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2월 670호
27
0
음악회는 성황리에 끝났다. 나는 꽃을 들고 그녀가 나올 대기실 앞에 서 있었다. 드디어 검은 드레스에 틀어 올린 머리를 하고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나왔다. 마치 연주 생활 30여 년 한 관록의 연주자처럼 보였다. 의사와 변호사로 성공한 아들 두 명이 그녀의 양옆에 섰다.
세상을 다 가진 자의 표정을 안 봐서 모르겠는데 아마도 그녀의 환하디 환한 필러 맞은 이마와 번쩍이는 코, 보톡스 때문인지 약간은 어색한 입꼬리의 주름조차 가진 자의 표정이 그런 것 같았다. 올린 머리 덕인지 그녀의 150센티가 조금 넘는 키도 작아 보이지 않았다.
6개월 첼로를 배우고 독주회를 개최할 수 있는 배짱에 놀라워하는 내가 촌스러운 것인가, 그녀 곁에 몇 푼을 받고 함께 무대에 오른 연주자들의 강심장을 소유한 그녀의 동료들이 촌스러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때 촌스럽다는 의미는 그 동네에서만 먹힌다는, 즉 이해된다는 뜻이다. 도시와 촌의 양분이 아니라 당신이 관계하는 주변인 또는 그 작은 세계라고 말하고 싶다. 여하간 그녀는 4명의 연주자들 끝에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라 연주를 했다.
작은 콘서트홀에는 나처럼 그녀를 위해 액세서리로 등장한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그녀는 돈은 그렇게 쓰는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고.’
모르겠다. 돈을 주고 액세서리용으로 연주자들을 사고, 콘서트홀을 빌리고 그리고 멋있는 연주복을 입고 가족을 포함한 일가와 관계자들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어 거실 한 귀퉁이에 걸어 놓는 방법으로 돈을 써야 한다고 했다.
“돈이 돈을 낳는 방법이지.”
사실, 그것 또한 하나의 사람 모으기 방법이다. 아니, 돈 만들기 비법이다. 서로 연줄을 만들고 눈도장을 찍기 위해 방문한 내외빈들의 면면을 만나기 위한 속셈으로 사람들은 모인 것이다.
나는 왜 초대되었을까? 그건 나에게 언제나 주눅 들어 있던 그녀가 자신의 입신을 만천하에 공공히 하는 자리에 목격자가 되어 나팔수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녀의 궁핍했던 날들을 목격한 죄로 나는 그날의 축제를 보며 적어도 ‘3대는 가야’ 신분 세탁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사실 그게 뭐 그리 대수냐 싶다. ‘신분 세탁’이라니. 이 또한 이 시대에 얼마나 웃기는 발상인가. 편 나누기와 줄 세우기, 아무튼 그런 것은 ‘난 몰라’ 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깊은 곳에서 이쑤시개처럼 가끔 올라와 예민한 부위를 콕콕 쑤시기는 하지만 내가 통증을 느끼는 척한다면 거짓부렁이다.
얼굴 아는 3선 국회의원이 멀리서 만면의 웃음을 지으며 로비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든다. 그래, 이제 나의 역할을 할 타이밍이다. 나는 잰걸음으로 그를 향해 간다. 목소리를 높여 여러 사람이 나를 둘러볼 수 있게 김 의원을 부른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와 그를 번갈아 본다. 야속하지 않게 김 의원이 나를 향해 손을 내민다.
찰칵, 우리 둘이 허공에서 손을 맞잡는 순간 누군가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나는 ‘성공!’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오늘의 주인공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를 부른다.
“소개해 줘야지.”
말끝에 살짝 그녀 특유의 콧소리가 케이크의 데코레이션처럼 덮는다. 서둘러 통성명을 마친 우리는 환하게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나는 그렇게 내 사회적 역할을 함으로써 그녀에게 동조한다.
그녀가 6개월 배운 첼로 레슨은 드디어 성대한 연주회로 마무리되었다. 4명의 연주자에게 출연비를 지불하고 나중에 한 번 그녀가 슬쩍 합류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남는 것은 사진과 리플릿, 그리고 경력이 되는 것이다.
“그게 가능해?”
“내가 하니? 돈이 하지.”
그랬었다.
시간은 쌓여 가는 것인지 흘러가는 것인지 굳이 따질 일은 없다. 어차피 우리도 함께 쌓이든지 흘러갈 테니까. 만약 케이크의 단면처럼 시간을 자를 수 있다면 그녀의 현재는 말랑말랑한 크림층일까, 아니면 검고 달콤한 초콜릿층일까. 그녀는 집에 돌아가서 축하 케이크를 자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상류사회로의 진입을 자축했을까. 나 같은 서민, 촌스러운 인물에게 돈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는 만족감에 입이 귀밑까지 찢어져라 웃어 제꼈을까!
그녀의 성공 신화는 흔하디흔한 강남의 졸부 서사이다. 공무원 아내로 알뜰살뜰 살다가 어찌어찌 강남의 부동산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 13번의 이사를 통하여 부를 축적했다. 아이들은 공부를 잘했고, 돈도 있었지만 부부가 고졸 출신이라는 레벨은 그녀에게는 낙인이었다. 자식이 아니라 자신이 빛나고 싶었다. 처음에 동네 주민센터에서 그림을 배우러 다닐 때부터 그녀의 꿈은 원대했다.
“난 말이야, 내 이름 앞에 괄호 열고 ‘작가’ 괄호 닫고 그거면 돼.”
그녀의 말인즉슨, 작가라는 닉네임을 붙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몇 번의 자비로 전시회를 열고 그녀의 말처럼 되었다. 작가 박선혜가 되었다.
감투의 종류도 여러 가지지만 작가라는 타이틀이 그런 역할을 하는 줄 몰랐다. 동창 한 명이 비아냥거렸다.
“강남 봉은사 앞에서 ‘작가님!’ 하고 부르면 등 돌리고 가던 사람 열에 아홉이 돌아볼 걸.”
세상이 이렇게 되어 가고 있다. 무형의 가치조차 가격화되는 세상이다. 니체가 말하기를 ‘바람을 향해 침을 뱉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는데 과연 나는?
연주장을 떠나는 내 귓속에는 첼로 연주자 중에 어쩔 수 없이 들러리로 무대에 섰어야 하는 이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여운을 남겼다.
진실은 거짓을 뚫고 나올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