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2월 6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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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광고를 보게 된 건 아내가 네 번째 항암치료를 받고 있을 때였다. 항암치료에 관해 검색하다 보면 신약이나 민간치료법 같은 다양한 팝업 광고들이 수시로 올라온다. 알고리즘을 통해 들어왔을 그 광고는 끌리는 부분이 있었다. 링크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보라는 카피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아내 역시 관심을 보였는데 그곳에선 고통을 못 느끼려나, 하고 탄성 같은 한숨을 토해내었다. 아내는 밤이면 폐와 심장이 몸부림치는 걸 느낀다고 했다. 아직은 숨을 놓지 않으려는 자아와 놓으려는 자아가 서로 부딪쳐서 깨어나게 되지만 작별할 시간이 다가온 것 같다고 내 손을 잡았다. 푸른 핏줄이 나무뿌리처럼 뻗어 있는 아내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죽을 것 같은 통증을 견디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항암치료에 힘겨워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그런 불량한 생각이 올라오곤 했다. 아내가 느끼는 통증의 정도를 가늠할 순 없지만 아내가 고통으로 까무러칠 때마다 두려웠다. 사실을 말하면 아내의 죽음을 마주하는 것보다 환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통증을 보는 일이 더 고통스러웠다. 항암치료가 끝나면 아내는 달팽이 걸음만큼 기운이 돌아왔다. 구역질 때문에 먹기 힘들었던 식사를 새 모이 만큼이지만 할 수 있었고, 짧게나마 산책도 가능했다. 그러나 그런 치료와 요양을 반복하면서 체중이 반으로 줄었다. 말수 또한 급격히 줄어들었다. 대신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누가 더 미안한지도 모르면서 자신을 한없이 낮췄다. 자신의 몸뚱이가 배가 뒤집힌 딱정벌레 같다고 하던 날, 안락사법이 통과되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러곤 게으른 국회를 욕했다.
밤에 눈이 올 거라는 뉴스를 듣고 단단히 외출준비를 했다. 아내는 모자와 목도리, 패딩에 털부츠로 빈틈없이 몸을 감쌌다. 회사는 수도권 근방의 후미진 곳에 있었다. 좁은 길을 한참 들어가자 커다란 벌판의 공사 현장이 나타났다. 재개발을 앞두고 수주 소식을 알리는 유명 건설 회사의 플래카드가 수선스럽게 펄럭였다. 중단된 공사를 생각하자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Y시로부터 택지 조성 사업권을 따낼 때만 해도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수익률이 30%나 예상되는, 중소 건설회사로서는 큰 규모의 공사였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선 속도전이 필요한데 터파기 기초공사가 한창일 무렵 문제가 불거졌다. 3구역에서 미라 한 구가 발견된 것이다. 문제는 함께 출토된 유물이었다. 귀걸이와 거울 같은 장신구와 토우들이 나왔는데 문화재 전문위원의 자문이 필요해 보였다. 현장소장은 조용히 덮자고 했다. 자신이 봤을 때는 개인 부장품에 불과하고 문화재청에 연락해봤자 골치만 아플 거라는 것이다. 사업시행자에게는 엄청나게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확실히 사장은 망설이는 눈치였지만 공사를 잠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아내의 병간호에 집중할 수 있게 된 셈이니 같은 일에도 행불행의 대극이 존재하는 걸 보면 참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일인 것 같았다.
아내는 차창 너머로 시선을 두고 있었다. 곧 구도심이 나타났고 빛바랜 간판을 살피며 조금 더 들어갔다. 앙증맞은 트리가 서 있는 건물 앞에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내비게이션 음성이 흘러나왔다. 1미터 남짓 한 트리가 작은 건물을 더욱 소박하게 보이게 했다. 나는 허름한 건물이 신경 쓰여서 트리가 확실히 분위기를 밝게 만든다면서 웃어 보였다.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계단 난간은 칠이 벗겨져 철제가 듬성듬성 보였고, 계단 턱받침도 그것과 조화롭게 떨어져 있었다. 신기술 개발회사라고 꼭 테크노밸리에 있으라는 법은 없지만 설핏 의심이 들었다. 믿을 만한가? 다행히 아내는 그런 것엔 무신경한 듯했다. 골똘하게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고 가쁜 호흡을 길게 내쉬었다. 무려 5층까지 걸어 올라왔으니, 계단 오르기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좁은 복도를 두고 네 개의 사무실이 죽 연결되어 있었다. 회사 로고가 붙은 첫 번째 철제문을 열고 들어갔다. 목받침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남자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서훈이라고, 이름을 밝히자 전화상담을 받았던 오 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가볍게 악수를 하고 회의용 테이블 의자에 아내와 나란히 앉았다. 그가 차라도 한 잔, 하고 물었다. 아내는 손을 내저었다. 마실 물은 늘 가지고 다녔다. 할 일이 없어진 그가 느릿하게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명함 두 장을 건넸다. 그는 영업팀장이었다. 아내는 명함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약간 조급증이 올라와서 전화상담으로는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고 방문의 이유를 밝혔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간단하게 정의를 내려줬다.
“링크는 플레이어와 휴먼 아바타가 공존하는 세계를 말합니다.”
“휴먼이라면 인간 아바타라는 뜻인가요?” 나는 다짐을 받아내려는 투로 그에게 물었다.
“네,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니까요.”
“유토피아군요.”
“이해가 빠르시네요.”
