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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無罪)

한국문인협회 로고 오해균

책 제목월간문학 2024년 11월 월간문학 2024년 12월 6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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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밝히는 등잔용 석유 판매의 폭리 배급제로 인한 갈등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 달 사용하는 양을 두 홉으로 제한하고 가격마저 원가의 몇 배로 판매하여 원성이 높은데,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히려 밀매의 가격이 허가 낸 판매상들보다 저렴하였다. 등유와 향유고래의 기름은 그나마 있는 집이나 일본인 몫이고, 가난한 백성은 관솔을 잘라서 바람벽 고콜에 불을 피워 밤을 밝혔으니 방에 들어서면 진한 송진 냄새와 그을음으로 아궁이 입구처럼 그을어 가난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민족을 위한 일간지를 자청하는 충청매일의 편집국장 김 아무개가 새내기 기자를 국장실로 불렀다. “오 기자, 오늘은 것대산 너머 갈뫼에 가서 원전이란 사람을 만나 그 의 됨됨이를 알아보고 우리 프로젝트 자격 여부를 탐문해 봐요.” “왜놈들 때려눕혔다는 소문의 주인공 말입니까?” “그렇다네, 중앙공원에서 예닐곱 명을 넉장거리시켜 놓고 달아난 사람이다. 일본 형사들이 그 사람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 “어떻게 그 사람의 소재를 아셨는지요?” “수배자 명단에 거주지와 이름이 있더군.” “가서 만날 수는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곳에서 ‘나 잡아가라’하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원거리가 시름답긴 하지만 한번 찾아가 봐. 동네 어딘가에서 숨어 있겠지! 딸린 식구가 많으니 그 사람 성격상 멀리는 안 달아날 거야!”

발단은 이랬다. 원전이란 사람은 오십대 중반의 나이에도 소문난 싸움꾼으로 크지 않은 체구에 쌀 한 가마도 번쩍 들어올리는 장사이며 마을 누군가 문제가 생기면 해결사 역할을 도맡아 해주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석유 가격이 금값처럼 비싸다 보니 몇 날을 되작거리다 청주의 석유 도매상 일본인 하시모토(橋本)를 겁박하고 회유하여 석유를 싼값에 빼내 땅속에 묻어 놓고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 헐값에 밀매하였는데, 누군가 그를 청주의 경시청에 고자질하여 인편에 출두명령서를 받게 된 것이다.

워낙에 소문난 싸움꾼이다 보니 처음엔 대수롭지 않은 듯 안심을 시키려 물어볼 말이 있으니 출두를 요구하여 별일 없겠거니 하고 경찰서로 가던 길에 중앙공원에서 일본인들과 시비가 붙어 여러 명을 보기 좋게 때려눕히고 경찰서로 가면 잡혀서 구금될 것이 빤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충청매일에 근무하는 나는 몇 시간 산길을 걸어서 그를 만나러 갔다. 마을에선 이미 형사 둘이 그를 찾기 위해 이곳 저곳 기웃거리고 있었다. 기자가 보기엔 어쩌면 그들은 시간을 끌면서 찾는 척한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한가해 보였다. ‘저놈들도 그 사람이 두려워 잡는 시늉만 하고 있군!’ 그때 기자를 알아본 순사가 다가와서 시비조로 말을 걸었다. “아니 기자가 이곳에는 웬일이오?” “산천이 수려하여 둘러보는 중입니다.” “눈이 삐었군, 이런 촌구석을 왜 왔나 묻는 거요?” “기자니까 온 거요. 내가 청주 바닥에서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 올 리가 없겠지요.” “뭔 냄새를 맡고 왔는지 몰라도 얼른 돌아가.” “힘들게 왔는데 돌아가라니! 그러는 당신들은 이곳에 뭔 일로 왔소?” “말이 많다, 빨리 꺼져라.”

