부이고 문화 강국이면서

군사 종속국이자

분단국가이면서

미완의 민주주의 속에서

시민혁명이 4.19 이래 네 번이 났지만

여전히 정치 개혁,

군사자주가 이뤄지지 않는 나라

세계사 최초로

지구상에 유일해서

비교 불가능한 나라

그것이 한국이다.

혁명이 미완인 나라

광장이 여러 번 뜨거웠다.

네 번이나.

그러나 매번 같은 일이 벌어졌다.

혁명 주체들이 광장을 떠났고

기존 정치인들이 권력을 가져갔다.

기존 헌법 안에서.

기존 법제 안에서.

기존 구조 안에서

구태가 반복되었다.

왜 혁명 주체들이 사라지면서

분단과 반민주에

기생하는

기득권세력에 의한

부조리, 비합리가 청산되지 않는가.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광장의 시민이 권력이 되는 제도가.

한 번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은 구체제를 파괴하고

새 제도를 만들었다.

이 나라의 혁명은

구체제의 인물들이

여야 간판을 바꿔가며 집권하고

구체제의 제도 안으로 돌아갔다.

그 차이가

네 번 혁명과

네 번 미완을 만들었다.

국보법과

한미동맹이 천장이었다.

재벌 구조가 천장이었다.

승자독식 대통령제,

여의도의 천박한

내로남불,

공천권이 흥정되는

정치문화를

숭배하는 국회가 천장이었다.

그 천장은 2026년에도 여전해서

빛의 혁명도

미완으로 가는 듯 해

또 다른 혁명이

예비 되고 있는 나라.

국가 발전에 대한 기존의

사회과학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나라

미래를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이론이 필요한 나라

내부의 모순이 극명해서

헬 조선이라 불리던 나라

지구에

이런 나라가 있었던가.

경제력 세계 10위.

군사력 세계 5위.

K컬처가 지구촌을 정복하고

반도체가 세계의 5차 산업을 견인하지만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출산율이

지구촌에서 가장 낮은

극과 극의 모순이 중첩된 나라.

동시에

군사적 자주권이 없어

전시에 60만 군대를 대통령이 지휘하지 못하고

미군 기지가 점령군처럼

치외법권적 특권을 누리면서

환경오염조차 책임지지 않는 나라.

미국에 대한 미맹(미맹)이 심각해

도감청 당한 어느 대통령은

“문제없다.”라며

통 큰 소리를 했고

다른 대통령은

트럼프의 3천5백억 달러 대미 투자 강요에

금관까지 선물로 받치면서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노심초사하는 나라.

이 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이다.

지구상 어디에도 이런 나라가 없다.

비교 불가능하다.

전례가 없다.

그것이 이 나라의 비극이면서

이 나라의 가능성이다.

한국은 종속이론이나

발전국가론만으로는

그 역설적 현실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경제·문화적 중심부로 도약하면서도

안보적 자율성은 미비인

새로운 국가 유형에

걸맞은 복합적 발전 이론이 필요하다.

단일 대상·국가 중심의

기존 사회과학은 21세기 AI 시대에는

그 한계가 너무 분명해서

박물관에나 가야할 지경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형, 발전되는 과정이다.

AI가 인간 세상의

패턴과 상관관계를 설명하면서

예측한다면사회과학은 그것을 양분삼아

창조적으로 변형할 것이다.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는가.어떤 세계를 원하는가.누구를 위한 발전인가.

그 질문들은AI가 대신할 수 없다.인간이 해야 한다.

사회과학이 해야 한다.

BTS가 그래미에 "아니오"라고 말한 것처럼

한국 사회과학도서구 이론에 "우리는 다르다"고 말할 때가 됐다.

그것이 지적 자주의 실천이다.

2026년 여름

이 나라의 역동성은 멈추지 않는다.

세 가지 힘이 자라고 있다.

첫 번째 힘.

기술.

삼성이 엔비디아를 먹여 살린다.

SK하이닉스가 없으면 AI가 없다.

한국 반도체 없이

미국의 기술 패권이 흔들린다.

그 힘이 협상력이 된다.

"우리 없이는 당신도 없다."

그 말을 할 수 있는 힘.

두 번째 힘.

문화.

BTS가 그래미에 등을 돌렸다.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 선언이 씨앗이다.

문화 자주권에서 시작된 혁명의 씨앗은

경제 자주권을 거쳐

군사·외교 자주권으로 자라는 자양분과 성장촉진제가 된다.

세 번째 힘.

시민.

8년 사이 두 번의 탄핵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일.

그 시민들이 살아있다.

그 시민들이 다음을 준비한다.

이 세 가지 힘이 수렴할 때.

현실 모순의 임계점이 온다.

다섯 번째 혁명이 온다.

한국적 현실 모순을 대표하는

자살과 출산

두 개의 숫자가 있다.

자살률 세계 1위.

출산율 세계 최저.

이 두 숫자가 같은 말을 한다.

삶이 너무 가혹하다.

미래를 믿을 수 없다.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무겁다.

입시와 취업 지옥

집값 지옥과 노인 빈곤 지옥

사회 안전망 부재 등등등.

경제 선진국이 됐지만

삶의 질은 선진국과 거리가 멀다.

GDP가 올라갔다.

그러나 행복이 따라오지 않았다.

압축 성장이 공동체를 파괴했다.

전통적 유대가 사라졌다.

새로운 연대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개인이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

경쟁에서 지면 낙오자가 되고

낙오자를 구하는 손은 아직 없다.

출산율이 말한다.

이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신뢰가 없다.

자살률이 말한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

두 숫자가 고발한다.

화려한 외피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있는지를.

다섯 번째 혁명은

철저하게

달라져야 할 것이다.

희망사항지만

가정법으로 말해보자.

인물만 바꾸지 않는다.

구조를 바꾼다.

새 헌법을 만들고

악법 국보법을 폐지한다.

평화통일을 말하는 것이

이적행위가 아닌 나라를 만든다.

동맹을 정상화해서

권리라는 점령군 단어를 삭제하고

무기한이 아닌 10년으로.

사전협의 없음이 아닌

대등한 수시 협의로.

전작권은 당연히 환수한다.

지금 당장.

조건 없이 헌법 74조대로.

재벌 구조를 개혁한다.

경제 민주주의를 만든다.

그것이 다섯 번째 혁명이다.

광장에서 시작해.

제도로 완성되는.

인물과 함께 구조를 바꾸는

혁명이 절실하다.

출산율이 오르는 날.

혁명이 완성되는 날이다.

아이를 낳아도 괜찮겠다는 신뢰.

이 사회에서 살아갈 만하다는 믿음.

경쟁에서 지더라도 삶이 끝나지 않는다는 안도.

노인이 되어도 존엄을 잃지 않는다는 확신.

그 신뢰가 생길 때.

출산율이 오른다.

자살률이 내려간다.

그 신뢰는 어디서 오는가.

법과 구조에서 온다.

공동체에서 온다.

연대에서 온다.

경쟁만 있고 연대가 없는 사회.

승자만 있고 패자를 돌보지 않는 사회.

그 사회에서는 신뢰가 자라지 않는다.

다섯 번째 혁명이 그 구조를 바꿀 때.

출산율이 오른다.

자살률이 내려간다.

그것이 혁명의 완성이다.

미완의 완성은 찬란한 창조다.

이 나라가 비교 불가능한 것은

강점이다.

약점이 아니다.

전례가 없다는 것은.

전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서구 이론이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새 이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네 번 혁명이 미완이었다는 것은.

다섯 번째가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는 것은.

그 고통을 아는 사람들이

연대의 가치를

가장 절실하게 원한다는 것이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라는 것은.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가장 강력한 신호라는 것이다.

미완의 나라.

그러나 완성을 향해 가는 나라.

아리랑이 살아있는 한.

촛불이 꺼지지 않는 한.

헌법 74조가 기다리는 한.

두 번의 탄핵을 이뤄낸 시민이 살아있는 한.

민주화와 동맹 완성의 날이 온다.

그날.

자살률이 내려가고.

출산율이 오르고.

자주권이 돌아오고.

국보법이 역사박물관으로 가고.

동맹이 정상화되고.

분단이 끝나는 날.

그날이.

진짜 대한민국의 탄생일이다.

이 나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시민 동원의 불꽃이

또다시 기존 정치에 흡수될 것인가,

아니면 제도의 뼈대를 바꿀 것인가.

인구의 절벽 앞에서

성장의 공식을 다시 쓸 수 있을 것인가.

안보의 그늘 속에서

자율성의 공간을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인가.

압축된 기적이

압축된 파국으로 끝나지 않도록

삶의 질과 존엄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론이 현실을 설명하는 틀이라면,

이제 한국은

새로운 틀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발전국가의 유산을 넘어,

압축 근대화의 상처를 치유하며,

분단과 동맹의 상처를 씻어낼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미래는 가정법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준비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 나라는

기적과 모순을 딛고

불꽃의 미래를 만들어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지난 수십년간

달성된

성공의 높이만큼

고통의 깊이도 깊었다.

그러나 역사는 진행형이다.

시민의 함성이 반복해 일어났듯이,

그 함성이 제도를 바꾸는 날,

자살의 그림자가 걷히고

아이들이 다시 태어나는 날,

안보의 사슬이 자주로 바뀌는 날

그때 비로소

이 압축된 기적의 땅은

진정한 자주와 존엄의 나라로

세계 앞에 우뚝 서리라.

이쯤해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과거를 돌아보자.

온고이지신이

필요하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뜻은

과거를 단순히 버리거나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성과와 한계를 깊이 성찰해

미래를 설계할

새 틀을 도출하자는 것이다.

경제는 선진국의 대열에 들었으나

안보의 핵심 결정은

동맹의 비대칭 속에서 흔들리고

국보법은 여전히

사상의 경계를 긋고

기본권을 진흙탕 속에 처박고 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기술과 문화 뒤편에

젊은이들은 삶을 포기하고,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는

조용한 재앙이 진행 중이었다.

강한 국가와 활발한 시민사회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이 땅.

승자독식의 정치,

강자에 약한 정당,

높은 도덕적 기대와 현실의 괴리가

대통령들을 차례로 집어삼켰다.

혁명은 반복되었으나

혁명 이후의 공백 또한 반복되었다.

광복이후 네 번의 혁명은

네 번의 미완으로 이어졌다.

1960년 4월.

학생들이 일어났다.

이승만이 떠났다.

광장이 뜨거웠다.

새 나라가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5.16이 왔다.

군화 소리가 광장을 밟았다.

4월 혁명 주체들이 사라졌다.

기존 법제로 돌아갔다.

1987년 6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최루탄 속에서 넥타이를 한 직장인들이 나왔다.

전두환이 물러났다.

직선제가 왔다.

새 나라가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노태우가 당선됐다.

군부의 후예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권력을 잡았다.

6월 항쟁의 혁명 주체들이 사라졌다.

기존 법제로 돌아갔다.

2016년 겨울

촛불이 타올랐다.

1700만 명이 광장에 나왔다.

박근혜가 탄핵됐다.

새 나라가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개혁이 미완으로 끝났다.

국보법이 살아있었고

한미동맹이 건재했다.

혁명 주체들이 사라졌다.

기존 법제로 돌아갔다.

2024년 겨울.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한 후

시민들이 국회로 달려갔다.

계엄이 해제됐다.

탄핵이 이뤄졌다.

새 나라가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뒤

구조가 그대로다.

국보법이 살아있고

SOFA가 건재하다.

전작권이 미군에 있다.

혁명 주체들이 또 사라졌다.

기존 법제로 돌아갔다.

네 번의 혁명.

네 번의 미완.

왜인가.

민주화 세력은 권력이 없었다.

한 번도 없었다.

1948년

미군정의 틀 속에서 만들어진

헌법체제 때문인가.

어쨌든 그 틀이 70년 동안

혁명의 천장이 됐다.

광장의 에너지가 아무리 뜨거워도

그 천장을 뚫지 못했다.

천장 아래에서 구체제의

기득권층 속 인물만 바뀌었다.

구조는 그대로였다.

이 나라 대통령들의 비극 또한

세계사적이다.

12명.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12명.

이승만.

하야 후 망명.

하와이에서 죽었다.

박정희.

재임 중 총에 맞았다.

측근의 총에.

최규하.

쿠데타에 밀려났다.

전두환.

사형 선고를 받았다.

사면됐다.

불법 비자금으로 다시 구속됐다.

노태우.

구속됐다.

김영삼.

아들이 구속됐다.

김대중.

아들들이 구속됐다.

노무현.

검찰 수사를 받다

봉하마을 뒷산에서 몸을 던졌다.

이명박.

구속됐다.

박근혜.

탄핵된 뒤 구속됐다.

문재인.

퇴임 후 무능,

무기력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책방지기가 되어 지낸다.

윤석열.

재임 중 탄핵됐다.

구속됐다.

왜 대통령들은 저 모양인가.

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면 구조의 문제인가.

왜 한국의 혁명은 매번 미완으로 끝나는가.

'혁명 없는 혁명'의 반복은 패턴이 있다.

혁명의 에너지는 광장에서 나오지만

혁명 후 권력은 제도권에 속하는

기존 정치인이 가져간다.

혁명 주체가 권력을 잡지 않는다.

아니, 잡을 수 없는 구조다.

왜인가.

첫째, 광장의 권력이 제도권 권력이 되는

법과 제도가 없다.

1948년

헌법이 미군정의 틀 속에서 만들어진 뒤

합법적 개헌은 있었지만

혁명적 개헌은 없었다.

혁명 이후에도

기존 헌법 틀 안에서 선거를 치렀다.

둘째, 국보법과 한미동맹이

혁명의 천장이다.

혁명이 일어나도 국보법이나

한미동맹을 건드리지 못한다.

그 천장 아래에서 혁명이 일어나니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셋째, 재벌 구조가 건재하다.

경제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정치 구조가 바뀌어도 실질 권력은 그대로다.

한국의 모든 혁명은 재벌 구조를 건드리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과의 차이는?

프랑스 혁명은

구체제의 법과 제도를 파괴하고

새 제도를 만들었다.

한국의 혁명은 구체제의 법과 제도 안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인물간의 교체였다.

혁명의 형식은 있었지만 혁명의 내용은 없었다.

이런 구조의 문제 속에서

비정상이 집적된 지배구조가

대통령들을 집어삼켰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13번째 대통령도

같은 길을 걸을까,

아니면 꽃길을 걸을까.

다음

한국을 분석하고 설명하고 예측했던

사회과학이론들의 궤적을 살펴보자.

종속이론은 말했다.

주변부는 영원히 주변부로 남을 것이라고.

그러나 한국은 그 예언을 깨뜨렸다.

발전국가의 힘으로,

압축적 근대화의 속도로

반주변부를 넘어 중심의 문턱에 섰다.

긴 냉전시대

양분된

이념세계의 힘겨루기 속에서

한국은

종속이론의 적용대상으로

인식됐다.

1991년.소련이 무너진 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선언했다.

“역사의 종언.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최종 승리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순탄치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등으로자본주의 내부 모순이 폭발해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부가 동요하고

2020년대.중국이 G2가 됐다.

국가 주도 자본주의가자유시장을 넘보면서

후쿠야마의 선언이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아직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위기 속에서도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트럼프가 나타나

냉전시대 이래의

진영논리를 국가이기주의로 대체하고

우크라. 이란 전쟁에서

핵을 가진 슈퍼파워와

그렇지 않은 국가간의

21세기 형

전쟁 양상이 전개되고

지구촌은 새로운 각자 도생의

각축장으로 갈 채비를 갖추고 있다.

사회과학은 이제

국가만을 유일한 단위로 삼을 수 없고,

세계를 단일한 대상으로만 다룰 수도 없다.

AI가 활성화되어도

이론은 여전히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다층적 현실을 어떻게 품을지가

새로운 과제로 남았다.

한국은

2차 대전 이후 등장한 국가들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성공과

가장 극단적인 긴장을

동시에 끌어안은 존재다.

그 어떤 나라도 완전히 같지 않은

독자적인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경제적 종속에서는 벗어났지만

군사·안보적 종속은 심화됐다.

전시작전권이 없다.

SOFA가 불평등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가 미국에게 권리를 준다.

경제는 중심부가 됐지만

군사·안보는 여전히 주변부 구조다.

이 2중 구조가 한국의 핵심 모순이다.

종속이론은

한국의 경제적 성취를 설명하지 못하나

군사·안보적 종속을 설명하는 데는 여전히 유효하다.

발전국가론은

한국의 과거를 설명하지만

미래를 안내하지 못한다.

전략적 자율성론이 가장 유망하지만

분단이라는 한국의 특수성을 담지 못한다.

한국은 기존 어떤 이론으로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고유한 특성을 가진다.

분단국가라는 구조적 제약이 있다.

인도·브라질·터키의 전략적 자율성 이론은

분단이라는 변수를 포함하지 않는다.

한국은 최고 권력을 끌어내린

탄핵 두 번의 시민사회 역량이 있다.

이것은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의 민주화 경험과 다르다.

한국처럼

문화 권력과 경제 권력이 동시에 성장한 경우가 없다.

K컬처의 세계적 영향력은 전례가 없다.

따라서 한국에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

한국의 현 상황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경로를 제시할 이론은

다음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

경제 중심부화 + 군사 주변부 탈피의

비동시성을 설명해야 한다.

분단이라는 구조적 제약 속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어떻게 확보하는지 제시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헤게모니 도전 역량을

핵심 변수로 포함해야 한다.

문화 권력이 경제·군사 권력으로 전환되는

경로를 설명해야 한다.

가장 정확한 답은 이것이다.

한국은 기존 이론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야 하는

선례 없는 사례다.

BTS가 그래미를 거부한 것처럼

한국 학계도 서구 이론의 틀을 거부하고

한국의 경험에서 새 이론을 만들 때가 됐다.

그것 자체가 지적 자주권의 실천이다.

이 나라에는

흥미로운 가능성 앞에 있다.

새 이론은 새 현실에서 나온다.

한국은 지금 전례 없는 현실을 살고 있다.

경제 중심부에 가까우면서 군사 주변부.

민주주의이면서 분단 상태이고

K컬처 강국이면서 불평등 SOFA에 짖눌리고

AI 반도체 강국이면서 전작권 없음

등등등.

이 모순들이 기존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설명 불가능성이 새 이론의 출발점이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기존 서구 문학 문법이 아닌 한국의 경험에서 나온 언어로.

사회과학도 그럴 수 있다.

기존 서구 이론의 번역이 아닌

한국의 경험에서 나오는 새 이론.

분단을 살아온 경험.

두 번 탄핵한 시민사회의 경험.

경제 주변부에서 중심부 쪽으로 이동한 경험.

문화 권력으로 세계를 감동시킨 경험.

이 경험들이 21세기 사회과학의 새 이론을 만들 재료다.

