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2월 670호
52
0
대서사시『신곡』은 인류의 문학적, 철학적, 종교적 유산의 총집결체이며 중세를 넘어 근대 문학의 심원한 원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필자는 단테가 연옥 정상에서 그의 구원의 여인이자 사랑의 불꽃인 베아트리체를 만나서 함께 천국의 첫 하늘에 오르는 감동을 시로 지었다. 「천국편」2곡에 묘사되어 있는 기독교 교리, 신의 사랑, 사람의 사랑, 신화, 과학을 최대한 담아보았다.
구원을 찾는 마음 하나/ 자그마한 쪽배를 탄 영혼들이여/ 천상을 향한 노래 부르며/ 노 저어 가는 나의 배를 따르세요.// 함께 시를 써요/ 미네르바가 영감을 주고/ 아폴론은 이끌고/ 아홉 뮤즈들이 북두로 안내하듯 이.// 신의 나라 향한 염원의 눈물/ 마르기도 전에/ 우리를 싣고 가는 걸 보세요/ 베아트리체는 하늘을 보고/ 나는 그녀만 바라보는데/ 우리를 태운 화살이 무한한 장력(張力)에/ 벌써 천상에 오릅니다.// 첫 번째 성좌(달)에 이끄신 빛과/ 영원한 물방울 같은 진주가/ 한 덩어리가 되고/ 그 사랑 속에 우리 영원하길/ 마돈나여/ 그 빛/ 그 사랑에 감사합니다. ——단테의 노래(신곡 천국편 제2곡)
망명길 단테는‘어두운 숲속’에서 방황하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저승세계를 여행하게 된다. 지구 북반구 반대편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남반구에 높은 산이 있는데 이곳에 연옥(煉獄)이라는 독특한 세계가 있다. 연옥 정상에서 비로소 천국에 오를 수 있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손에 이끌리어 고통의 지옥을 지나 여기까지 올라간다. 죄의 기억을 말끔히 지우는‘레테의 강’을 건너고 드디어 십여 년 전에 죽어 천국의 별이 된 베아트리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함께 하늘에 오른다. 시의 장면이다. 단테(Dante, 1265-1321)의『신곡』(LA DIVINA COMMEDIA DI DANTE ALIGHIERI)은 지옥, 연옥, 천국(Inferno, Purgatorio e Paradiso)으로 되어 있다. 각 편은 33곡(canto)으로 이루어진다. 서곡을「지옥편」에 붙여 총 100곡으로 구성된다. 단테 알리기에리는 저자이자, 작품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단테를 어두운 숲에서 건져 이끈 자는 로마 최고의 시인인 베르길리우스(로마의 건국사『아이네이스』저자)이다. 단테를 지옥과 연옥의 정상까지 동행하며 순례를 이끌어 간다. 단테를 위대한 작품 세계로 이끈 동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단테의 영원한 사랑이자 구원인 베아트리체이다. 작품 안 저승세계 여행을 계획한 자도 베아트리체이다. 그녀는 연옥 정상부터 천국 여정을 이끈다. 기독교 교리를 설명하며 단테를 각성시키고 이승에 돌아가거든 저승의 경험과 교훈을 글로 남길 것을 단테에게 강권한다. 괴테는『신곡』을‘인간이 손으로 만든 최고의 작품’이라 칭송하고 『신곡』의 영감을 받고『파우스트』를 집필했다. 화가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는 단테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1465년에 단테와 신곡의 지옥, 연옥, 천국의 세 세계를 한 폭에 담아 대형 그림을 그렸다. 보카치오는‘신이 내린 작품’이라 칭송하고 전국을 돌며『신곡』을 강의하고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지난 2021년, 단테 서거 700주년을 기념하여 가톨릭계는『신곡』의 메시지는‘인류의 회심을 촉구하는 일과 인류의 참 행복을 선포하는 일’이라 했다. 단테는 문학을 통한 시대적 실천으로 인류를 회심케 하고, 인류 문명에 변혁을 가져오는 씨앗들을 잉태하였다. 단테는 인류를 위해 예비된 선지자 같은 존재였다. 현대 인류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에 대응하여‘절제하는 인간 본성과 이성’의 가치가 필요한 시대이다. 인류는 다시 단테의『신곡』에 주목해야 한다.
