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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미숙이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경혜

책 제목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2월 6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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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윤고은은 잘못 갈아탄 지하철에서 그녀가 봤던 것과는 다르게 열차 안으로 길게 들어오는 햇빛을 마주했다. 그때의 장면을 “낯선 것을 살피느라 마음의 조리개가 서서히 움직였다. 어쩌면 그것은 시간을 만지는 느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 그립감’ 같은 것”이라고 신문의 칼럼에 쓴 적이 있다.
시간을 만지는 느낌, 내겐 그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 통조림>이 그랬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 속에 박제되어 있던 그녀들, 두 미숙이와의 시간이 꿈틀거리며 다가왔다.
얼굴이 하얗고 동그랗던, 언제나 머리를 바짝 묶고 눈이 사납게 보였던 키 작은 미숙이. 그 애가 머리를 풀고 왔을 때 눈이 그렇게 동그랗고, 착하게 생긴 얼굴이었는지 처음 알았다. 미숙이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자기 집에 가자고 해 또 다른 친구와 함께 셋이 그 애의 집으로 향했다. 동대문 운동장 뒤쪽 어디쯤이었다.
좁고 복잡한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을 때 호떡장수 리어카가 마주 오고 있었다. 우리는 옆으로 피했는데 미숙이가 멈칫하더니 제자리에 섰다. 리어카도 멈춰 섰다. 호떡장수 아줌마가 미숙아, 하며 봉투에 얼른 호떡을 담아 주었다. 찡그린 얼굴로 호떡을 받은 그 애가 뛰어갔다. 우리도 따라 뛰었다.
미숙이의 집에 도착했다. 커튼을 젖히고 들어간 곳은 움막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뒤 방문을 열고 들어가 그 애가 불을 켰을 때 미숙이한테 나던 냄새가 방 안에 가득했다. 방엔 펼쳐진 작은 상과 서랍장, 한쪽에 개켜진 이불이 있었다. 서랍장 위에 올려진 사진들을 보았다. 호떡장수 아줌마와 미숙이 둘만 찍힌 사진들이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런데 다가온 그 애가 사진을 가리키며 말해주었다. 우리 엄마라고.
집을 다녀온 이후로 우리 앞에서 미숙이의 말이 점점 줄어들더니, 언젠가부터 아는 체하지 않았다. 그 애의 마음도 모른 채, 알려고 하지도 못한 채 그 애와 멀어져 갔다.

또 다른 미숙이는 키가 크고 유난히 하얀 얼굴에 큰 안경을 쓰고 다녔다. 그 애의 긴 손은 방금 목욕하고 나온 듯 희고 깨끗했다. 몸에서는 언제나 좋은 향이 났다. 동부 이촌동의 맨션에 살던 그 애의 집에 처음 갔던 날, 가사 도우미가 문을 열어주며 ‘사모님은 장 보러 가셨다’고 했다. 현관 입구에서부터 이렇게 넓고 좋은 집도 있구나 하며 놀랐던 나는 큰 미숙이의 방에서 움츠러들었다. 빨간 카펫이 방 전체에 깔려 있었고 침대 위의 레이스 캐노피와 멋진 소파, 책상과 옷장, 하얀 장식장 안엔 만지기도 조심스러운 온갖 장난감들이 진열돼 있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면서 복도를 따라 걷다가 그 애의 방을 바로 찾아오지 못했다.
얼마 후에 미숙이 엄마가 들어오셨다. 검정색 정장 차림의 기사 편에 장바구니를 들게 한 미숙이 엄마는 흰 바지를 입고 검정 민소매 블라우스 위에 길게 진주 목걸이를 늘어뜨리고 굵은 웨이브의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너무 젊어 보여 이모 같았던 그녀는 오랜만에 친구가 왔다며 반겨주었다. 가사 도우미가 들고 들어온 쟁반 위엔 바나나와 처음 보는 간식들이 잔뜩 담겨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나는 맛도 모르겠는 뭔가를 자꾸 집어 먹었다.
큰 미숙이를 대학 1학년 때 학교 가는 길에 남영역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근처 대학을 다닌다고 했다. 여전히 흰 얼굴이었다. 반가워하는 친구를 나는 맘껏 반가워하지 못했다.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때 내 안의 반가움을 밀어내고 주인 행세했던 내 감정은… 자신의 집을 다녀오고 나서 더 친해진 듯 나를 대하는 그 애를 은근히 마음으로 밀어내던 그때의 내 감정도 질투였을까. 못난 열등감이었을까.
영화 속 히사와 타케처럼 ‘또 보자’는 말을 건네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이후 그녀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애들과의 시간은 아직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내 카이로스의 시간도 함께 흘러간다. 그 속에 있는 나를 지금의 내가 보고 있다. 언젠가는 지금의 나를 영화 속에서 만나게 되고, 미래의 내가 그 영화를 보는 날이 올 수도 있으리라.
영화가 주는 선물, 영화를 보고 싶은 이유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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