BTS가 문화적

자주의 거보를 내디딘 뒤에도

여의도를 무대로 한 정치구태가

반복되는 것은

새로운 변화로 가는

필연적 과정이며

희망의 불꽃이 커지는

불쏘시개가 된다는 것을

머잖아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북마크
335 2026.09.16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22- 한국, 쿠바가 미국과 맺은 불평등 조약의 교훈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강대국과 약소국의 조약·협정은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비대칭적이고 지배적인 특성을 지니기도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관타나모 조약은

무기한 주둔과 군사주권 제약,

미국의 전략적 이익 우선이라는 점에서

신식민주의적 종속 관계라는 비판을 받는다.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은 핵심 동기는

단순한 한국 방어가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

미일안보조약 등으로 완성된

'샌프란시스코 체제'라는

대아시아 반공 봉쇄선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한국을 최전선,

일본을 동북아 기지로 만들기 위해

두 조약을 체결한 것이며,

이 과정에서 미국 우위의 비대칭적 구조가 형성되었다.

관타나모 조약은

1903년 미국과 쿠바가 맺은 협정으로,

미국이 관타나모만을 해군 기지로 영구 임대하고

매년 금화 2,000개를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쿠바는 독립 과정에서

미국의 압력으로 맺어진 불평등 조약이라며

반환을 요구하고 임대료 수령도 거부해 왔으나

미국은

관타나모 임대조약은

양국 합의 또는 미국의 포기 없이

종료 불가하다면서 버티고 있다.

이는  강대국의 군사적 통제와

약소국의 주권 제약을 보여주는 것으로

피조약국이 독자적으로

외국군의 철수를 강제하기 어려운 사례의 하나다.

관타나모와 한미상호방위조약,

두 경우 모두

미국이

동맹 또는 보호의 명분 아래

타국 영토에 군사력 배치 권한을

제도화했다.

관타나모는 공공연한 간섭과

주권 침해를 제도화한 강압조약이다.

한미조약은 형식상 동등하나

실질적으로 비대칭적 권력 관계를

담은 냉전기 미국식 패권의

다른 버전이다.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관타나모 문제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관타나모는 쿠바 남동부 푸른 해안으로

마이애미에서 남동으로 칠백 리 떨어진 곳에 있는

120 여 년 동안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카리브해와 중남미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핵심 기지다.

동시에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잔재이자,

쿠바에 대한 미국의

오랜 적대 정책의 상징이다.

미국의 강압으로 맺은 영구임대 조약으로

미국 영토가 된 그곳의

역사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

쿠바는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 후

독립했으나

미국의 강한 영향력 아래 놓였고

1901년 미국 의회는

플랫 수정조항(Platt Amendment)을 통과시켜

쿠바 헌법에

미국의 내정간섭을 보장하는

조항을 강제 삽입토록 했다.

"미국은

쿠바의 독립을 보존하고

생명, 재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할 권리 가진다."

미국은 쿠바의 독립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이 쿠바 내정에 개입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제화했다.

이 조항은 쿠바가 1901년

헌법에 그대로 포함시킨 후

1902년 미국이 쿠바에서 철수하면서 발효되었다.

쿠바는 주권을 크게 침해당하는 것으로 여겨

그 조항을 1934년에 폐지했다.

그러나

플랫 수정조항의 압박 속에

1903년 체결된 쿠바-미국 관계 조약은

부속 협정으로 관타나모만 지역을

미국이 해군 기지로 조차하게 만들었다.

"석탄 보급소 및 해군 기지 건설에

필요한 토지를 미국에 매각 또는 임대하라"

그 결과

쿠바에 스페인의 식민지배 대신

미국이라는 새로운 지배자가 군림했다.

독립이라 불렀으나 독립이 아니었고

해방이라 불렀으나 해방이 아니었다.

승리의 노래 속에 등장한

플랫이라는 이름의 조항 하나가

쿠바의 헌법 속으로 스며들어

주권을 옭아매었다.

그것은 총도, 대포도 아니지만

어떤 무기보다 오래가는

생명력과 파괴력을 지녔다.

미 의회의

회의실에서, 총 한 자루 겨누지 않고

법이라는

이름으로 새겨진 문장으로

미국은 인근 작은 나라의 운명을

송두리 채 뒤집어 놓았다.

이것은

20세기의 또 다른 침략 형태였다.

1903년 쿠바-미국 관계 조약의 이름으로

쿠바의 117 km의 땅이

미국 손으로 넘어 갔디.

여의도의 마흔 배, 그 넓은 만이

남의 나라 군대의 뜰이 되었다.

미국이 쿠바 초대 대통령과 체결한

영구 임대 협정은 “양국이 협정 내용의

변경·폐기에 합의할 때까지 유효하다”는

조항 때문에 사실상 영구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양국이 합의해야 폐기 가능하기 때문이다.

쿠바 정부는

1959년 혁명 이후

임대료 수령을 거부하고 기지 반환을 요구해 왔으나,

미국 정부는 협정의 효력을 주장하며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카스트로 혁명이 성공해

아바나의 거리마다 붉은 깃발이 나부꼈으나

관타나모의 철조망만은

혁명도 뚫지 못한 유일한 땅으로

바다 한 귀퉁이에 남았다.

영구적인 성격의 협정 내용 때문이었다.

미국은

쿠바 혁명을 우려해 1961년 4월

미국 CIA가 훈련시키고 무장시킨

쿠바 망명자 약 1,500명을 쿠바 남서쪽 해안의

피그스만을 침공케 했으나 실패했고

그 다음해 10월 소련이 쿠바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은밀히 배치하기 시작한 사실이

미국 정찰기에게 발각되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가 터져

미-소 양국은

전면적인 핵전쟁의 위기까지 치달았으나,

극적인 외교적 협상 끝에

소련이 미사일을 철수하고

미국이 쿠바 재침공을 하지 않기로 약속하면서 위기는 수습되었다.

미국의

직접적인 침공 위협을 실감한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이 생존을 위해

소련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결정해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는

냉전 시대의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그 후 지난 반세기 동안

쿠바는 자신의 땅이라고 외쳤으나

미국의 대답은 침묵, 또 침묵이었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2002년,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름 아래

관타나모 미군기지 안에 테러용의자 수용소를 세워

재판 없이 무기한 억류,

고문과 비인도적 처우 등등

국제법과 인권 기준을

정면으로 위배한 그곳은

법의 사각지대가 되었다.

그 해괴한 수용시설은

미국 본토 밖에 있다는 논리로

미국의 헌법과 법률 적용을 피하려 한

미국식 합리주의의 치밀한 결과물이었고

오바마 대통령이 폐쇄를 공약했으나

의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서 더 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는 그 수용소에 불법이민자를 가두겠다고 외치면서

삼만 명 수용시설을 만들겠다고 떠벌린 뒤

이백여 명이 벌써 그곳으로 끌려 들어갔다.

2026년 여름

트럼프의 쿠바 봉쇄 명령에 따라

쿠바로 향하던 석유는 길을 잃고

공장과 교통수단이 침묵했으며, 도시는 어둠 속에서

촛불을 밝혀야 했다.

봉쇄는 포성이 아니었지만,

섬을 흔드는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관타나모의 미군기지 철조망 안에서는

군함이 정박하고,

전투기는 출격을 준비했다.

미국은 이를 국가안보, 합법적 억지력이라 했고

쿠바는

집단 처벌, 주권과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탄했다.

미 국방의

수장 피트 헤그세스가 그곳을 방문해 호령했다.

"쿠바가 미 본토를 겨눌 무기를 단 하나라도 탐한다면

감당치 못할 파멸의 대결이 시작되리라.

미군은 대통령이 바라는 모든 카드를 쥐고 있다."

그러나

그 서슬 퍼런 겁박의 이면에서

미 CIA 국장의 아바나 극비방문이 이뤄져

공식의 언어가 끊긴 두 나라의 단절 속에서도

압박의 총구와 외교의 악수가 동시에 교차했다.

관타나모는

법이 아니라 힘이 다스리는 땅이고

자유의 나라라 자칭하던 이들의

가장 어둡고 괴기스런 조차지가 되었다.

그리하여 관타나모는 단순한 해군기지만이 아니고

재판 없는 억류와 장기 구금으로

국제법과 인권의 공든 탑이

파괴되는 상징으로 빛나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

전쟁의 아픔위에 세워진 한미동맹은

평화협정의 가능성을 짓뭉개고

분단을 굳힌 군사질서가 되었다.

한미동맹은 북한 방어라는

명목 아래 유지되어 왔으나

그 이면엔 군사 주권의 예속이라는 치부가 있다.

주한미군 기지는

치외법적 특권을 누리며

사실상 미국 영토처럼 운영되고,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비밀작전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규정된

미군의 한국 배치 권리(right)를

한국 'grant'와 미국'accept'하는 조합은

조건 없이 주고받는

비대칭적, 불평등 구조를

명문화한 것이다.

주한미군은 북한 방어보다

냉전 이후 핵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 러시아 견제의

최전방 기지 역할 해왔다.

한반도 분단이 지속되어야

주한미군 주둔의 명분이 유지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미국은

북한 핵보유를 전제로 한 분단 지속을 꾀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동의해 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아래

주한미군은 제3국 작전에도 공공연하게 투입되면서

한국이 강대국간 전쟁에 휩쓸리게 될

위험이 커졌지만

한국 정부는 국민에게 그 사실을 감추는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사와

한미연합사령부 사령관 모자 3개를 쓰고

미 대통령의 통수권 지휘를 받으면서

분단 유지라는 미 국익 증진에 기여하는데

한국 정부는

미국 51번째 주정부처럼

미국 눈치만 살피고 비위맞추는 짓만 골라하면서

경제와 국방 선진국에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K-컬처로

우뚝 선 나라에 전혀 걸맞지 않은

외교국방정책으로 지구촌이 손가락질하는

국가망신을 재생산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관타나모와 한미동맹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관타나모는

강요된 조차의 얼굴이고,

한미동맹은

합의의 언어를 입은 비대칭의 얼굴이다.

하나는 노골적이고, 하나는 눈감고 아옹 하는 식이다.

하나는 대놓고 묶고, 하나는 약속으로 묶는다.

미국은 관타나모에서

자신이 가진 힘을 숨기지 않고

필요하면 땅을 빌리고, 필요하면 법을 피해 가고,

필요하면 사람을 불법적으로 가둔다.

관타나모는

미국이 한 번 얻은

군사적 기득권을 얼마나

집요하게 챙기는지 보여주고 있다.

쿠바는 오랫동안 반환을 요구했지만,

힘의 비대칭은 아직도 그 요구가 바다 속을 헤매게 만들고 있다.

한반도는 어떤 형국인가?

한국의 헌법적 주권은 형식상 존재하지만,

군사주권의 핵심은 외국군 미군에 있다.

군사작전과 무장, 정찰 감시와 억지력 등등

전쟁의 필수 요인들이 한미동맹의 구조에 갇혀

미국은 슈퍼 갑, 한국은 을의 신세로 구조화, 의식화되어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이 한국 안보의 보루라면서

한국의 외교적 선택지는 물론 대북정책의 입지를 좁히고,

동북아 전략경쟁의 한가운데로

한국을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구조 속에

미국 대통령은 헌법 제2조 제2절의

군 통수권자 조항을 근거로 의회의 사전 동의 없이도

대북 선제타격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 또는 검토해왔다.

국제법상 자위권은 '임박한 공격'일 때만

허용되나 그 판단은 대통령 재량에 좌우되면서

한반도가 미 국익을 위해

전쟁의 불구덩이 속으로 내던져질 위험이 상존하는데

한국 정부는 국민을 보호할

헌법적 책무를 이행치 않고 있다.

대통령, 국회의원은 국민의 정치 머슴 아닌가?

정치 주인 국민이

언제 어떻게 죽을 지도 모르는

군사시스템에 갇혀 지내는데 정치머슴이

한미동맹을

준수한다며 비밀유지가 적법이라면서 침묵한다?

세상은 두 개의 논리가 충돌하는 경우가 흔하고

국제법, 국내법도 그러기 십상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국제법이 국내법에 우선한다며

한미동맹의

국치적 조항이나 예속적 정치행위에

면죄부를 주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하나의 질문이 있다.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면

정치인이나 그 가족은 안 죽나?”

그걸 생각하면 유럽연합, 필리핀의

대미군사관계

의미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많은 잘 나가는 정관재계 국내 인사들은

2중국적으로

유사시 미국행 피난 비행기에

탑승할 자격을 확보해 놓고 있기도 한다.

제 국민의 목숨이 걸린 동맹을 외면하면서

여의도 권력투쟁에 올인하는

이런 정상배들이 지구상에 또 있는가?

지구촌을 향해 창피해 고개를 들 수 없는,

피를 토할 만큼 어처구니없는 행태다.

이른바 강남좌파기 앞세운 ‘진보’의

허구와 기만이 얼마나 천박한가 하는 것은

노무현, 문재인 정부 때 들어났다.

노무현 정부는

주한미군이 중국은 물론

인도태평양까지 작전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을 한미외무장관 회담에서

합의해주면서 강대국간 전쟁에

한국 국민이 휩쓸릴 가능성을 상당 정도 공식화했다.

문재인은 어떤가?

그는 2018년 남북 국가연합이

가능할 정도의 합의를 남북정상회담에서 한 뒤에

트럼프의 압박으로 이행치 못하면서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 전략에 대해 침묵한 것은

북한의

두 국가론 출생에 기여한 것 아닌가?

미국의 일방주의와 한국 정부의 침묵은

한미동맹이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미국에 맹종하는 한국 정부의 해묵은 관행 속에서

한국의 법치는 실종되어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도

트럼프의 관세 폭탄 위협,

천문학적 액수의 대미투자 강요 등에

그저 ‘예, 예, 알겠습니다.”고 하면서

신라 금관 선물을 들고 허리를 굽신거리고

미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나서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트럼프가

국제 통상 정책, 이란 전쟁 등에서 보여주는

반미치광이 같은 국제깡패 망나니짓을

국제사회에서 '날강도' 같은 방식이라며

혀를 내두르며 비판하는데

한국만이 힘에는 선악 불문 절대 복종한다는

굴종적 태도를 고집하고 있다.

강자에게

밉보이면 손해 보거나 다칠 뿐이니

일단 비위를 맞추는 것이 상책이라는

천박하고 야만적인 힘의 논리가

국내 정치에서 행해진다고 상상하면?

하지만 더 자세히 살피면

한국 정치만 그렇게 병든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야 한다.

한국의 언론, 학계 등도 미국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 바

눈치만 살피며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미동맹은 영원해야 한다고 합창한다.

이런 식이니

미국 정부는 얼마나 happy할까?

한미동맹은 미국이 원하는 만큼 계속 진화하면서

미 국익에 기여할 것이라는 확신을

삼척동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분명히 확인할 일이 있다.

한국 사회 일부에서

주한미군이나 미국 정부를 향해

한미동맹의 정상화,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으나

1970-80년대의 틀에 갇혀 있어

목적 달성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 정치, 언론, 학계 등 기득권 세력이

정신 차리게 하지 않는 한 한미종속 관계는 시정, 청산되지 않는다.

한미종속관계의 정상화는

미국에게만 외칠 일이 아니고

미국의 슈퍼 갑질의 한 파트너가 되고 있는

한국 정치권 등 지배세력을 각성시키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검은 머리 미국인들이

정부 기구 등에 엎드려

한미예속구조의 가동, 유지, 진화에

발맞추고 알아서 기는 일이 중단되고

그들이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세금을 내는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게

의식화시키는 일이 너무 중요하다.

관타나모를 통해 교훈을 얻어

승리할 수 있는 논리가 무엇인지 찾아서 무장해야 한다.

미국은 쿠바의 관타나모 반환 요구에 대해

'영구 임대 조약' 논리 등 강자가 만든

규칙을 절대적 진실로 강요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는바

한국의 한미방위조약 개정 요구 역시

미국이

유사한 논리적·제도적 방어 장벽으로 저항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은 조약의 법적 유효성, 현 상태의 안보적 필연성,

그리고 역사적 선례를 내세워

한미동맹 정상화 요구에 저항하고 버티려 할 것이다.

미국에게

한미동맹은 미 본토 수호를 위한

한미일 집단안보체제의 주요 축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쿠바의 경우처럼

조약, 협정에 장치해놓은 방어기제를 활용해 버틸 것이다.

이는 전 세계 곳곳에서 미국이 누려온 전략적 패권과

기득권을 방어하려는 제국주의적 행동 패턴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한미동맹을 정상화시키려면

미국이 관타나모 지배를 주장하면서

내세운 방어논리를 살펴야 한다.

"유효한 조약이다."

"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다."

"현 체제를 변경할 계획이 없다."

이는

한미동맹 정상화 요구에 대해서도

미국이

주장할 논리로 등장할 것이다.

"조약은 유효하다."

"역내 안보에 필수적이다."

"근본 개정은 어렵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해서는 오히려

체결 당시에도 적법했고,

현재도 적법하며,

지금도 양국의 합의 아래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이 "정상화"를 주장한다면

다음과 같은 논리를 펼칠 수 있다.

“조약은 시대 변화에 맞게 개정될 수 있다.”

“냉전기 안보환경과 현재는 크게 다르다.”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권리와 의무의 균형을

재검토해야 한다.”

“한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크게 성장한 만큼

조약 운영도 이에 맞게 조정되어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SOFA 개선, 주권 존중을 통해

동맹을 보다 대등하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미국이

주장하는 프레임에 갇힐 경우

난관 극복이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외통수를 찾아야 한다.

바둑, 장기, 체스에서 상대가 피할 수 없는

결정적인 수를 두듯

한판 승부로 판을 엎어야 한다

관타나모의 문은 잠긴 채 열리지 않아도

한미상호방위조약 제6조에는

스스로 열 수 있는 열쇠 하나가

조용히 놓여 있다.

"이 조약은 통고하면, 일 년 뒤에 폐기된다."

이 한 문장은

국제법의 언어로 쓰인

정당한 주권 회복의 열쇠다.

물론 그 열쇠를 사용하려 할 경우

역풍이 거세지면서

경제의 압박, 외교의 냉대,

동맹의 붕괴가 부를지 모를

고립의 그림자와 함께

찬반의 구호속에 등장할

남남 갈등의 혼란도 자심할 것이다.

하지만 열쇠를 손에 쥐고도

망설이기만 한다면

문은 스스로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는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일단 체결된 불평등 조약은

강대국의 기득권이 되어 바로잡히기 어렵다.

약소국이 바로잡으려 하면

강대국은 유무형의 압력,

심할 경우 군사력 동원으로 훼방하는 부조리가

오늘날까지 목격된다.

미국이나 러시아가 자국이익을 위해

타국을 침략하는 것이 21세기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눈을 멀리 뜨고 지구촌의 평등한 국가 간의

군사관계를 정상화 요구의 논리로 삼아야 한다.

두루 살피면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먼저 나토 회원국들의 경우, 미군기지 내 활동을

회원국의 통제 아래 두는데

이는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배치 시

주민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다.

필리핀은 미군의 장기주둔은 안 되고

방문군 자격으로만 단기간 필리핀 군 기지 내

체류가 허용되고

시설, 무기 반입 등은 엄격히 제한한다.

