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월 6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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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을 공부해오던 문우들과 도쿄로 3박 4일 문학기행을 떠났다.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라 설렘이 가득했던지 우리 일행은 네 시간 전에 공항에서 만났다. 단체 관광에서 재미있고 유익한 여행이 되기 위해서는 동행인 간의 배려와 유능하고 친절한 가이드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가이드와 동반하는 여행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일본 나리타공항에 도착했지만, 안내판을 들고 마중 나와야 할 가이드가 보이지 않는다. 여러 명이 모여있어 우리 팀일 것 같아 가보았더니, 가이드는 그냥 의자에 앉아 있다.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이 다 나왔다는 판단을 내린 건지, 가느다란 깃봉에 돼지처럼 생긴 작은 인형이 매달린 깃대를 들더니 앞장서 간다. 이전의 여행 같으면 가이드가 먼저 간단한 소개나 인사를 한 다음 따라오라고 할 텐데, 아무런 말이 없다. 첫인상은 친절하지도 않고 업무적인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박○○’이라고 소개한 뒤, 일본에서의 가이드 호칭에 대해 설명한다. 관광지에서 자기를 부를 때 ‘가이드님’이라고 하면 주변에 있는 모든 가이드가 돌아본다며, 앞으로는 ‘박짱’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 ‘짱’이라고 불릴 만큼 미인이나 카리스마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후 우리는 박짱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진을 촬영하는 관계로 운전석 뒤 가이드 맞은편에 앉았는데, 1시간 이상 긴 이동시간에도 일본의 풍속이나 방문할 관광지를 십여 분 정도 소개하고는 자리에 앉는다.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하는지 살짝 고개를 돌려 보았더니, 졸고 있기가 일쑤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물어볼 수 없고 성의 있게 답변해 주는 것도 아니라 단답형이다. ‘여행 끝난 뒤에 여행사에 불만을 제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동 중에 신상에 관해 물어보았더니 내일 이야기해 주겠다고 한다. 그냥 간단히 알려주면 될 텐데 왜 뜸을 들일까? 무슨 사연이 있을까, 갑자기 궁금증이 더해진다.
이튿날 요코하마와 하코네 여행을 마치고 도쿄로 들어오면서 3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기자, 박짱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한 살에 부모가 이혼해서 천안 시골에서 농사짓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래에서 자랐다고 한다. 아홉 살쯤에 친구들은 모두 엄마라고 하는데, 자기는 왜 할머니라고 불러야 할까 하여 할머니에게 “다른 애들처럼 나도 엄마라고 부르면 안 돼요?”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며 울컥한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엄마를 불러보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찡해온다. 버스에 탄 모든 사람이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선생님이 모두 눈을 감으라고 한 후 부모가 이혼한 사람은 손을 들으라고 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짧은 순간에 손을 들까 말까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며 ‘개별 면담을 통해 물어보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어 선생님을 원망하기도 했단다. 다행히 2학년 때는 담임선생님의 주선으로 중소기업 사장님이 주는 장학생에 선정되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인복이 있어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과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만 좋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한 번도 돈을 벌어온 적이 없었으며, 오랜만에 집에 들어와서 할아버지에게 돈을 받아 나가면 한참 후 술 마시고 들어와 행패 부리던 기억뿐이었다. 그러다 결국 일찍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에도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장학금을 주며 챙겨 주던 아저씨의 강권으로 누워 있는 아버지를 뵈었지만,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아 응어리로 남았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멍해진다.
박짱은 일본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대학 졸업 후, 아는 언니의 소개로 가이드를 시작했다. 첫 안내를 나갔는데 길을 잘못 들어 한 시간가량 늦어서 손님으로부터 큰소리로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이후 너무 떨려 말이 나오지 않아서 식당도 찾지 못해 헤매다가, 식당에 전화해서 마중을 좀 나와달라고 사정하기도 했단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뒤 여행 마지막 날, 작별 인사를 하자 “박짱이 그동안 열심히 했고, 또 우리에게 많은 웃음을 주었지 않았느냐”며 격려해 주었단다. 하지만 이분들이 돌아가서 틀림없이 회사에 불만을 제기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무사히 넘어갔다고 하여 또 박수가 터졌다.
이 사건이 있고 난 뒤 심리적으로 너무 위축되어 회사에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예약된 세 건이 남았는데 배상을 해야 한다고 하여 이것만 하고 마치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이드 일에 매력이 느껴져 아직도 하고 있단다. 어려서부터 많은 어려움과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꿋꿋하게 잘 견뎌온 박짱을 위해 우리 일행은 세 번째로 큰 박수를 보냈다.
진솔한 인생 사연을 듣고 난 후부터 그동안 탐탁지 않았던 박짱의 행동이 점점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관광지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끝내고 자리에 앉아 졸고 있어도 어제 저녁 우리를 챙기느라 피곤해서 그런 모양이다 싶었다. 식당에서 손님들의 식사와 추가로 주문하는 주류나 고기를 챙기느라 밥도 조급히 먹어야 하는 모습에 딸의 얼굴이 떠올라 안쓰럽기도 했다. 시간이 촉박하여 사진만 찍고 되돌아와야 할 때도, 우리가 협조를 잘 하지 못해서 그랬구나 하며 이해하였다. 질문에 단답형으로 대답한다든지, 관광지에 도착한 다음 조금 설명한 후 몇 시까지 어디로 모이라고 하는 등 좀 성의가 없어 보여도,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 시간과 재량권을 주기 위해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기간에 여권을 분실하여 영사관까지 달려가기도 하고, 여권과 고급 우의를 호텔에 두고 오기도 했지만, 모두 박짱의 노력과 기지로 잘 해결하고 재미있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역시 짱이었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쉬다가 다시 일을 시작했단다. 가이드를 하면서 어려웠던 지난날을 잘 헤쳐온 것처럼, 앞으로 맞이하는 손님에게 더 좋은 안내를 기대한다.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을 때는 38세의 미혼이 아니라, 좋은 남편을 만나 자식과 함께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여 할머니 밑에서 자랐던 아픈 기억을 생각해서라도, 태어나는 자식에게는 최고로 큰 박수를 받는 멋진 엄마가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