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월 6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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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시인은 1954년 6월 25일 광주시 광산군 하남면 진곡리 245번지(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에서 농부이자 목수였던 학전양반의 셋째아들로 태어나, 현재 전남 영광군 백수읍에 거주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 「진달래와 철쭉」이라는 동화는 물론이고「자고 가는 저 구름아」로부터「아라비안 나이트」등을 읽었다. 유년기 시절에 유난히 책 읽기를 좋아한 그는 책을 실컷 읽고 싶어, 중학교 때는 도서관의 사서를 자청하여 3년을 내리 봉사하기도 했다. 그 무렵 최초로「공중바위」란 시를 써 상품으로 연필과 공책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수학여행을 가지도 않고 설악산 기행문을 제출해 장원을 했으나, 국어선생에게 불려가 종아리가 터질 정도로 얻어맞고 장원이 취소된 적도 있었다. 대학 진로를 결정할 무렵인 스무 살 때는, 지금까지 써 놓았던 시를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경제 성장이 최우선 국가 시책이던 시대의 한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사치와 같은 시를 쓴다는 건 자연스럽게 현실에서 멀어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서울올림픽 준비를 끝내고 워싱턴DC로 떠나 일 년 가량 근무하고 돌아와 사직할 때까지 치열하게 살다가, 조용한 시골에서 농사나 짓겠다며 아버지 곁으로 돌아왔다. 이후의 심경을 그는 이렇게 털어놨다.
“농촌 실정이 현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농업을 포기하기까지 10여 년을 자연과 벗하며 살다 보니 많이 배웠다. 지금의 삶이 즐거운 것은 농촌으로 돌아온 10년의 덕이라고 생각한다. 시를 다시 써야겠다는 욕망이 솟아오르자 벅찼고, 보호자를 자청하며 물심양면으로 응원해 주는 아내 덕에 시를 쓰는 일이 지금은 매우 즐겁기만 하다.”
박진희 시인은『문학공간』에 시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문학춘추』에 수필 부문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영광21신문 수필 부문, 영광신문 독후감, 제1회 봉황대 마타리꽃 특별상 등을 수상했고, 한실문예창작 회원, 문학춘추작가 회원, 한국문학예술연대 회원, 영광문학 회원, 솜다리문학 회원, 둘둘문학 회원, 탐스런문학회 회장으로 활약하고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박진희 시인의 시 세계 속으로 들어가 음미하며 향긋이 감상해 보기로 하자.
긴 시간 입술 다문/ 빈집은 혼자서/ 울음을 꺼내 벽에 걸었다 내렸다/ 엉클어진 속내 지우고 있다// 기울어 가는 한 생 붙잡아 주느라/ 가슴이 퍼렇게 멍든/ 그 하늘 보이는 빈집/ 햇살이 가끔 놀러 오기도 하는 날// 웅얼웅얼 사립문의 혼잣말 소리/ 아이들 왁자하게 뛰는 소리/ 다칠라 다급한 아버지 목소리/ 들었다// 마당 깊숙이 차오르는 저녁/ 문 열고 보니/ 키 큰 소리쟁이 설겅대며/ 그림자처럼 흔들리고 있다.(「빈집」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빈집에 대해 관찰하고 있다. 한때 저 빈집은 봄볕에 눈망울 반짝이며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떠들썩했을 것이다. 마당에 가득 담긴 아이들의 소꿉놀이에 집의 옆구리는 간지럼을 꽤나 탔을 것이다. 겨울이면 처마끝에 매달린 무청이 말라갈 수 있도록 가랑가랑한 찬바람을 골라 끌어왔을 것이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타다닥 타오르는 소리에 집은 꽃숭어리 같은 냇내를 굴뚝으로 피워 올렸을 것이다. 그렇게 왁자한 집이 어느 날, 빈집으로 쓸쓸히 살아가고 있다. 빈집은 긴 시간 입술 다물고 있다. 빈집의 입술이 파리하게 다가온다. 하고픈 말을 차가운 가슴벽에 가두고 입술을 꼭 다물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혼자서 울음 꺼내 벽에 걸었다 내렸다 하며 엉클어진 속내 지우고 있다. ‘엉클어진 속내’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아침이면 들려오는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이제는 들리지 않아 서글픈 것일까, 아니면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어 야반도주라도 한 가족들의 사연이 안타
깝다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빈집은 엉클어진 속내를 하나씩 지우고 있다. 지금도 저 빈집으로 가끔 햇살이 놀러오고 있다. 사립문 혼잣말 소리, 왁자한 아이들 소리, 다급한 아버지 목소리도 들려 온다. 해름참에 문 열고 보니, 키 큰 소리쟁이 설겅대며 그림자처럼 흔들리고 있는 빈집. 빈집에 대해 이미지로 그림 그리고 있다. 그 속에 애잔한 그리움도 담겨 있다. 마치 기울어 가는 한생을 보는 듯하다. 서둘지 않고 차분히 시적 형상화해 나가는 솜씨가 좋다.
