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4월 6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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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첫 계단에 이르면 셔츠를 막 널어 놓은 냄새가 나지
잔물결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헤엄쳐 가
계단을 내려가다가 땅이 푹 꺼져 있거나
내리막이 있거나 마지막 계단에 다다르기 전에
길이 보이지 않아
울타리를 넘어가거나 통나무를 넘어가거나
나무들은 뒤엉켜 있고
풀넝쿨 사이로 구불구불 걸어가고 있어
그날 저녁
나는 길에 떨어졌어
늘 다니던 안전한 길이었지
나뭇잎으로 뒤덮힌 물웅덩이에 처박혀서
밤이 이슥하도록 헤어나오질 못했어
셔츠를 막 널어 놓은 냄새가 나는 저녁
나는 길에 홀렸어
묶여 있던 다리가 풀어져서
순식간에 개울물에 휩쓸렸어
어둠이 어깨에 걸리도록 발버둥치고 있었어
나는 일어서지 못했어
붙잡고 있는 것은 내 마음일까 물웅덩이일까
다리는 물에 묶여서 달아나려 하고
나를 버리려는 다리를 놓아주지도 못하고
마음은 웅덩이에 뿌리를 내리려 하고
그날 저녁은
길에 이르지도 못하고
강에 이르지도 못하고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