그렇게 들쑤시고 다니더니 사건의 당사자나 땅속에 묻어 놓은 석유 통도 찾지를 못하자 그들은 마을 주민 한 사람을 포섭하여 검정새치로 심어 놓고는 돌아갔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다. 나는 어둠이 오기를 마을 언저리에서 기다렸다가 뒤늦게 그의 집을 방문하여 그를 불러냈다. “오원전 씨, 참으로 장한 일을 하셨습니다.” “장하다니, 사람 두들겨패는 게 장한 일이오?” “일본인이라 때린 건 아닐 테고 게다짝하고 싸운 이유가 궁금합니다.” “정당 방어지! 내가 가만히 있으면 놈들에게 맞아 죽을 것인데 어이 가만히 있겠어? 놈들이 내가 중앙공원을 가로질러 경찰서를 가는데 조 센징은 돌아서 가라고 얼굴에 핏대를 올리고 소리를 지르며 으름장을 놓지 뭐야. 처음 세 명이 막아서자 놈들을 때려눕혔지. 동족이 얻어맞는 것이 분했는지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몽둥이를 들고 튀어나와 나를 공격하여 보는 족족 때려눕혔거든.”

“제가 다 속이 후련합니다. 혹시 가족들 피해는 없었는지요?” “당신 왜놈 끄나풀 아냐! 왜 자꾸 이것저것 캐묻는 것이야?” “절대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놈들에겐 수배자나 다름없는 사고뭉치이니까요.”

“놈들이 내 가족을 건들지는 않았어. 엉뚱하게 내 사촌과 동네 사람들만 봉변을 당했지.”

“낮에 사람들에게 들으니 석유 때문에 사달이 났다면서요?”

“그 문제도 말이야, 이 도둑놈들이 20전에 팔아도 될 석유 기름을 열 배나 튀겨서 2원씩 팔고 있으니 내가 화가 치밀어 도매상에 가서 한바탕했어. 그랬더니 사장이란 작자가 양심은 있어서 나한테만 원가에 준 거야. 그런데 우리 동네 사람들도 문제야. 자기네가 나한테서 싸게 쓰는 건 모르고 날 고발한 사람이 있단 말이야. 그건 양심도 없는 짓이지! 누군지 알고 있지만, 그것도 동기간이라고 때려주기도 뭣하여 꾹꾹 눌러 참고 있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더니 그래서 고자질을 했나 봅니다.”

“그럼 뭐해, 감시가 심해서 요 며칠 한 방울도 못 팔아 땡전 한 잎만 져보지 못했는데…. 그래서 말인데 내가 의로워 보여도 인생은 언제나 살얼음판이야! 하하하.”

“아까 형사들하고 누가 이야기하는 걸 봤는데 밀정을 심어 놓은 거 같아요. 조심하셔야 합니다.”

“어느 놈인지 알아. 만약에 나를 밀고하면 그놈 집은 줄초상 치를 준비해야 할 것이야. 그러나 그를 내 편으로 만들어 놓으면 될 일이니 걱정 안 해도 돼. 그런데 기자라면서 나하고 한 이야기를 신문에 낼 거요?” “그런 건 아니고요, 앞으로 우리나라가 독립 되면, 우리 신문사가 충청도 주요 애국지사 인물평전을 편찬 예정인데 그때를 대비해 미리 준비하고 있습니다. 해방 후 조사를 하면 모두가 독립운동을 했다고 할 것이니 미리 알아봐 두는 것이지요.”

“설마 나를 독립투사로 보는 건 아니지?” “제가 보기엔 그렇게 보이는데요!”

“천만에, 나는 농사꾼이야! 난 내게 시비 거는 놈만 상대해. 독립투사 아니니 절대 그렇게 평가하면 안 돼.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야. 애국자 운운하면 사람들이 욕해.”

“투사가 별건가요, 무례하고 행실이 나쁜 놈들 바로잡아주고 혼내주는 게 투사지요. 같은 민족인데 어떤 사람은 일제의 앞잡이나 하고 있잖아요.”

“밤이 깊었으니 오늘은 그만하고 다음에 또 봅시다.”