칠산바다 새벽노을 마실 나왔나/ 생가슴 태워 꽃바다 된 불갑산/ 꽃입술에 묻은 수줍음 한 잎/ 산 굽이 너머 임 향 지운/ 그 임 오시려나// 골골마다 보시시 내린 안갯속/ 빨간 꽃술머리 하얗게 변해도/ 미적미적 어우르는 미련도/ 창문 바라보다 눈 감는 기다림도/ 바람의 끈 아직 놓지 못했나// 날실로 엮어 만든 그 다리 건너면/ 고픈 사랑 만날 수 있을까/ 까맣게 타는 심장 소리 몽글대면/ 눈시울마다 저녁놀 방울방울/ 그 임 오시려나// 그늘 비낀 한 줌 햇살 모아/ 서럽게 피는 꽃 한 송이/ 화르르 화르르 속 타는 불갑사/ 일주문 밖 서성이다 지친 꽃무릇/ 오늘도 고개 쭈욱 빼고 서 있다.(「상사화」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상사화를 통해 그리움의 세계를 그려 놓고 있다. 상사화가 피어 있는 장소는 불갑사다. 사랑하는 님을 멀리 떠나보내고 돌아선 수행자의 뒷모습이 상사화와 겹쳐져 마음이 아리다.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그리움이라는 속세의 인연이 안타깝다. 해마다 상사화는 그리움이 궁금한 듯 피어난다. 몽유의 계절을 건너 줄기차게 피어난다. 지친 기색도 없이 붉은 문장들을 활짝 열어젖힌다. 한때는 사랑의 전성기 같은 꽃시절이 아름답게 피어났을 텐데 이제는 그 어디에도 없다. 모르는 척 꽃을 멀리해도 활짝 핀 그리움은 제 낯빛을 감추지 못할 텐데 그 매혹을 어찌 참아낼까. 무심한 듯 돌아서 보지만 발끝을 붙드는 그리움의 매혹을 어찌 뿌리칠 수 있을까. 꽃대궁은 뜨겁게 올라와 그리움이라는 붉음을 펼쳐 놓고 있는데, 목탁 소리만 들려 저녁의 귀는 아프다. 한때는 저 저녁의 귀가 반짝이는 속엣말로 따스했을 텐데, 이제는 차갑고 어둡다. 불갑산 골골마다 안개가 자욱하다. 미련과 기다림이 바람의 끈 놓지 못한 것 같다. 날실로 엮어 만든 다리 건너면,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 까맣게 타는 심장 소리, 눈시울 적시는 저녁놀, 그늘 비낀 햇살 한 줌 모아 서럽게 피는 꽃 한 송이, 일주문 밖 서성이다 지친 꽃무릇이 오늘도 고개 쭈욱 빼고 님을 기다리고 있다. 화르르 속 타는 가슴이 시적 형상화되어, 독자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그리움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데도, 독자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마음을 열고 있다.
밀물과 썰물/ 그 수겹의 몸짓으로/ 고생대의 기억 복원하는/ 잔풍 칠산 바다가/ 좌르륵 좌르륵/ 진화하는 물의 뼈와 살점들을/ 토해 놓은 크고 작은 기호들// 수천 년 달려온 물의 말씀이/ 거품으로 자갈 자갈대는/ 몽돌 해변// 물결 자국 푸르게 흥건해지는/ 짧은 체류 허락받아 허공의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며 다가오는 물구름// 햇살의 가는 손가락으로/ 잘게 구긴 윤슬 펼쳐 놓고/ 툭툭 날아오르는 물결나비/ 포말로 말 걸어온다// 윤회를 꿈꾸는/ 바다의 마지막 유언 같은/ 소금꽃 다글다글 피었다/ 물꽃처럼 몽글대듯 피었다// 뭍을 향한/ 치밀한 탈출로 춤추는/ 물보라가 토해 놓은/ 백합꽃, 하얗게 하얗게/ 한바다 가득 피었다.(「백수해안도로2」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백수해안도로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첫 연부터 어떤 무게감이 느껴진다. ‘밀물과 썰물/ 그 수겹의 몸짓으로/ 고생대의 기억 복원하는’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철썩거리는 소리로, 밀려들고 빠져나가는 몸짓으로 고생대의 기억을 복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수해안도로를 달리면 그렇게 고생대의 기억 속으로 빨려들 것만 같다. 어쩌면 고생대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마법 같은 주문이‘철썩 철썩’인지도 모른다. 그 소리에 우리는 신비의 귀를 연 적이 없기에, 고생대의 기억을 만나지 못한 것일까. 칠산바다가 좌르륵 좌르륵 밀려든다. 다시 한 번 신비의 귀를 열어 보라고 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파도를‘진화하는 물의 뼈와 살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생대의 기억이 철썩철썩 소리로 진화하며 여기까지 왔을 파도가 멋지다. 그렇게 칠산 바다가 진화하며 토해 놓은 크고 작은 기호들, 물거품으로 자갈 자갈대는 몽돌 해변, 허공의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려 다가오는 물구름, 툭툭
날아오르다 포말로 말 걸어오는 물결나비, 다글다글 물꽃처럼 몽글대 듯 핀 소금꽃, 물보라가 토해 놓아 하얗게 한바다 가득 피어난 백합꽃 등으로 꾸려나간 이미지 구현이 싱그럽다. 낯설게 하기로 이끌어 간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독자의 눈길을 끈다. 시의 특질을 고루 갖추어 놓아, 시의 맛이 상큼하다.