일본도 주일미군기지로의 무기반입 시 사전 협의를 의무화하고,

일부 무기는 반입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주한미군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1990년대 초까지

최대 천기에 달하는 전술핵무기가

남한에 배치되었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도 배치된 사실은

국제적 수치이자 자주의 훼손으로

오늘날 여러 각도에서 점검해야 할

한반도의 명운이 걸린 심각한 과제다.

관타나모가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한 번 굳어진 군사적 특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조약은 칼보다 느리지만,

한번 박힌 조약의 못은 쉽게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냉정해야 한다.

상대보다 더 주도면밀해야 한다.

주권을 회복하는 길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법과 절차를 따르되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긴 호흡이어야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그 긴 호흡 속에서 다시 검토될 수 있다.

이 조약에 종료의 길이 열려 있으니

SOFA와 군사 운영 방식도 리모델링이나 폐기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문제는 “바꿀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바꿀 것이냐”에 있다.

그 길은 험난할 것이며

미국의 반발, 국내 친미세력의 거센 저항,

동맹 재편의 충격파를 몰고 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주저할 일이 아니다.

주권 회복은 원래 손쉬운 일이 아니며,

한 나라가 자기 영토 위에서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일은

늘 대가를 요구해 왔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기 마련이다.

구하려면 구할 것이고 쟁취하려면 쟁취할 것이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촛불과 빛의 혁명을 일궈냈던 것처럼 하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지구촌 전체의 평화와 행복 지수를 높일 수 있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을 확신한다.

그러니 목표를 향해 힘껏 노력해야 한다.

한미동맹 정상화, 그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6조,

상대국에 조약 폐기를 통고하면

1년 뒤에 폐기된다는

그 조항은 가장 손쉽게,

미국의 공식적 반발 없이

군사적 주권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한국이 경제, 군사적 선진국이 되고

K-팝 등 한류가 지구촌을

즐겁게 하는 문화 대국이 된 지금,

그럴 책무가 있는 것이며

국민은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할 때다.

국회·정부·시민사회·언론이

협력하는 체계적 제도와 문화 구축,

국민이 외교·안보 정책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도 부당한 안보이익에 편승하는

비정상을 탈피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평화 안전

심화에 기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부당성을 시정하고

정상화시키는 것은

국제평화를 위한 대단히 필요한 조치,

그것이 장기적으로 미국의 이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관타나모의 아픈 역사를 보면서

한국에서 행해지는 비정상적 군사관계가

반복되지 않도록,

군사 주권 회복의 그날까지

우리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걸린다 해도

정의의 저울은 결국 평형을 찾으면서

역사의 심판대 앞에서

모든 불평등은 그 빛을 잃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

이것이 시대의 소명,

한반도 평화와 정의를 향한

우리의 외침이 될 것이다.

미래는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역사가 되고,

오늘의 대화가 다음 세대의 삶이 된다.

국회와 정부, 시민과 언론이

모두 자주를 실천하면서

주권자 국민이 외교 안보의 당당한 감시자가 될 때,

비로소 해방의 날에 다 이루지 못한

참된 독립이 완성될 것이다.

국민이 주권자로 깨어나는 곳에서

국회가, 시민이, 언론이 손을 잡는 곳에서

사슬은 비로소 풀릴 수 있다.

k-팝이 세계를 울리고

한류가 국경을 넘나드는 오늘,

이 땅은 더 이상

누군가의 그늘 아래 놓일 이름이 아니다

경제로 일어섰고,

문화로 세계를 안았으며

민주주의로 스스로를 증명한 이 땅이

군사의 영역에서만은 아직도

지난 세기의 문법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이 시대가 풀어야 할 매듭이다.

바다 건너 관타나모의 철조망도,

이 땅 위 옛 조약의 그늘도,

언젠가는 정의와 평등의 이름으로

다시 쓰여야 할 노래임을,

주권이란, 누군가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걸어 들어가 되찾는 것이다.

깨어 있는 영혼들이여,

이제 주권의 횃불을 높이 들고

당당한 역사 속으로 전진하라!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북마크
318 2026.09.08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21- 전작권만으로 한국 자주 확보 안돼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한국은

전쟁의 폐허 위에서

경제와 산업, 민주주의를 일구어

반도체와 자동차를 만들고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

세계의 청년들이

한국의 노래를 부르는 가슴 벅찬 오늘이다.

그러나

수십만 대군과 세계 6위권의 전력을 갖추고도

유사시

자국 군대의 지휘권을 미국군대가 휘두르는

기이한 나라.

DMZ의 출입, 한반도 평화 추구조차

미국군대의 승인을 구해야 하는 비정상 속에서

전작권

하나 되찾는다고

안보 주권이 완벽해지겠는가.

전작권만 돌려받고

나머지 미군 지배구조가 그대로 남는다면,

그것은

문 하나를 열어놓고

다른 문들은 잠가놓는 것과 같다.

한국이 전쟁 지휘권은 되찾아도

주한미군의 주둔과 기지 사용, 작전에 대한

점령군 뺨치는

특권구조가 그대로이고,

백악관의 지휘를 받는

유엔사가

대한민국의 의사와 관계없이

활개 친다면

국치스런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주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전작권 환수는

자주의 목표를 향해

가야할 필수 코스 5개의 하나일 뿐이다.

국가는 성장했는데

주권은

미국이 장악한 비정상은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해답을 찾아야 한다.

전작권만 돌려받으면

정말

주권이 완성되는 것인가.

아니다.

전작권은 시작일 뿐이다.

한국만 빼고

세계 모든 나라의

군사적 자주는 어떻게 되어 있나?

그것은

아래와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자기 영토에서 누구의 권한으로

군대가 움직이고 기지가 세워지는가,

불의의 전쟁이 터졌을 때

국민을 지켜줄 법은 누구의 법인가,

국경 밖 군사적 충돌에

휩쓸려 들어가 않을 자율적 거부권이 있는가,

국민의 평화와 전쟁을

국민의 정치 머슴 정부가 깔끔하게 결정할 수 있는가.

이 모든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면

자주는 완성된 것이 아니다.

동맹은

강자가 약자의 권리를 대행하는 계약이 아니다.

각자의 주권을 온전히 쥔 상태에서

상호 윈윈의 협업과 분업을 하는 약속이어야 한다.

동맹과 종속과 다른 말이다.

안보 주권은

국가의 기본 권리다.

한국은

냉전의 후진적 유산을 폐기하고

정상적인 자주국가를

K-컬처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촛불과 빛의 혁명은 완성된다.

한국이 정상적인

군사적 자주국가라는 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다섯 개의 문이 있다.

첫 번째 문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두 번째 문은

SOFA,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다.

세 번째 문은

전략적 유연성이다.

네 번째 문은

전시작전통제권이다.

다섯 번째 문은

유엔사령부다.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그중 하나의 문만 들어가려 애를 쓰고 있다.

전작권.

그러나 다섯 개의 문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하나의 문만 열어서는

자주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전작권

하나만으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씩 모든 문을 다 열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빛의 혁명을 계승했다면

그 작업을 맹렬히 시작해야 한다.

첫 번째 문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이 조약 제4조

“미국은 대한민국 영토 내에 육·해·공군을 배치할 권리를 가진다.”

이 한 문장은

주한미군에게 점령군의 지위를 보장할 만큼 천금의 무게다.

그 권리는

한국 정부, 국회의 동의 없이

미국이 한국 영토에서

미국영토와 같은 기지를 만들어 가동하리는 것이다. ,

이 조약에 기지 사용의 종료 시한은

존재하지 않아

주한미군에게 대한민국 영토와 기지, 작전 등에 대한

권리를 영구 보장한다.

국제적인 상식에 의해

조약도

시대와 현실의 변화 앞에서

수정보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조약에는 그런 규정이 없다.

주한미군의 배치와

대한민국 영토의

외국군 지배사용에 관한 문제는

21세기의

주권국가라는 현실 속에서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불평등한 관계는 바로잡아야 한다.

동맹은

한쪽이 갑이고

다른 쪽이 을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주권, 국민과 법률을 존중하는

두 주권국가의 약속이어야 한다.

한국의 주권 실종은

이는 21세기 지구촌의 수치다.

미국 군대의 배치를 받아들일지 결정할

한국의

거부권과 심사 기준을 바로 세우고,

무제한적 사용권을

한국 정부의 동의와 주기적 검증대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상호방위조약이라는

뿌리를 수술하지 않은 채

SOFA라는

하위협정에만 매달리는 것은

국제사회의

법치에 무지하거나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시늉에 그쳐

자주라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

미국의 법적 기득권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자주의 꿈은 좌절될 위험이 크다.

일부 통일운동가들은

자주를 찾자며

SOFA만 고치자 하고 그 상위법인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침묵하는데

이는 법리해석을 잘못한 것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두 번째 문은 SOFA다.

군대가 외국에 주둔하면

그 군대의 신분과 법적 지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긴다.

그것이 주한미군주둔군협정 SOFA다.

이 SOFA는 그 명칭이

「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다.

SOFA는

조약 4조의 ‘권리’를 어떻게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보장받을 것인가를 정한 것이다.

당연히 SOFA 전체의 내용은

미국이 슈퍼갑

한국은 을이다.

주한미군의 모든 것이

한국의 법과 공권력이 미칠 수 없는

점령군과 흡사한 특권을 보장받는다.

동맹의 이름을 앞세워 한 주권국가에서

외국 군대의 존재가

그 나라의 법질서보다 앞설 수 있는가?

국제법에 위배되는 측면이 있지만

한미정부가 합의한 국가간 계약이니

구속력은 지닌다는 것이

법리적 해석이기는 하나

제국주의적 폭거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한미동맹과 같은

해괴한 사례는

21세기 지구촌에 또 없다.

점령군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다.

SOFA로

인해 지난 수십 년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당신은 살펴본 적이 있는가?

무지는

미덕이 아니다.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평택, 군사, 오산 등

전국 곳곳의 미군기지를 밖에서 보면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담장 안에는

활주로, 레이더, 군용기, 통신시설, 각종 무기와 함께

수많은 장병이 있다.

그곳은

한국의 법이나 공권력이 전혀 접근할 수 없는

미국 영토내의 미군기지와 흡사하다.

주한미군은

SOFA 등의 장치 뒤에 숨어

그 지기 안에서 지난 70 여 년 동안

미 본토 수호를 위해

중국과 소련, 러시아를 겨냥한 최전선 전진기지역할을

비밀리에 해왔고

한국 정부도 동일한 태도를 취해

한국국민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세계 유일의 이 비정상이

한미동맹의 이름으로 금수강산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보라.

미군기지 담장 밖은

다른 나라, 한국이다.

그곳에는

한국의 헌법, 법률과

국민, 정부가 있다.

담장 하나로 두 나라가 갈린다.

그래서 질문한다.

동맹의 이름으로

미군이 주둔할 수 있다면,

그 주둔의 조건과 범위는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

기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환경오염이 발생하면

누가 복구해야 하는가.

기지가 반환될 때

누가 원상복구의 책임을 지는가.

형사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국의 사법권은 어디까지 행사되는가.

SOFA는

그 질문들에 대해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권리를 배경으로 답변한다.

“미국은 슈퍼갑이고

한국은 을이다.”

주한미군이 권리 차원에서 와 있으니

환경오염 같은 것에 대한 책임은

미국이 지지 않는다고 한다.

X같은 논리다.

그러므로 SOFA를 고치는 일은

동맹을

주권국가간의 관계로

다시 세우는 일이다.

하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없어진다 해도

법리상

SOFA는 계속 존치할 수 있다고

하니 머리를 많이 굴려야 할 것이다.

정치는 온고이지신이어야 하니

과거 정권이 실천한 한미동맹 일부를 살펴보자.

얼치기 진보가 장악한

노무현 정부 시절

미군의 해외주둔기지 가운데

최대, 초호화 시설인

평택 미군기지가

SOFA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갑을 관계는 여전했다.

문재인 정부도

3번의 남북정상회담으로 수많은 교류협력 사업에 합의고

백두산 남북정상 동반 등정,

평양시민 앞에서 남측 대통령의 육성연설을 한 뒤

한미동맹을 앞세운 미국의 압박에

철저히 북한을 외면했다.

2국가론이 나온 뒤 집권한

이재명 정부도

한미동맹 최우선을 합창하며

미국 심기를 건드리는 짓을 철저히 피하는

것은 과거 정권과 흡사해

과거의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은 것 같지 않다.

강자에게 대드는 것은

반드시 손해라는 정치철학이

여의도에 모여드는 모든 정치인의

체질이 되어 있어서 그런가.

그들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 등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후진상태이고

국민의 헌법적 권익이 짓밟히는데도

철저히 입을 다문다.

자기 발등의 이익을 챙길 때는

조폭 비슷한 정상배 모습인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세 번째 문은 전략적 유연성이다.

이 해괴한 명칭은

한미동맹의 한부분이라고

미국은 기회만 있으면 떠들어대지만

한국 정부는

궁금해 하는 국민에게 속 시원히 설명하는 일이 거의 없어 문제다.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넘어 인도, 태평양까지 바라보며

작전 반경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이

주한미군이 중국 등과 벌일 전쟁에

휩쓸릴 위험지수가 높아지는 형국이다.

한미동맹 때문에

한국이 원하지 않는 전쟁에

끌려가게 된다?

그래도 되는 것인가?

한국 국민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부터 한미동맹에 대한 문제제기는

친북, 종북과 같다는

겁박에 시달린 후유증이 여전해

전략적 유연성으로

죽고사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침묵한다.

이재명 정부도

과거 정부처럼 몇 문장으로 설명하고 침묵한다.

알아서 기라는 것인가?

금년 봄

주한미군과 중국 공군기가 서해상에 대치한

아슬아슬한 일이 벌어진 것처럼 상황은 자꾸 심각해지고 있다.

미중간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것은

삼척동자의

눈에도 다 보일 정도가 되었다.

대만해협의 긴장,

동중국해의 충돌,

남중국해의 갈등,

미국과 중국의 전방위적인 전략적 경쟁,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으로

멀리서 시작된 불꽃이

어느 날 한반도에 떨어질 수 있다.

주한미군기지에서 발진한

미군이

인도, 태평양 등지에서 전쟁을 벌인다면

상대국은 주한미군 기지를 공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한국 정부는 국민에게 알리고

유사시

피난 등 대처방법을 알려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SOFA 3, 28조 규정에 의한

한미동맹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비밀을 한국 정부도 비밀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당연한 질문이 생긴다.

한미동맹으로

전쟁도 미국이 맘대로 할 수 있다면

한국국민은

미국의 국민인가?

한국 정부도 미국의 정부의 일부에 속하는가?

해괴한 일이다.

동맹 때문에 한국 국민의 주권이 짓밟히면서

언제든 주한미군 때문에

전쟁의 불벼락을 맞게 되는 것이다.

만약

정상적인 한미동맹이라면

국민이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릴 정보까지 숨기는

정부란 존재할 수 없다.

미국의

전략적 이해와

대한민국의 국가이익이

언제나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맹국이라고 해서

한 쪽이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쪽의

국민 모르게

전쟁을 벌일 권리까지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국제법을 짓밟는 폭거에 해당한다.

동맹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서로 협의하고 판단하는 약속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와

한반도 밖 군사행동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사전 협의와

필요한 경우 동의가 보장되는 명확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동맹 때문에

전쟁을 피할 수 있어야지,

동맹 때문에

전쟁을 강요당하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가 미국에 의해 강조되고

미중간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그때

한국 국민은 놀라 묻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전쟁을 원했는가.”

“우리 정부가 동의했는가.”

“우리 국토가 그 군사작전의 발판이 되는 것을

한국 정부는 왜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는가.”

그리고 가장 무서운 질문,

“한국 정부가 과연 정상인가. 계속 집권하는 것이 타당한가.”

이런 질문에

한미동맹은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한국 정부는

미 국익을 위해 주한미군이 벌이는 전쟁 가능성까지

비밀로 해주는데

이런 정치가 민주주의 정치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은 예측 가능한 것이지만

오늘날

청와대나 여의도는 물론 거대 여야당,

이른바 진보소수당 조차

아무 관심이 없다.

매일 메뉴를 달리해 전개되는

정치 싸움에

국가와 국민의 전쟁, 평화, 행복에 대한

정치 서비스 의제는 보이지 않는다.

언론, 학계 등도 침묵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런 비정상은

동맹을 위해 생사를 초월한 경지를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면

미국이 촘촘하게 만들어 놓은

한국사회 통제장치가 작동한 결과인가?

이도 아니며

자기는 언제든 미국으로 도망갈

이중국적자라서 그런가?

하여튼

이런 참혹한 환경 속에서

한국 국민은

헌법적 행복 추구권, 전쟁 회피권 등이 훼손되는 것에 대해

어디에 물어야 할지도 모르고

개돼지처럼 살고 있는 형국이다.

한미동맹의

모순이 점차 커지면서

미 국익이 한국의 가공할 손해로 등치되는

야만적 상황 전개가

심화되고 있어 불안하고 화가 난다.

합리적인 동맹이라면

국민을

비밀리에 전쟁 밥으로 만들려는 시스템이 아니라

전쟁을 막아주는 방패여야 한다.

네 번째 문은 전작권 전환이다.

한 나라의 군대는

그 나라의 국민과 헌법 수호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군대는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정부가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누가 국민에게 설명할 것인가.

누가 국회에 책임질 것인가.

누가 국민의 생명 앞에서

최종적인 정치적 책임을 질 것인가.

그 책임의 주체와

작전지휘의 주체가

서로 다르다면

민주국가의 군 통수체계에는

근본적인 긴장과 문제가 생긴다.

그러므로 전작권 환수는

동맹의 문제가 아니며

국가의 생사와 직결된 주권의 문제다.

12.3 불법계엄 때 정치군인들이

헌정유린에 앞장선 것도

한국 국방의 핵심부분은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70년 묵은

부조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등이

휴전선을 등 뒤로 하고 총칼을

국민을 향해 겨누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찬탈을 한 것도

한미동맹의 역기능이

한국의 비극으로 현실화된 사례가 아닌가 말이다.

군이 정치가 아닌

국방에 전념하려면 당연히 전작권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전작권과 동맹의 관계는

외국을 보면 이미 해답은 나와 있다.

영국은 자국 총리가, 프랑스는 대통령이,

패전국 일본조차 자위대의 지휘권을 쥐는데,

대한민국 군대는

미 국익을 위해 미대통령의 통수권 지휘를 받는

주한미군대장의 지휘를 받는다.

생명을 걸고 전쟁에 임해야 하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더 이상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

한미 정부가

전작권 전환 검증을 3단계에 걸쳐 실시한다고 합의했다 해도

한국 대통령은

국민에 대한 헌법적 책무를 우선한다면

비상한 조치를

취하는 것도 생각해볼 일 아닌가?

세계의 무뢰한 비슷한 언행을 되풀이 하는

트럼프에게

맞장 뜰 배장 있는 한국 정치인은 없는가?

막강한 재래식 전력을 보유한

주권국가가

전쟁지휘권을 타국에 위임한 비정상 속에서

전작권 전환 평가의 판정관 역할을

미국이

전담하는 모순된 구조에 분노하는

정치철학을 가진 정상적인

정치인은 씨가 말랐나 보다.