나는 다음을 기약했다. 밤길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험한 산길을 엉금엉금 상현달에 의지하며 길을 더듬어 밤 열두 시가 지나서야 간신히 신문사 편집실로 돌아왔다. 숙직실 낡은 책상에 앉아 그와의 대담을 기억해 내며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면서 그 사람을 그려보았다. 쌍꺼풀이 깊게 새겨지고 부리부리한 눈매 작은 키에 수염을 기른 장년의 그는 의지가 굳어 보이고 고집스러워 보였다. ‘그 나이에 어떻게 혼자서 열 명을 상대해 눕혔을까. 비록 가난하여 배운 건 없다지만 억압과 속박의 이 시대에 살아가는 방법이 독특하단 말이야. 그 내자 되는 분도 마음고생이 심하겠어. 다음엔 부인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 진정한 애국자인지, 아니면 그분 말대로 건달인지.’

“어제 잘 다녀왔나, 그 동네 살벌하지 않아?” “네, 국장님 말대로 그분과 대화를 해보니 조금은 독특하단 생각이 드는 분이었습니다. 어제는 인사 정도만 하고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고 왔는데 걱정이 있다면 그분 때문에, 동네 사람들, 특히 일가친척들의 고초가 심한 듯합니다.”

“하여튼 우리가 비밀스럽게 기획한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지긋지긋한 식민지배가 끝나는 날까지 한 장, 두 장 자료를 모아서 보람찬 결과물을 내야 해.”

“과연 우리 도에서 걸출한 독립유공자를 열 명도 아니고 백 명이나 찾을 수 있을까요?”

“뭔 소리야? 한 면에서 한 사람씩만 찾아도 수백 명이 되겠다.” “하여튼 우리 신문사 대표님은 선견지명이 있으십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식민지배를 생각하고 독립에 공훈이 있는 사람을 미리 발굴하는 것이, 사전에 가짜 애국지사를 막자는 취지 아니겠습니까!”

“사이비가 많은 세상에서 고육지계를 쓴 것이지! 어디 그뿐인가. 우리 신문을 보면 느낄 것이야. 세상에 수탉이 다 없어져도 날은 밝아오듯이 반드시 좋은 날이 와! 그때 충청매일이 독립의 영광과 가치를 선점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

“그나저나 그분은 자기는 절대 독립투사가 아니라고 합니다. 가족과 함께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무식한 산골 농사꾼이라 하지요.” “진정한 독립투사는 나 독립투사요 하지 않아. 그렇게 떠벌리는 자야 말로 어용이고 언어도단이지.”

말이 좋아 충청매일이지 요즘은 종이도 귀하고 기사도 검열이 심하여 주간 타블로이드판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나는 하루를 걸러 또 그곳을 찾았다. 힘든 여정이지만 사무실에서 낡은 타이프로 왜놈 동정 따위나 두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오늘도 형사 둘이 와 있었다. 나무 그늘에서 둘이 노닥거리는 것이 그를 찾기보다는 마지못해 와서 찾는 시늉을 한다는 편이 어울리는 편이다. “어이, 기자가 오늘도 왔네.” “이곳 공기가 그래도 어떤 놈들이 판치는 청주보다는 한결 좋아서 이렇게 찾아오지요.” “어떤 놈이라니?” “말해도 모를 거요. 워낙에 악질들이라 웬만한 사람들에게 특히 눈멀고 귀먹은 인간들에겐 그것도 안 보이지요.”

머리가 좋은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둘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그들 과 더 말을 섞다 보면 나만 다친다는 생각에 자리를 떴다. 나는 그들의 눈을 피해 원전 씨의 집으로 갔다. 집 앞에서 사금파리를 가지고 노는 네 살짜리 여자아이를 보고는 엄마에 관해 물었다. “꼬마야 엄마는 어디에 계셔?” “밭에 일하러 갔는데….” 그 말을 듣고 생각하니 갑자기 그제 보았던 그녀의 모습이 생각났다. ‘배가 많이 부르던데, 그 몸으로 밭에를 가셨다니 억척이 따로 없군.’ “아가야, 밭이 어디에 있니?” “저기 보이는 상엿집 있는 데….”

