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대리엄마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위숙

책 제목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2월 670호

조회수34

좋아요0

어미닭이 병아리 떼를 데리고 봄 햇살 쬐러 앞마당을 누빈다. 삐죽이 자라나오는 날갯깃을 세우고 어미를 따르는 병아리의 종종걸음이 앙증맞다. 어미는 먹이를 잘게 쪼아서 ‘꼬꼬꼬’ 하며 나누어 먹인다. 어미닭은 병아리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인도자이며 보호자다. 아련한 고향집 무대이다.

며느리가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게 되어 몇 달간 집을 떠나야 한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자를 돌봐주러 오게 되었다. 연로하신 어머니를 남편께 떠맡기고 내 일정 모두를 접고서 올라왔다. 아직은 어려서 엄마와의 이별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아이를 달래고 타일렀더니 “엄마가 올 때까지 할머니를 엄마라 생각하고 기다릴게요” 한다.

울컥하였던 마음을 애써 감추었다. 엄마의 헌신적인 사랑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당분간 대리엄마가 되어야 한다.

손자를 돌봄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산보를 하자고 공원에 갔더니 망아지처럼 내달리며 따라잡으라고 한다. 한 바퀴 뜀박질하고는 항복해야 했다. 당연히 상대할 수가 없다. 체력 차가 얼마인가. 손자는 새벽이슬 머금은 들풀같이 싱그러운데 나는 석양을 바라보며 지는 해를 아쉬워하는 처지가 아니던가.

레고 조립에다 잡다한 장난감 변형을 할머니도 함께하자고 한다. 건성으로 “그래그래, 참 잘하구나” 라고 적당히 얼버무렸지만, 나는 FM 라디오에서 클래식 음악이 듣고 싶은데.

연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아이가 고열이라 학교도 갈 수 없다. 물수건으로 밤새 몸을 닦아주고 해열제를 먹여도 일순간이라 당황스러웠다. 병원을 다녀와도 차도가 없기에 다음 날 링거를 맞히기로 했다. 간호사가 혈관을 찾지 못해 세 번이나 주사바늘을 잘못 꽂았으니 어린 것이 병원이 들썩하도록 통곡을 한다.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이 이런 것이던가.

수액을 투여할 동안 기도를 드려야겠다. 아이에게 타이르고 싶었던 내 간절함을 이 시간을 통하여 접목할 겸해서이다.
“하느님, 우리 손자가 반듯하게 자라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릴 것입니다. 음식도 골고루 먹을 것이고 독서랑 공부도 스스로 할 것이니 아프지 않게 해주시고 잘 뛰놀게 도와주십시오.”

속삭이듯 올리는 기도에 아이의 마음이 움직였는지 “할머니는 저를 위하여 천사로 오셨어요. 감사합니다” 라지 않는가. 천진하고 순수한 마음에 동화되어 잠시 꽃구름을 탄 기분이었다.

그날을 되돌아본다. 무리에서 이탈한 한두 마리의 병아리가 어미를 찾아 목이 터져라 삐악거렸다. 짓궂은 강아지가 슬며시 나타나자 놀란 어미닭은 깃털을 세우고 부풀려서 위엄을 갖춘 모습으로 변장한다. 목숨을 내걸다시피 대항하여 강아지를 쫓아버리고 어린것들을 안심시킨다. 어미는 줄곧 주위를 살핀다. 한참을 뛰놀다 지치고 졸린 병아리들은 안락한 어미의 품에서 낮잠을 잔다. 한시름 덜은 어미닭도 이내 눈을 감는다.

손자에게 할미는 힘없고 무서울 게 없어 보이나 보다. 소위 말해서 얕보이는 게다. 아직 욕심이 없을 나이이긴 하지만 공부는 뒷전이고 놀이에 치중한다. 주말로 미루던 과제를 나 몰라라 한다. 일요일이라 애비가 있었기에 나는 잔꾀를 부렸다. 애비를 향해 “회초리를 어디에 보관해 두었나” 했더니 엿듣고 있던 손자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회초리는 왜요?” 한다.
“너 아빠 종아리를 때리려 한다.”
“우리 아빠를 왜 때려요. 안 돼요.”
“아들인 너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으니 아빠가 너를 대신하여 벌받아야 한다. 너의 아빠는 할머니의 아들이니까 회초리를 들어도 된다.”

손자가 다급했다.
“공부하면 되잖아요. 공부할게요.”

한 토막 단막극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대리가 참으로 많다. 도움이 필요할 때 대리를 찾는다. 전쟁으로 남겨진 고아나 부득이한 어려움에 처한 아이에게는 위탁 시설인 보육원이나 친지, 독지가들이 대리엄마가 되어준다.

단봇짐을 꾸려서 도시로 진학하기 위해 함께 지냈던 고모와 외숙모께서 나의 대리엄마였다. 그때는 사춘기였지만 내색도 할 수 없었다. 사랑받기 위해 자진하여 집안일 거들고 휴일에도 사촌들 돌보느라 바깥나들이 한 번 해본 기억이 없다. 엄마의 품이 그립고 두고 온 동생들이 눈에 밟혀, 밤이면 베개를 적신 날이 헤아릴 수 없었던 내 유년 시절이었다.

대리는 어느 시점이 한계인 것 같다. 가없는 사랑으로 보살핀다 해도 엄마의 사랑에 비할 수 없다. 가장 위대한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어머니는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끊을 수 없는 동아줄로 묶여 있다. 할미는 안아주고 감싸줄 수 있는 폭넓은 치마폭이면 될 것이다.

이제 며느리가 귀국한다. 긴 시간이었지만 쏜살같이 달아난 대리엄마의 역할은 무대를 떠날 때가 왔다. 덮어두었던 일상으로 돌아가서 나를 되찾고 꿈을 수놓을 오색실타래를 마련해야겠다. 부산행 열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