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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 노염(老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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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희

작성일시2025.09.05

조회수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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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 노염(老炎)

권준희

구월의 늦더위는 인생의 축복

팔월 태풍 밀어낸 들판 위

쭉정이 벗은 이삭들 살찌우며

올게심니* 묶음이 마을 기둥을 세운다

장맛비에 넘친 둑

뿌리째 떠내려간 벼와 수수, 조

물 빠진 논밭엔

숨 가쁜 줄기 몇 가닥만 남아 있다

아침 저녁 찬이슬 맺히건만

한낮은 여전히 불의 기세

철 지난 노염의 기염 속에서

늘어진 이삭들이 다시 고개를 든다

벼와 수수, 조 이삭이 패고

고구마를 캐고 녹두를 털어

송편 속엔 청태콩과 밤이 가득

가을은 제 얼굴을 드러낸다

노염처럼 노년을 살아내리

이삭 패고 열매 맺혀

남김없이 건네주리라

구월의 늦더위는 인생의 축복이다

*올게심니-민속 추석이나 중양절을 전후하여 벼, 수수, 조 따위의 이삭을 묶어

방문이나 기둥 따위에 걸어두는 풍습. 또는 그 벼, 수수, 조 따위의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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