위대한 여정을 위한 운명적 준비
청신체 활동, 사람을 노래한 시문학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을 담은『신생(La Vita Nuova)』을 쓰던 젊은 시절에 단테는‘청신체(dolce stil novo; 감미로운 새로운 문체)’라는 활동을 했다. 청신체 시문학은 이탈리아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형식은 소네트(sonnet)와 자유로운 발라드이며 신이 아닌‘사람’을 대상으로 노래한다. 단테는 작품에서 한 영령에게 청신체를 정의하며 본인을 소개한다.
사랑이 내게 불어올 때 받아 적고, 사랑이 안에서 불러 주는 대로
드러내려는 사람이라오.(연옥편 24곡 52-54)
연옥에서 한 영령이“사랑의 지성을 가진 여자들로 시작하는 새로운 시를 쓴 사람이 아닌가요?”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새롭고 감미로운 시’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감성의 발로이다. 그가 단테의 시를 노래로 부르자 단테는 정신이 팔릴 정도로 감동한다.
‘마음속에서 나에게 속삭이는 사랑’ 그때 그가 그리도 부드럽게 시작했는데
그 부드러움은 아직 내 안에서 울린다.(연옥편 2곡 112-114)
영감의 원천, 베아트리체
연옥정상(지상천국)에서 베아트리체와 극적인 상봉을 할 때 단테는 여기까지 안내해 준 스승 베르길리우스에게 감격에 겨워 외친다.
내게는 떨리지 않는 피란
한 방울도 없다오. 내 눈에는
저 어릴 적 불꽃의 표적을 지금 보고 있다오.(연옥편 30곡 46-48)
베아트리체 또한 단테를 향한 대담한 사랑을 고백한다. 여러 번 꿈속을 찾아가 영감으로 불러 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무심했다던 단테를 탓한다. 결국, 림보에 있는 베르길리우스에게“단테를 지옥을 거쳐 여기까지 데려다 주길 간청했다”고 말한다. 단테는 아홉 살 때 한 살 어린 베아트리체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베아트리체를 천사와 같은 순결한 존재로 여겼기에 감히 말도 걸지 못하고 평생 가슴에 품고만 살며 문학적 영감의 원천으로 키워왔던 것이다.
한때 사랑으로 나의 젊은 가슴을 뜨겁게 했던 저 태양은 아름다운 진리의 부드러운 모습을
온전하게 논박과 증거로 내게 나타내 보였다.(천국편 3곡 1-3)
피렌체에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아르노강의 산타트리니타 다리가 있어 그녀와 두 번째로 만난 곳이다. 그녀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25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단테는 엄청난 비탄에 빠졌었다. 단테는 천국 엠피레오(최고의 하늘)에서 옥좌로 올라앉는 베아트리체를 보며“그녀는 영원한 빛을 반사하면서 면류관을 이루고 있었다”(천국편 31곡 72)고 쓴다. 그녀는 단테의 삶과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창조의 모티브이자, 종교적 교리이고, 구원의 상징이다.
