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겨울호 2024년 12월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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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이 지나서인지 전동차는 한적했다. L화일에서 교정할 원고를 꺼냈다. 오른팔이 옆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옆자리의 어르신은 직각으로 벌린 다리 사리에 지팡이를 세우고 앉아 있었다. 내 자리의 3분의 1 정도는 이미 점거한 터라 원고를 펼치기에도 불편했다. 비어 있는 경로석을 두고도 일반석에 앉은 것까지는 뭐할 수 없으나. 내 집 마루인 양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은 어르신의 좌석 점거는 불편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그가 내 원고를 힐끗 넘겨보았다. 교정을 포기했다. 다행스럽게 다음 역에서 나의 왼편 좌석에 앉았던 이가 하차했다. 때는 이때다 싶어 엉덩이를 왼쪽으로 밀어 어르신과의 거리두기에 성공했다. 그것만으로 행복지수가 빠르게 상승했다.
신길역에 다다랐다. 다른 어르신이 오른쪽 빈자리에 앉았다. 지팡이를 세우고 앉은 어르신의 자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듯, 어디까지 가시는지 물었다. 편의상 지팡이를 세우고 앉은 분은 1번 어르신, 후발주자로 내 옆에 앉은 이는 2번 어르신으로 칭하련다. 1번 어르신이 열차의 종점까지 간다고 하자, 2번 어르신이 거긴‘연천역’인데 군 시절 그곳에 근무했는지 물었다. 1번 어르신은 대답이 없었다. 연천까지 지하철이 개통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곳에는 무슨 볼일이 있는지 재차 물었다. 그들과 나란히 앉은 내게, 큰 소리로 주고받는 그들의 대화는 필요 이상으로 잘 들렸다.
1번 어르신은 슬그머니 말문을 열었다. 자신이 승차한 역에서 연천까지 65개 역을 지나야 하는데, 내리면 열두 시라 점심 한 그릇 먹기에 알맞다고 했다. 2번 어르신은 연천에 볼 일이 있는지 집요하게 물었으나 그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일로 그 먼 곳까지 가시냐고 서너 번 물었다. 집요했다. 1번 어르신은 그제서야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집에서 일찌거니 나와 점심 먹고 느지막이 들어가야 며느리 눈치 덜 봐유. 집에서 전철역이 가까우니 얼마나 좋소. 얼마 전에 연천까지 연장되어 교통비 안 들이고 긴 하루 보내기엔 안성맞춤이유.”
그의 대답에 2번 어르신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무언가 위로가 될 만한 말을 찾은 것일까.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동행할 만한 친구는 없는지 질문을 이어갔다. 1번 어르신은 친한 친구는 오래 전 먼저 떠났으며, 이 나이에 누군가를 만날 일도 없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지하철 순례길에 오른 어르신이 오죽 심심했으면 옆자리에 앉은 나의 활자를 엿보았을까. 나는근래모든상황에대해“그럴수있어”라는 줏대없는 판단을 내리곤 한다. 1번 어르신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스멀스멀 번졌다.
나는 종로3가에서 하차했다. 그의 긴 여정은 절반쯤이라도 온 것일까. 그의 내일은 또 어떤 일상으로 채워질지, 해답 없는 질문을 삼켰다. 6번 출구를 찾아 나가는 길이었다. 역사의 지하 통로에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이 내건 배너의 빨간 고딕체의 안내문이 버티고 있었다.
‘무임 수송 재정 적자 1조 8천억 원, 이제는 국회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노령 인구 증가 문제에 직면하게 되자, 철도공사와 지자체의 적자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노인 무임 승차에 대한 경고였다. 그의 무상 유람도 사회의 눈총을 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