두근두근 풍속으로 펼쳐지는/ 바람과 내일의 유적지 찾아 나서는/ 날개도 없이/ 하늘 날고자 했던 당신은/ 확실하게 보았을 거야// 산다는 것은 결국 생의 한복판에서/ 둥그러지는 거라고 말하는/ 방구멍으로 본 지상과 하늘의 기억을/ 얼레에 기록해 두는 습관으로/ 하루의 무게 중심을 잡다 가 놓치다가/ 다시 날다가 오른쪽 귀에 멍들었던 사연과/ 비굴하게 꼬리 달아야 했던 가슴 아픈 일도/ 보듬어 앉고 있었을 거야// 오늘로부터 먼 비상의 자세는/ 세상 사는 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며/ 백안시할 때도/ 저 하늘에 비 내리지 않는 한/ 떨어지지 않을 바람길 떠올리며/ 공중을 단단히 감아 매는 방식으로/ 날아오르는 재주 빈틈없이 읽었을 거야 // 어제가 버티었던 안간힘이/ 추락하지 않게/ 철저한 자기 기준 있었어/ 면접관에게 자신을 어필하는 방법도 알았을 거야/ 알아보지 못한다는 건/ 그들의 눈에 백태 끼었을 거야// 줄 당기면/ 공중 발자국 끊어진 곳에서/ 다시 사뿐히 펄럭이며/ 허공의 비탈에 사는/ 바람의 세기와 구름의 두께도/ 톱니바퀴 돌 듯 계산했을 거야// 물결 움켜쥐며/ 일렁일렁 물의 일대기 쓰는/ 강물도 흐르길 포기하면/ 더러워지듯/ 날다 멈춰 서면 떨어진다는 사실/ 한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건/ 뒤로 걷는 거야.(「방패연」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방패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펼쳐놓고 있다. 방패 모양의 네모반듯한 연을 방패연이라고 한다. 제목이 그냥 ‘연’이 아니고‘방패연’이라고 한 까닭이 있을까. 무엇을 막아내고 싶어서 방패연에 빗대어 표현한 것일까. 마지막 연에서‘날다 멈춰 서면 떨어진다는 사실/ 한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건/ 뒤로 걷는 거야’라고 시적 화자는 에둘러서 표현하고 있다. 나태함과 안일함을 막아내고 싶은 간절함이 느껴진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밋밋한 시간이 아니라, 적극의 자세로 방패연처럼 날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맞다. 우리는 가파른 허공의 길을 날아오르는 방패연처럼 우리의 발자국에 노력을 싣고 희망을 싣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1연에서 ‘바람과 내일의 유적지 찾아 나서는/ 날개도 없이/ 하늘 날고자 했던 당신’에서 꿈을 향한 시적 화자의 뜨거움이 느껴진다. 방구멍으로 본 지상과 하늘의 기억을 얼레에 기록해 두는 습관, 날다가 오른쪽 귀에 멍
들었던 사연, 비굴하게 꼬리 달아야 했던 가슴 아픈 일을 통해서 시적 화자는 조금씩 성장해 간다. 그 성장 속에서 떨어지지 않을 바람길 떠 올리며 공중을 단단히 감아 매는 방식과 안간힘이 추락하지 않게 해준 자기 기준을 세운다. 시적 화자의 어떤 깨달음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허공의 비탈에서 계산한 바람의 세기와 구름의 두께, 날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결코 멈춰 설 수 없는 현실 등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되고 있다.
독자들이 시를 읽는 맛이 있어, 행복하다. 신선한 표현과 이미지와 시적 형상화가 시다운 세계로 안내하고 있어, 멋스럽다.
차웁고 매운 내일로 뛰어드는 일은/ 감정의 언어들을/ 숨죽이게 하는 일이기에/ 외출 앞두고 군기 바짝 든 신병들/ 연병장에 줄지어 앉아 있다/ 얼굴 없는 불안이 스멀스멀 다가와도/ 파고들 틈 하나 내주지 않는 단호함/ 시퍼렇게 째려보는 눈길 서릿발 가득하다// 노을빛 발설하는 해 질 녘에서/ 바다의 기억을 끌고 온/ 취권 고수 할매들/ 하초 걷어차며 툭 잡아 채는 기술/ 시퍼렇게 질려 나둥그러지는 배추들// 생각을 삭제하고/ 절차에 순응하는 자세만이/ 어떤 파격에 가닿을 수 있기에/ 어제로 뭉쳐 있는/ 속성을 아예 없애 버려야 한다며/ 소금물에 넣고 탈탈 털어 버리니/ 할매라고 놀려대고 우습게 보았던/ 우쭐한 심보 꺾였다//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습성까지는/ 쉽게 버릴 수 없다며/ 기회 잔뜩 벼르고 벼린 눈치/ 이 정도론 안심하기 이르다며/ 물기 빼듯 뒤집어 손바닥 탁탁.(「김장」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김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다.