망명과 위대한 집필
작품 속, 1300년 성스러운 희년 부활주간 성금요일 새벽이다. 단테가 저승 여행을 출발하는 날, 여행 기간은 7일 동안이다.『신곡』첫 대목을 소개한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 올바른 길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있었네.(지옥편 1곡 1-3)
「지옥편」의 첫 구절이다. 단테가 인생 중반에 문득 바라보니‘어두운 숲속’에 처해 길을 잃고 헤매는 자기 모습을 본다. 이 숲을 빠져나가려 하나 무서운 세 짐승 표범, 사자, 암늑대가 가로막고 있다. 표범은 음란, 사자는 오만, 암늑대는 탐욕을 뜻한다. 어두운 숲은 망명길 희망 없는 삶이고, 세 짐승은 단테를 몰아낸 교황청과 정적인 흑당파들, 모욕을 주는 피렌체인들이다. 교황을 지지하는 흑당은 피렌체에서 기벨린당(황제파)을 물리치고 주도권을 되찾았다. 그러나 단테의 백당(白黨)은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의 야욕적인 교황령 확장을 반대한다. 1302년 단테가 로마 교황청 파견 중에 교황의 세속권력 확장을 지지하는 흑당이 쿠테타를 일으킨다. 단테가 속한 백당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약탈, 사살 혹은 추방당한다. 단테는 화형 선고를 받고 쫓겨서 망명길에 오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인간은 먹고 자는 오이코스(사적 영역)만을 해결하면 되는 동물이 아니라, 폴리스(공공 영역)에서의 정치적인 삶을 누리는 인간이어야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단테는 폴리스를 쫓겨나 가치 없는 삶을 사는‘어두운 숲’(신곡, 첫 행에 표현)에서 몰락하는 신세였다. 여생 20여 년을 베로나, 라벤나 등을 떠돌며 보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숙명적으로 단테에게 위대한 작품을 위해 예비된 광야와 같은 곳이었다. 망명은 좌절과 실패의 시간이었지만, 한편 지성인으로서의 자각과 실천을 가능하게 했던 하나의 기회이기도 했다. 단테는 망명의 시절을 겪으며 피렌체를 넘어 이탈리아와 유럽을 보게 된다. 이를 통해 신의 위대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 또한 그의 눈은 인류의 미래를 보고 있었다. 단테는 1302년 망명길에 올라『신곡』을 구상하기 시작했으며 1321년, 죽기 바로 전까지「천국편」을 기필코 완성했다.
최고의 스승 아래 교육
단테는 13세 때 당대 유럽 최고의 지성인 브루네토 라티니(Brunetto Latini)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4년 후 17세에 볼로냐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의 지도를 받았다. 18세에 부친이 사망한 이후에는 스승의 보호를 받게 된다. 스승은 단테의 청소년기 교육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 라티니는 고전에 능통하였다. 그의 저작『테세로(Tesero, 보배의 서)』는 중세시대 지식의 집대성인 백과사전과 같았다. 그가 프랑스 망명 중에 쓴 백과사전식 3부작 작품이다. 1부는 역사, 우주의 기원, 천문학, 지리에 대하여, 2부는 덕과 죄에 대하여, 3부는 수사학과 정치에 대하여 기술한 유명한 책으로 단테의 집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지옥편」제15곡 동성애자들이 고통받는 지옥에서 영원히 불길을 걸어야 하는 형벌을 받는 라티니 선생님이 단테를 알아본다. 선생님은 단테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너의 별을 따라가거라!
사는 동안 내가 너를 잘 보아서 아노라
너는 영광스러운 항구에 꼭 도달하리라.(지옥편 15곡 55-57)
선생님은 단테에게 희망을 잃지 말고 목적의 길을 가게 되면 결국 이 루리라는 예언을 한다. 단테는“선생님은 늘 제 마음에 자애롭고 친절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머물러 계십니다. 제 앞날에 대해 주신 말씀을 잘 기억하겠습니다”하고 감사한다.
변혁을 향한 단테의 시대적 실천과 잉태한 씨앗들
사람의 심리를 다루고 독특한 음률과 리듬으로 창작 -유럽 문예부흥을 열다
단테가 창작한『신곡』의 문체는 내용만큼 혁신적이다. 특이하게 11음절 3행 연귀시로 각운을 살려가며 시를 썼다. 독특한 형식과 정신은 한 세대 후배인 페트라르카가 저서『칸초니에레』로 정립한 소네트(14행 연가)에 영향을 주었다. 이어 영국 소네트 문학이 뒤를 이었다. 서곡 첫 부분 글의 맛(형식과 음률)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네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속에 처해 있었다
아, 이 거친 숲이 얼마나 사나웠던지 어떠했노라 말하기 너무 힘겨워 생각만 하여도 몸서리쳐진다!
죽음보다도 더 쓰거웠기에
나 거기서 깨달은 선을 다루기 위해 거기서 본 다른 것들도 말하련다.
