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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종사의 꿈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치인

책 제목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2월 6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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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초목이 꿈을 낚으려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봄날 아침이다. 산을 좋아하여 주말마다 산행을 하던 옛 동료가 생각났다. 그는 한국의 산 중에서 운길산에 있는 수종사의 전망이 으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후 가보고 싶은 산의 첫 번째가 되어 마음속에 늘 품고 지냈다.
가는 길이 험하다니 겁도 나고 바쁘게 살다 보니 수종사 가는 일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래도 틈만 나면 무작정 걸었다. 수종사 오르기를 위한 준비요, 단련 작업이었다.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지만 마음에 접어둔 것은 하고야 마는 고집이 노년의 자유를 얻고 나니 드디어 발동을 했다. 무작정 애완차를 끌고 좋아하는 남양주의 강변길을 달렸다. 평화롭던 기억의 물안개 공원을 찾았다. 이름 모를 풀들이 이웃 처녀 훔쳐보듯 몰래 고개를 내밀긴 했어도 벌판은 황량했다. 선뜻 수종사로 향하는 대신 물안개 공원을 먼저 찾은 것은 소심함 탓이었다.
한참 망설이다가 나온 김에 꿈에 그리던 수종사로 향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수종사 행 길 찾기를 검색했다. 편한 신발에 가벼운 차림이었고 동반자 없이 나선 길이라 부담이 적었다.
수종사 가는 길은 오르막이 심하고 비켜설 곳이 없으며 길 옆에는 낭떠러지가 잔뜩 겁을 주고 있었다. 산그늘에는 녹지 않은 눈덩이들이 백곰처럼 엎드려 오는 이, 가는 이를 반기며 추억 창고처럼 쌓여 있다. 마음 졸이며 페달을 밟고 떼기를 거듭했다. 험한 비탈길을 지나 드디어 일주문 앞 주차장에 이르렀다. 무릎을 아끼려고 일주문을 지나 비좁은 주차장까지 올라가 차를 세우고 높이 보이는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드디어 수십 년을 마음에 품었던 수종사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조선시대 세조가 금강산을 구경하고 오는 길에 양수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어디선가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 찾아보니 바위 틈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고 한다. 이에 감탄하여 운길산 중턱에 절을 짓고 이름을 수종사(水鐘寺)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정약용을 비롯한 조선의 한 학자들도 두물머리의 절경을 감상하기 위해 수시로 찾았던 암자였다. 암자의 뜰에 오르니 남한강과 북한강이 연인처럼 만나 절경을 이루는 평화로운 모습이 화폭처럼 펼쳐졌다. 그리던 임을 만난 듯 회한이 몰려왔다.
얼마나 기다리며 그리던 풍경이었던가! 수십 년 간직한 작은 소망을 이루어낸 뿌듯함에 울컥했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가 그윽하고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의 예불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어머니를 따라 산속 절을 향해 새벽길을 오르던 추억도 달려 나왔다.
수종사는 일출과 운해, 그리고 황금빛 은행나무의 환상적인 풍경을 보기 위해 찾는 명소이다. 그런 풍경을 빗겨선 봄날의 아침나절인 탓에 절 마당은 한산했다. 호젓하게 이곳을 찾은 청춘들에게 부탁이 없었지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다가갔다. 예쁜 미소와 다정한 포즈를 주문했다. 찍어준 사진을 보고 고맙다며 좋아했다. 작은 일이지만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 여겨졌다.
운길산 언덕 아래에 앙상한 노구처럼 우뚝 선 거대한 나무가 보였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그토록 아름답다는 황금빛 은행나무를 머릿속에 그리며 그의 역사를 살폈다. 천년을 토막 내어 살아온 세월이 믿기지 않을 만큼 꿋꿋했다. 하늘가에 번지는 맑은 목탁 소리와 오는 이들을 반기는 은행나무의 늠름한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가파른 산언덕을 겁도 없이 오르기를 잘 했다는 안도감에 뿌듯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양사언의 노래를 읊조렸다. 수종사를 가는 길도 한 걸음으로 시작되어 험한 산을 오르고야 말았다. 그리움은 꿈이요, 향수이다. 사람은 꿈과 추억을 먹고 사는 것 같다. 응어리진 추억들이 회색 구름처럼 몰려왔다.

꽃이 피었다고 좋아할 일인가? 꿈을 이루었다고 좋아만 할 일인가? 내 삶의 종착역을 향하는 발길이 빠르지만 또 다른 꿈을 향해 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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