소금물에 담궈지고 짜고 매운 양념에 버무려지는 내일 속으로 배추는 뛰어들어야 한다. 시적 화자는 그 배추에 빗대어서 우리의 삶을 ‘차웁고 매운 내일로 뛰어드는 일은/ 감정의 언어들을/ 숨죽이게 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우리는 날 선 감정의 언어를 순화시켜야 한다. 짠내 나는 현실에서 숨죽이며 시간을 견디고 아픔을 견뎌야 한다.‘얼굴 없는 불안이 스멀스멀 다가와도/ 파고들 틈 하나 내주지 않는 단호함’으로 희망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삶을 대하는 화자의 자세가 단단하고 단호하다. 2연에서는 오로지 김장의 시선으로 다가간다. 바다의 기억을 끌고 온 취권 고수 할매들, 시퍼렇게 질려 나둥그러지는 배추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그러다가 다시 3연에서는 시적 화자의 마음이 오버랩된다. ‘생각을 삭제하고/ 절차에 순응하는 자세만이/ 어떤 파격에 가닿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파격’이라는 목표가 있다면 그 파격에 어긋나는 생각은 삭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제로 뭉쳐 있는 속성, 어제만 고집하는 습관들을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어제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하는 시적 화자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의지만으로는 쉽게 변화할 수 없기에‘절반의 습성까지는/ 쉽게 버릴 수 없다며/ 기회 잔뜩 벼르고 벼린눈치’라고 말하고 있다. 재미있는 표현이다. 이 시에서도 시의 특질이 무엇인지, 어떻게 묘사를 해야 하는지, 이미지 구현이 왜 필요한지, 사물의 해석이 왜 새로워야 하는지 등을 습득하게 해주고 있다.
체온과 맥박 내주며/ 아픔과 감동으로/ 행간의 무늬 완성하기 위해/ 앞뒤로 흔들리며 비칠대는 몸뚱이/ 구부정해지는 허리에 울음 스민다// 한 호흡으로 완성되는/ 자음과 모음은/ 품성이 좋아 벌 나비 윙윙거렸지만/ 어머니 널 배고 가난 먹은 탓일까/ 마지막 행과 연의 안식처,/ 그 요양원 가는 길 보기 싫다며/ 상처로 툭툭 불거진 시어 같은/ 괭이 끌고 선산 주위 돌고 돌다/ 말랑거리는 오탈자처럼/ 또르르 구르는 한 방울 눈물에/ 먼 산 보다 멀어진 눈동자 흔들흔들// 막막한 이순(耳順)의 강을/ 파문 이는 문장으로 건너기 바빠/ 저녁놀 질 때까지 피우지 못한/ 황혼 같은 시집 한권/ 시리도록 붉은 춤 너불너불 춘다.(「시 창작」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시 창작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
창작의 사전적인 뜻은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만듦이다.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만든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니,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거칠고 깡마른 몸에서 새로운 해석의 꽃을 피우는 일과 같기에 어찌 쉬울 수가 있겠는가. 시적 화자는 그 어려움에 대하여‘체온과 맥박 내주며/ 아픔과 감동으로/ 행간의 무늬 완성하기 위해’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체온과 맥박’을 내준다는 것은 생명 그 자체를 내준다는 것과 같다. 목숨을 걸고 창작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로 읽힌다. 행간의 무늬가 아픔과 감동으로 물결칠 때까지 화자는 그 아픔을 직면해야 한다. 마주하는 아픔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어 감동으로 치달아야 한다. 좌절과 슬픔에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화자의 자세가 엿보인다. 앞뒤로 흔들리며 비칠대는 몸뚱이지만 구부정해지는 허리에 울음 스미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 편의 시를 완성할 수 있다. 2연에서는 시어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화자의 마음을 만날 수 있다. ‘한 호흡으로 완성되는/ 자음과 모음’이 될 때까지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며 여러 날을 고심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이 있기에 사람들은 시인을 존경하고 예술가를 존경한다. 그리고 상처로 툭툭 불거진 시어, 말랑거리는 오탈자, 먼 산 보다 멀어져 흔들거리는 눈동자, 파문 이는 문장 등의 표현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저녁놀 질 때까지 피우지 못한 황혼 같은 시집 한 권이 시리도록 붉은 춤 너불너불 추는 모습도 바라보는 눈길을 행복하게 한다. 시의 표현이 진부하지 않고, 어느 연과 행을 봐도, 정서 의문을열게하고있어, 시를 읽는내내 마음이 환하다.