Nel mezzo del cammin di nosta vita ..a mi ritrovai per una selva oscura ..b
che la diritta via era smarrita ..a
Ahi quanto a dir qual era e cosa dura, ..b esta selva selvaggia e aspra e forte, ..c che nel pensier rinova la paura! ..b
Tant e amara che poco e piu morte; ..c ma per trattar del ben ch i vi trovai, ..d diro de l altre cose ch i v ho scorte. ..c
청중에 읽어주거나 낭송하는 공연형식을 갖는 서사시는 운문 고유의 음악성과 리듬, 악센트, 각운, 음절들의 숫자 등 형식적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신곡』은 이러한 형식과 치밀한 구조를 갖추고 사람의 심리를 묘사하며 써내려간 서사시(敍事詩)이다. 시의 행은 각각 11음절로 반복되고 연이어지는 구조를 하고 있다. 각각의 곡마다 시행의 수는 일정하지 않으나 대체로 140행 전후이며, 전체는 1만 4,233행에 이른다. 세 개의 행이 하나의 단락을 이루는 3행 연구(terza rima)로 이루어져 있다. 각 행 끝의 두 음절은 서로 교차하며 외형률을 엄격히 지켜 간다(사슬운 형식). 위 원문 시에 표시한 것처럼“aba bcb cdc ded...xyz y” 패턴을 이어가며 마치 판소리를 읊듯이 리듬을 탄다. 끝 연을 한 행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특이하다.
토스카나 속?로 쓰기 -라틴어 배제하는 유럽 민족어운동 시초가 되다
단테는 민중의 언어인 피렌체 속어로 대작을 썼다. 공용어 라틴어를 배제한 혁명적 사건이다. 이 피렌체 방언은 이탈리어 표준어가 되었고, 단테는‘이탈리아어의 아버지’라 불리게 된다. 이에 영향을 받은 라틴 계의 로망스어 네 속어들(에스파니아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루마니아어)이 교황청 언어인 라틴어를 극복하고 각 국가의 표준어로 자리 잡게 된다. 이어 게르만계의 언어와 영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보카치오는 호메로스가 그리스어를, 베르길리우스가 라틴어를 처음 드높였던 것처럼 단테는 이탈리아어를 처음 드높여 존경받는 언어가 되었다고 평했다.
단테의 상상력으로 디자인한 저승 세계 -문학을 넘어 과학 지평을 넓히다
『신곡』작품 속 순례 여행의 시기적 배경은 단테 추방 2년 전 1300년부터 시작한다. 이 해는 한 세기의 시작이자, 교황이‘희년(禧年; 성스러운 해)으로 선포한 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단테는 저승의 세 세계를 극적 형상화하였다. 신화와 역사, 성경의 공간을 재배치하고 천문, 지리, 건축학의 지식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탁월한 기하학적 세계를 창조한다. 작품 세계의 공간적 구조는 인간이 사는 동안‘죄와 벌’(지옥, 연옥), 그리고‘선과 별’(천국)에 근거하여 치밀하게 이루어져 있다. 인과응보를 콘트라파소(Contrappasso)라 한다. 예를 들면 교만한 자는 무거운 돌을 짊어지고 걸어야 하고, 분열을 일으킨 자는 자기 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단테는 피렌체 세례당 둥근 지붕 내 그려진‘마르코 발도 모자이크’작 <지옥> 그림을 기억하며 지옥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천국 세계 구상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서『알마게스트』의 천동설을 기반으로 한다. 단테는 천국 9개의 하늘을 설계하였다. 그는 천문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천체 운행을 기술하고 있다. 각 편 마지막 행마다 모두‘별들’이라는 시어를 끌어들여 끝맺고 있다.
지옥편 34곡,“그리고 나서 우리는 별들을 다시 보러 나갔다.”
연옥편 33곡,“다시 살아나고 순수해져서, 별들에 올라갈 열망을 가다듬었다.”
천국편 33곡,“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시는 사랑이 이끌고 있다.”