“상엿집? 아이고 무서워라! 거기는 귀신이 바글바글하다는데.” 나는 아이를 놀려주고 싶어서 짐짓 무서운 얼굴을 하고 겁을 주었다. “무섭기는…. 내가 그 안에 가봤는데, 귀신이 도망갔는지 아무도 없었어!” “그 안에 진짜 들어갔다고?” “그럼, 오빠 언니하고 숨바꼭질하면서 들어갔는데 오빠들은 무서워서 그곳에 들어오지를 못해서 날 못 찾았지.”

겁 없는 꼬마와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받기보다는 안방마님을 직접 찾아뵙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고, 또 신문사에서 기획 중인 프로젝트에 합당한 인물인지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수십 걸음을 걸어 산 밑에 있는 세월에 쪼그라든 상엿집을 지나서 긴 밭고랑을 지나니 삼 남매와 그들의 엄마가 콩밭에서 잡풀을 뽑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던 그들은 낯선 사람의 등장에 모두 긴장한 표정들이다. “밭일하는데 죄송합니다.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집에 있는 꼬마에게 물어서 찾아왔습니다.”

“당신 형사요? 우리 집 양반은 어디 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며칠째 소식이 없어요.”

“그제 잠깐 뵈었던 충청매일 기자입니다. 오늘 안주인 되시는 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려고 왔습니다.” 이때 다리를 약간 저는 아이가 다가왔다.

“나 셋째아들인데 할 이야기 있으면 나한테 해요. 아버지나 어머니 괴롭히지 말고요.” 열서너 살은 되어 보이는데 인상을 잔뜩 찌푸려 미간이 좁아지고 입 주위를 씰룩거리며 말대꾸를 하는 것이 성깔이 있어 보이고 아버지를 닮아서 보통내기가 아닌 듯하였다.

“괴롭히는 게 아니고 도와주려는 것이야.” “도와줄 거면 콩밭에 풀이나 뽑아줘요.”

“셋째야, 찾아온 손님에게 무례하면 안 된다. 할 이야기가 뭔지는 모르지만 잠깐 쉴 테니 말해 보세요.”

“어른께서 일본놈들을 혼내준 사건은 알고 계시지요? 애국심이 대단 하십니다.”

“개뿔 같은 애국심은 무슨…, 그냥 싸움꾼에다 술 좋아하는 사람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조선사람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었는데 아주머니께서 너무 바깥양 반을 모르고 계시는 거 아닌가요?”

“농사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면 벌써 부자 됐겠네! 일본사람 몰래 석유 장사해서 돈 좀 만지면 술도가로 달려가고, 취하면 시비가 붙어 싸우고, 그런 사람입니다. 영웅이니 독립투사니 운운하면서 부추기지 말고 제발 취재도 하지 마세요.”

이때 옆에서 듣고만 있던 동생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저씨, 애국자는 우리 큰형입니다. 지금도 만주 가서 땀 흘리며 열심히 돈 벌어서 우리 식구 먹고살 돈을 보내오거든요. 이 땅도 큰형이 보내준 돈으로 산 땅입니다.”

“얘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 조용히 해.”

“지금 바깥양반은 어디에 계신가요?”

“몰라요, 미원장터 주막에 가보세요. 취하면 지나가는 사람의 사돈 까지도 술 사주는 사람이니까. 우리 집 양반은 속담을 증명하는 사람 입니다.”

“속담이 증명한다니 무슨 말씀인지요?”

“총각인지 아저씨인지 겉보기엔 글 좀 배운 사람 같은데 속은 빈 깡 통인가 봅니다. ‘사람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하 잖아요.”

“하하하, 그런 말이 있지요! 그나저나 지금 순사 나부랭이들이 눈알이 뻘겋게 충혈되어 찾아다니는데 술집이라니요. 어디 꼭꼭 숨은 것 아 닐까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그런 것 두려워하거나 무서워서 떨 사람이 아닙니다.”