미국은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주한미군, 유엔사가 미 대통령의 직접 지휘를 받는 체제를 유지해

한반도의

군사적 지휘체계 상당부분을 미래에도 장악하려 한다는 것을

이재명 정부는

밝히는 것이 정상 아닌가?.

다섯 번째 문은

유엔사라는

미 국익을 위해 복무하는 해괴한 군대다.

유엔의 깃발을

걸었으나 그 몸통은 미 국방부이고

유엔 총회가 여러 번 그 정체성을 폭로했건만,

여전히 DMZ의 열쇠를 쥐고,

남북이 악수하려 할 때마다 철조망처럼 가로막았다.

이재명 정부가

DMZ를 평화 정착, 증진을 위해 활용하자고 해도

유엔사는

정전협정 준수를 위한 관리가 우선이라며 반대한다.

미국이 왜

부대 간판까지 위장하면서

유엔사를 챙기고 있고 오늘날도 그악스런 짓을 하는가?

그것은 미 국익에

유엔사가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륙 국가들의

군사적 위협을 6.26 전쟁을 통해 확인하고

유엔사를 앞세워

동북아의 나토라고 여기는

한미일군사협력체제의 핵심역할을 담당케 해왔다.

유엔사는

일본에 7개의 유엔사 후방기지를 거느리고 언제든

그곳을 통해

6.25 때처럼 동맹군을 규합할 훈련과 태세를 항상 갖추고 있다.

유엔사는 이런 기능과 함께

한국과 일본의 군 협력체제, 즉 한미일 3각군사동맹시스템을

발동하는 핵심축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 잘 나가는 어느 정치인은

유엔사를 족보 없는 유령단체라고 했다.

이런 표현이 일견 날카로운 정치 풍자라 할 수 있으나

미국을

기쁘게 한 측면이 더 크다 할 것이다.

유엔사의 무지막지한 잠재력으로부터

시선을 멀리하게 하면서

미국의

한반도 군사 통제체제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든

촌평이기 때문이다.

유엔사는

또한

주한미군의 영구 주둔을 가능케 하는

한반도 분단구조를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은 전작권을 대한민국이 되찾아 갈 경우

유엔사를

활용할 계획을 감추지 않는다.

유엔사는 DMZ 출입 등 정전관리,

유사시 전력 제공국과의 조정 등에서

별도의 군사적 권한을 작동할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한국 국민이 물어야 한다.

한국 영토 안에서

한국 정부의 권한과 유엔사의 권한은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서 갈라지는가.

전작권을 환수한다고 해도

DMZ와 정전관리의 권한이 유엔사에 남아 있다면,

한반도의 군사적 지휘체계는

자주에 대한 심각한 혼선을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유엔사의 법적 지위와 권한을 명확히 해야 한다.

한국의

영토와 국민에 관한 문제라면

한국 국민이 알아야 하고,

한국 정부가 책임져야 하며,

국회의 감시가 가능해야 한다.

한미동맹이라 이름으로

모든 것을 비밀로 쓱싹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모르는 주권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화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평화를 앞세운 미국 정부 군대

유엔사가

한국 주권의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는

미국의

정체에 대한 무지의 결과인 미맹과

한반도

분단 대치 상황에

대한 오해,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군가 항상 말했다.

미군이 약해지면 북한이 침략하고

미군이 떠나면

북한이 핵을 쏠 것이다.

동맹을 바꾸면

한반도에 전쟁이 닥칠 것이다.

그러니 미국은

과거처럼 미래의 은인으로 남아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는 절대 안 된다.

과연 그럴까.

미국은 건국이래 트럼프가 보여준

미국 국익 최우선주의를 외교국방의 초석으로 삼고 있다.

미국이

70여 년 동안 주한미군을 주둔시키는 것의 일차 목표는

미 본토 수호이고

북한 방어용은 그 다음이다.

주한미군은 중국의 목을 겨눈 비수로

일컬어진다.

미국은 지근거리에서

중국 심장부를

타격할 수 있다는 전략적 강점 때문에

지금껏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감축을 말하는 것은

우주 전쟁 시대를 맞아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대치는

성주 고고도미사일방어기지의 x-밴드 레이더나

첨단 공중 무인 정찰기가 더 효과적이라는

미군부의 계산 결과다.

현대전쟁은 이란, 우크라 전쟁에서 보듯

드론, 미사일이 주역이 되고 있다.

트럼프가

북한 핵무력 강화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에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주한미군의 주둔을 통해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미국이 계산법에 의하면

북한핵이 문제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보다

수십-수백 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더 큰 걱정인 것이다.

문제는 한국 정치권이다.

변화하는

안보지형과 한미동맹, 남북관계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대안모색, 정치적 의제화 작업을 하면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하는 것 아닌가?

현실은 어떤가?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말만 할 뿐

전략적 유연성의 위험요인에 대한 정책을 내놓은 일은 없다.

이재명 정부도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두 개의 쇠말뚝인

국보법과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분단기득권을 챙기는 정치를 하는 것이

집권과 정국 장악에

유리하다는 계산에 함몰되어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여의도 정치는

한국 사회의 북한 핵에 대한 공포와

친미적 태도에 역행하는 정치는 자살행위라고 보는

정치공학으로 무장하고 있다.

거대 여야당이나 소수의 이른바 진보적 정당도

정치이념의 질과 양에서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보자.

진보적 정당의 대표가

민주당 짝퉁 정당 소속으로 출마해 국회의원이 되고

이재명 정부 각료로 가는 것이나

유명 정치인들이 탈당해 여야를 쉽게 넘나드는 일이 흔하다.

이들의 정치철학은 단순명료하다.

“정치란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로남불을 통해 언제나 정치인 개인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이러니

여의도에서는

북한의 2국가론에 대해

국민에게 평화통일의 이론, 방법이나

남북공동 번영의 비전을 제시 하기는 커녕

잠꼬대 같은 소리나 하면서

공천권 보장책, 진영논리, 당리당략의

목표를 향해

도끼자루 썩는지 모르고 세월 보내고 있는 거다.

국가의 안보정책은

공포가 아니라

냉정한 계산 위에 세워져야 한다.

예를 들어

주한미군이 철수한다면

한국의 안보가 위태로울까?

그렇지 않다.

한국보다 국방력이 훨씬 약한

지구촌의 모든 국가도

군사적 자주권을 실천하며 잘 대처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는?

만약 그것이

한반도에서 실제 사용되는 순간

북한 자신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이 될 수 있다.

핵무기는

단순한 포탄이 아니다.

그것은 체제나 주변국의 생존과

억제와 협상의 정치적 자산이라는

복합적인 성격을 갖는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벌어진다면

남한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북한도,

중국도,

러시아도,

일본도

그 파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발발할 경우 그 재앙은

한반도 내에만 머물지 않고

동북아 전체 및 글로벌 차원으로 확산된다.

핵무기가 폭발로 발생하는

초기 폭풍, 열선, 잔해 외에도

가장 치명적인 인근 국가 피해 원인은

방사성과 핵먼지의 광범위한 이동이다.

한반도에서의 핵전쟁은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으며,

인접한 모든 국가가 상호 파멸적인 피해를 입는

지역적·글로벌 재앙을 피할 수 없다.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 때문에

핵을 가진 국가가

개입한 이란, 우크라 전쟁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이유를 직시해야 한다.

한국 정치권은 북한의 핵위협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되지만,

모든 안보 논의를

“미군이 없으면 즉각 전쟁”이라는

하나의 공식으로 환원해서도 안 된다.

상호공멸의

핵전쟁 시나리오 등을 앞세워

주한미군 지속 주둔만이 살길 이라며

군사적 주권 논의를 스스로 봉인하며

냉전시대식 정치적 부당이득을 챙기는 식의

3류 정치를 끝내고 각성해야 한다.

K-컬처와

첨단 기술로 세계와 당당히

어깨를 겨루는

자랑스러운 젊은 세대를 의식해야 한다.

1950-60년대의 가난한 기억 대신

강대한 대한민국을

먼저 경험한 청년들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왜 우리 군대의 지휘권을 미국에게 맡기고,

우리 영토의

군사적 통제까지 받아야 합니까?"

한국 정부는

이 당당한 청년들의 물음에

종속의 유산 대신 자주의 답을 내놓아야 한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 목적이

북한 방어보다 중·러 견제가 우선이라는

현실을 더 이상 감추지 말고,

비밀주의에

덮여 있던 미군 작전들을 공론화하며

주권국가다운

외교군사적 대응을 해야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6조에

규정된

'1년 전 통고 후 조약 폐기' 권한은

불평등한 기득권을 고수하는

미국을

대등한 협상 테이블로 이끄는 강력한 외교적 레버리지다.

단호한 정치적 의지로

조약 제4조에 의한 피점령 상태의 비정상을 도려내고

정치·외교적 주도권을 쥘 때

안보 주권은 온전한 자기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한미동맹과 국가보안법으로

여전히 미완의 상태인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하는

정치는

그 직무유기가 더 심화될 경우

광장의 심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한국적 정치공학에

눈을 떠야 할 때가 되었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북마크
427 2026.09.02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20-트럼프의 러브콜과 한미동맹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트럼프가

2026년 8월

한반도를 향해 동시다발적 조치를 취했다.

북한 핵 무기는 57개다.

한미연합훈련 축소하고

유엔사 기구 보강하라.

이들 조치를 취하면서

한국 대통령은

이란 전 비협조자라며

짓씹었다.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이란전쟁에서 당한 수모를 만회하려는

수작 아니냐 할 수 있지만 깊이 살피면

자못 심각하다.

호구인 한국에서 주둔하는

주한미군의 위상변경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할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노림수다.

한반도를 이용해

동북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이익을

확대하려 머리를 굴린 결과다.

트럼프가 내뱉은 대북 러브콜,

한미연합훈련 단축과 유엔사 기구 강화는

전작권 전환의 지연으로 이어지면서

전략적 유연성의

칼날을 강화할 암수가 숨어 있다.

그의 행보는 동북아에서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시켜

미 국익을

챙기려는 제국주의 속성이다.

트럼프가

북한의 핵을 입에 올리면서

이란에 대해서 전쟁을 일으켰던 것과

너무 다르게

김정은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북한과의 전쟁은

미 본토나 하와이가 북한 ICBM의

타격 대상이 될 가능성을 계산한 것이다.

동시에

그 핵의 존재가 중러를 견제하는

주한미군의 지속 주둔을 가능케 하고

북미관계의 정상화가 북중러 군사협력관계의 틀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연합 훈련을 줄이는 것은

북한의

환심을 살 수 있으며

중러에 대한 군사적 대치는

미사일과 드론으로 순식간에

승패를 결정짓는 방식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다른 이점도 있다.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한국군 역량의 검증을

지연, 원천 봉쇄해 전환 자체를

유예할 구실이 될 수 있다.

유엔사의

구조를 강화하는 것도

70 년 된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을

전략적 유연성의 개념과 함께 보강하는 효과가 크다.

설령

전작권 전환이 성사될 경우

유엔사는

미국 대통령이 통수권을 쥔 주한미군과 함께

한국군의

군사적 주권을 제약하며

미국의

하부 구조 속에 묶어 둘 수 있다.

6.25 때 유엔군이 한국군을 지휘했던

것과 같은 상황으로 전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내놓은

훈련 축소도, 핵 인정도, 유엔사 강화도

하나의 목적을 향해 동원될 수 있다.

이는 미중 갈등과의 대처를 중시하여

미 본토를 수호하겠다는 전략에

부합하는 것으로 주한미군을

한반도의 고정 방어 군이 아니라

인도·태평양 전역에 투입할 유연한 전략 자산으로

유지·강화할 수 있다.

트럼프가 앞장선

한미동맹의 역할 재조정시도는

한국의

군사적 자율성을 더 좁게 할 우려가 커

이재명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쉰일곱 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

트럼프의 이 한 마디에

세계가 긴장했다.

미국 정부가 공식으로 밝힌 적이 없는 숫자,

민간 연구소마다 제각각인 추정치를

트럼프는

마치 핵 창고의 재고를 파악한 듯

구체적 숫자를 입에 올렸다.

이는

정보의 공개가 아니라

핵보유국 기정사실화요 정치적 선언이다.

북한이 핵을 쥔 채 미국과 마주 앉는

그 날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준 것이다.

트럼프는

이란이 핵무기 개발 의지가 있다며

전쟁을 일으키며 세계 질서를

뒤엉키게 만들었지만

북한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 하면서

김정은에게

우호적 태도를 취했다.

"애초에 그토록 허락해선 아니 되었거늘,

이미 그가 그 무기를 갖게 되었다"

"나는 그와 잘 지내고 있다"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다시 손을 내밀며

정상회담을 시사한 것은

전쟁의 언어가

협상의 언어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역사는 알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악수는 악수로 끝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미소 뒤에는 계산이 있고,

한 국가의 친선 뒤에는 전략이 있으며,

정상회담의 테이블 아래에는

보이지 않는 국익 계산서가 펼쳐진다.

트럼프가

북한의 핵무기를

구체적인 숫자까지 거론한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호다.

그 숫자가 실제 정확한 숫자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 대통령이

북한 핵무기의 존재를

현실의 전제로 삼기 시작했다는 정치적 의미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말했다.

“핵을 가진 상태에서

미국과 협상하겠다.”

비핵화가 아니라

핵보유를 전제로 한 관계 정상화.

핵군비 통제.

전쟁 위험 감소.

평화체제.

그리고

핵을 가진 북한과

그 현실을 관리하려는 미국.

만약 역사가 그 길로 들어선다면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 지형은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핵은

폭발하지 않아도 정치가 된다.

미사일이 발사되지 않아도

핵탄두의 존재만으로

국가의 외교정책이 달라진다.

북한에게 핵은

체제 생존의 방패이고,

미국에게 북한 핵은

동북아 전략을 다시 설계하게 하는

하나의 변수다.

그러나 거기에는

넘어서는 안 될 법적 경계가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국제법상 핵보유국 지위가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인정한 핵보유국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로 인정될 뿐

북한은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트럼프의 발언은

북한의

법적 핵보유국 지위를

공식 인정한 것으로 연결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의 세계에서는

법적 인정과 현실적 인정 사이에

넓은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핵을 없애라고만 말하는 것과

핵이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협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정책이다.

그 차이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미래를 흔들고 있다.

트럼프는

한미연합훈련의 규모를 줄이는 문제를 거론해

남북에 각각 메시지를 보냈다.

트럼프는

한미연합훈련이

비용이 많이 들고,

북한을 자극하며,

자신과 김정은의 관계를 고려하면

적절하지 않은 신호가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북한은

그러나 트럼프가 더 양보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미사일을 쏘았고,

김여정은

트럼프가 말하는 소통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북한은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에는 날을 세우면서도

트럼프에게는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언어를 사용했다.

북한의 계산이다.

미국과의 문을 닫지 않으면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도 놓치지 않는 것.

한쪽에 몸을 기대면서

다른 쪽의 문을 닫지 않는 것.

북한 역시

강대국 사이의 틈에서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공식을 이용했다.

트럼프가

북한 핵을 언급하고

한미연합훈련의 규모 축소를 지시하면서

전작권 전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작권은

전쟁이 벌어졌을 때

한국군과 미군을

누가 최종적으로 지휘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으로

단순한 군사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주권의 문제이며,

국가의 자기결정권에 관한 문제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순간에

누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최종적인

군사적 판단을 내릴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한국 정부는

한국군이 주도하는 미래연합사령부로의

전작권 전환을 추진해 왔다.

이재명 정부는

임기 내 전환 의지를 강조하며

검증 2단계를 빨리 끝내면

오는 10월에 전환 일자도 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2가지 걸림돌을 내놓았다.

우선 연합훈련의 규모가 줄어들면

검증의 기회

역시 줄어들 수 있다.

검증의 기회가 줄어들면

정치적 판단의 영역이라는

3단계까지 가지 못한다.

북한이

실질적 핵보유국이라고 인정하는

발언도 전작권 전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미국은 말할 것이다.

“한국군은

전시 지휘능력의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고

북한의 핵 위협이 너무 크다.”

“전환은 위험하니

조금 더 기다리자.”

트럼프는

우방국 영토는 물론

호루무즈 해협까지

미국 영토라고 하거나

이란에 대한 최후통첩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등

기본적인 정치 소신과 철학을 지녔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 XXX와 같은 인물이다.

그러니

전작권 전환을 놓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앞세워

무슨 짓을 할지 예측키 어려운

인물인 것은 부인키 어렵다.

한국 정부가

트럼프의 변덕에

대비하는 외교를 하는 것 같지 않아

지켜보기 딱할 따름이다.

트럼프는

평택에 주둔 중인

유엔군사령부도 움직였다.

한국에서는

유엔사가 미국의 군대로

미 대통령의

통수권 지휘를 받는 존재라고 말하는 법이 거의 없다.

미국은

남한에 주둔한 3가지 형태의 군대의 명칭을

유엔사, 주한미군, 한미연합사 등으로 해놓고

사령관은

한 사람이 3개를 겸하도록 해놓았다.

이는

미국이 다각도로 한국의 군사적 주권을

대신하거나 잠식하는 형태로

21세기는

물론 동서세계사에서

외국 주둔군이

연극무대의 1인 3역의 형태로

포진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미국식 합리주의가

지독한 자국 이기주의이며

그것이 현실화된

유일한 지역이 한국이다.

한국의

검은 머리 미국인들은 말한다.

“미국이 정말 용의주도하게

대북방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실증이고

그것이 너무 고맙다.”

미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비상식적 군 시스템을 장치를 해놓은 것을

한국의

분단기득권 세력들이

더 할 나위 없는 미사여구로

미국을 찬양하면서

그 실체를 밝히면

국보법으로 일망타진해 왔다.

미국 대통령들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다 까무라칠 지 모를

희대의 무뇌아적

사대주의 발상이라 할 것이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주한미군이 치외법권적 지위로 주둔하고

유엔사는

유엔 안보리 결정에 의해 주둔하지만

유엔과는 관련이 없고

미국 정부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있다.

유엔사가 최근 기구 신설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는데 이는 트럼프가 미군통수권자로서

최종 승인을 한 것이다.

유엔사는

최근 JSA 경비대대를 중심으로

정전협정 이행 감시, DMZ 출입 승인 등을 맡는

군사정전위원회 등을 통합한

‘경비·정전집행여단’(가칭) 창설을 추진해 왔다.

여단장은 군정위 비서장(대령)이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반대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저지할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황이고,

미국은 창설 작업을 지속하고 있단다.

유엔사는

그 역할에 대해 다양한 전망이

제기되고 있으나 분명한 것은

정전협정, DMZ 등을 관리하고 향후

6.25와 같은

전쟁 등이 발생할 경우

북한 지역 점령과 관리 등을 담당하는 것으로

한국정부도 동의한 상태다.

이승만이

6.25 직후 평양이 수복되자

현지에서 정부 기념행사를 하려 했으나

유엔사령관 맥아더가 반대해

결국 비공식 행사를 하고 말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한 때

북진하면 통일된다고 말했지만

그건 유엔사의 OK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다 알려진 일이지만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은 통일 한반도를 원치 않고

남북분단으로

강대국간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것을

최상의 조건이라고 암묵적으로 합의한 상태다.

