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2월 670호
20
0
아들과 술상머리에서 가끔은 논쟁을 벌인다. 어느덧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어 이치를 깨달을 나이는 되었다.
사학과를 졸업한 아들은 서양사학이 전공이라 동양사학이나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는 그렇게 조예가 깊어 보이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동서양 사학을 배운 입장이라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지식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명색이 사학과 출신이라 역사에 있어서는 나름의 긍지가 있어 가끔 역사 문제를 이야기할 때 상반된 의견이 부딪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런데 요즈음 역사 인식에 변화가 생겼는지 가끔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생각은 진보적인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며 본인도 그렇다고 한다. 역사학자도 아니고 역사에 관한 지식도 별로 없는 나 역시, 역사를 올바로 알고 있는 것인가, 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 국문학의 범위 내에 필요한 문학사를 배워온 터라 한계가 분명히 있다. 그렇게 부자간의 이런 대화가 나쁘다는 생각은 안 한다. 어쩌면 아들과 대화할 수 있어 좋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이 지난 50여 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학교에 선생님들의 단체 조합이 생겨나면서 의견 대립의 양상을 보이니 교육의 방향을 나로서는 도저히 가름하기가 어려워졌다. 방향은 알 수 없지만 정보의 다양화로 역사적 시각과 관점 등 성향에 따라 올바름의 취사 선택이 가능해져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와 새로운 역사 인식 또한 생겨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랜 세월 단일민족이란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단일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관점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하나의 역사를 놓고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사회로 변한 것이다.
내 어린 시절에는 신화나 전설, 민담 등 구전되어 전해 내려오는 우리 역사의 상징화된 이야기들을 어떤 형태로든 듣거나 볼 수가 있었다. 그랬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조용히 사라지고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신화의 원형은 희화화되고, 재창조되어 한류 문화 전파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떠돈다. 그런 지금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은 적절한가? 라고 묻는다면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역사 교육은 조선 시대에 치중해 있고 반만년의 역사라는 긍지를 심어주기엔 다소 부족하다. 삼국사기나 고려사는 정사로 인정하고 필요한 내용을 주로 인용한다. 그 외에도 나로선 알 수 없는 많은 사료를 살펴보겠지만, 삼국유사 또는 부도지, 한단고기, 등외의 많은 자료들이 존재하고 있긴 한데 진서, 위서라는 논란만 있고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지는 꼭 필요해 찾아보기 전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한글 전용 교육은 한자로 쓰여진 역사서에 접근하기조차도 어렵게 만든다. 왕의 연대기나 일반적으로 명확하게 알려진 역사적 기록들 외엔 그 시대상에 관한 내용을 알 수가 없다.
나 자신도 전문적인 역사 연구가나 학자가 아니다 보니 딱히 변질되고 왜곡되었다는 역사의 진위를 알 수가 없다. 흔히 요즘을 역사 전쟁의 시대라고 한다. 언론이 자유롭다 보니, 너도나도 근거를 내세워 올바른 역사라는 주장들을 한다. 특히 재야 사학자들의 연구가 특별하다. 기존에 들은 적도 배운 적도 없는 근거나 자료 등을 내세워 기존의 역사관을 흔든다.
달리 생각하면 우리나라도 자유로운 학문의 시대가 열렸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그 자유로운 학문을 이용하여 잘못된 역사관이 심어질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이 좁은 한반도에, 고구려, 신라, 백제, 고려, 조선의 역사가 빼곡히 들어가 있다. 조금 더 넓혀 봐야 고구려와 발해의 만주와 연해주 정도의 지역까지의 강역으로 한정되어, 활동의 범위가 좁혀져 있는 교육을 받게 된다.
역사는, 그 시대 승리자들의 기록이다. 역사적인 사실은 중요하지 않고, 자신들이 필요하다 생각되면, 없는 일도 있는 듯이 만들어 기록하는 모습을 근현대에 들어서 보고 듣고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가끔은 내가 왜 이렇게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고민할까를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으로서, 또는 시민으로서 국가의 정체성에 대해, 국가의 장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배우는 우리의 바른 역사가 내 자식이나, 내 손주에게 주어질 건강한 국가가 만들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내가 태어난 나라는 후진국이며 극빈국이었고, 아들이 태어난 나라는 중진국, 손주가 태어난 나라는 선진국이다. 3대가 태어난 나라의 가치와 교육이 모두 달라서, 아들이나 손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의견 차이가 나타난다.
나라가 부강해지고 환경이 변하여, 받아들이는 지식에도 세대 간의 차이가 나겠지만, 그래도 변하지 말아야 하는 교육은, 사실을 기반한 역사 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