몇 마디 주고받은 말이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분은 가정엔 소홀하고 식구들도 가장에 대한 불신도 큰 것을 대충은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말씨름으로 식구들 신경 거슬리게 하는 것보다 직접 그를 찾기로 하고 산길을 우회하여 마을 건너편 암자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논두렁길을 따라가면 형사나 그들이 심어둔 끄나풀의 표적이 되어 미행을 당할 것 같아, 위치를 대충 물어보고 나무꾼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대낮은 몰라도 밤에는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며칠이 지나도 형사들 이 그를 못 찾는 것이 한편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분의 보복이 무서워 찾는 시늉만 내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산속을 헤매다 옴나위없이 오늘도 달돋이에 넘어지면서 고개를 넘 어가기 전에 빨리 만나봐야지.’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 산에 만들어진 오솔길로 우회를 하여 암자를 찾았다. 암자라고 하기엔 건물이며 살림살이가 형편없어 차라리 토굴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웅전이라는 낡은 편액이 붙어 있는 건물 위에서 70대의 노인이 비가 새는지 녹슬고 낡아빠진 양철지붕을 보수하고 있었다. 지붕이 낡아서 움직이는 모양이 매우 조심스럽다. “스님,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대답이 없다. 분명히 들었을 텐데 왜일까! 혹시 낯선 젊은 사람인 나를 일본 형사로 착각하고 경계하는 것인가. 지붕 위의 노인이 허리를 펴다 문득 마당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날 발견하고는 대답을 하였다. “우리 스님 탁발하러 나갔소이다.”

“아니 지붕에 계신 분이 스님 아니신가요?”

“머리 깎았다고 스님이면 이 나라 사람 반은 스님이겠네! 나는 여기 서 일하는 불목하니여, 굳이 이름을 물으면 소성이야.”

불목하니라, 절에서 허드렛일 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머리 는 깎았어도 의복이 잿빛 염의(染衣)는 아니었다.

“혹시 오원전 씨 여기 안 오셨나요?”

“나야 모르지, 고쿠락 먹잇감 만들어 산에서 내려오니 아무도 없네.” 그럼 이곳에 있다가 나갔다는 이야기인데 난감했다. 이대로 허탕을 치고 청주로 나가자니 시간이 아깝고 그렇다고 동네를 일없이 배회할 수도 없으니 난처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사람이구먼! 기행(奇行)을 하는 사람이라더니 식솔들은 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데 도망자라는 핑계로 엉뚱한 곳에서 놀고 있으니!’ “어떤 사람들은 그를 개차반이라 하는데 자네 개차반이 뭔지 아나?”

“개차반이요, 그 말은 행실이 나쁜 사람을 비하하는 말 아닌가요?”

“아니지, 개차반은 개가 먹는 똥이야.”

노인은 남의 가정사가 뭐가 그리 재밌는지 말을 줄줄이 이어나갔다. “그는 말이야, 막막하고 고단한 현실에 적응하려고 건달 행세를 하는 사람이지!”

“어르신은 그 사람의 사정을 어찌 그리 잘 아시는지요?”

“자 그만합시다. 말이 길어지면 생각도 가벼워 헛소리가 나오는 법이야. 이것저것 묻지 말고 갈 길이 멀 테니 여기서 되작거리지 말고 얼른 가시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이 노인도 비록 겉모습은 추레해 보여도 생각이 깊고 말을 경계하는 것이 보통은 아닌 듯하였다.

“제가 오늘 밤 이 절에서 하루 신세를 지면 안 되는지요? 허락해 주시면 금당 한쪽에서라도 자고 가겠습니다.”

“절대 아니 될 말이야. 경치지 말고 얼른 가시오.”

