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2월 6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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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이 넘은 온돌방이 있다. 칠불사에 있는 아자방이다. 그동안 복원 공사를 마치고 원래 모습으로 완공되어 일반인에게 공개한다고 들었다. 자연이 푸르름을 더해 가는 4월 말이다. 가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북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칠불사가 나온다. 칠불사에는 스님들이 수행하던 온돌방이 있다. 이 온돌방이 있는 건물이 1948년 ‘여수순천사건’ 때 전소되었다. 건물은 복원했으나 구들은 그 대로 두었다. 그전에도 소실된 적이 있었다. 복원되지 않은 온돌방을 조사 발굴한 후 8년 만인 2023년 말에 복원했다.
칠불사 온돌방은 방 안에서 보면 ‘버금 아(亞)’자 모양으로 생겨서 아 자방(亞字房)이라 부른다. 이는 신라 효공왕(897-912) 때 가락국에서 온 구들 도사라 불리던 담공선사가 처음 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1100년이 넘었다. 유구한 세월이다. 아자방은 구들의 탁월한 구조로 1975년 세계건축물협회에서 펴낸 『세계건축사전』에 수록될 정도로 유명하다.
복원 후 아자방 건물 서쪽으로 출입하도록 문을 내었다. 담장의 일부는 대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올곧게 정진하라는 의미가 담긴 듯하다. 대나무 울타리를 보는 순간 허리부터 쭉 펴게 된다.
아자방의 서쪽에서 보아 오른쪽에 있는 큰 아궁이에 오후 햇살이 부서지고 있다. 아궁이 입구는 ‘입 구(口)’자 모양으로 ‘버금 아’자와 ‘입 구’자를 합쳐 동쪽에서 보면 전체는 ‘벙어리 아(啞)’자 모양이 된다. 아마도 수행 중에는 묵언하고 정진하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된다.
아자방은 처음 축조했을 때 땔감을 지고 아궁이로 들어갔다니 크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 번 불을 땔 때 일곱 짐 정도를 한꺼번에 땠다고 한다. 불길이 막히지 않고 서서히 타들어 갔고 골고루 따뜻했다고 한다. 한 번도 크게 고친 적이 없다고 한다. 지금도 아궁이를 들여다보니 내가 그대로 들어가도 될 정도다. 축조 당시 불을 한 번 때면 ‘석 달 열흘’은 온기가 골고루 유지되었다고 한다. 신비감이 더해진다. 지금은 이틀에 한 번씩 많은 땔감은 아니지만 불을 땐다고 한다.
『천 년의 비밀, 아자방 온돌』의 저자 김준봉은, “아자방 아궁이는 서서히 오래 열기를 공급하고 구들과 불길이 움직이는 길과 형태가 다른 온돌과 달라 오랫동안 열기를 품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했다. 우리 온돌 문화는 세계적이다. 직접 방에 들어가 보니 방의 긴 쪽이 약 8미터로 직사각형이다. 방바닥에서 약간 높은 좌선대가 네 귀퉁이마다 설치되어 있다. 스님들은 아자방에서 눕지 않고, 하루 한 끼 먹고, 벽만 보고 앉아 수행한다니 고행이 마음을 짓누른다. 방바닥은 좌선대에 올라 수행하다가 피곤함을 풀기 위해 다리를 내리면 방바닥까지 펼 수 있게 만들었다. 중앙의 낮은 방바닥은 불경을 읽는 공간으로도 활용한다고 한다.
평생토록 눕지 않고 수행한 스님은 혜암과 청화로 알려져 있다. 평생토록 눕지 않았다니 사람으로서 가능한지 의문이 가나 실제 기록이다. 보통 사람은 며칠만 지나면 힘들어서 정신을 못 차린다고 하는데 꾸준히 수행하면 경지에 오르나 보다.
아자방 온돌은 2023년 말에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칠불사 측은 내부를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하고, 2024년 2월 7일부터 같은 해 부처님 오신 날까지만 일반에게 공개한다고 한다.
스님들이 수행에 들어가면 공개할 수가 없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9년에 보면, 선전관 이윤춘이 지리산 칠불암 아자방에 대해 임금께 올린 글이 있다.
“취령(鷲嶺) 아래 칠불암(七佛菴)은 문양해가 살던 하천 산당(荷川山堂)과 서쪽으로 10리 떨어져 있습니다. 또 그 문귀에 달린 현판에는 동국 제일선원(東國第一禪苑)이라고 썼습니다. 그 안에는 아자형(亞字型)으로 된 승방(僧房)이 있었는데, 승려들을 대사(大師)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 벽을 향하여 말하지 않고 앉아 있는 사람이 아홉 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의 다 아침에 모여 묵언수행하다가 해가 져서 어두워질 때 흩어졌습니다.”
아자방에서 수행한 큰스님이 여러 사람 있다. 정명, 벽송, 조능, 서산, 부휴, 초의, 월송 등이다. 유명한 고승들이 수행한 곳으로 알려져 많은 스님이 아자방에서 수행하는 것을 꿈으로 여긴다고 한다. 특히 기억에 떠오르는 스님은 서산(휴정)대사다. 그는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 선조의 부름을 받고 승병을 모으기 시작했다. 또한 전국의 사찰과 승려들에게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글을 보내기도 했다. 그의 제자인 사명(유정)대사와 처영스님 등이 승병을 모아 왜군을 크게 물리쳤다. 그는 사명대사와 합류하여 명나라 군대와 힘을 합쳐 한 양을 되찾고 ‘팔도십육종선교도총섭(八道十六宗禪敎都摠攝)’이라는 직책도 받았다. 도총섭은 전국의 승군(僧軍)을 통솔하는 직책이다. 그 후 벼슬을 사명대사에게 물려주고 묘향산에 들어가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며 수도생활을 계속했다. 1604년에 세상을 떠났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큰스님이다.
직접 아자방에서 스님처럼 벽면을 보고 앉아 잠시 눈을 감아 보았다. 온갖 상념들이 떠오른다. 하나씩 버리니 잠깐이나마 마음이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