지옥(地獄)은 예루살렘 아래에서 시작한다. 지옥은 땅속 공간이라, ‘별 없는 하늘(lare senza stelle)’로 별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 지옥의 구조는 역피라미드의 팽이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각 층 지옥을 ‘cerchio(원)’라 표현한다. 9개의 원(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감을 받은 오귀스트 로댕의 불후의 걸작인 청동 조형물,‘지옥의 문(Porte de Inferno)’에 수백 점의 인물 군상이 있다. 신곡「지옥편」을 주제로 하여 인간의 욕정, 탐욕, 배신, 신성모독과 여러 가지 죄악의 비참한 짐을 표현하고 있다.
“네 영화가 스올에 떨어져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아,
하늘에서 떨어져 그리 땅에 찍혔는고 … 스올 구덩이 맨 밑에…”(이사야서 14장 11-15)
하나님에 대항한 루키페르는 지옥의 맨바닥 얼음장에 갇힌 채로 지옥을 다스린다. 단테가 지옥 중심을 통과하자 어느 순간 루키페르는 다리가 얼음장에 거꾸로 처박혀 있다. 땅속 끝을 통과하니 중력이 다시 바로서고 밤낮이 바뀌었다. 단테는 이렇게 중력을 설명하였다. 뉴턴보다 수 세기 전에 구체적으로 통찰하고 기술한 것이다.
연옥(煉獄)에 대한 교리는 단테 시대에 와서야 정립되었다. 지옥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단테는 지구의 반대편으로 뚫린 굴을 통하여 남반구의 바다에 솟아오른 정죄(淨罪)의 산, 연옥(Purgatorio) 입구에 도달한다. 연옥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빛의 세계다.
단테는 지옥편 끝부분에서 연옥이 만들어진 배경을 흥미롭게 기술하였다. 패역한 천사장 루키페르가 남반구로 추락할 때 원래의 남반구 육지는 무서워서 바다의 너울을 쓰고 북반구로 도망쳐 왔고 땅에 큰 구멍이 생기며 남반구 남은 흙들이 바다 위로 솟구치어 연옥산이 되었다고 한다. 단테가『신곡』을 통하여 연옥의 구조를 창안하고 그 내용을 제대로 채웠다고 볼 수 있다.
연옥산은 로마의 티베레강 어귀 오스티아에 집결하고 천사의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질러갈 수 있다. 지구의 정반대 남반구에 솟아있다. 배를 타고 남반구에 간다는 것은‘지구는 둥글다’라는 주장을 감추어 표현한 것이다. 단테가 지옥을 통과하자 밤은 순식간에 지나고 어느새 새벽이 되어 있었다. 하늘을 보니 별들이 보였다.
연옥산은 일곱 개의 둘레로 되어 있다. 각 둘레 층은‘일곱 가지의 대죄’, 즉“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색욕”에 할당되어 있다. 속죄가 끝나게 되면 지상낙원(Paradiso terrestre)에 도달해 천국으로 오를 수 있게 된다.
천국(天國)은 믿음의 등급에 따라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아홉 권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겹겹 하늘로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된다. 복 받은 영혼들은 최고의 천국(엠피오레, Empireo)에 살지만, 각 천사들의 품위가 있는 하늘별로 배치된다.
단테가 바깥 천구에 올라가서 아래를 보니 멀리 지구가 웃음 나올 정도로 조그마하다. 지구 중심으로 아홉 천구(하늘)들이 회전하고 있다. 또 위를 보니 엄청나게 많은 천사들이 거대한 공 모양 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천국은 인간이 표현할 수 없는 온갖 색채와 빛으로 가슴 벅찬 향연으로 둘러싸여 있다. 단테는 음악과 시의 최고신 아폴론에게 이 경이롭고 위대한 천국을 제대로 묘사할 수 있도록 영감을 달라고 기도한다. 월계관을 씌워 달라고 호소한다.