6.25를 통해

전면전을 한 학습효과다.

한반도 주변국들은

미래의 비상상황 발생 시

한반도 분단을 지속시킬

대책 마련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미군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즉시 인민해방군을 투입해

평양을 먼저 점령하거나

청천강 이북을 선점할 전략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만강, 압록강 1,400km가

미중이 코를 맞댄 전선이 될 경우

중국은 동북 3성의

정상적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미국도

6.25때 이승만이 입만 열면

단독 북진통일을 외친 것에 학을 뗀 경험으로

유엔사가

한국군의 북한 단독 진격과 점령을 저지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은 이승만 식의 북진통일은

미 국익에 부합치 않다고 판다하는 것이다.

미국은

주한미군이 특권을 누리며

미 본토 수호를 위해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과 함께

분단이 강대국의 공동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고

주한미군을 통해

남북한을 관리하면서 분단을 지속시키는

작업을 지난 70년간 해왔으며 지금도 동일한 입장이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주한미군이 대북 방어용이라는

가짜뉴스에 세뇌되어

쌩큐를 연발하면서

은인, 고마운 나라라고

합창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이재명 정부도

과거 정부가 취한

‘한미동맹 강화’를

기회만 있으면

외치고 있다.

여의도 여야는

죽기 살기로 싸우며

온갖 독설을 내뱉지만

트럼프의

국제법도 수도 없이 짓밟는

무뢰한, 깡패 짓에

“당신 나하고 맞장 한번

뜨자.”라고

말하는 정치 머슴은

찾아볼 수 없다.

우물안 개구리 싸움에

사활을 걸고

XX을 하고 있을 뿐이다.

트럼프는

유엔사 구조조정을 통해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정전협정과 DMZ 관리는 물론

한미일 3각 군사동맹체제 핵심 축의

역할을 지속시킬 것으로 보인다.

유엔사가

주한미군과 함께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리며

미래의 한반도 군사통제력을 행사할

준비작업이 지속되는데

한국 정부는

그에 대응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북한을 조선으로 부르자’라고 하거나

‘북미정상회담을 지지한다’는

소리만 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트럼프의

북한 핵 발언과 한미연합훈련 단축 조치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하려는

암수가 숨어 있는 냄새가 진동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반도 방어를 넘어

대만 유사시, 인도·태평양 지역 비상사태 등

역외 작전에

주한미군을 투입한다는 개념인데

실은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조치라 할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2006년 한미합의 이후

지속 논의되어 왔으며

중국의 경제·군사적 부상과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하면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가치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트럼프는

나날이 중요해지는

전략적 유연성을

전작권 전환 등과 연결시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중이다.

만약

전작권이 한국군으로 전환되어

한미연합작전의

최종 지휘권이

한국 측에 넘어가게 될 경우,

미국이

주한미군을 인도 태평양 지역으로

전개하거나 재배치할 때

한국의 사전 협의·동의 절차가

강화되면서

미국의 독자적·신속 대응 등이 지연될

개연성이 적지 않았다.

반대로

현재처럼 미군이 연합사를 주도하는 구조를 유지하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보다 유연하게

인도 태평양지역 억지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트럼프가

북한 핵을 사실상 인정하며

러브콜을 보내는 것도

전략적 유연성과 무관치 않다.

트럼프 희망대로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주한미군의 대북 억지 부담을 낮추면서

중국과 러시아 견제가 더 가능해지고

북중러 관계에 틈을 만들 수 있다.

트럼프는,

전략적 유연성의 경우

한국군에 대한 전작권 전환이 이뤄진다 해도

한미상호방위조약 3,4조에 의해

그 강화 등이 가능하며

주한미군의 독자적 활동을

한국정부가 저지하거나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트럼프가

한미연합사 훈련 축소를

사전에 한국 정부와 협의치 않은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지난 70여 년간 주한미군이 누려온

치외법권적 특권을 발동한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4조와

전략적 유연성은

한국에 안보 공약을 제공한다는 명분이지만

한국의 군사적 자율성을 제약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

주한미군이

미국 본토 보호와

지역 억지의 핵심 자산으로 기능하면서도

SOFA 등으로 이를 비밀로 하게 되어있어

한국의 군사 주권은

동맹의 틀 안에서 갇혀 있는 형국이다.

이는

단순한 안보 문제가 아니라

주권 국가로서의 자기결정권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격인

한미동맹의 뿌리가 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 3,4조를 살펴보자.

제3조는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규정한다.

이는 상호 방위 의무를 선언하되,

자동 개입이 아닌

각국 헌법 절차에 따른 대응을 명시한다.

제4조는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고 되어 있다.

이 조항에 따라

미국은 주한미군을 배치할 권리를 확보했고,

한국은 이를 허용하면서

주한미군은 치외법권적 지위 속에

중국 등 대륙 국가를 견제하는 최전방기지가 되고 있다.

전략적 유연성은

2006년 1월 한미 양국이,

주한미군이 한반도 방위를 기본으로 하되

필요시 역외로 전개될 수 있다는 점에

합의해 만들어졌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당시 합의문에서

미국은

한국 정부가 지적한 국민 의사에 반하는

지역 분쟁 개입 거부 입장을 존중하고,

한국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필요성을 존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합의는 구체적인

기준과 협의 채널을 규정하지 않아

논란과 혼란의 아킬레스건이 남겨졌다.

이런 허술한 정부관리간 합의가

만들어진 것은

의도적인가, 아니면 바보들이라 그렇게 했나?

그것은

미국정부의 물불 안 가리는

국가이기주의와

한국정부의 대미종속적 의식 상태의 야합이었나?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미 정부의

동의에 대한 반대급부의 형식이라는

결과물인가?

하여튼

속 터지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그 후유증은 너무 심각해지고 있다.

그 후

주한미군은 대만 유사시나

인도·태평양 지역 비상사태에 투입될 수 있는 전력으로

재정의 되는 흐름이 강화되었고

최근

주한미군사령관이

동북아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는 식의

‘East-up Map’을 통해

한국이 베이징과 블라디보스토크에

가까운 전략 거점임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국의 군사적 주권과

직접

충돌할 취약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 너무 심각하다.

전시 작전통제권이 여전히

한미연합사령부 체제 아래

미군 주도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이

한반도 방어를 넘어

제3국 관련 작전에 투입될 경우

한국은 사전 동의와 통제권을

충분히 행사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미 대통령의

군통수권에 속하는 사항으로

한국의 동의와 무관하게

집행할 법적 위치에 있다는

해석과 함께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해

보장된 주한미군의 권리 구조 때문이다.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미간 이견의 실제 사례가 2026년 2월 18일 발생했다.

당시

주한미군 F-16 전투기 10여 대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과 중국방공식별구역(CADIZ) 사이의

중간 구역까지 진출해

대규모 공중훈련을 실시했다.

이에

중국 공군이 긴급 출격하여

양측이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는

미국의 국가방위전략(NDS) 기조에 따라

주한미군의

임무를 한반도 방어 중심에서

역내 전략적 역할로 확대하려는 구상이

실제 작전으로

구체화된 사례로 평가된다.

문제는

주한미군 훈련이 한국과의 긴밀한 조율 없이

강행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기지와 공역이

미·중 대결의 최전선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될 경우

한국은 의도와 상관없이

미중 무력 충돌에 휘말리면서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이 심각하게 잠식되고

한국국민이 전쟁 피해를 입는

대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한국정부나 국회, 언론, 학계 등은

약속이나 한 듯

침묵하고 있으니

한국 민주주의가 축소, 왜곡되는 것과 함께

국민이 헌법적 권익을 보장받지 못한 채

개돼지 취급을 받는 비극이

수 십 년째 지속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트럼프의 한반도 정책이

위에서 우려한 방식대로 추진될 경우

미국은

북한 핵을 인정하되 전쟁 위험은 낮추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그대로 두어

주한미군이 한국에 머물며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면서

대북 억지의 부담은 내려놓고

중국·러시아를 겨냥해

미 본토를

안전하게 만드는

거대한 성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은

북한과의 전쟁 위험은 낮추되,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거점을 유지하며,

주한미군이 비용 부담 없이 대북관계를 관리하고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전력으로 부상되는 효과를 얻는다.

이것이 트럼프가 2026년 8월

동시 다발적 조치를 취하며

머릿속에 그린 한 폭의 그림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되는가?

당연히 유불리가 존재한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감소하면

한국은 한반도 평화라는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동시에

주한미군의 역할이 중국 견제 쪽으로 이동한다면

한국은 미·중 전략경쟁의 최전선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어 가야 한다.

대만해협에서 미국과 중국이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상황을 상정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확대될수록

미국은 한국에 주둔한 미군을

인도·태평양 지역의 다양한 군사적 상황에

동원하는 것이

가성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때

한국은 중요한 선택에 직면한다.

주한미군의 중국 견제 활동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대만해협 유사시

주한미군 기지가 중국 미사일 공격을 받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미·중 무력충돌이 지속되면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이상과 같은

문제는 단순한 군사문제가 아니라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국의 주권,

동맹의 범위에 관한 문제다.

북한 핵위협 감소가 반드시

한국의 전략적 부담 감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그의 뜻대로 시행된다면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개선되고

북한의 핵무기는 그대로 존재하며

미국과 북한은

핵군비통제 또는 위험감소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

동시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유지되고

주한미군도

계속 주둔하면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중심은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

트럼프의

대북 전략이 성과를 거둔다면

한국은 북한 핵위협과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안보 문제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럴 경우 한미동맹과 관련해

“북한과 미국이 평화롭게 지내는 시대에

한국에 남은 주한미군은

누구를 상대로, 무엇을 위해, 어디까지 행동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국 정부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지난 70여 년 동안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시설, 작전에 대한 것을

비밀로 준수하는 역할을 하면서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외면했다.

이재명 정부도

한미정부간 합의한 것이라

과거 정부처럼

국민의 알 권리를 외면하며

어떤 부담도 느끼지 않는 모습이다.

한마디로 국민의 알권리,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을 권리를 유보한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는 식의

제한적인 민주주의를 하고 있을 뿐이다.

촛불, 빛의 혁명으로

두 대통령이

8년 사이에 탄핵당한

세계사 초유의

최첨단 시민의식을

자랑하는 사회에서

냉전시대의 안보지상주의,

눈감고 아옹 하는 식의 외교안보정치가 가능할 것인지

정치권은 심사숙고 하면서

트럼프의

대북정책과 미국의 동북아 전략,

그리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미래를

동시에 고민해야 할 것이다.

거듭 밝히지만

트럼프 러브콜 뒤에서

전작권의 지연과 유엔사의 강화,

전략적 유연성 강화의 칼날이 꿈틀 댄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데

한국정부는

지금 무얼 살피며 머리를 굴리고 있는가.

조약의 사슬과

슈퍼 갑질, 일방주의의 바람 앞에서

진정한

자율성을 되찾을 방안을 찾아야 하고

비밀의 장막을 걷고,

공론의 광장을 열어

자주를 회복하고 동맹을 정상화 해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지키는 정치를 해야 한다.

주한미군을 통한 미 국익 추구가

동북아 지형을 바꿀 가능성이 커진

이 시대.

전작권 전환이 지연되고

유엔사가 몸집을 불리며

전략적 유연성이 강화된다면

한국의 군사적 자율성은 어디서 찾는가.

자주는

선언이 아니라

국민의 알권리, 참정권이 회복되고

조약과

협정의 비밀 장막을 걷어내

자기결정권을 되찾는 실천이다.

트럼프의

러브콜과 미국의 일방주의 앞에서

한국은 더 이상 ‘예스 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주 없는 동맹은 속박이다.

한반도의 미래는

민주주의,

국민의 주권 실천으로

결정되어야 할

길고 험난한 대장정이다.

한국의

전체 구성원이 합심하면

그 미래는 승리와 영광 속에

세계의 박수갈채를 받을 것이다.

촛불, 빛의 혁명에서

불패의 봉홧불이 된

민족혼은

거리에서, 국회에서, 광장에서,

집단지성의 기적을 만들어

민주와 자주의 고지를 점령할 것이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북마크
396 2026.08.24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19-검은 머리 미국인과 K- 세대의 권리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남한에 친미 세력이 있다.

검은 머리 미국인이라 불리는.

그들이 미국의 한반도 역사를 아는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아는가.

미군정이 친일파를 기용한 것을 아는가.

일제 731부대 면죄부를 아는가.

광주에서 전두환 학살을 허락한 것을 아는가.

모른다.

아니면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처세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광화문 시위에도 성조기를 흔드는

다수가 있기 때문이다.

국보법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을 비판하면 반미.

반미는 친북.

친북은 국보법 저촉.

상상하는 자유조차 억압하는 현장에서

자신들이 진실이라며

더 큰 진실에 눈과 귀를 막는다.

역사를 모르면

현재를 올바로 볼 수 없다.

현재를 올바로 보지 못하면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다.

한국의 20대와 30대가 있다.

K팝으로 세계를 흔들었다.

K드라마로 넷플릭스를 점령했다.

K방산으로 세계에 무기를 판다.

그들이 기성세대보다 더 넓은 세계를 본다.

그들이 더 자유롭게 생각한다.

그들이 더 당당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묻는다.

한미관계 151년을 아는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배웠는가.

군산과 오산이 중국 미사일의

표적이라는 것을 아는가.

성주 사드가 대만 해협과

연결된다는 것을 아는가.

정치와 언론이 말하지 않는다.

교과서, 참고서에도 없다.

문학작품, 미술, 음악에도 없다.

국내 포털사이트 네이버, 다움에도 없다.

국보법이 스크린하는 알고리즘이 작동하기 때문에

국보법에 저촉될 만한 것은

친미라는 틀이 가두어 분류하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것

그것이 기성세대의 책무 아닌가.

지구촌에서 대미종속이라고 손가락질 당하지 않는

나라를

젊은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 아닌가.

불평등 한미관계 정상화는 반미가 아니다.

정상화는 대등한 관계다.

대등한 관계는 미국에도 도움이 된다.

필리핀과 미국 군사관계는 대등하다.

필리핀이 자국법에 의해 쟁취했다.

나토 회원국도

미국과의 군사관계는 대등한 관계다.

일본도 한국보다는 낫다.

일본이 협상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협상했는가.

1953년 전쟁 중에.

이승만이 미국에 모든 것을 줬다.

필리핀, 나토 회원국 경우를 참고만 했어도

주한미군에게 점령군같은 특권을 주는

폐해를 알았을 터인데.

이승만이 투쟁한 일본제국주의가 침략, 점령한

조선의 비극을 기억만 했다면

한미관계가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지는 않았을 것인데.

지구촌의 상식이 경악했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70 여 년 동안 유지됐다.

한 번도 수정되지 않았다.

개정 조항조차 없다.

수정하려면 6조를 발동해야 한다.

폐기를 통고하고

새로 협상해야 한다.

그것이 두려워서인가

한국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한국이 달라졌다.

세계 10위 경제.

세계 6위 군사력.

K컬처가 세계를 누빈다.

그 힘으로

151년의 관계사를 다시 설계할 때다.

태평양 너머 미국에게

한국이 당당하게 말할 때다.

"우리는 대등한 관계를 원한다."

그것이 한미관계 정상화이고

한반도 평화의 출발점이다.

역사를 아는 것이 자유의 시작이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 주권의 시작이다.

미국의 한반도 개입 150 여년은

단지 약육강식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

주권의 공백기에 대한 반성문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상호 대등한 국격과 국제법을 전제로,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북한과의 이념의 벽을 허물며,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를 설계할 때,

우리는 비로소 역사의 무책임한

방관자에서

미래의 주인으로 거듭나리라.

미국의

실체를 정확히 보고,

남북문제를 주체적으로 바라보며,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지혜로

신냉전의 격랑을 헤쳐 나가자.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행복한 한반도를 물려줄 책임이 있고,

젊은이들은 그 땅 위에

자랑스러운 미래의 초석을 쌓을 권리가 있다.

이런 목표를 위해

이 땅의 고정관념에 대해

팩트체크를 하면서 진위를 가려보자.

미국의 원조 덕에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국가의 발전, 변화는 복합적인 원인의 결과로

하나의 요인을 앞세우는 것은 바보나 할 짓이다.

미국의 덕이라는 신화를 벗겨보면 다른 진실이 보인다.

4.19 혁명, 부마 항쟁, 6월 항쟁, 광주의 함성은

시민들이

흘린 피로 일군 민주주의의 터전이었다.

미국이 적극 지원했던 친일 기득권층은

민주화로 확대된 공간의 과실을 즐겼을 뿐

그것의 양과 질을 개선하는 것은 외면했다.

경제 기적은 또 어떠한가?

박정희 시절부터 이어진

정경유착과 부패 속에서

노동자는 저임금에 신음하면서

노동쟁의는

친북행위로 처벌당했다.

거제도 조선소 노동자의 경우를 보자.

그들은 일터에서 51일 동안 외친 끝에

세계 1위 수주량 뒤에 가려진

천민자본주의 정체를 폭로했다.

한국의 경제기적은

모택동이 문화혁명으로

시간을 허비한 공간의 덕을 보았다하는데

오늘날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된

것을 보면 헛소리는 아닌 듯하다.

한국과 중국이 1960 년대부터

경제발전을 놓고 경쟁한 상상을 해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한강의 기적은

세계 자본주의 원하청 시장 구조에서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의 착취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지

한미동맹만의 덕이라 것은 무식한 주장이다.

한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은

노동자들의

살인적 노동과 최저 임금 위에서 만들어졌고,

재벌의

독식과 정치권의 뇌물은

그 착취 구조 위에 꽃핀 악의 꽃이었다.

미국의

자본과 기술이 도움이된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한국의 위대함은

국민의 피와 땀이

결정적으로 기여한 성과라는 것을 잊지 말자.

한미동맹, 주한미군이

안보를 담당해준 덕이라 하는데

정전협정 당시 국군의 병력은

60만 명으로 완전무장상태여서

자주 국방이 가능했고

이승만이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미동맹을 합의해준 것은

한미일 3각 군사협력체제를 만들려는

미국에

야합한 측면이 크다 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 10위의 경제력, 6위의 군사력이 무색하게

한미동맹 안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여전히 희미하다.

북한에 대한

선제핵타격이 논의될 때,

한반도가 쑥대밭이 될 가능성에 대해

한국 정부는

협의 대상이 아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미동맹, 미국 국내법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검은 머리 미국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미국을 찬양하며 은인이라 경배하지만

북한을 오직 궤멸의 대상으로만 보며,

같은 조상을

둔 형제자매라는 점을 외면한다.

인간은 유전학적으로 볼 때 이념과 사상에 의해

그 DNA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는 천륜을 거스르는 것 아니가.

냉전종식과 함께 종말을 고한

동서이념 논쟁, 대결을 여전히 앞세우며

민족의 재통합을 통한 자주와 평화의

청사진을 외면하고 있다.