뚝방길 가로등 하나둘 눈뜨자/ 빛살 타고 내리는 함박눈처럼/ 즐거운 비명이 저녁을 거슬러/ 눈부시게 달리고 있다// 비탈지고 휘어진 허공의 길목에는/ 목숨을 노리는 허방이 숨어 있어/ 속도에 내쫓기지 않으면서/ 바람의 심장 달고 한데 어울리며/ 미세한 억겁의 시간을/ 가늘고 자욱하게 그어대며/ 오래오래 뜨겁게 질주하고 있다// 황룡강 거슬러 올라가는 물살/ 군무 추는 고천암 철새 무리 같다/ 세모시 날개로 날아오르는 팅커벨/ 석양녘 어스름 내리는 빛발 속/ 유혹 따라 몰려간다// 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한꺼번에 빌려 와/ 서두를수록 반짝이는/ 청춘의 한때는 멀어 지지만/ 짜릿하고 싱싱한/ 시간의 살점 파닥이며 모여든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먹는 즐거움도 배설하는 쾌감도 잊은 채/ 시간을 이겨 내야 하는 찰나의 순간,/ 시한부 인생,/ 단 한 번의 사랑으로 세상 떠나는 존재/ 명확하게 하루 사는 목적을 위해/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날갯짓/ 이름조차 남기기 어려운 절박한 하루의 삶// 챙겨간 귓속말 꺼내놓지 못할까 봐/ 공중의 모서리만 만지작거리며/ 눈뜨는 가로등 빛살 타고 올라와/ 봄날 나풀나풀 춤춘다.(「하루살이」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하루살이에 대해 관찰하면서, 인생을 관조하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도 하루살이 삶이다. 하루라는 시간을 최대한 가닥가닥 늘이며 사는 하루살이처럼 우리도 초년, 중년, 말년의 시간을 가늘고 길게 늘이며 살고 있다. 저녁으로 물든 나무 아래에 삶을 다한 하루살이가 낙엽처럼 떨어지듯, 우리도 죽음으로 마지막 삶이 뿌려질 때까지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다. 1연에서는 발랄한 시간처럼 생기 넘치는 하루살이의 삶을‘뚝방길에 즐거운 비명이 눈부시게 달리고’있다. ‘즐거운 비명이 저녁을 거슬러’라는 표현이 멋지다. 비명의 사전적인 뜻은 몹시 놀랍거나 위험하고 괴롭고 다급한 일을 당하여 외마디 소리를 지름이다. 그런데 여기서는‘즐거운 비명’이다.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또‘저녁을 거슬러’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싶은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2연에서‘바람의 심장 달고 한데 어울리며 뜨겁게 질주’하고 있다. 꿈과 목표와 사랑을 이루기 위해, 미세한 억겁의 시간을 뜨겁게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3연에서는 하루살이를‘어스름 내리는 빛발 속으로 유혹 따라 몰려가는 무리’라고 한다. 욕심에 눈멀어 유혹을 좇는 사람들을 빗대어 말하고 있다. 짜릿하고 싱싱한 시간의 살점 파닥이며 모여드는 이들, 단 한 번의 사랑으로 세상 떠나는 존재, 하루 사는 목적 위해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날갯짓, 이름조차 남기기 어려운 절박한 하루의 삶, 공중의 모서리만 만지작거리며 봄날 나풀나풀 춤추는 존재 등으로 표현되는 하루살이들, 그리고 그 삶. 읽는 내내 초라한 삶의 한 구석을 바라보는 듯하여, 가슴이 답답하다. 좁은 시야의 삶,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의 가벼움이 휘몰려와 독자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꽃 같은 호시절에도/ 캄캄한 일식(日蝕)의 밤을/ 온몸에 발라/ 소갈머리 하나 없는 게/ 되는 일도 없다며/ 저리 눈만 끄먹거린다// 족쇄의 유전자가 흐르는/ 먹고 사는 일에 코뚜레 씌우며/ 한 가닥 생각의 쇠줄에/ 등잡혀 산 지 언젠데/ 아직도 빛을 향한 투명한 고삐,/ 그 맑은 이끌림의 길여는/ 성불 꿈꾸며/ 부릅뜬 눈빛 흔들흔들/ 탁설로도 읽어 내지 못한 불경 // 허기가 부풀어 올라도/ 제 몸을 쳐서/ 막막한 허공의 혈(穴) 뚫는/ 청푸른 종소리 더듬듯/ 안개 핀 머릿속 걸으며/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마침내 / 찰랑찰랑 헛배가 차도록/ 밀물처럼 밀려드는/ 묶인 사슬 알아차려/ 끄덕대다/ 몸으로 울며/ 가부좌 튼 하얀 미소.(「염불하는 풍경」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신의 과거를‘꽃 같은 호시절에도/ 캄캄한 일식(日蝕)의 밤을/ 온몸에 발’랐다고 말하고 있다. 에둘러서 표현하는 낯설게 하기 기법이 멋지다. ‘꽃 같은 호시절’과‘캄캄한 일식의 밤’이상 충되면서 어리석음에 대한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그‘캄캄한 일식의 밤’을 온몸에 바른다는 촉각 이미지가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모두 먹고 사는 일에 코뚜레가 씌운 채 살아가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한 가닥 생각의 쇠줄에/ 등 잡혀’살고 있다. 하지만 족쇄의 유전자 같은 먹고 사는 일에만 계속 매달릴 수는 없다. 깨달음을 향한 환한 길을 열어야 한다. 그 간절한 마음을‘빛을 향한 투명한 고삐/ 그 맑은 이끌 림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삐인데 빛을 향한 고삐란다. 깨달음이라는 빛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절실함이‘고삐’에서 느껴진다. 그 절실함은‘제 몸을 쳐서/ 막막한 허공의 혈(穴) 뚫는/ 청푸른 종소리 더듬 듯’에서도 느껴진다. 담장을 넘고 산을 넘는 종소리처럼 한 발 한 발 깨달음을 향해 나아간다. 마침내 어리석음과 욕심에 묶인 마음의 사슬을 알아차려 몸으로 울며 가부좌 튼 미소를 짓는다. 개성 있는 시적 표현으로 독자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시어 하나 하나, 행과 연의 시어 배치 솜씨가 아주 세련되어 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는 섬세하고 세련된 시적 형상화 솜씨도 흠잡을 데가 없다.
