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월 6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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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는 신기한 힘이 있다. 서로에 대한 불만으로 싸우던 가족들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만큼은 단체 웃음이라는 작품을 빚어내니까. 먹은 후엔 힘내서 또 싸울지라도. 그 음식이 우리 친정에서는 김치만두다.
부모님은 당신들과 종신토록 함께할 큰오빠가 십 대에 가출하자 여섯 오빠 중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됐던 다섯째 오빠에게 의지하셨다. 따라서 그의 위치는 그가 십 대 때부터 부모님과 동급이었고, 우리들은 그게 이상하지 않았다. 쇠죽 쑤는 아궁이에 불 때는 일에서, 고구마 심고 고추 따는 밭일에서 늘 그만 제외되는 것에도.
위 네 명의 오빠들은 차례로 결혼해서 집을 나갔고, 다섯째 오빠가 결혼을 해서 당연하게 생각해오던 것처럼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위의 네 올케언니들 생각은 달랐다. 자기들은 살기 힘든데 다섯째 오빠 내외만 부모님과 함께 사는 덕에 누리고만 산다고 생각했다. 장사 수완 좋아 돈주머니 차고 기세등등한 어머니에게 눌려 그 불만을 바로 표출하지는 못했지만.
일자리가 많지 않던 그 시절, 위의 네 오빠들은 문밖 세상의 거친 바람을 버거워했다. 자신들의 자식들이 태어나면서 그들의 경제 형편은 더 어려워졌고, 그것은 가족 간의 불화로 이어졌다. 만두가 붙으면 터져버리듯 네 올케언니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대가족이 모이면 다툼이 일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올케언니가 부모님과 함께 사는 다섯째 오빠만 싸고도는 어머니를 향해 불공평하다며 그제야 말 폭탄을 날렸고, 아직은 기가 팔팔하신 어머니는 그 말을 핵폭탄급으로 받아쳤다. 또 다른 올케언니는 다섯째 오빠 내외를 향해서 질투 가득한 마음의 화살을 쏘아댔고, 그 화살을 눈치챈 다섯째 올케언니는 자기들이 나가서 살 테니 불만인 사람이 들어와 부모님과 살라고 응수했다.
그래도 명절이면 대가족이 다 모였고, 구정엔 각자의 집에서 만두를 빚어서 가지고 왔다. 이러니저러니 화가 나 있는 가족들의 마음이 일치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같이 둘러앉아 만두를 먹을 때다. 그 시간은 누가 누구를 탓할 겨를이 없다. 가족 모두가 음식 중 김치만두를 가장 좋아하므로. 그 시간만큼은 모두가 행복한 가족이 되었다. 이 집 만두는 너무 싱겁다, 저 집 만두는 못생겨서 손만두가 아니라 발만두네 품평하면서. 오늘은 또 누구의 지뢰밭에서 폭탄이 터질까 걱정하면서도 만두를 먹을 때만큼은 나도 그 염려를 잊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둘째 오빠의 틀니를 해주고 싶다며 나에게 둘째 오빠 집에 동행을 원하셨다. 남편이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어머니와 함께 오빠 집을 찾아갔다. 큰오빠 내외가 부모님보다 먼저 세상을 뜬 후 둘째 오빠 내외는 자연히 맏자식 위치에 서게 됐고, 올케언니는 형편이 어려워도 맏며느리라는 자존심을 강하게 장착하고 있던 터였다.
오빠 집에 도착하니 올케언니는 어머니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도 만두를 빚어 놓고 있었다. 나는 배고프던 차에 만두가 반가워 허겁지겁 먹었다. 그때만큼은 성깔 사나운 언니의 눈치를 보는 것도 잊었다. 배불리 먹고 나니 그제야 언니가 무서워졌다.
식사가 끝난 후 어머니가 운을 떼셨다. 오빠 틀니를 해주고 싶다고. 어머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언니는 이웃집 누군가가 틀니를 하고 나서 죽었다고, 그거 위험해서 함부로 할 게 아니더라고 대답했다. '됐다!'는 거절의 뜻이었다. 여기에 오기 전부터 거절의 답을 들을 것 같아 불안해하던 어머니는 언니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틀니 한 사람이 다 죽더냐고.
올케언니는 “그 개새끼 부모 재산 다 말아 먹구!” 소리쳤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다섯째 오빠를 향해 쏘는 총이었다. 그때 그녀는 이미 나에게 ‘애기씨’라고 부르며 부엌에서 고추부각을 튀겨 내주던 신혼의 새언니가 아니었다. 생활고로 악만 남은 그녀에게 이젠 애기씨고 시어머니고 없었다.
“니 집을 또 오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며 벌떡 일어나 그녀의 집을 나서는 어머니의 팔과 목이 떨렸다. 세월 앞에 장사 있던가. 어머니의 몸도 많이 쇠잔해져 있음을 느꼈다.
“오지 마세요, 오지 마세요오! 오지 마시라구요오오….”
지르는 언니의 고함이 멀어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올랐다.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이런 꼴 보여주려고 같이 오자 했냐고 어머니에게 고함쳤고, 어머니는 누가 이럴 줄 알았느냐고 풀이 죽어 대답했다. 엄마는 싸움 대장이냐고, 엄마는 왜 이렇게 가는 곳마다 싸움판만 만드느냐고, 날더러 어디 같이 가잔 말 다시는 하지 말라고, 가족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다며 내가 울부짖었다.
어머니가 여든여섯 연세에 세상을 뜨셨다. 어머니의 과보호로 녹록지 않은 세상길을 스스로 걸어가는 힘을 키우지 못했던 다섯째 오빠는 유일한 수입원이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의 집안 경제에 들어온 빨간불에 당황했다. 그는 형제들에게 부모님 모신 공덕을 빌미로 손을 벌렸다. 그 과정에서 형제들과 마찰이 잦아졌고, 급기야 그가 한 형제에게 수모를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렇게 소란을 몰고 다니던 그도 어머니 떠나시고 칠 년 후 세상을 떴다. 그를 땅에 묻은 자리에서 그의 아내는 목 끝까지 차올라 있던 욕을 가족들에게 퍼부었다. 그리고 자신은 억울하다며 몸부림쳤고, 장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먼 길 떠나는 오빠를 애도하는 시간을 빼앗긴 형제들은 각자 헤어져 오래 앓았다.
얼마가 흘렀을까. 여섯째인 막내오빠가 “우리 이제 일어나 모이자.”라고 깃발을 흔들었다. 우리들은 힘겹게 일어나 그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모여앉아 달그락달그락 만두를 빚었다.
이젠 만두 먹고 불끈 힘이 나더라도 아무도 큰소리 내지 않는다. 대신 노래를 부른다. 혹여 우리들 중 누군가가 가족이라면 진저리가 난다고, 가족 다시는 안 만난다고 공언한대도 그가 누구든 만두 때문에 어디로 도망도 못 간다. 우리는 만두로 하나 된 만두가족이니까. 여러 종류의 재료들이 한 장의 만두피 속에서 똘똘 뭉쳐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