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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70호 그 밤의 불면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밤은 길었고, 잠은 오지 않았다.뒤척이는 이불 사이로 새어 들어온 달빛이창백한 얼굴을 비췄다. 까만 천장을 향해뜬눈으로 밤하늘을 헤매던 기억이 떠올랐다.그날 밤, 불면증은 단순한 잠 못 이루는 밤을 넘어,깊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었다.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질문들이 떠올랐다.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언제 도달할 것인가

  • 홍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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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70호 제승당(制勝堂)의노래

어스름한 달빛 아래미끄러져 들어오는 장수선숨소리 죽이며 운주당(運籌堂)*에 밀집통제사 대장군의 계책을 수령하고죽음으로 충성을 약속하며선봉장으로 활과 칼을 잡는다본진을 한산도로 옮김은호남이 우리 땅의 울타리이니이 문이 무너지면 나라가 없어짐이니바닷길을 가로막을 계책을 세웠음이라**이 몸으로 전진 배치하여나라의 주인을 지키려 이 목숨이 하나라오십 년 적송은 판

  • 주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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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70호 판타날(Pantanal)

세계 최대 습지야생의 낙원 지구의 허파‘세렝게티 판타날’제 몸보다 큰 악어를 사냥하고 원주민‘소’도 사냥하는 재규어*생존 터,“재규어도 멸종 위기 원주민도 멸종 위기, 그러니 함께 살아가야지”초연한 웃음 너머로 전이되는마지막 남은 원주민 노부(老父)의 무한 긍정은생사(生死) 늪 건넌 자 여유였을까도시 그림자로 배회하다가 

  • 박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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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70호 눈물방울

눈은 사방에 있고 보기도 하고 싹을틔우고 눈물을 흘리기도천리안도 있고 근시안도 있고 감은 눈도있고희로애락에는 어김없이 눈물방울이 따르고 우리 마음은 눈을 창으로 하고보는 눈에 따라 그 마음도 천차만별혼돈의 세상 활개치는 불의에는혜안이 필요하고눈을 가리고 어물쩍 눈 감고 못 본 척모르는 척하는 눈은 아니어야 할 것이 아닌지악어의 눈물이라도 있는지눈물

  • 류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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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70호 절반의 허세

포항 죽도시장물 좋은 바다를 사려고 지갑을 연다큼직한 아귀 세 마리가 한 무더기날카로운 이빨파도를 싹둑 잘라먹던 기세로죽도시장에서 버티고 있다몸의 절반이 입이다저 큰 입으로 얼마나 많은 바다를 삼켰을까 끈적끈적한 점액질 파도를 토해내고 있다거무죽죽한 험상궂은 아귀가 찢어진 눈으로모여든 사람들을 쏘아본다아귀야너를 알고 있다무른 속살에 물렁뼈

  • 김선희(안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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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70호 는개비* 편린

안개도 아닌 것이 이슬비도 아닌 것이창문마다 재우고 숨겨버린 하얀 길아랫집 사나운 개도 고요 속에 잠잠하다없는 길 잘도 찾아 조용조용 오시는청보라 재킷 여민 하얀 스웨터 눈부셔잔잔한 눈매 지긋이 엷은 미소 평온하다솜사탕 결을 따라 보송보송 오는 이오 오 보고 싶었노라 몹시도 그리웠노라보드란 품 와락 안겨 폭신하게 녹아들어하이얀 두 가슴이 뭉글뭉글 피어나고사

  • 진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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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70호 꿈과 추억을 품은 밥솥

꿈과 추억을 품은 밥솥이 있다. 1978년 9월, 미주 이민 생활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와 함께 동행하고 있는 밥솥이다.하얀색 5인용 전기밥솥이다. 밥을 한 뒤에 그대로 두면 보온도 되었다. 성능이 좋던 전기밥솥이 이제는 고장이 나서 전기로는 요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래도 소중한 나의 삶의 동반자이기에, 전기 코드는 망가졌어도 스토브 위에 올려놓고

  • 정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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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70호 첼로 음색은 사람과 비슷하다나요

음악회는 성황리에 끝났다. 나는 꽃을 들고 그녀가 나올 대기실 앞에 서 있었다. 드디어 검은 드레스에 틀어 올린 머리를 하고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나왔다. 마치 연주 생활 30여 년 한 관록의 연주자처럼 보였다. 의사와 변호사로 성공한 아들 두 명이 그녀의 양옆에 섰다.세상을 다 가진 자의 표정을 안 봐서 모르겠는데 아마도 그녀의 환하디 환한 필러 맞은 이

  • 김두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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