생(生)의 발목 삐끗하면 나가떨어지듯/ 간당간당하게 매운 비탈밭이/ 잦바듬하니 앉는다// 햇살 아래 기침을 말리던/ 입술 깨문 기다림이 눈 빠지게/ 모래미 마을 내려다보며/ 쪼그라진 굴비처럼/ 등 굽어, 발 하나 자라나지 않는다// 아껴두었던 슬픔이/ 부풀린 몸짓으로 가시를 세우는/ 고샅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당신 기다리고 있다// 불교 도래지 한 바퀴 돌아 나와/ 웅얼대며 염불하는 풋 마른 잎새/ 짭조름한 바람 따라 법성(法城) 꿈꾸고 있다// 문득 당신이 보이지 않는 그곳/ 아침과 저녁 키우며 흙의 손바닥 깊어졌던/ 처음으로 돌아가려는 낯빛 감추고/ 가깝고 추운 불안이 / 회오리로 다가온 흉흉한 소문 종종댄다// 무거워진 어제로 몰락해선 안된다며/ 짠내 나는 밭 곳곳에 꽃으로 피어난/ 당신의 또 다른 이름들이/ 돌아가자 외치며 듬성듬성 자리 좁힌다// 우리가 걸어온 시간의 방향으로 / 한 번 더 일어서서/ 밀려드는 먼먼 파도 소리가/ 맑고 깊다// 시고 떫은 안과 밖은 엉켜 있어/ 수십 벌의 계절 옷 갈아입으며/ 굽은 허리 쫙 편 당신이/ 통골재 넘어가는 행상소리 앞세우고/ 파랗게 손짓하는 청옥 가는,/ 마지막 눈 선 길에서/ 하얀 미소로 바라본다// 미륵의 꽃 우담바라 피었다며/ 칠산바다 건너는 구수산 모롱이/ 젖은 울음이 옹골진 내력으로/ 활짝핀 불경 꽃 피우기 위해/ 소금꽃 내음 진동하는/ 비탈밭 곳곳에/ 당신은 하얗게 웃고 서 있다.(「고추밭의 개망초꽃」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고추밭이 있는 어느 비탈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그 비탈밭은‘생(生)의 발목 삐끗하면 나가떨어지듯/ 간당간 당하게 매운 비탈밭’이다.‘생(生)의발목삐끗’에서 시적 화자의 아픔이 복선처럼 깔려 있다. 그 복선은 3연에서‘고샅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당신’과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짭조름한 바람 따라 법성(法城) 꿈꾸고’있다. 바다가 가까이 있기에 짭조름한 바람 따라 꿈을 꾸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생(生)의발목삐끗’과‘고샅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당신’과도 연결되면서‘짭조름한 바람’의 의미는 확장된다. 상징을 곁들여서 날실과 씨실로 잘 직조한 시다. 주인을 잃은 고추밭은 쪼그라진 굴비처럼 등 굽어 발 하나 자라나지 않고 있다. 법성포 굴비와의 연결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낯설게 하기 또한 빛난다. 전반부의 고추밭은 아껴두었던 슬픔이 부풀린 몸짓으로 가시 세우는 곳, 가깝고 추운 불안이 회오리로 다가와 흉흉한 소문 종종대는 곳, 당신의 또 다른 이름들이 돌아가자 외치며 듬성듬성 자리 좁히는 곳이다. 그곳에‘한 번 더 일어서서/ 밀려드는 먼먼 파도 소리가/ 맑고 깊’다.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 것일까. 후반부의 고추밭은 굽은 허리 쫙 편 당신이 마지막 눈 선 길에서 하얀 미소로 바라보는 곳, 젖은 울음이 옹골진 내력으로 활짝 핀 불경 꽃 피우기 위해 하얗게 웃고 서 있는 곳으로 표현되고 있다. 고추밭에서 핀 개망초꽃을 새로운 해석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픔 속에서 건져 올린 어떤 깨달음으로 다가서고 있다. 개성 있는 표현으로 독자의 눈길을 집중시키고 있다. 예사롭지 않는 시적 형상화 솜씨가 시 전체를 긴장시켜 독자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다.
