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을 기다리던 아이는하얗게 피어나는 꽃잎을살포시 눈망울에 담았지 담장 너머 휘어진 가지마다주렁주렁 매달린 살구골목길을 굴러달콤한 향기를 퍼뜨린다 치마폭에 담긴 노란 살구알소녀의 숨결까지 익어가던 여름 소낙비에 젖어디딤돌 틈에 점점이 굴러가던살구 몇 알 달큰한 향기 속에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그 여름
- 이명순(인천)
봄꽃을 기다리던 아이는하얗게 피어나는 꽃잎을살포시 눈망울에 담았지 담장 너머 휘어진 가지마다주렁주렁 매달린 살구골목길을 굴러달콤한 향기를 퍼뜨린다 치마폭에 담긴 노란 살구알소녀의 숨결까지 익어가던 여름 소낙비에 젖어디딤돌 틈에 점점이 굴러가던살구 몇 알 달큰한 향기 속에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그 여름
봄은 변함없이 왔는데우린 강물처럼 흘렀고추억은 봄꽃처럼 물결에 어리네 아침엔 갑장의 발인을 보고점심엔 벗의 생일을 축하하니삶과 죽음이 한 곳에 있구나 사랑하고 만지고 느끼는지금 이 순간이 축복인걸말해 무엇하리 함박꽃처럼 웃으며이 햇살처럼 눈부시게물 그림자같은 그리움으로 우리그렇게 살자평화롭고 순하게 그렇게
표정 잃은 운무의 낯빛새파란 불안이 내린다 해묵은 번민을 털어내고 있는 정갈한 허공에는 물고기 한 마리 올라와 산다등짝에는 범패를 업고 왜 갈등의 안쪽은별볼일 없는 기대에 불붙는지 까칠한 미래가 휘청일 때죽비처럼 미망을 때리는가 너를 향한,찌를 듯한 눈빛 내려놓으려 찾은 곳묵은 전각 옆 고목은 나를 향해 휘어지고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샘솟는 봄의 설레임도짙푸른 녹음도뜨거운 태양볕도이젠 사그라들고사색의 계절이 다가왔다고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노오란 은행잎과빠알간 단풍잎이 빛을 더하고 풍요의 상징벼이삭이 고개 숙이면배추와 무를 심는 농부의 손길이 더욱 분주해지는데풍년을 약속하는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줄
따가운 햇살 아래군사를 불러 세워호루라기 불며 지시한다 보름 전 세운 작전부족한 군사 먼 전방에서파견 나온 지원병국수한그릇말아주고 오늘의 작전구백 평 들판에 늘어선양파 무리를 소탕하는 일언제든지 호루라기만 불면전투에 나설 만반의 자세로 배급을 받는다 정수리에 햇빛의 총알 쏟아지고 땀으로 온몸 젖은 오후
첫눈이 폭설처럼 내렸다당신의 부재도 마흔아홉 번째눈처럼 쌓이고 있었다 “엄마가 주는 마지막 돈이야”언니 손에서 건네받은 작은 봉투 학창 시절 수업료 봉투 하나가기억 너머에서 다시 손에 쥐어졌다 여름의 모서리들이 붉게 타들어 가면당신은 그 계절을 담아 빈 살림을 채우곤 했다 찬밥으로 허기를 달래던 밭고랑의 오후 붉
청설모 노닌 흔적 풋 먼지로 희미해지고 봄날 오후 산그림자 고요한 숲으로아무래도 나는 영산홍을 보러 가야겠다 나란히 갈래줄 짓는 오솔길 따라붉은 정색 저고리 여미는 여인들이여 나를 이끄는 손길 따라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에서 사월을 보내야겠다
찻잔 움켜쥔 푸른 산맥을 본다 나는 백두대간 속 대한 사람 동란에 깊은 산속 숨어 지낸할아버지 혈맥이 푸르게 이어져 솟았는가 두 손 모아 찻잔 감싸면양쪽 푸른 산맥이 불끈 일어선다 이쪽과 저쪽 사이죽은 강물 같은 커피 비워내며꽃사슴 푸른 산맥 오갈 수 있기를 산허리 박힌 가시 뽑히기를 울룩불룩 솟은 혈맥
빈 종이 펼쳐지니먹빛 한 점 없어도마음은 가득 차네 침묵이 웅장하여보이지 않는 그림이가슴에 펼쳐지네 무한한 여백 속에새로운 세계 피어나아름다움 넘치네.
늘 하늘이 내려다보았겠으나나는 내려다보지 않고 걷던 길아무렇지도 않게 제 안전만 생각하며땅을 시끄럽게 하는 데 익숙한 발이겸손하게 맨발로 걸어보기로 했다발 아래를 찬찬히 내려다보며 걷는다평소 아주 무시하고 지나쳤을 세상낮게 엎드려 걸어가는 작은 생명들 보이고작은 돌조각 사소한 이파리며 가지들 보인다 사소한 것들이 불편하게 발을 만난다귀를 기울이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