단테는 아인슈타인처럼 직관을 발휘한다. 그의 기하학적 직관은 프톨레미의 천동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스승 라티니의『보배의 서』에서 기하학적 구체 묘사에서 영감의 원천을 받았다고 한다. 제9원은 우주의 중심이고 모든 우주와 별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의 원천인 원동천이다. 지구가 우주 중심을 축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천국편」은“모든 것을 운행하시는 그분의 영광은 온 우주를 가로지르며 빛난다(1곡 1, 2행)”로 시작한다. 우주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고 삼라만상은 운명처럼 질서가 있다. 생물들 마음속에 생명력을 키우고 행성마다 힘을 끌어모으게 한다. 우주의 무한한 활은 그 질서를 주관하는 섭리이고 고요한 천국 하늘에는 천사들이 빛이 되어 쉴 새 없이 돌고 있다. 우주의 원동력으로 단테가 천상에 오름은 시냇물 내려오듯 편하다.
교황청과 가톨릭 변혁을 위한 강력한 저항 -종교개혁의 씨앗을 품다
「지옥편」제 7곡에서 한 영혼이“왜 그렇게 인색하게 모으기만 하느냐?” 말하자, 다른 영혼은“왜 함부로 낭비하는 거야!”라고 헐뜯었다. 서로 상반된 모순의 삶을 살았던 죄인들이다. 이들은 자비도 없고 절제도 모르는 자들이다. 단테는 셀 수 없이 많은 대머리들이 있는 것을 보고 누구냐고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이 답했다.
“머리카락이 없는 자들은 한때 교황과 추기경들이다. 이들은 지나치게 탐욕을 부렸지. 재화를 잘못 쓰고 잘못 챙긴 저들은 밝은 세상을 빼앗기고 이런 아귀다툼에 빠지고 말았단다. 아들아 보아라. 재화는 운명, 포르투나의 손에 들려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처절히도 싸우고 있지. 얼마나 헛된 일인가!”
달 아래 있는, 언제나 있어 왔던 저 금은보화를 다 바친다 해도, 이 지친 영혼 하나라도 쉬게 할 수 있는가?(지옥편 7곡 64-66)
단테는‘하나님은 두 팔로 다스리신다’라고 주장한다. 두 팔은 국가와 교회이다.
루터의‘신앙의 자유’란‘로마 카톨릭의 종교권력과 세속화한 정부로부터 자유이다’라는 주장은 단테의 실제 삶에서나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외치는 말이다. 단테가 언어로써 오래전 잉태한 씨앗을 루터가 부화하고 실천한 것이다.
단테는 지옥 8원 깊은 구렁에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의 자리를 마련해 둔다(지옥편 19곡). 이미 처박혀 있던 니콜라우스 교황의 입을 통하여 1300년 당시엔 아직 살아 있는 보니파키우스가 죽어서 곧 올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영령의 입을 통해 교황에 대한 맺힌 원한으로 저주와 독설을 퍼붓는다.
그렇게 빨리 탐욕을 채웠느냐?
탐욕에 눈이 멀어 아름다운 신부도 속였느냐?
게다가 결국에 성직매매 하기까지 했느냐?(지옥편 19곡 55-57)
보니파키우스 8세는 세속적 권력과 교황령 확장을 위해 흑당과 결사하여 단테의 백당 사람들을 무참히 축출한 자이다. 보니파키우스에 이어서 클레멘스 5세 교황도 윗구멍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클레멘스는 실제로 교황 즉위 대가로 프랑스 필리프 4세와 비밀협약을 맺고, 취임 후 교황청을 아비뇽에 옮기고 성직을 매매하다가 결국 수모를 당하고 죽는다.「지옥편」19곡은 교황들에 대한 응징이고 교황청에 대한 성직매매 반대 선전포고이다. 바로 종교개혁의 불씨이다.
단테가 교황의 영혼을 꾸짖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기 전에 원하신 게 있었나요? 당신은 거기서 온당한 벌을 받고 있으니 불의로 번 돈이나 잘 간직 하시오. 한때 신랑(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을 때 신부(교회)는 일곱 개의 머리(성체)를 지니고 태어나 열 개의 뿔(십계명)에서 힘을 얻었소. 그러나 그 신부는 타락하여 세상의 왕들과 간음하였다. 당신은 금과 은으로 하나님을 섬겼으니 우상 숭배자와 다를 게 무엇인가?”