그는 의기양양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휴먼 아바타가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사람의 기억과 사고는 물론 습관과 기호까지 복제해 넣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생전 모습대로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아내의 의식계를 넘겨받은 아바타를 아내로 봐야 한다는 것인데, 그럴 마음이 생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오 팀장이 아내를 보면서 휴먼 아바타가 되길 원하시냐며 물었다. 아내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입술에 약하게 경련이 일어났다. 나는 살짝 기분이 나빠져서 퉁명스레 말이 튀어 나갔다.
“우선은 체험만 할 겁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확신이 없으면 결정하기 힘든 일이죠.”
“그런데 안전에는 문제가 없습니까? 길을 잃거나 못 빠져나온다든가 하는 불상사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데이터가 삭제되지 않는 한 안전합니다. 링크에서는 영원불멸로 존재하게 되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오 팀장을 아내는 멀거니 바라보았다. 영원불멸하는 것이 아내가 진정하게 원하는 일일지는 알 수 없었다. 기쁘거나 설레야 정상인 건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영원하다는 것, 나는 왠지 지루한 생각부터 들었다.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가 생성과 소멸일 텐데 세상이 묘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내 생각보다는 아내의 의사가 제일 중요했다.
오 팀장이 데이터베이스 작업에 필요한 질문지 작성을 요청하며 전자 패드 2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단답형 질문은 나이와 취미, 습관, 좋아하는 음식과 음악 등 주로 개인의 기호와 성향에 관한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그리고 서술형 질문이 있었는데 단번에 답변할 수 없는 문항들이었다. 지나온 생에서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후회되는 일, 열 가지의 버킷리스트 같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삶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힘겨운 여정이었다. 아내와 나는 우리의 다난한 인생사를 마치 시험 치르듯 풀어나갔다. 생각이 글로 옮겨지는 과정이 나를 정리하는 시간 같았다. 아내는 내가 질문지를 제출하고도 30분이 더 소요되었다. 역시 아내는 매사에 신중한 사람이었다. 실감형 아바타 생성을 위해 신체 촬영까지 마치자 영상실과 연결된 또 하나의 사무실로 우리를 데려갔다. 대형 모니터가 정면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내가 저 모니터 세계로 들어가는 거냐고, 담담하게 물었다. 아내는 아주 평온했다.
“모니터야 늘 보던 거잖아.”
나는 짐짓 허세를 부렸다.
아내와 나는 플레이어로 링크 인 했다. 우리는 푸른빛이 짙게 깔린 골목길을 잠시 걸었다. 모든 소리가 잠든 듯 귀가 먹먹했다. 곧이어 쉭, 한 차례 바람이 안겨들더니 음악 소리가 들렸다. 오 팀장이 드림랜드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링크에서 인기가 많은 월드 중 하나라는데, 조금 의아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마디로 광활하고 시끄럽고 화려한 곳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초고층 높이의 대관람차가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선수에 해골이 장식된 대형 바이킹이 흔들거렸고, 길이를 알 수 없는 롤러코스터가 안쪽 경계선을 따라 지나다녔다. 그 아래로 각종 동물 모양의 회전목마가 돌아가고 있었다. 아바타들은 놀이기구를 타거나 자유롭게 광장을 활보했다. 흡사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그들 속에는 휴먼 아바타도 있고 플레이어도 있다고 했다.
그들은 물리적으로는 서로 다른 존재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상호교류한다고 한다. 육신은 없으나 의식을 가진 존재와 육신은 현실에 두고 의식을 가진 존재들이 돌아다니는 세계에서 우리는 멍청히 서 있었다. 그 두 존재를 구분할 수 없었는데 팀장은 직접 체험하면서 알아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고객서비스를 이따위로 하나? 아니면 그만큼 영업에 자신이 있다는 소린가? 약간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지만 투정을 부릴 새도 없었다. 아무튼 이 세계를 알려면 누군가를 만나야 했다. 갑자기 아내가 소리 질렀다.
-저기 저 아이, 우리 건우를 닮은 것 같아.
아내의 시선이 회전목마를 탄 남자아이를 향해 있었다. 아내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인생의 회전목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멜로디는 발랄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어째서 아들을 소환하는 장소에서 아이를 빼닮은 아바타를 만나게 되었을까? 열 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난 아이였다. 아내가 아이 쪽으로 뛰어갔다. 회전목마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고, 아내는 아이가 탄 목마가 회전해 돌아올 때까지 초조하게 기다렸다.
-안녕! 혹시 나 알겠니?
아이는 아내를 말갛게 쳐다보더니 반대편으로 멀어져갔다. 의뭉스러운 팀장이 머릿속에서 떠다녔다. 우리 부부의 속사정을 파악했을 터였다. 아내는 안전망 너머로 곧 넘어갈 기세였다.
-건우일 리가 없잖아. 닮은 사람은 어디든 있어. 일단 한번 돌아보자고.
나는 우리의 방문목적을 상기시키며 아내를 호수 방향으로 돌려세웠다. 아내는 아쉬운 듯 뒤를 돌아보며 주춤거렸다.
호수 중앙 분수대에서 화려한 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왈츠에 맞춰 물 줄기가 점층식으로 솟아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호수 가장자리로 물 오리들이 유유히 떠다녔다. 한 번씩 날갯죽지를 털다가 주둥이를 물속으로 집어넣기도 했다. 아주 자연스러웠고 생동감이 넘쳤다. 평소라면 관심 두지도 않았을 테지만 헤엄치는 모양새를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호수 건너편으로 작은 매점이 하나 있었고 판매원이 서 있었다. 아내가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안녕하세요, 아내가 인사를 건네자 판매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스마일 맨의 표본 얼굴이었다. 우리는 메뉴판에서 망고 주스를 골라 시켰다. 주스 두 잔을 만들어 건네면서 포인트 적립을 하겠냐고 물었다. 그러라고 했다. 다시 방문할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