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 실린 것은 사람뿐이 아니었다
배에 실린 것은 사람뿐이 아니었다
군사학 수업에서 처음 배운 '전술적 철수(Tactical Withdrawal)'라는 단어는, 수십 년이 지난 후 내 가슴을 울렸던 '인류애(Humanity)'라는 단어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나는 흥남철수작전을 그저 지도를 펼쳐놓고 병력과 물자를 계산하는 냉철한 '철수작전의 성공적 사례'로만 배웠다. 메러디스 빅토리호(Meredith Victory)라는 작은 배가 군수물자를 바다에 버리고 피난민 14,000명을 태웠다는 이야기는 전술 교본에는 맞지 않는 '특이한 결정'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그 시절의 나는 전쟁과 군사작전을 이론적으로, 그리고 지극히 이성적으로만 이해했던 것 같다. 군사 교리가 시키는 차가운 임무와, 인류의 역사가 기억하는 뜨거운 용기는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해 있었다. 그 배에 실린 이들이 느꼈을 생사의 공포와 절박한 희망까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젊었고, 인생의 고단함과 슬픔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살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작전이 단순한 군사적 후퇴가 아니라, 인류애의 위대한 상징이라는 사실은 오랫동안 나의 인식 밖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단지 '성공적인 철수율'이라는 숫자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임관 후 소령 계급을 달고 육군본부에서 근무하던 중, 워크숍 일정으로 거제도를 방문하게 되었다. 흥남철수작전을 처음 접했던 기억은 이미 오래전 일이었지만, 거제도 앞바다를 보는 순간 그 배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드넓고 차가운 해수면은 그날의 수많은 목소리를 삼킨 채 고요했다.
이제 나는 한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피난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군사적 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놓고 떠나는 것', 내가 사랑하는 가족의 절박한 생존이었다. 내 가족이 저 배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부모가 자식을 잃지 않으려 업고, 아내가 남편을 부르짖으며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려 했던 그 수많은 사연들이 한순간 머릿속을 덮쳤다.
차가운 군사지도에는 표시되지 않는, 가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한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는 뜨거운 의지가 해수면 아래에서 밀려왔다. 이론과 숫자 뒤에 숨겨져 있던 그들의 절규가 비로소 귀에 들리는 듯했다.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진짜 전쟁의 기록은 총과 포탄이 아닌, 헤어짐과 기다림, 그리고 절박함이 남긴 눈물로 쓰인다는 것을. 거제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전쟁의 가장 깊고 인간적인 층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작전이 특별했던 이유는 단지 많은 인원을 태웠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죽음을 피해 떠났고,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던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다섯 명의 아기가 그 배 위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전율했다. 바다 위, 좁디좁은 공간에서, 수천 명이 서 있는 틈 사이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는 것. 사람들은 죽음을 피해 배에 올랐지만, 배 위에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경이로운 아이러니였다.
미군들은 그 아기들에게 김치원, 투, 쓰리, 포, 파이브 같은 기발한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언어도, 문화도 다르지만, 인간의 생명을 향한 본질적인 애정은 국경과 이념을 넘는 것이었다. 그 아기들은 지금 모두 성인이 되어 그날의 유대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생애 가장 극적인 순간에 함께 태어난 인연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가족처럼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존재는 그 작전이 단지 철수가 아닌, 인류애가 승리한 배였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자꾸만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명백히 '군수물자 수송'이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을 것이다. 그것을 차가운 바다에 버리고 타국 사람들을 태운다는 결정은 일개 선장이 질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책임이자 규율 위반이었다. 눈앞의 임무와 배후의 책임, 그리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국 사람들의 절규 사이에서 그는 얼마나 긴 밤을 고뇌했을까.
그가 짊어진 군수물자는 수많은 전력을 의미했지만, 라루 선장은 그 차가운 쇠붙이의 무게보다 14,000명의 생명이 지닌 뜨겁고 절박한 무게가 훨씬 더 무겁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 결단은 명령 체계를 거스르는 것이었고, 그의 경력과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인류애라는 나침반을 따랐다.
그는 군인이기 전에, 그리고 명령을 이행하는 선장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생명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를 따른 것이다. 그의 배는 이후 '작은 배에 가장 많은 인원을 태운 기적의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지만, 나는 그 기록보다 더 위대한 것이 라루 선장의 용기와 신념, 즉 '사람을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결정한 한 사람의 윤리적 잣대였다고 믿는다. 만약 그가 '규정대로'만 행동했다면, 흥남철수는 그저 기록 한 줄로만 남았을, 무수히 많은 작전 중 하나로 묻혔을 것이다.
라루 선장의 결단은 '상관의 명령보다 양심의 명령을 더 두려워했다'는 성찰과도 맞닿아 있다. 라루 선장은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옳음'의 목소리를 따른 것이다. 이 결단은 군인의 '칼'과 인간의 '십자가'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피난민들은 배에서 내려 각자의 삶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누군가는 가족을 잃은 채 홀로 남았고, 누군가는 낯선 땅에서 전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어릴 때 어른들이 "이북에서 온 분들은 정말 억척스러워"라고 말하곤 했다. 당시엔 단순한 성격으로만 들었지만, 이제 그것이 절박함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들의 '생존 근육'이었음을 안다.
그들은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고, 절약하며 자녀 교육에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대부분은 경제적으로도 자리 잡았고, 사회적으로도 높은 위치에 오른 이들이 많다. 척박한 땅에서도 기어이 뿌리를 내린 그들의 삶은, 절망의 끝에서 인간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였다. 그들의 억척스러움은 곧 끈기와 성실함으로 이어졌고, 이는 전후 한국 사회가 기적적인 성장을 이루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절망을 딛고 일어선 그들의 후손들은 지금 이 땅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전쟁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그 아이러니한 시련 속에서 그들은 가장 강인한 삶의 의지를 단련해낸 것이다.
이제 전쟁을 단순히 지도 위의 작전 선으로만 볼 수 없다. 그 선 너머에는 헤어진 가족, 생사의 갈림길에 선 아이, 그리고 이름 없이 스러져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원히 숨 쉬고 있다. 흥남철수작전은 나에게 작전의 성공보다 더 큰 것을 가르쳐주었다. 바로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다는 '인간 연대의 힘'이다.
나는 군인으로서 평화를 준비하며 동시에 이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막고자 간절히 소망한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지속되지만, 인간이 인간을 버리지 않는 한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흥남철수작전이 바로 그 증거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단지 물자와 사람을 실어 나른 배가 아니었다. 두려움과 절망, 그 속에서 피어난 생존과 탄생, 그리고 인간이 인간을 버리지 않는 한 꺾이지 않을 인류애라는 거대한 짐이 함께 실려 있었다.
군인의 칼이 '전술적 철수'를 명했을 때, 레너드 라루 선장은 인간의 십자가를 짊어지기로 결단했다. 그의 배는 전후 세대가 잊지 말아야 할 윤리적 나침반이다.
강용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