신의 예정설보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 -근세 휴머니즘과 계몽주의의 씨앗이 되다
중세 인간은 감수성을 잃고 복종적, 이기주의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다. 자신의 의지는 약화 되었고 결국 타인 의지의 노예가 되었다. 통제된 언어와 봉건제에 구속되어 창조성을 상실한 족속으로 전락하였다. 중세시대 타인의 의지란, 로만-카톨릭의 종교 시스템과 켈트·게르만 정복자들의 봉건제도가 두 축을 이룬다.
윌리스 파울리의 저서『단테의 신곡-지옥편』도입부 제3, 4, 5곡 해설은‘사람의 선택과 자유의지(自由意志)’에 관련된다. 제3곡의 입구 지옥에 있는 게으르고 비굴한 사람들은 결정 내리는 자유의지를 도피한 비굴한 영혼들이다. 지옥조차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제4곡의 림보에는 선택할 기회가 없어서 세례받지 못한 영혼들이 머문다. 제5곡에는 욕정에 사로잡혀 사랑을 선택한 자들이다. 단테는“강한 연민을 느낀다”라고 했다. 단테는 대서사시에서 시작부터‘자유의지’라는 화두를 던졌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타인의 자유의지를 보호하고자 윤리적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이 설을 근거로 단테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훼손하는 사기, 배신죄를 폭력·살인보다 더 무겁게 취급한다. 지옥 8원(옥)은‘사기’, 9원(옥)은‘배신’의 지옥이다. 8원을 열 개 구렁으로 분류하여 치밀하게 다루고 있다.
「연옥편」15곡은 마르코의 입을 통한 자유의지에 대한 강해라 할 수 있다.
“나는 롬바르디아 사람 마르코,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알았고 사람들이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는 미덕(자유의지)을 사랑했다오. 사람들은 신의 예정된 계획대로 된 일이라 여기고 모든 원인을 하늘에 돌리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자유의지는 없어지고 선에 대한 기쁨도 악에 대한 슬픔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오. 사람들은 분명 스스로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다오.”
스스로의 빛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유의지는 처음에는 하늘과 갈등으로 상처를 입고 약해졌지만 잘 키워나가면 모든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오
사람들은 위대한 힘을 가진 자유로운 주체들이오. 그대들 안에 마음을 창조한 더 귀한 성품에 속한다오
하늘도 이 마음들을 통제하지 않는다오.(연옥편 15곡 76-81)
마르코는 하나님이 주신‘자유의지’로‘사람은 자유로운 주체다’라고 하며, 사람들의‘고유한 마음을 창조하였다’는 당시 세계에는 생각하기 힘든 사상을 들려주었다.
인류의 위기,『신곡』에서 길을 찾자
단테는 망명길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 그는 피렌체를 떠나 이탈리아 조국과 유럽을 바라보았고, 그의 눈은 이미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이러한 통찰로 그는 신의 세계를 성경(에스겔서, 이사야서, 요한계시록 등)과 고대신화와 과학적 지식을 모두 동원하여 엄청난 상상을 해냈다. 그리고『신곡』을 집필하였다. 서사시에는 작가 단테의 지성과 영성 그리고 감수성이 총동원되어 있다. 아감벤은“단테는 중세의 신비로움을 갖춘 근세의 시인이다”라고 하였다.
1265년 단테 탄생부터 1642년 갈릴레오 죽기까지 400년간은 인간의 본성과 개성을 더 중시하는 시대로의 전환기였다. 단테 사후 2백 년 후 바사리가 최초로‘리나시타(Rinascita, 거듭남)’라 명명한다. 이른바 르네상스 시대이다. 변화의 기본사상을 인문주의(휴머니즘)라 이름 붙였다. 이탈리아에서 태동하여 새로운 역사적 원동력이 된 인문주의가 바로 ‘르네상스’이다. 이 출발선에 단테가 서 있었다. 바이런의 말처럼 작가란“별을 찾아 바람을 거슬러 항해하는 사람들”이다. 미지의 세계에서 새로운 언어들을 싣고 돌아와 우리에게 건네주곤 한다. 단테는 저승 세계의 여행을 다녀온 뒤 변혁의 씨앗을 품은 대서사시를 인류에게 건네주었다.