간절기 건너온 빛의 칼날에 베여/ 뭉텅 끊어져 짧아진 해그림자// 가지 마다 불화로 하나씩 품고 싶어/ 봄부터 뜨겁게 달려온 걸음이/ 모두 타버 렸는지/ 까막까막하는 먼나무 꼭대기/ 동박새 한 마리 초록으로 앉아/ 미동도 없다// 매끈하고 투명한 안색으로/ 너울너울 치맛자락 조신하게 끌고 가는/ 보랏빛 바람처녀 희롱하는 노란 저 꽃//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온통 맑은 사원인/ 공중으로 연애의 경계선 확장하며/ 쌍으로 날아오르는 호랑나비/ 피리와 가야금 소리마저 잠든 공원에서/ 부러움의 날갯짓 한 번으로 한낮 깨운다// 허공에서 묻혀 온 천진한 손으로/ 어디에도 길들여 지지 않는 향을 방목하여/ 조물조물 바람 만든 마타리꽃/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늘 열리고/ 봉황이 통째 내린 꽃 피는 언덕에/ 멈춰 선 금관가야 끄덕끄덕 졸고 있다.(「나른한 정원(봉황대 공원)」전문)
제1회 봉황대 마타리꽃 특별상 수상작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봉황대 공원에 대해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제목이‘봉황대 공원’이자‘나른한 정원’이다.‘나른한’의 느낌은 마지막 행의‘꽃 피는 언덕에/ 멈춰선 금관가야 끄덕끄덕 졸고 있’다에서 사라진 금관가야가 설핏 보이는 듯해 몽환적이고도‘나른한 정원’의 느낌을 주고 있다. 또 공원의 한낮을 깨우는 호랑나비의 날갯짓에서도‘나른한’느낌이 다가온다. 시적 화자만의 독특한 목소리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오늘의 시적 걸음이 이렇게 멋지기에 내일과 먼먼 훗날의 시적 걸음이 기대가 된다. 1연에서 짧아진 해그림자를‘빛의 칼날에 베여/ 뭉텅 끊어’졌다고 표현하고 있다. 감각적으로 잘 그려냈다. 공원에 까막까막하는 먼나무 꼭대기에 초록으로 앉아 미동도 없는 동박새가 있다. ‘초록으로 앉아’있다니 신선하다. 그‘초록’은‘까막까막하는’과 대조를 이루고 있어 더욱 선명하다. 또 공원에는 보랏빛 바람처녀 희롱하는 노란 꽃이 피어 있다. 여기
서도‘보라’색과‘노란’색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색감이 있는 시어로 공원의 이미지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 4연에서는‘공중으로 연애의 경계선 확장하며/ 쌍으로 날아오르는 호랑나비’가 고요한 공원의 한낮을 깨우고 있다. 호랑나비의 날갯짓을‘공중으로 연애의 경계선 확장’하고 있다며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있다. 멋스럽다. 5연에서는 길들여지지 않는 향을 방목하여 조물조물 바람 만든 마타리꽃, 꽃 피는 언덕에 멈춰 서서 끄덕끄덕 졸고 있는 금관가야 등이 묘사되어 있다. 시를 읽는 맛이 쫄깃쫄깃하다. 시를 읽는 행복감도 좋다. 시를 쓰고 시를 읽어 가며 살아가는 여생이 참 멋스럽다는 느낌을 안겨 주고 있어, 더 좋다.
날개깃 하나 빠져 꼼짝 못한다는 수리댁/ 청춘의 환한 웃음 박제한/ 틀니 깨문 입술소리증 도졌다/ 머릿속 기억들이 아슴푸레 달그락 달그락/ 움푹 파인 고샅길 맨몸으로 날았다는 전설/ 늙은 감잎 한 장 굴러와 몸을 비빈다// 발바닥 지나가는 행간마다 점자책 같은/ 낯선 바닥 촘촘히 읽어야 한다고/ 달팽이 더듬거리며 촉수 세워 가는 길/ ㄱ자로 휜 손때 묻은 지팡이 비틀비틀/ 날개 펴듯 팔 흔들자 기우뚱대는 몸뚱이/ 선뜻 손 내민 감나무 얼굴 노래지는 길// 어서 옷쇼 성님/ 어떻게 내 바람 했다요/ 지팡이는 쪘다 두고, 내 손 자브쇼/ 우리 성님이 나오셨어라/ 아따, 우리 성님이 나오셨단 말이요/ 예말이요, 나와들 보쇼// 걱정으로 파문 번지는 오후가 사라지고/ 덜커덩 턱 화들짝 놀란 문/ 한꺼번에 열려 버린 수십 개 눈동자들/ 살아 있다는 경로당의 눈동자들.(「경로당 가는 길」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경로당 가는 길을 생기발랄하게 그려 놓고 있다. 움직임이 불편한‘수리댁’의 모습을‘날개깃 하나 빠져 꼼짝 못한다’고표현하고있다. 한때 날개 펴고 청춘을 훨훨 날고 사랑을 향해 날아올랐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였을까, 병을 앓아서였을까, 어느 날부터 날개깃 하나 빠져 있어 움직임이 불편하다. 하지만‘청춘의 환한 웃음 박제한/ 틀니 깨문 입술소리증 도’진 걸 보면 불편함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있지만은 않다. 수리댁의 밝고 긍정적인 자세가 엿보인다.
또‘움푹 파인 고샅길 맨몸으로 날았다는 전설’에서 적극적으로 살아왔던 지난날이 읽힌다. 2연에서 경로당으로 가는 길을‘점자책 같은/ 낯선 바닥 촘촘히 읽어야 한다고/ 달팽이 더듬거리며 촉수 세워 가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픔이든 슬픔이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적 화자의 자세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넘어질까 봐 두려워 길이 조심스러울 텐데 오히려 긍정적으로‘낯선 바닥 촘촘히 읽어야 한다’며길을걷고있다.