검은 머리 미국인이라 하는 자들은

미국의 한반도 개입 150년 역사에 대해

무관심과 무지의 벽을 두껍게 쌓아놓고 있다.

국내 어느 역사 교과서에,

어느 사회과학 서적에

미국의 한반도 개입 전모가

객관적으로 기록되었는가?

친미는 찬양되고,

반미는 국보법에 처벌받는 풍토 속에

진실은

침묵의 그늘 속에 묻혀 있다.

인터넷 시대 해외 기밀 해제 문서에

객관적인 한미관계 자료가 넘쳐나건만

우리의 학계와 언론은 여전히

냉전에

함몰된 프레임에 갇혀

미국의 실체보다 허상에 집착한다.

미국 슈퍼갑과 한국 을이라는 관계가

지구촌에서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를

알려하지 않는 그 모습이 정말 참혹하다.

그러나 희망은 젊은 세대에게 있네.

K-컬처와 K-방산, 세계를 무대로 외치는

20-30대의 젊음에게 희망이 있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꿈꾸지 못한 지평을 보고 있다.

그들은 열등감 없이 세계와 대면하며,

미국과 중국, 강대국 사이에서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를 설계하는 나침반,

남북 분단의 비극을 해결하는 것이

민족의 숙원이며,

동북아 평화의 기본 전제임을

젊은이들이 직시하고 실천하는 날이 멀지 않았다.

이를 위해 우리의 과거를 다시 살피자.

1881년, 조선의 땅에 첫발을 디딘 이후,

미국의 한반도 개입 150 여 년은

미국식 국가이기주의의 일방통행이었다.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암거래하고

조선인의 독립운동을 철저히 외면했다.

일본 항복이후 미국이 국가 이익을 위해

일본의 악마들과 밀거래한 행태를 보라.

만주 벌판에 세운 악마의 실험실,

조선인 애국자, 독립군 등의

살아있는 심장을 적출하고,

세균을 주입하며 만여 명을 학살한 731부대.

그 추악한 전쟁범죄의 기록을

미국은 비밀리에 손에 쥐었다.

그 대가는 무엇이었나?

천인공노할 전쟁범죄자들의 면죄부였고,

세균전 실험 데이터와 맞바꾼 인류의 양심이었다.

가스라-테프트 밀약보다

더 음흉한 이 거래는

오늘날 주한미군의 세균전 실험실로 연결되었다.

이 사실을 직시할 때,

한미일 동맹의 이면이 비로소 보이고,

미국은

결코 정의의 천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자국 이익 앞에 타국의 생명을

한낱 숫자로 여기는

냉혈한적인 계산법이

오늘날 한미동맹 도처에서

발견된다.

미군정 때부터 그랬다.

미국은 친미국가를 만들기 위해

해방정국의 자생적 정부는 불허하고,

독립운동가들은

개인 자격으로만 들어오게 했다.

3년의 미군정은 친미 정권의 인큐베이터였고,

애치슨 라인의 발표와 6.25 참전도

미국익을 우선시 하려고

소련의 견제와 극동 패권을

저울질하는 계산과정이었다.

미국은

정전협정 뒤 평화협정은 외면한 채

미군의 한국 주둔을 미국의 권리로 인정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앞세워

중국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핵무기도 많게는 1천 발 남한에 들여오면서

북한은 핵무기가 전무한 상태였지만

대북용이라고 포장해 선전했다.

미국은 박정희와 전두환의 쿠데타 정권도

미국의 전략에 부합하자 정통성을 부여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군사 주권은

미군 사령관의 손으로 더 깊이 넘어갔다.

혈맹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한국은 미국의 51번째 주처럼 움직였다.

2026년 6월 현재 경북 상주에

배치된 미국 사드의 날카로운 안테나가

중국과 러시아 하늘을 핥아내고 있다.

군산과 오산의 활주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전략 폭격기가 활주로에서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냉전시대 이래 24시간 반복한 일상의 업무다.

중국과 러시아도 대응 태세를 갖춰왔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강대국간의 무력충돌은 한국민이 전쟁에

휩쓸려 피해를 당할 수 있는데

그것을 미국, 한국 정부는 한번도

언급치 않았다.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의 이름으로

자국민에 대한 헌법적 책무를 외면한

직무유기를 되풀이 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도

아직은 예외가 아니다.

중국의 수백 발의 미사일,

한반도 미군 기지를 향해 배치되어 있고

중국, 러시아 합동공군 훈련이

매년 강화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대치가 심화되지만

이 땅의 정치와 뉴스는 침묵한다.

강대국들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한국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걱정하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한국 국민의 헌법적 권익을 외면하는

한국 정부는 어느 나라 정부인가?

한반도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북한의 미사일은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 말하고,

미국의 핵 선제타격은 사전 협의조차 없이 논의되네.

최소 천만의 사상자가 예고된 전쟁터에서

미국은 오직 자국의 이익만을 외치고,

한국 정부는 침묵의 벽을 쌓고 있다.

오늘날 동해와 서해의 새벽은 고요하지만

오래전부터

전쟁을 예비하고 있다.

군사지도 위에는

성주, 오산, 군산이 붉게 표시되어 있고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누군가는 말하고 있다.

평화를 위한 방패라고.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방패를 겨누는 창끝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

사드가 배치되던 날,

대륙의 미사일은

성주를 겨냥하기 시작했고,

군산과 오산의 좌표는

거대한 전쟁의 표적이 되었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사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강대국의 계산표 위에 적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냉전이후 오산, 군산 활주로에서는

전략폭격기가 밤낮 없이 대기하고,

대륙의 수백 기의 미사일이

호시탐탐 표적을 노려보고 있다.

그러나 신문은 침묵하고,

방송은 설명하지 않아

국민은 무엇이 자신들의 생명을 노리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 채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국민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정권이 바뀌고

대통령은 교체되면서

햇볕도 있었고, 강경대치도 있었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언제나

침묵 속에 미 국익을 위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평화를 말하고 북한의 미사일 시험에는

인류의 위협이라 외치면서,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검토하는 일에는

당사국인 한국과

사전 논의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한다.

평화와 동맹의 의미는 무엇인가.

전쟁이 시작되면

수도권 천만의 삶이 무너지는 것보다

미 국익이 더 중시되는 현실이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는지 더 자세히 살펴보자.

2010년 미 의회 보고서는

군산과 오산은 중국에서 400km로

중국이 겨누고 있는 무기는

탄도미사일 480기와

크루즈 미사일 350기로

일본 가데나 기지를 겨냥한 것의 두 배다.

이런 사실을 군산, 오산 사람들이 알고 있는가.

미국이 군산에 중국 타격용

전략폭격기를 배치했을 때부터

중국이 수백 기의 미사일로 겨눴다.

그 사실이 한국에서

제대로 보도됐는가.

국보법과 한미동맹이라는 틀 때문인가.

그 틀이 오산, 군산 시민의 안위보다

더 중요해서 그런가.

군산과 오산 미군기지가

그곳 한국인보다 더 중요해서 그런가.

한미동맹이라는 국제법이 중요하다면

한국 헌법에 적힌

한국 정부의 국민에 대한 책무,

국민이 전쟁이 아닌

행복을 보장받을 권리는 중요하지 않나.

생각할수록 해괴한 일이다.

2017년 경북 성주에 사드의 경우를 보자.

AN/TPY-2 레이다는

탐지 거리 870km에서 3,000km로

북한 방어용이라고 했다.

그러자 중국이 말했다.

“그것은 중국을 탐지하는 장치로

중국 전역의 무장상태를 정찰,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군사적 조치를 취하고

성주가 미사일 표적이 됐다.

성주 주민들이 시위하면서 길을 막을 때

눈물을 흘렸다.

한국경찰이 주민들의 시위를 막기 위해 동원됐다.

한미동맹으로 발생한 남남갈등이었다.

미군은 뒷짐 지고 바라보며 미소 짓는 모습이 보도됐다.

그 미소에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권리’가 담겨 있었다.

미국이 원하는 무기는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권리로

한국이 거부할 수 없다.

성주 주민들의 운명이 미국의 대중국 전략과

연결된 사실을

성주 주민들은 알고 있는가.

한국 정부는 그것을 주민들에게 설명했는가.

또 다른 사례를 보자.

2026년 미국이 말한다.

한미동맹에 의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의해

대만에서 전쟁이 나면

주한미군이 투입된다.

한국의 동참이 필요하다.

만약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나?

성주가 위험해지고

군산과 오산도 마찬가지다.

그곳 한국 국민이 위험해진다.

한국이 결정한 것인가.

한국이 동의한 것인가.

설마 그럴 리가?

그렇다면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권리에 따른 것인가?.

미국의 한국에 대한 권리 때문에

대만 해협의 미중전쟁이

성주의 사드 기지 미사일 표적과 연결된다.

오산, 군산의 화염과 연결된다.

한반도 주민의 생사와 연결된다.

미국은 그 연결고리를

한국과 협의하지 않아도 된다.

통보해도 되지 않는다.

그것이 조약이 허용하는 것이다.

2023년 미국이 한국 대통령실을 감청해.

비밀문서가 유출됐다고 미 언론이 보도했다..

세계가 알았다.

한국 대통령이 말했다.

“문제없다.”

2023년 용산 미군기지가 반환돼 그곳 토양이

기준치 36배의 오염이 확인됐다.

미국이 정화했는가.

아니다.

한국이 흙을 15cm 덮고

용산어린이 정원을 만들어

어린이와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이재명 정부는 이 오염 투성이 땅에

아파트를 짓겠다고 한다.

한국의 국력은 세계 10위가 됐다.

그러나 한미관계의 구조,

한국의 미국에 대한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가쓰라와 태프트의 밀약은

한 시대의 거래였고,

731부대의 생체실험 자료는

또 하나의 침묵이었다.

죽은 자들의 비명보다

강대국의 전략이

더 중요했던 시대.

정의보다

정보가 값비쌌던 역사.

인간보다

국익이 먼저였던 기록.

그 어두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역사는 묻는다.

국가란 무엇이며,

윤리는 어디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가.

150년.

긴 세월 동안

한반도는

강대국의 항로 위에 놓인 섬이었고,

수많은 선택은

우리 손보다

더 큰 손에서 결정되었다.

개항도,

식민도,

군정도,

전쟁도,

정전도,

동맹도.

모든 시대마다

국익이라는 이름은 반복되었고

민족의 운명은

그 뒤편에서 흔들렸다.

국가는

결코 천사가 아니었다.

힘은

정의를 대신했고,

약자는

역사의 비용을 지불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누군가의 선물이 아니라

거리에서 흘린 피와

광장의 함성과

학생과 노동자의 희생으로 이루어 냈다.

사월의 봄도,

오월의 광주도,

유월의 거리도,

국민이 직접 써 내려간

민주주의의 교과서였다.

경제 또한

땀 흘린 노동자의 손이

공장을 밝히고,

새벽을 견딘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세계 시장을 향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세웠다.

그들의 손등에 맺힌 땀이

오늘의 번영을 키운 강이었다.

역사는 찬양만으로도,

증오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어느 나라도 영원한 천사는 아니며,

어느 나라도 영원한 악마도 아니다.

국제정치는 언제나 이해관계 속에서 움직인다.

그러기에 더욱 우리는

환상을 버리고, 증오도 버리며,

사실을 바라보아야 한다.

기록을 읽고, 문서를 확인하고,

숨겨진 역사를 연구하며,

감정보다 객관을,

선동보다 성찰을 선택해야 한다.

평화는

기도만으로 오지 않는다.

정확한 현실 인식과,

주체적인 외교,

균형 잡힌 안보,

그리고

국민 모두가

역사를 배우려는 용기 위에서만

평화는 오래 머문다.

젊은 세대여.

너희는 열등감의 시대가 아니라

세계와 당당히 경쟁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그러니 어느 나라에도

맹목적으로 기대지 말고,

어느 이념에도

눈을 맡기지 말며,

사실을 사랑하라.

역사를 공부하라.

진실을 두려워하지 말라.

과거를 바로 아는 것이

현재를 지키는 길이며,

현재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미래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더 이상

누군가의 전초기지도,

누군가의 방패도,

누군가의 희생양도 되어서는 안 된다.

압록강의 바람과

한라산의 바람이

같은 하늘 아래 숨 쉬는 날,

동해의 파도와

서해의 물결이

더 이상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날,

그날이야말로

역사가 국익보다 인간을,

대결보다 공존을,

패권보다 평화를 선택한 날이 될 것이다.

그날을 위해

우리는 과거를 잊지 않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한반도의 주인이

역사 앞에 바치는

가장 긴 노래이며 가장 깊은 서약이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북마크
343 2026.08.18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18-BTS의 문화자주 선언과 한미동맹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아, 한반도 남쪽 땅이여!

1948년 정부가 세워진 이래

세계가 경탄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경제는 열 손가락 안에 들고,

군사력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며,

K-컬처는 지구촌을 정복하고

IT 기술과 산업은 세계를 선도한다.

그러나 평화와 전쟁,

미국의 중러를 향한 작전과

대북 선제작전의 범위와 결정은

여전히 미국의 손에 맡겨져 있다.

한미동맹이라는 비대칭의 그늘.

국보법이라는 낡은 쇠사슬 속

양극화 심화,

자살률은 세계 최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

성공과 병리가 한 몸에 엉켜 있는

명암이 극명한

기이하고도 처절한 나라여!

한국은 아직해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완성된 국가가 아니라궁극의 성패가 아리송한

인류사 최초의 실험이 현재 진행형이다.

2026년 7월 29일

BTS가 일곱 명이

동시에 손가락을 움직여

SNS에 같은 문장을 올렸다.

"저희는 올해 그래미에 출품하지 않기로 했다.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일곱 개의 손가락.

하나의 목소리.

그것이 세계를 흔들었다.

AP통신이, 빌보드가,

가디언이, 포브스가 보도했다.

미국이 만든 세계 음악의 성전

그래미.

그 문 앞에서

일곱 명이 등을 돌렸다.

그보다 4개월 전인 3월.

BTS 정규 5집이 나왔다.

제목이 아리랑이었다.

아리랑.

일제 강점기에 울려 퍼졌던 노래.

36년 수탈 속에서

조선 민중이 부른 노래.

분단 70년에도 살아있는 노래.

남과 북이 함께 부른 노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그 이름을 앨범 제목으로 달았다.

2026년에

세계 시장을 향해 치솟아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1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동시 석권.

영어로 부른 노래가 아니었다.

한국어로 부른 노래였다.

그 노래가 세계 정상에 올랐다.

언어는 장벽이 아니었다.

음악은 경계가 없었다.

이어 6월.

레코딩 아카데미가 발표했다.

새 부문을 만든다.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K팝.

J팝.

C팝.

아시아 음악을 묶어서

별도의 칸에 넣겠다는 것이다.

영어로만 된 노래는 후보 자격이 없다.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써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만든 신종 언어였다.

우리는 너희를 메인이 아닌

별도의 칸에 넣겠다.

아시아는 아시아끼리

주류는 우리가.

150년 전 미국이 만든 논리다.

중국인은 중국인 구역에,

흑인은 흑인 학교에

분리하되 평등하다.

그 논리가 2026년 음악 시상 기준에서

다시 살아났다.

BTS는 등을 돌렸다

역대 최고의 앨범을 내고

그래미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아져

수상의 미래가 현실이 될 수 있던 그 문턱에서

일곱 명이 등을 돌렸다.

황금 트로피를 앞에 두고

손을 뻗지 않았다.

왜 인가.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아시아 음악은 아시아 칸에 넣는 그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짜 자주의 모습이다.

이익을 포기하는 용기.

원칙을 지키는 용기.

강자의 논리에 굴하지 않는 용기.

가수 일곱 명이

미국의 음악 권력에게

최초로 당당히 말했다.

"아니오."

BTS가 그날

필리핀 의회가 수십 년 전

미국을 향해 결정한 일을 했다.

규모가 다르고 분야가 다르지만

구조가 같다.

이익을 포기하고 원칙을 선택했다.

강자에게 "아니오"라고 말했다.

1992년

필리핀 민중이

필리핀 수빅 만의 미군 기지에 요구했다.

“나가라.”

100년 가까이 자리 잡았던

동북아 최대의 미군기지 였다.

놀란 미국이 경고했다.

“경제가 무너질 것이다.

안보가 흔들릴 것이다.

너희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필리핀 의회가 결정했다.

“그래도 나가라.”

미군이 떠났다.

필리핀은 살아남았다.

그 용기의 원천은 무엇이었는가.

경제력이 아니었다.

군사력이 아니었다.

국민적 자존심이었다.

주권 의식이었다.

한국에서

한미동맹을 하늘처럼 여기고

주한미군이 영원한 보호자이고

한국이 발전한 것은 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덕이라고 주문처럼 되뇌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은

우연이거나 자연발생적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 심리전을 펴고 있고

집단 세뇌작전을

전개한 결과라 할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국제사회를 살피면

대통령을 제치고 외국군 사령관이

국군을 지휘하거나

외국군에게 점령군 비슷한 권리를 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유일한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

단군 조선 이래

자주국방을 포기한 경우는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을 했던

한반도 남쪽이 유일하다.

이성계를 해외원정 보냈더니

반란군으로 둔갑한 경우처럼

군이란 양날의 칼이라

정치가 군보다 우선하고

외국 주둔군이

점령군처럼 군림하면 안 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이 원칙으로 삼는데

한반도 남쪽은

미군이 대륙 국가들을 상대로

비밀작전을 하면서

무기를 제 맘대로 들여다 놓고

군 기지에

주둔국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만에 하나

그 외국군이 무슨 짓을 어떻게 할지

아무도 몰라

마치 시한폭탄과 같은

측면이 있다는 점을

한국의 정치는

왜

모르고 있는지

참 해괴하고 황당한 일이다.

미국은 자국 이익을 위해

4.3 제주,

5.18 광주에서

한국 민중이 학살당하게

만들었고

오늘날까지

시치미를 떼고 있다.

트럼프가 유럽에서 동맹국 영토를

탐낸다는 욕심을 감추지 않아

해당국가가 당혹, 분노하는데

전략적 유연성이란 날개를 단

주한미군이

향후

한반도에서 자국이익을 위해

무슨 일을 할지

한국 정부는 불안하지도 않나보다.

미중이 대만에서 충돌하면

중국 미사일이 군산, 오산, 평택, 성주

미군기지 등에

날아오게 되어 있다는데

오차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안 생길 리 없고

그렇게 되면?

상상만 해도 아찔한 참극이 일어나도

한국 정치인이나

그 가족 친지들은

무사할까?

미국 영주권을 확보해놓았으니

안심하고 있는 걸까.

살 떨리는

동맹의 현실을 확인하면서

필리핀 미군기지 철수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필리핀은 1986년

피플 파워 시민혁명으로

마르코스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아키노 민주정부 출범 이후

미군 주둔이

주권 회복의 문제로 부각되었다.

수빅만과 클라크 기지는

베트남 전 등에서

전략적 가치가 인정됐기 때문에

미국은 쉽게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수빅만 기지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해외 미군기지로

철수 논의는 경제 불안과

안보 공백 등을 둘러싼 정치적 충돌로 비화 되었다.

