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2월 6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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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소식이 뜸했던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요즘 뭐 하고 지내?”
“문학지에 수필 한 편을 제출해야 해서 컴퓨터와 씨름하는 중이야.”
“음, 그거 요즘 간단하잖아? AI를 이용해 봐. 넌 금방 배울 텐데….”
컴퓨터에 능한 그녀의 유혹이 내게 달콤하게 들렸다. 요즘은 AI(Artificial Intelligence), 즉 인공지능이 발달되어 필요한 정보만 입력하면 그림이나 수필 두어 장쯤은 쉽게 써 내놓는다는 얘기였다. 오픈 AI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서비스인 챗GPT(Chat GPT)를 활용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핸드폰에서 Chat GPT 관련 내용을 찾았다. 그 앱 대화문에서 화자가 ‘시냇물을 그려줘!’란 주문을 하자 곧 계곡 옆의 시냇물을 멋지게 그려내는 걸 보고는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연일 매스컴에 도배되고 있는 AI는 인간의 지각 능력을 인공적으로 구현하려는 컴퓨터의 세부 분야이다. 산업, 제조, 금융, 의료, 교육, 법률 등 여러 분야에서 AI는 요즘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러한 분야가 발달하면 AI 덕분에 여러 직종에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제는 AI가 더욱 발전하여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범용 인공지능에 다가갔다고 화제가 되고 있다. 그것은 개인 비서의 역할을 톡톡히 할 뿐만 아니라 대화, 계산, 정보 처리, 번역도 하며 집필, 작곡 같은 예술 작업을 사람처럼 한다는데 과연 집필은 어디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AI 문학은? 인공지능인 AI가 글을 쓴다면 작가들의 설 자리를 위협을 받을 것인가? AI에 수많은 서적과 철학적 사고의 정보를 입력한다면 텍스트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문학 분야의 꽃이며 대표적 언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시’를 AI가 과연 지어낼 수 있을까?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토속적인 한과 정서를 운율적인 시로 담아낸 아름다운 작품이다. AI는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일지 무척 궁금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마음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표현을 AI가 따라할 수 있을까? 어쩌면 AI는 떠나가는 님을 위해 진달래꽃을 뿌려주면서 축복하겠다는 구절을 읽고, ‘실연할 때 일으키는 정신 이상 초기 단계’라고 진단을 내릴지도 모르겠다. 이별을 노래한 것 같으면서도 사랑의 편지일 것 같은 그 이중적인 느낌을, 패턴 분석으로 파악하는 인공지능이 흉내라도 낼 수 있을는지. 오! 노오∼ 노오.
친구의 권고대로, 내가 AI에 수필을 부탁하면, 어떤 글을 쏟아낼까? 안성수는 『수필기법사전』에서 ‘수필은 통찰의 문학이자 성찰의 예술이다. 진정한 통찰은 감성, 이성, 영성을 활용하여 궁극적인 본질 체득의 기회를 제공하고, 수필은 이러한 통찰로 인한 내면 의식의 깨달음을 통해 드러난 진실을 고백하는 글이다’라고 설명한다.
손광성은 『손광성과 그의 문학세계』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세계>라고 하는 텍스트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서 출발하는데, 해석만 한다면 그것은 설명문에 지나지 않고, 추상적인 개념을 감각적으로 구체화하는 형상화 작업이 이루어져야 드디어 글이 완성된다고 했다. 그는 또한 홍운탁월의 기법으로 수필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여 은근한 번짐과 울림의 효과로 수필의 멋스러움을 말하고 있다.
AI가 시나 소설 그리고 수필 같은 창작의 영역도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인간의 감성과 깨달음 그리고 형상화 작업을 해낼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시인이며 수필가인 피천득의 작품 「수필」을 떠올려 본다.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 빛이거나 진줏빛이다.’ 작가인 피천득은 수필의 개념을 청자연적과 난과 학에 빗대어 비유함으로써, 수필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여 우아하고 고고한 존재로 풀어내고 있다. 또한 수필을 원색이 아닌 비둘기 빛이나 진줏빛으로 비교하여 은근한 대상으로 추켜세우고 있다.
자, 그러면 인간의 지능을 모방한 기능을 가진 AI에 「수필」이란 작품을 쓰도록 주문을 해보자. AI는 순식간에 다음 글을 뽑아낼 것이다.
‘수필이란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이며∼’ 이리저리 일사천리로 온갖 정의를 내리다가 덧붙여 예로서 피천득의 「수필」을 언급할지도 모르겠다. AI는 단순한 통계적 정보를 종합 분석하여 작성된 문장을 내게 내밀 것이다. 그것은 수필이란 의미의 해석에 그치며 수필이 아닌 설명문이다.
인간의 내면 의식은 물론 감성이나 영성을 인위적인 시스템에 기대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해석된 내용을 형상화하는 작업이나, 홍운탁월의 기법으로 표현하여 은근한 울림의 효과를 내는 글은 글쎄 그에게는 그림의 떡일 것이다.
진정성 있는 자기 내면을 표현하는 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 작가는 영혼의 밑바닥까지 끌어올리는 고통의 과정을 거치며, 수필과 사랑에 빠져야 하거늘, AI가 수필과 사랑에 빠질 수 있겠는가. 수필은 일상성을 형상화하여 표출한 나의 고백이다. 그러한 나의 고백을 어찌 AI가 대신 하랴. 문득 TV에서 본 광고가 떠오른다.
“네가 게 맛을 알아?”
나도 슬며시 삐죽거리며 컴퓨터를 쏘아본다.
“AI, 네가 수필 맛을 알아?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