삶을 대하는 시적 화자의 긍정이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의 나이듦도 이와 같으면 좋겠다. 기우뚱대는 몸뚱이에 선뜻 손 내민 감나무 얼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읽혀진다. 나이가 들면 세상이 나를 무시하고 외면한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나를 염려하고 걱정한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 따스한 시선이 내일을 더 행복하게 할 것이다. 수리댁을 반갑게 맞이하는 소리, 걱정으로 파문 번지는 오후가 사라지고 덜커덩 열린 문, 눈동자들 살아 있는 경로당 등의 표현이 미소를 머금게 하고 있다. 삶을 관조하듯 내려다보며, 유머와 미소를 머금게 하는 시적 형상화가 시를 읽는 재미를 배가시켜 놓고 있다. 튼실한 시어 배치 능력이 시의 특질을 더욱 감칠맛나게 떠받치고 있는 듯하다.
번개 한 번 맞을 때마다/ 옹이 새긴 몸뚱이 굳히며/ 우지직 꺾이는 만개한 울음/ 가슴 깊이 안았다// 불안한 내일처럼 반칙이 난무하는/ 층층이 등고선 골 골에/ 수분기 말라 굴리지 못한 혓바닥으로/ 염통 핥듯/ 숨소리 거칠어지기 시작한 그날/ 끝에 이르러/ 속비밀 풀어내기 시작했다// 발설 할 수 없는 외로움의 무게로/ 뿌리 내리던 시간 어머니 땀내 눅진한 더위/ 가을 태풍 같은 횟배앓이 죽사평 휘젓고/ 육덕 좋은 복숭아 벌레에게 먼 저 먹히듯/ 그해 폭설로 오른쪽 어깨 깁스했지// 바다 된 죽사평 가랑가랑 대던 것들/ 계절의 어금니 다물다 비쩍 말라 버린/ 잎 떨궈 낸 나뭇가지 사이에/ 노랗게 늙은 잎새 하나/ 빈 파랑새 둥지처럼 가지 잡고 앉았다.(「나이테」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나이테에 대한 낯설게 하기에 도전하고 있다. 1연에서부터 아픔 많은 사연이 느껴진다. ‘우지직 꺾이는 만개한 울음/ 가슴 깊이 안’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아파하며 뜬눈으로 지새웠을까. 초록으로 눈을 뜨고 초록으로 눈을 감으며 내일을 맞이하고 싶었을 텐데, 원치 않는 번개를 맞아야 할 때 얼마나 좌절했을까. 새소리 궤도를 가지마다 푸르게 그리며 봄을 낳고 여름을 낳고 가을을 낳고 싶었을 텐데, 얼마나 슬퍼했을까. 나의 뜻과는 상관없이 다가오는 억지스런 세상을‘불안한 내일처럼 반칙이 난무’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억지스런 세상을 받아들이며 살아남기 위해‘발설할 수 없는 외로움의 무게로/ 뿌리 내리던 시간’을 견딘다. 4연에서 계절의 어금니 다물다 비쩍 말라 버린 잎 떨궈 낸 나뭇가지, 빈 파랑새 둥지처럼 가지 잡고 앉은 노랗게 늙은 잎새 등의 표현으로 나이테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있다. 아픔 많은 우리네 삶과 오버랩되면서, 시를 읽어가는 눈길이 숙연해지고 깊은 사색으로 잠기게 된다. 정서의 수많은 단면들을 맛보게 해주는 시가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해주고 있다. 다채로운 정서를 만날 수 있다면, 시의 특질 속으로 잠시 잠겼다 가는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처럼, 박진희 시인의 시적 형상화 솜씨는 남다르다. 우선 시의 특질을 두루 구비하고 있어, 읽는 맛이 좋다. 그 어떠한 사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새로운 각도로 새로운 시야로 해석해내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낯설게 하기에 철저히 기초하고 있다. 그래서 기시감이 들지 않는다. 진부하지 않고, 매 연마다 신선한 표현이 자리 하고 있다. 거기에 싱그러운 이미지 구현이 함께하고 있고, 시마다 선명한 그림이 그려져 있어, 시를 읽는 동안 평안하고 즐겁다. 또한 매 연마다 리듬과 긴장감도 적절히 깔아놓고 있어, 낭송하기도 좋다. 그리고, 시 중간 중간에 깔아놓은 해학, 유머, 사색, 관조 등도 쫄깃쫄깃한 시가 되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색의 통로를 열어 놓고 있는 점도 멋스럽다. 시를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자신의 뒤를 돌아보게 되고, 반성하게 되고, 다른 각도로 자신을 짚어 볼 수 있다면, 시의 절반은 성공을 거둔 셈이다. 박진희 시인의 시들에서 그런 요소들을 발견하면서, 함께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시를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하여 성숙의 디딤돌을 얻어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박진희 시인의 시들에서는 그런 기회들이 자주 찾아와 반겨 준다. 참으로 좋은 시인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