필리핀 정부는 미군 철수에 따른

안보·경제 영향을 고려해야 했지만

1991년 필리핀 상원이

미군기지 협정에 대한 연장안을 부결시켜

미군이

계속 주둔할 근거가 사라졌다.

그런 상황에서 클라크 공군기지 인근의

티나푸토 화산이 폭발하자

미군은 철수 준비를 서둘렀고,

반환기지의 폐유와 화학물질 오염 등을

정화하지 않은 채 황급히 떠났다.

필리핀의 피플 파워는 대단했지만

한국 시민도

자랑스런 기록이 있다.

2016년 겨울

촛불이 타올랐다.

박근혜가 탄핵됐다.

2024년 겨울

다시 빛이 광장에서 횃불이 됐다.

윤석열이 탄핵됐다.

8년 안에 두 번

현직 대통령이

시민에 의해 권좌를 떠났다. .

세계 어느 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인가.

아니다.

그 시민들은 무엇을 원했는가.

주권이었다.

내 나라의 주인은 ‘나’라는 것이었다.

권력자가 헌법을 짓밟을 때

시민이 일어서 바로 잡았다.

그 시민들이 BTS를 키우고

그 시민들이 K컬처를 만들었다.

그 시민들이 그래미 보이콧을 주시한다.

같은 정신이다.

촛불과

필리핀 시민과 의회의 보이콧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불꽃이다.

한국의 불꽃에는 경로가 있다.

처음엔 문화에서 타올라

사이 등에 이어

BTS가 주목을 받았고

빌보드를 정복했다.

봉준호가 오스카를 받았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우리 문화는 세계와 대등하다."

그 인식이 퍼졌다.

경제에서 타올랐다.

삼성이 애플과 경쟁하고

현대차가 테슬라와 경쟁한다.

K방산이 나토 회원국에 무기를 판다.

무기의 피해를 엄청 당한 역사라

무기 판매의 어두운 측면이 있지만

"우리 경제는 세계와 대등하다."

그 인식이 퍼졌다.

이제 그 불꽃이 멈칫하는 곳이 있다.

군사·외교다.

미군이 군사적 주권을 대행하는

불편한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아직은 광범위하지 않다.

하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군사적 주권이 없는 현실을

부끄러워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우리 군대를 우리가 지휘해야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대등하게 바꿔야 한다."

"SOFA를 필리핀 수준으로 개정해야 한다."

그 목소리가 아직은 작다.

미국의 실체에 대해 어두운

미맹(美盲)과

국보법이 종북, 이적 행위라며 막고 있다.

그러나 BTS가

그래미에 등을 돌린 날.

그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군사·외교의 불꽃이 번지는 것을

막는 것이 있다.

국보법.

그것이 거친 방어선이다.

문화 자주권이나

경제 자주권을 말하면 국보법은 침묵한다.

그러나 군사 자주권을 말하면

국보법이 살기를 품고 주시한다.

주한미군 비판.

한미동맹 개정.

전작권 즉각 환수.

그 말들이

친북과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을

국보법이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역사는 말한다.

막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일제가 아리랑을 금지했다.

그래도 아리랑은 살아남았다.

이승만이 평화통일을 처벌했다.

그래도 조봉암은 외쳤다.

BTS가 그래미를 거부한다.

누구도 막지 못한다.

문화에서 시작된 불꽃.

경제를 거쳐.

언젠가 군사·외교의 성벽도 녹인다.

미국 언론이

BTS의 그래미 보이콧을

일제히 보도했다.

"차별적 시스템에 던진 강력한 경고."

그 경고를 받은 미국 음악계가

어떻게 반응할지 세계가 지켜본다.

만약 미국이 그래미 시스템을 바꾼다면.

한국 문화 자주권이 승리하게 된다.

만약 미국이 바꾸지 않는다면.

BTS가 새로운

세계 음악 질서를 만든다.

그래미 없이

아시아가 중심이 되는 새 질서를.

세계가 BTS에 열광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누리꾼들이

BTS의 2026 FIFA 월드컵 결승

하프타임 쇼 출연한 것에 황당한 억측을 제기했다.

“한국 정부가 돈을 줬다.

FIFA와 하이브가 유착했다”

근거 없는 음모론과 억측이었다.

K팝의 글로벌 영향력과 빌보드 성적,

한국 문화 콘텐츠의 성공에 대한

경쟁심과 열등감이 연출한

반응이 아니었나.

한국 문화 권력이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BTS의 자주권 발언이

그들에게 위협이 되었던가.

BTS가

그래미의 문을 스스로 닫으며

“서구의 인정을 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그날,

문화선진국 한국의

새로운 얼굴이 드러났다.

그 자신감이 다른 분야로 번져갈 때

과연 어떤 역사가 열릴 것인가.

오늘날 한국은 이미 강하다.

반도체로

첨단세계의 길을 닦고

한류의 노래로 대륙과 대양을 흔든다.

경제·군사·문화

세 기둥 위에 선 선진의 나라.

그러나 군사 주권이

외국군의 손에 들려 있어

국가 체면을 구긴다.

미국의 군사력

한반도 배치가 미국의 권력이고

주한미군이 치외법권적 공간에서

비밀리에

미 본토 수호를 위해

70년간

중국과 소련, 러시아를 향해

정찰, 감시, 군비태세 등의

군사행동을 지속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비밀주의는

한국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으로

금수강산을 개돼지 사육장으로 여기는

강자의 오만과

한국 민주주의의

공간을 짓이기는 문제가 심각하다.

오늘날 중러의 패권다툼 속에

주한미군이

중국에 대한 작전을 확대하는

전략적 유연성의 그림자가

점차 짙어지면서

미국과 중국이 대만에서 군사적으로 충돌하면

한국의 군산, 오산, 평택에 중국의

미사일과 드론이 날라 올 것이라는

공포가 미래의 현실이 되고 있다.

동맹의 비대칭이 깊게 새겨진 땅,

그럼에도 국력은 계속 자라지만

그 과실을 미국이

관세와 대미투자 앞세워

채가려는 날 강도짓을

멈추지 않아 불안하다.

트럼프는

관세를 무기 삼아 협박하면서

미국에 한국 돈 3천 5백억 달러를

10년간 투자하라 강요하고

조선소와 반도체 공장도 미국에 지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한국에서 AI의 불꽃이 타오르고

기술의 창이 하늘을 찌르면서

트럼프가 경제적 약탈의

대상으로 삼으려 세치 혀를 놀리는데

BTS와 같은 담대한

국내 정치협상가는 보이지 않는다.

아, 한반도여!

경제의 탑을 세우고

문화의 물결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나라.

이미 선진의 반열에 올랐는데

아직도 후진국의 저자세가

정치군사외교에 콘크리트처럼 굳어 있다.

21세기를 창조할 자주가 절실한

아쉬움 속에

안타까운 질문이 꼬리를 문다.

한미동맹의 사슬이

아직도 군사정치를 비롯한 사회전반에

예속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걸

세계가 비웃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럴 건가.

국력이 신장해서

AI의 초강대국이 되고

첨단의 힘이 하늘을 찌르는 날을 목표로 삼으면서

필리핀과 나토처럼

미국과 대등한 군사관계로 나아갈

노력은 포기하려는가.

문화의 자부심은

쇠와 불,

지혜의 빛으로 번져나가

주체성으로 꽃필 때

외교와 안보의 영역으로 흘러들어

예속의 틀은 자주의 틀로 바뀌리라.

이미 선진의 반열에 오른 이 땅의

저력이 커질수록

동맹의 형태도 변할 수 있고

더 이상 불가능한 꿈이 아니게 된다.

그렇다.

주변을 둘러보면 확인하게 된다.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BTS를 비롯한 K-문화가

꿈을 실천할 가능성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문화는 이미

세계라는 무대에서 증명했다.

한국의 목소리에

세계가 귀 기울여 듣고 행동한다는 것은

김밥의 경우에서 확인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고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소개되면서 지구촌 음식이 되었다.

워싱턴포스트가 조명했고,

트레이더 조스가 팔았고,

독일과 호주와 남아프리카에

김밥집이 생겨났다.

한 드라마와 에니메이션 영화가

k-음식을 세계화했다.

그렇다면

문화의 목소리가

군사·외교를 외치면 어떨까?

봉준호의 렌즈가,

한강의 문장이,

박진영의 재치가,

싸이의 울림이

BTS의 목소리들이

하나로 모인다면

기적이 생길 것이다.

그래

그렇다.

문화가 외쳐야 한다.

한미동맹의 정상화를.

대등한 동맹을.

주권을 되찾는 동맹을

실천해야 한다.

BTS가 그래미에 말했던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지 않도록."이라는

말은 이제 이렇게 울릴 것이다:

"동맹이 주종으로 구분되지 않도록.

군사주권이 온전히 우리의 것이도록."

K- 스타들이

하나의 깃발을 든다면

문화가 올린 그 당당한 목소리는

세계가 들을 것이다.

빌보드가, 오스카가, 노벨상이 듣고

전 세계 식탁이 김밥을 먹으며

K- 음악과 함께 들을 것이다.

수많은 문화의 손가락이

하나의 목소리로 모이면

그 불꽃은

군사·외교의 영역까지

당당히 환하게 빛나게 할 것이다.

세계가 사랑하는

아티스트들이 외치는

"대등한 동맹"과 "주권의 정상화"는

워싱턴의 의사당을 흔들고,

글로벌 시민들의 양심에 불을 지피며,

지구촌 뜨거운 공론의 장으로 번져갈 것이다.

문화로 세계의 마음을 얻었듯이,

그 문화의 이름으로

진정한 자존과 평화를 실천하면서

마침내 완벽한 주권과

당당한 평화의 열매로 결실 맺으리라

그러나 세상사는

흔히 깔딱 고개가 존재하듯

문화적 저력의 강화가 곧장 동맹주권의

회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반도의 분단 상태 속에

북한의 핵과 미국의 핵이

군사 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거친 숨을 쉬고,

미·중 패권의 거대한 파도는

한반도를 완충지대로 남아있으라 외친다.

한국의 저력이 커질수록

미국은 동맹의

하부 구조로 더 묶으려 하고

중국은 더 날카롭게 견제할 수 있다.

국내의 일부 기득권 세력,

검은 머리 미국인 또한

동맹의 비대칭을 자산으로 삼아온

오랜 관성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정치가 심하다.

여의도 정치무대의

3백 명 국민 머슴 가운데

자주라는 공론의 장에

관심을 갖는 ㄴㅗㅁ은

거의 보이지 않아 절망적이다.

그들은 국회의원의 특권에 취해

도끼자루 썩는 지

바닷물이 말라버리는지

제 후손들이

비자주의 덫에 걸려

신음 할지 여부에

도무지 관심이 없다.

서글프고 분통 터지는 일이다.

그들은 한미동맹 최우선,

국보법 지속이라는 주문을 외며

당 내외 권력 투쟁에

날 밤을 지 샐 뿐이다.

빛의 혁명 덕에 집권한

현 정권은

1년 만에 실시된

당대표 선거를 놓고

그 진영 안에서

‘필패론’이 나오고

그 와중에

윤어게인을 청산치 못한

내란 동조당은

기사 회생하는

삼류극이 진행되지만

누구도 동맹 정상화나

빛의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완성이라는

당위성엔 입을 닫고 있다.

오늘날 여권 진영의 두 패거리는

그 밥에 그 나물이지만

한 쪽 행태는

강남좌파 체질로

노무현이 당선이후 여당 탈당 뒤

1년을 허송세월한 것과 닮아 있다.

개혁은 집권 초 1년 안에 결행해야 한다는

공식도

발밑 권력 다툼에 마취되어 까먹은 것이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여권에서 대장동 사건을 터뜨린 것도

좁은 패거리논리의 노예라는

고질병의 발로가 아닌가.

분단 기생의 틀에 갇혀

대소, 흑백을 구분 못하는 체질은

한미동맹 문제에 눈을 감고

대북 정책에서 역대정권과

대동 소이하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이런 상황에서 불에

기름을 붓는 짓을 하고 나선 자가 있으니

그가 국회의장이다.

그는

개헌해서 현직 대통령 연임을 시사하는

초등학생도 손가락질할

발언을 했다가

사과하는 등 백해무익한

소란을 피우는 지경이니

집권 세력에서 진정한 개혁이 나올

가능성은 캄캄 한 밤중이다.

하지만

악취 진동하는

여의도

패거리들의 야합은 가히 프로급이다.

거대 두 당이

카메라 앞에서는

서로 죽일 듯 난리 치지만

공동의 이익을 놓고는

굳게 손을 잡는다.

그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다.

두 거대 정당은

2019년

다당제를 기반으로 한

정상적인 민주국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이 제도를 만들어놓은 뒤

군소정당 진출을 막기 위해

짝퉁정당을 만들어

소수당 등장에 제동을 건 것은

민주주의와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대표적 작태의 하나인데

국회의장은 물론

대통령 등은 이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현재 여의도에서

세비를 타 잡수시는 의원가운데

거대 여야당과 짝퉁정당 의원들의 자질은

다 도토리 키 재기 식으로

그만그만해서 전혀 기대를 할 수 없는

형편이라 할 것이다.

어허 화가 나고 서글프다.

절망감에 현기증이 일고

다리에 힘이 빠진다.

하지만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예감해야 한다.

그래서

이 지점에서 다시 새겨야 할

교훈이 있다.

전체 정치 집단의

한심한 모습에서

확인되는 교훈이다.

문화와 과학, 경제의 자신감은

국력 상승의 가능성일 뿐,

그것을 자주적 선택 능력으로 바꾸는 것은

시민사회와

정치, 언론, 학계 등 전 구성원의

총체적인 결단과 합의에 달려 있다.

바로 이것이다.

평범한 공식이지만

현실과 먼 나라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진다.

정치의 추락이 너무 자심해서다.

2026년

여의도 정치 머슴들은 명심해야 한다.

2017, 2025년

시민 사회가 두 대통령을 탄핵 시키는

저력을 발휘했고

오늘날

침묵하는 것 같지만

호랑이 눈으로

정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일까

이 나라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

문화와 경제 등이 세계 정상으로

치달으면서

자주와 민주에 관심이 없는

집단은 점차 그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고 머잖아

그곳도

정상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정의의 편인 것은

역사의 흐름 속에

너무도 확실하니까 말이다.

아, 한국이여!

이미 세계의 무대에 선 나라여.

BTS가 앞장서

문화의 주체성을 선언했 듯이

경제와 기술의 힘도

머지않아 같은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밝은 미래의 진정한 승리는

더 큰 힘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 힘으로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을 되찾는 데 있다.

예속의 사슬을 끊고

세계 평화를 위해

우리만의 독창적인 길을 여는 날

자주라는 태양이

찬란히 빛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BTS가 되어

자주 탈환에 앞장서는

책무를 다 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를 후손에 물려주자.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북마크
477 2026.08.15
창작정원 고승우 연재 17-‘광주 반도체’와 한미동맹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아, 한반도의 남쪽 하늘이여.

광주와 군산 미공군기지가

한미동맹을 앞세워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가로막는다.

미국의

사전 동의 없이

한국 정부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이재명 정부가

광주를 인공지능 메카로 지정하면서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청사진을 내놓았으나

광주미공군기지의 기득권을 앞세운

미국이 외친다.

“미군의 사전 동의 없이 착공은 안 된다.”

광주미공군기지는 유사시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에서 출발한 군사력이

한국 땅에 옮겨지는 전략 요충으로

한 때

미군의 전술핵무기가 배치되었던 곳으로

SOFA 규정에 의해

한국 정부의 AI 산업단지 조기 착공 앞에

한미 협의와

미 측의 ‘중요한 군사적 이해관계’가

필수 관문으로 가로막고 있다.

군산과 새만금에서는

미국의

중국을 겨냥한 전략기지 역할이 우선이라며

몇 년 전

주한미군이

민간 국제공항의 희망을 좌절시켰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가

미군기지와 시설 제공, 운영의 권리로 작용하며

한국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제약했다.

이 두 기지는 단지 두드러진 사례일 뿐

한미 두 나라가 한국국민 모르게

비 공개리에 처리한 사례가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

한미동맹 속에 감춰진 심각한 문제는

조약과 협정이 헌법을 짓밟는

위헌의 구조이며

민족의 자주를 옥죄는 멍에가 되고 있으나

한국 정부는

국민에게 그런 점을 자세히

설명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국토의 효율적 이용은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직결되어 있지만

한미동맹에 의해

미국의 사전 동의 없이 불가능한 상태다.

광주, 군산과 새만금에서 그것이 확인되고 있다.

국가 주권이 동맹의 이름으로

좌절되거나 백지화되는 것이다.

필리핀, NATO 회원국은

미군기지 사용 및 국토 관리 측면에서

모두 미국과의 협정을 통해

방식 등을 정하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 주권이 제약이 가장 심각하다.

기지와 국토 관리 측면에서

미국의 입김은

한국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미군이 슈퍼 갑이 되어 있어

한국정부가

추진하는 국토 계획에

한미동맹이 결정적 제약으로 작용한다.

한국의 경우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SOFA에 따라 미군에게 기지의

무상·무기한 사용과 반환 결정권이

미국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SOFA 제4조 및 제2조에 따라

한국 정부는 미군에게

부지와 시설을 무상으로 무기한 제공한다.

SOFA 제4조 1항에 따라

미군은 부지 반환 시

원상복구 의무 및 보상 의무가 없다.

이로 인해 용산기지 등 반환 과정에서

환경오염 정화 등에서

미국은 나 몰라라 하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주한미군기지 반환에 관한 결정권도

실질적으로는 미국이 쥐고 있어,

한국 정부가 국토 개발을 위해

반환을 요구해도 미국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8월 5일

주한미군이 사용하던 공여지의 반환이

장기간 지연되고 있는 데 대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라며

한미 간 협상 상황을 점검하고

조속 반환 추진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외교부·통일부·국방부·국가보훈부 업무보고에서

우리 정부가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

평택 미군기지를 조성했음에도

기존 부지의 반환이 늦어지는

상황을 지적하며 향후 유사한 협상에서는

비용 부담과 이행 절차를 보다

면밀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

이에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공여지 반환 문제와 관련해

"미군이 소극적"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그래서 선불로 주면 안 된다"며

"국가 간 신뢰라고 하는 것 때문에

당연히 믿었겠지만,

원래 좀 안 지켜오지 않았느냐.

평택 기지 짓는데 10조원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보기엔 거의 핑계에 가까운데

이런저런 이유로 안 넘겨주고,

뭔가 하나씩 걸어놓고 못 쓰게 하면 문제 아니냐"고 지적했다.

미군 공여지 반환은

주한미군 재배치 사업과 맞물려

20년 넘게 이어져 온 한미 간 현안이다.

그렇다면 다른 외국도 다 그런가?

그렇지 않다.

필리핀, 일본, 나토 회원국이

미국과 맺고 있는 군사관계를 살펴보면

한미동맹의 비합리적, 후진적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먼저 필리핀의 경우를 보자.

