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6월 6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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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 4일 그해 겨울
붉은 완장이 무서워 도망쳐 나오다
아홉 살 내가 돌아서서
산 너머 우리 동네 불바다 바라보고
나 그때 벌 벌 벌 떨었습니다
불타는 아픔보다 더 아픈
피비린내가 토해놓은 아픔
먹구름에 묻혀 산 넘어오는 아우성
그 소리가 왜 그렇게 무섭던지
나 그때 달 달 달 떨었습니다
나무기둥 붙잡고 숨죽여 우는데
그때 그 붉은 완장이
그때 그 붉은 피비린내가
그때 그 붉은 아우성이
왜 그리 무섭던지
황해도 토종 사시나무 긴 잎파랑이가
이빨 달 달 달 부딪치며
나보다 훨씬 더 덜 덜 덜 떨었습니다
구월산 기슭 그림 같은 우리 집
금방 갈 줄 알고 대문도 잠그지 않았는데
죽기 전에 한 번 가보고 싶어
팔십둘 낡은 심장이 지금도 파르르 떨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