단테는 자연철학, 지리학, 천문학의 지식과 통찰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세계관을 창조해 낸 사람이다. 누군가는‘시인은 신 다음의 창조자’라 했다. 단테와 그의 영향을 받은 밀턴, 괴테 등은 위대한 창조자들이다. 그 영향력이 문학만이 아니라 미술, 음악, 연극, 영화, 애니메이션 등 전 예술 장르에 퍼져있다.『신곡』은 지식 융합의 최상의 모델이고「연옥편」이나「천국편」에서 보여 준 예술 분야에서도 멀티미디어를 동원한 종합예술이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역시 단테의 신곡에 영향을 받았다. 블레이크, 들라크루아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들이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렸다. 프란츠 리스트는 <단테 소나타>를 작곡하기도 했다.
단테는 새롭고 독특한 형식으로 라틴어가 아닌‘쉬운 언어(속어)’로 독자들을 넓혀 인간 본성과 자유의지를 담아 모색하고자 한 점에서 ‘최초 근대적 작가’라 할 수도 있다. 구원을 향한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인격적 만남은 종교개혁의 중심 교리가 되었다. 그래서 단테는 인간 중심에서 신을 찾아가는 시각에서 보면‘최초 인본주의자’이고, 성서를 내세워 교황과 종교 시스템에 저항한‘최초 종교개혁가’이기도 하다.
단테는‘변한 목소리와 또 다른 양털을 지닌 시인의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새로운 통찰로 인류의 보편적 구원을 논하는 자로 변신할 것을 말한다.
미래의 사람들에게 남길 수 있도록 당신의 영광의 단 한 순간 불티라도
포착할 정도의 힘을 나의 혀에 주소서(천국편 33곡 70-72)
단테의 새로운 사유를 시작으로 루터와 몽테뉴, 데카르트를 거쳐, 인류는 종교개혁과 계몽주의 그리고 산업혁명을 이룬다. 인류는 최근의 4차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해 왔다. 인류는 예기치 못한 지구적 종말론적 상황을 맞고 있다. 인간 이성과 과학 문명의 이기로 인류를 수백 번 멸망시킬 규모의 핵 위협, 해마다 증가하는 기후재앙 징후,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습격, AI가 언제까지 인류의 통제에 있을 것인가? 지구와 인류를 구하려면 멈추어야 한다. 멈추려면 생명과‘신성(神性)의 정신’이 담긴‘영성(靈性)의 시대’를 이끌어 내어야 한다. 인류에게 다시 영적 상상과 문학적 구원이 절실한 시대이다. 단테는「지옥편」7곡에서“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는 언제나 자신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고 했다.
단테가 14세기에 주장한‘자유의지(自由意志)’란「연옥편」15곡에서 말하는 분명‘책임과 선을 전제로 한 자유의지’임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신곡에서 보여준 단테의‘영성’과 생명에 대한‘감수성’그리고‘구원에 대한 의지’와‘신성’을 주시한다. 인류가 몰락을 피하려면 반드시 회복하여야 할 것들이다. 이 시대에 단테가 살아 있다면 인류에게 과연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줄까?
<참고도서>
한형곤『신곡』, 삼성출판사
박상진『신곡』, 민음사
김운찬『저승에서 이승을 보다』, 살림출판사
윌리스 파울리『쉽게 풀어 쓴 단테의 신곡』, 이윤혜 역, 도서출판 예문
A.N 윌슨『사랑에 빠진 단테』, 정혜영 역,
이선종 편역『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 미래타임즈
베르길리우스『명화가 말하는 아이네이아스』, 박찬영 평역2, ㈜리베르
오비디우스『변신이야기』, 이윤기 역, 민음사
보카치오『단테의 생애』, 박우수 역,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