필리핀에서 미군의 기지 사용은

필리핀이 동의하는 지역에 한하고

기지 사용료의 경우

과거에는 유상 조건이었다가

'현금 임대료' 대신 미국의 '투자와 원조'를

제공 받는 방식으로 바꿨다.

필리핀은 과거에는 강한 주권 행사로

클라크 공군기지 및

수빅만 해군기지에서

미군철수를 관철했으나,

2014년에 체결한 방위협력확대협정(EDCA)를

통해 '미군 기지의 창설'이 아닌

'필리핀 군 기지 내

지정 구역에 대한

접근 및 공동 사용'을 원칙으로 삼았다.

미군은 필리핀에서

영구 주둔이 아닌 순환 배치 형식이며,

필리핀에 임대료를 지불하는 대신

미군이 해당 기지 시설을 현대화(투자)하고

인도적 지원 및 군사 원조를

제공하는 구조다.

미군이 필리핀에서 사용 가능한 기지는

2023년 5개에서 9개로 추가되었다.

일본은 주일미군에 대해

완전한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과 비교하면

일본 정부의 행정권과 협의권이

강하게 작동하는 분야가 적지 않다.

일본 정부는 원칙적으로

자국 영토에 반입되는

무기에 대해

주권을 주장하며

미군이 일본에 핵무기를 반입하거나

전투부대를 대폭 증강하거나

기지의 중요한 운용을 변경하는 경우

사전협의를 하도록

미일 안보조약 관련 문서에 규정되어 있다.

반면 한국의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핵무기나 주요 무기 반입에 관한

사전협의

규정이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

주일미군이 일본 기지를 이용하여

해외 군사작전을 수행할 경우,

일본 정부와 긴밀한

정치적 협의를 하는 것이 관행이다.

일본이 법적으로

미국의 모든 작전을 거부할 권한이 있지는 않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상당하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미군에 대한 통제가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NATO 회원국들은

다자간 협정인 NATO SOFA 덕분에

상대적으로 주권을 더 많이 행사하며

기지 문제를 관리하고 있다.

NATO SOFA는 20개 이상의 회원국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틀로,

주둔국의 권리가 비교적 강하게 보장되어 있다.

미군 주둔국은

자국 영토 내 미군기지에 대한

소유권을 유지하는 등

주권을 한국에 비해 훨씬 많이 행사한다.

외국에서 미군의 위상이 어떤지를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과 큰 차이가 있다.

이런 점을 전제로

광주, 군산의 경우를 자세히 짚어보자.

광주미공군기지는

최근 이재명 정부가 광주 군공항(K-57) 부지를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로 선정하면서

관심사로 떠올랐다.

해당 기지가 한미동맹에 의해

한미 공군 공동운영기지(COB) 이자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적용 대상으로

미국과의

사전 협의 및 동의가 필수적인 것으로

한국정부가 밝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원하는

'반도체 클러스터 조기 착공'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미군의

군사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대체 기지 인프라 마련과

SOFA 협의가 진행될 전망이다.

미국은 이 기지의 군사적 중요성을

주한 미7공군 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광주기지는 중요한 군사적 이해관계가 있다.

오늘 밤 당장 싸울 수 있는(Ready to Fight Tonight) 태세를

갖추기 위해 연합방위태세의 공백이

절대 발생해서는 안 된다."

이런 공식 발언은

미국이

단순한 수동적 협의자가 아닌,

적극적 이해당사자로서 법적 절차에 따라

협상에 임할 것임을 시사한다.

광주기지는

한반도 남서부의 전략적 거점으로,

중국 및 러시아와 가까운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미군이 전략적 이유로 이전에 대해

법적 협의권(SOFA),

군사적 요구조건(대비태세 유지),

절차적 통제권(COB 재지정)을

모두 행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부지 일부가 SOFA에 따라

미군에 공여된 상태이므로,

부지용도 변경이나 반환은 반드시

SOFA 협의를 거쳐야하고

현재 COB로 지정된 광주기지를

해제하거나 대체 기지를 지정하려면

한미 간 공식 재지정 협의가 필요하다.”

“대체 기지는 전시 긴급 사용권이 보장되어

유사시 미 항공전력의

첫 기착지 역할을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

한국정부의 광주 AI 산업단지 조성과 관련해

추상적으로 밝힌

광주 미공군기지의 기능을 살피면

살 떨릴 만큼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광주미공군기지는

미국의 본토 수호를 최우선하는

글로벌 핵전략(SIOP, OPLAN) 및

동북아 전략의 일부인

한반도 방어 작전계획과

긴밀하게 연계된 핵심 전략기지로,

유사시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에서

무기와 군대가 한국으로 이송되는

첫 관문이라는 지리적·군사적 중요성을 지녔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은 1957년경부터

이 기지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1991년 한반도 내 모든 미국 핵무기가

철수할 때까지 핵 저장고 역할을 했다.

1980년 광주항쟁 당시

카터 대통령이

신군부의 광주무력진압을 승인한 것은

이 기지의 핵무기 보호차원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후

시행한 글로벌 핵전략(SIOP, OPLAN)가운데

SIOP은

냉전 시기 미국의 모든 전략 핵무기를 통합한

포괄적인 핵전쟁 계획이었고

OPLAN은 2003년 이후의

후속 전략으로

OPLAN 8044, OPLAN 8010 등으로

발전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광주기지는 이 계획에 편입되어,

냉전기간 동안

미 본토를 위협하는

중국, 소련, 러시아에 대한

핵 억제 및 대응 전략의 일부를 담당해

전술핵무기가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배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지가 군사분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와

가깝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었다.

유엔사 후방기지는

한반도 유사시 군사력 증원 및 군수 지원을

총괄하고 광주기지는

이 유엔사 후방기지의 지원 체계와 연결되어,

일본 등지에서 한반도로 전개되는

군수 물자와 병력의

첫 번째 주요 기착지 중 하나다.

한편 군산 미군기지는 몇 년 전

전북도가 추진한 새만금 국제공항을

좌초시킨 바 있는데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에 의해

국토의 효율적 이용이 제약을 받은

대표적 사례의 하나다.

전라북도와 군산시는 2009년

새만금 지역에 대한 해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미군기지와 활주로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군산공항에

국제선을 취항시키는 방안을 추진했는데

미군 측은

이를 '기지 보안'을 이유로 거부했다.

제8전투비행단 사령관이었던

제리 해리스 대령은 당시

미국 군사전문지 '성조지'와의 인터뷰에서

보안 우려가 있다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테러범이 (국제선에) 탑승할 경우에 대한 우려가 있다. ...

국제선 승객들은 입국 심사를 거치지 않았고,

한국 정부가 그들(승객)이 누군지 확신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군산공항의 국제선 취항은 불발되었고,

국내선(제주 노선 등)만 운항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한국 정부는

새만금 국제공항을 만들기로 하고

기존 군산공항 활주로에서

약 1.3km 떨어진 부지에

2,500m 규모 활주로와 여객터미널을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을 때

주한미군은 찬성의견을 밝히면서

신공항 설계에

미군기지 활주로 연결(유도로)이나

관제권 등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반영시키는 등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및 일부 전문가들은

신공항이 미군기지와 인접해

통합 관제 체계 및 미군 공역 통제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든 구조이며

두 공항 간 유도로 연결 가능성,

비상시 미군 전력의 활용 가능성 등을

이유로 이 사업이 사실상

'주한미군 기지의 확장

또는

제2활주로 확보' 역할을 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반발을 제기하고 있다.

새만금 신공항은 현재 환경단체 및

시민 소송인단이 제기한 '기본계획 취소 소송'에서

1심 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며

법적 제동이 걸렸다.

법원은 조류 충돌(Bird strike) 위험성 부실 평가,

인근 서천갯벌 등

생태계 영향 저감 대책 미비 등을 지적했다.

새만금 국제공항 문제는

한미동맹을 이유로

군산 미군기지의 군사적 목적이 우선시 되면서

한국 내 국토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헌법적 자주권이 훼손된 사례의 하나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이는 군산 미군기지의 특수성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군산 미군기지는

중국과 거리가 가장 가까운 미군부대로

1970년대 이래 중국 타격을 목적으로 한

전략적 임무 수행을 하고 있다.

그 결과 군산 미군기지는

중국의 경계대상이었으며

2010년 중국군의 미사일 수백 여기가

군산기지를 향해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미국 정부가 밝힌 바 있다.

이런 상태에서 벌어진 새만금 신공항 문제에 대해

국내 대중매체는

군산 미 공군 기지에 얽힌 군사적 측면은 쏙 빼놓은 채

남한 정부와 시민단체만의

갈등과 진실공방만을 중계 방송하고 있다.

최근 미중 두 나라가 대만을 무대로

군사적 힘겨루기를 하고 있고

미국은 대만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이 즉각 투입될 것을 공언하고 있어

미중 군사적 충돌 발생 시

군산 지역 일대가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점에서 군산미공군기지가

냉전시대 이래 지속하고 있는 역할을 살펴보기로 한다.

군산미공군기지는

한반도 서해안 최전방에 위치한

미 공군 제8전투비행단의 모기지로,

냉전 시기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글로벌 전략(SIOP/OPLAN) 수행의 핵심 거점이다.

이 기지는 전시에

한미 연합공중작전을 수행하는 핵심 기지로,

OPLAN 5027 등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한 다양한 작전계획을 지원하면서

정기적인 군수 및 폭탄 적재 훈련을 통해

대북 OPLAN 실행 능력을 지속적으로 검증하고 있다.

특히 그 지리적 중요성 때문에

이 기지는 24시간 대기태세를 유지하며

미 본토 수호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전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군산미군기지는

1958년 한반도에 핵무기가 처음 도입된 이후

중국을 타격할 핵 탑재 폭격기가

활주로에서 24시간, 365일 대기했다.

이러한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져,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할 경우,

군산 기지의 전투기들은

단 8분 만에 출격할 수 있는

비상대기(QRA)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군산미군기지는 종종

"창끝의 끝(Tip of the Spear)" 이자

"마지막 전사 기지(Last of the Warrior Bases)" 로 불리며,

언제든지 전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철저한 준비 태세를 갖춘 최전방 기지다.

이는 역내 미군 전략의 핵심 축인

대중·대러 억지 전략의 최전선에 서 있으며

대북 억지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70년대 당시 군산기지에는

B-61 전술핵폭탄이 배치되었으며,

일부 자료에서는

1.1메가톤급 Mark 28 열핵폭탄을

장착한 전폭기가 주둔했던 것으로도 언급되고 있다.

군산미군기지는

국내 주한미군의 핵무기 저장기지 중

하나로 1991년까지

핵무기 저장 및 투하 능력에 대한

인증을 보유했던 것으로 기록되었다.

지금까지 한미동맹 속의

광주와 군산을 살펴보았다.

광주에 반도체를 심겠다는

한국정부의 약속 앞에

미공군기지의 활주 위에 버티고 있는

한미동맹이 입을 열었다.

“전쟁이 나면 일본 유엔사 후방기지에서

날아오는 전투부대와

무기가 운반되는 자리로

미국은 중요한 이해관계가 있다.”

정부는 협의를 시작했다고 말했고

모두가 광주를 주시하고 있다.

군산의 앞바다도

비슷한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전라북도 경제 발전을 위한

국제공항의 청사진이

주한미군 사령관의 말로 백지화되었다가

중국을 겨냥한

미군 활주로를 보완하는 식으로

건설되려한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한미동맹 속에 침묵하는

광주와 군산은

헌법 제120조 제2항을 기억하고 있다.

"국토와 자원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그 균형 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

균형 있는 개발이란

모든 지역이 고루 번영하고,

국토의 구석구석이

차별 없이 이용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미군기지

부지의 활용이

한국 정부의 계획이 아니라

한미동맹을 앞세운

미국의 필요에 의하여 좌우된다면

균형이라는 말은

기지의 담장 밖에서 산산조각 나는 것이다.

광주 군공항의 부지를

반도체 클러스터로 쓰겠다는

국가의 계획이

미군의 "중요한 이해관계"라는 말 한마디에

멈칫 하고

새만금 국제공항 개념이

미군 기지의 보안을 이유로

제한되고, 미군 전략에 맞춰져 변형되었다는

의구심이 사실이라면

헌법 제120조가 선언한

국가의 국토 계획 수립 권한은

폐기처분해야 하는가.

광주와 군산, 새만금의 사례가

이 조항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국토는 국민의 것이고,

그 이용 계획은

국민의 대표가 세워야 한다.

균형 있는 개발은

자주권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국 최고의 법이 규정한

"균형 있는 개발"의 이상이

동맹의 담장 앞에서 무력해지는

현실을 필리핀과 비교해보자.

필리핀은 주둔이 아닌

방문 형태의 미군의 기지를

필리핀 부대 내에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니

자국 국토 이용이 타국의 요구에 의하여

좌우될 여지가 100% 없는 나라다.

광주, 군산에 적용되어야 할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한

헌법 제120조가

외국 군대의 담장 앞에서 허물어져 내리는

근원은

1953년에 맺어진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은 상호방위를 위해 한국 영토 안과 그 부근에

육·해·공군을 배치할 권리를 가진다.”

이 한 문장이

한국 땅에 대한 미국의 권리를

한국 국민의 권리보다 위에 놓았다.

미국의 군사력 한국 배치를

미국의 권리로 규정한

이 조약 제4조의 부속협정인 SOFA는

그 모법의 불평등한 취지에 맞추어

미국이 슈퍼 갑, 한국은 을인 조건의

심각하게 불리한 내용들로

주한미군이 치외법권적 지위로

실질적인 점령군의 위상으로 군림하면서

광주, 군산에 적용할 헌법조차

무력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1953년의 냉전 유산이

21세기 주권국가의 헌법을

조용히, 그러나 철저히 침해하고 있다.

일본과 필리핀의

안보조약 등과 비교하라.

그곳에서는 자국 영토 사용에 엄격한 통제가 있고,

기지 설치의 주도권이

주권국에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미국이 원하는 경우 제공하게 되어 있다.

전국에 산재한 미군기지가

국토의 균형 있는 개발을 가로막는 이유가

바로 이 조항의 불평등함에 있다.

헌법 제120조가

외국 군대의 담장 앞에서 질식한다면

헌법 제66조 제2항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는

설자리를 잃는다.

독립이란 타국의 간섭 없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며,

스스로의 땅을

스스로의 의지로 쓰는 것이고

영토의 보전은

한 치의 땅도

타국의 통제에 맡기지 않겠다는

국가의 의지다.

그러나 다수의 미군기지가

전국에 산재하여,

그 기지의 담장 안에서

한국의 주권이 미치지 못한다면

헌법 제66조 제2항은

외국군 담장 밖에서만 통용되는

조건부의 선언에 불과하다.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대통령이 지키겠다고 맹세한 그 헌법이

조약의 문장에 의하여

구멍이 뚫린다면,

그 수호의 책무는

어떻게 이행되는가.

이재명 대통령은

주한미군기지 문제 등에

대해 국민의 정치 머슴으로서

더 깊이 있게

그리고 상황을 개선하는

식의 국정을 펼쳐야 할 것이다.

한국이 미국과 동등한 주권국가로서

동맹국 미국과 동등하지 않다는 구조를

정부가 침묵한다면 그것은

국민 기만적 행태라는 비판을 자초한다.

영토의 보전은

단순한 물리적 방어가 아니다.

국토를 자주적으로 이용하고,

국민의 안전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권의 실현이다.

조약이 이를 가로막는다면

그것은 헌법 수호의 실패다.

국가가 수호해야 할 ,

영토의 보전이

외국군 담장에 의하여 단절되고,

헌법의 명령이 조약의 문장에 의하여 유예되는

현실은

헌법 제10조가 울부짖게 만든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 조항은 인간 존엄성, 행복 추구권,

국가의 기본권 보장 의무를 선언한

기본권 보장의 핵심 조항이다.

헌법 제10조는 교과서 속 활자가 아니라

광주의 기지에도, 군산의 항구에도,

농촌의 논에도, 도시의 골목에도

살아 숨 쉬는 국민의 권리다.

그런데 국민이 원하는 국토 개발,

이용 계획이 국민의 의사만으로

결정되지 못한다면

국민은 묻는다.

행복을 설계하는 권리는 누구의 것인가.

국토의 미래를 그리는 붓은 누가 쥐고 있는가.

헌법 제37조는 외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적혀 있지 않다는 이유로

가볍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

국민은 질문할 자유가 있다.

동맹을 존중하면서도

개정을 말할 자유가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말할 자유가 있다.

조약을 토론할 자유가 있다.

민주주의는 질문을 두려워하는

순간 뒷걸음치고

침묵을 강요하는 순간 생명력을 잃는다.

헌법은 국가에게 명령한다.

국민을 보호하라고.

국민의 권리를 확인하라고.

만약 동맹과 조약이

다른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는

헌법을 동맹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다.

헌법은 국민이 만든 약속이다.

조약은 국가가 맺은 약속이다.

국민의 약속과 국가의 약속이

서로 손을 잡을 때

평화는 더욱 단단해진다.

그 손이 서로를 억누르기 시작하면

국민은 다시 묻는다.

주권은 어디에 있는가.

국토는 누구의 것인가.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광주의 활주로는

아직도 하늘을 향해 누워 있다.

군산의 바다는

아직도 밀물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보다 더 오래

대한민국의 헌법은 국민을 향해

한 문장을 반복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하여 존재한다.

조약은 평화를 위하여 존재한다.

어떤 조약도 어떤 권력도

어떤 동맹도 국민 위에

존재할 수는 없다고

헌법은

오늘도 천둥보다 깊은 울림으로

끝없이 묻고 있다.

국가의 주권이 남의 손에 가 있으면

국제적 수치를 낳고,

국민의 알권리를 훼손한다.

정부는 지난 70 여 년간

미국과 동등한 주권국가로서의

위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멀쩡한 정부인 것처럼

국민을 기만하는 행태를 반복했다.

국방예산 세계 10위권,

무기 수입 세계 최상위권의 나라가

미 대통령의 지휘를 받아

미 본토 수호 작전을 최우선시하는

주한미군에

실질적으로 종속되어 있다.

북한의

위협을 들먹인다 해도

헌법이 동맹에 의해 뒤로 밀리는

비정상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자주는

진정한 안보의 전제조건이다.

21세기 한국은 헌법을 지키는

대장정을 시작해야 한다.

조약의 그늘에 밀려나 있는

헌법의 빛을 되찾아야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의 ‘권리’와

SOFA를 정상화하며,

기지 역할과 국토 이용의 우선순위를

국민의 뜻으로 결정할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은 헌법적 책무를,

국가는 국민에 대한 의무를

온전히 이행하라.

광주와 군산의 활주로는

단지 하나의 사례일 뿐.

동맹이 갑, 헌법이 을인

구조를 끊지 않으면

또 다른 기지가,

또 다른 국토가

외세의 이해에 종속될 것이다.

자주의 깃발을 높이 들고

헌법이 명한 주권국가로 나아가자.

조약이 헌법을 이길 수 없다는

상식을,

국민의 권리가 외세의 권리보다

위대하다는

진실을 실천해야 한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고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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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 2026.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