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월 6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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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나무 시인, 나무 박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듣기 좋은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얄팍한 지식으로 함부로 나무에 대해 해석하고 재단하는 것만 같아 나무들에게 미안하다. 지상의 모든 나무에게 정말이지 미안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나무’에 대해‘나무와 나’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며 그 생각을 바탕으로 시를 쓰고 있다.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나무를 보고 있으면 나무는 결코 하나의 개체로 서 있는 물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무들이란 같은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기도 하고 우리가 미처 모른 채 살아가는 우리들의 속살이기도 하다. 수백 년을 함께 살아오는 동안 나무와 우리는 그리고 우리와 나무는 어지간히도 서로 닮아 왔다. 그래서 나무가 간직한 아픔은 곧 우리 삶의 아픔이었고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서 있는 저 나무는 곧 우리가 찾아 헤맸던 아름다움이고 진실이기도 했다. 나 역시 그러했다. 내가 시를 쓰기로 한 날 사실 난 내 마음속에 한 그루 詩라는 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한 편의 시를 쓰는 일과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일은 결코 다르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청년기에 나는 많이 방황했고 일탈했다. 암울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때로 절망해야 했고 고민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부터 나는 생업이나 전공보다도 글쓰기에 집착하고 있었다. 문학작품만 읽고 있었고 음악만 듣고 있었다. 오직 그것들만이 위안일 수 있었다. 그렇게 30여 년을 아웃사이더로 지내야 했다. 덕분에 등단도 늦었다. 지금은 다른 문학지에서 시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1998년 그때는『문학 창조』가 제정하고 운영하고 있었던 제1회‘한하운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나는 비로소 제도권 문단에 발 딛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어릴 적 천변에 많은 나무를 심으셨다. 넉넉한 세월에 아름으로도 안을 수 없을 만큼 나무들이 자랐을 때, 아버지는 어느새 나무 우듬지에 까치집이 되어 계셨다. 덕분에 나는 나무와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시절 내게 나무는 모든 기억의 탐색과 사무침이었고 전부였다.
1969년 후반이었다. 문학 서클을 결성하고 동인 활동을 하였다. 지금도 가끔 들여다보는 그때 습작 시절 당시의 스냅사진이 몇 컷이 남아 있다. 덕분에 몇 년도 등단했다보다는 1970년대 초부터 문학활동을 했노라며 애써 변명하기도 한다.
모더니즘 이전의 시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습작부터 지금까지 내 작품의 소재도 나무, 숲, 풀, 산 등이 주조를 이룬다. 한 시절 사랑이었던 아버지의 고독한 나무를 통하여 아픔과 슬픔을 내 시에 심기가 한결 만만했던 까닭도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무를 만났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까닭이기도 하다. 나무와 풀과 꽃이라야 나는 비로소 세상에 대해 침착하게 다가설 수 있었고 맑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마침 그것을 알아본 분이 문덕수 선생님이셨다. 문단 늦깎이이었던 내게 선생님은 2002년 어느날 무려 5개월간 계속해서 월간『詩文學』지에「풀꽃도 그냥 피지 않는다」를 발표하게 하셨다. 심지어 다음 해인 2003년에는 나무를 주제로 쓴 산문형식의 시「나무의 명상」을 6개월 동안 연재하게 하셨다.
그리고 2006년도에 나무라는 하나의 테마로 동양적 사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순수성과 독창성을 높이 평가받아 번역 작품으로 추천받았다. 프랑스 L’Harmattan社에서 불어로『Contemplations de l’arbre』 를 발간한다. 지금도 문득 떠오르는 문덕수 선생의 글이 있다. 나를 향한 그분의 애틋한 성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정유준 시인은 <나무>를 주제로 단순한 서정시의 관념을 일탈하고 세련미가 깃든 산문기법으로 자칫 반감시킬 수 있는 시적 대상을 인식적 방법과 독특한 이미지 화법으로 새롭게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치열한 시대를 살아가는 생성과 소멸의 경계에서 이 시집이 눈길을 끄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정유준 시인은 1970년대 초 동인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문단에 얼굴이 알려진 늦깎이 시인이다. 그럼에도 한국시단이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상상력이 풍부하면서도 정밀하게 사물을 표현하는 언어 감각이 탁월하고 자연을 주제로 발표한 시집들이 유려한 문체를 바탕으로 선이 굵으면서도 전혀 흐트러짐 없는 자연 정신을 높이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나무와 시와 사람 사이의 경계를 허물면서 시를 써 오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나무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살아왔다. 어쩌면 사람보다 먼저 이 땅에 자리 잡고 살았을 나무들의 내력, 생장의 방법, 기후의 조건, 잎의 모양, 수형의 특성, 목질의 쓰임새 등은 그래서 사람을 인간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경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세심하게 관찰했고 시어(詩語)로 차용했다.
덕택에 나의 시는 때로 향기로웠다. 그때마다 나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에는 화성시 전곡리 물푸레나무를 답사했다. 물푸레나무는 쓰임새가 많아 일찌감치 사람 손에 잘려 나가기 때문에 큰 나무로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 파주시 적성면 무건리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물푸레나무가 있지만 출입이 통제된 군부대 사격장 가운데 있어서 몇 번을 찾아갔으나 헛걸음을 쳤다.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물푸레나무도 300년 이상 오연하게 세월의 풍상을 견디어 온 명목(名木)이다. 저런 큰 나무는 저마다 세월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사람의 손길을 피해 깊은 곳에 홀로 살아온 물푸레나무에서는 신령스러운 기운마저 느껴진다, 마치 목신(木神)처럼. 너그럽고도 기품이 있다. 멀리서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런 노거수를 보면 나는 나무가 무슨 은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을까 귀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그 얘기들을 어떤 문장으로 어떻게 받아 쓸까 하는 충동이 이내 뒤를 잇는다.
팔을 한껏 펼치고 있는 나무의 하늘은 넓다 못해 깊어서 어지럽습니다
굽어진 어깨를 살펴보니 겹겹이 쌓인 서랍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발꿈치를 들고 가만히 첫 번째 서랍을 열어봅니다 삼백년 묵은 구름의 향기가 살풋이 몰려나옵니다 두 번째 서랍을 열어 봅니다 얼마나 오래 묵었는지 알 수 없는 마른 꽃의 향기가 나를 비틀거리게 합니다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집니다 다시 세 번째 서랍을 열어 봅니다 오래 묵은 빗물에 서는 향기가 아니라 나무의 슬픔이 어른거립니다 그 일렁이는 무늬에 가만히 손을 댑니다 구름의 산책길에 바람이 굽이치는 동구 밖에 마냥 짖어대는 검둥이 집까지 이리저리 끌려 다닙니다 네 번째 서랍, 다섯 번째 서랍, 여섯 번째 서랍, 어느덧 어둠이 내려옵니다 서랍은 끝이 없습니다.
—「지금도 물푸레나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