2

어둠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바로 밀려들어 사물을 분간하기 힘들어 나는 요사채 부엌으로 숨어들었다. 아직도 아궁이에는 불씨가 많이 남아 있어 서늘한 기운을 적당한 온기로 채워주었다.
잠시 후 두런두런 소리가 들리더니 세 사람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불목하니라는 노인이 방에서 나오고 네 사람이 금당으로 들어갔다. “모두 정탐은 잘 했소? 만세운동이 성공하려면 왜놈들의 시선을 이쪽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하고, 이웃으로 계속 들불처럼 번져나가기를 바라야지.”
“모레 밤 여덟 시에 금소복 개울 지나서 거지치고개에서 모두 만나기로 했습니다.”
“하여튼 어린애 장난 같지만, 놈들에게 우리 민족의 결기를 보여줘야지.”
그들의 말을 엿들은 나는 이것이야말로 큰 소식이 틀림없으나 못 들은 것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불목하니 영감이 어찌 보면 이 거사의 총책임자라는 생각이 들어 그 영감의 본래 모습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도 더욱 커졌다.
한동안 소곤거리던 소리가 이야기가 끝났는지 원전 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내일 아침에 올라오겠습니다. 모두 편히 쉬세요.”
절에서 그의 집까지는 걸어서 이십 분이 넘게 걸린다. 나는 빨리 내려가 우연을 가장한 만남으로 그를 보고 싶었다.
“거기 누구요?”
몸을 은폐하고 기다리는 나를 보았나. 앞으로 나서려는데 다른 사람이 나타나 대꾸를 하였다.
“접니다, 일용이.”
“자네 이 시간에 여기서 뭣하나?”
“뭔 모사를 꾸미는지 몰라도 왜놈들이 다 알고 있으니 조심하세요.” 일용은 한마디를 던지고는 매가 두려운지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기회를 틈타 내가 앞에 나섰다.
“이건 또 뭐야, 너도 밀정이냐?” “접니다, 충청매일 기자예요.”
“자네가 이 시간에 왜 여기 있어? 청주 시내에 있어야 할 사람이 이 밤에 어쩌려고!”
갑자기 할 말을 잃은 나는 엉뚱하게 그 집 아주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댁에 아주머니께서 몹시 힘겨워하십니다. 형사들 때문에 힘들겠지만 일 좀 도와주시고 미원 술집인가는 웬만하면 가지 마세요.”
“허 별일이네. 마치 내 새끼처럼 말을 하네! 기자가 남의 사생활이나 캐고 다니고,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청주로 꺼져.” “돌아가야지요, 매양 조심하세요, 저도 열심히 응원합니다.”
“뭘 조심하고 응원해, 자네 말대로 이제는 꼴통 행세 안 하고 그냥 집에서 농사일이나 할 생각이야!”
나는 며칠 동안 다른 곳으로 출장을 가니 무슨 사건이 생기면 훗날 이야기하여 줄 것을 신신당부하여 놓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들의 거사는 계획되면서부터 혹시 모를 후환에 대비하여 철저하게 비밀리에 일을 진행하였고 누가 우두머리인지 인원은 몇 명인지 역할 분담도 수거, 운반, 투척으로 나누어 서로 누구인지 알 수 없이 계획을 세웠다.
4개 마을에서 지서에 감정이 있고, 반일 감정이 지극히 뚜렷한 사람들을 포섭하여 똥장군을 가득 채워 넣은 뒤에 거지치고개 옆에 은폐시켜 놓고 밤에 운반조가 지서 옆에 놓아두면 이것을 투척조는 지서의 바닥과 벽에 도배하듯 뿌려 놓는 것이다.
서산에 황혼이 질 무렵 소달구지를 끌고 신작로 옆에 은폐해 놓은 장군통을 운반조가 싣고는 면소로 향했다. 실내를 밝혀주던 호야불빛도 꺼진 심야, 서편 하늘에 걸쳐 있던 초승달도 모습을 감추고 시간이 흐른 뒤 검은 옷으로 모습을 가린 사람들이 나타났다. 건장한 체격임에도 들고 있는 장군통이 힘에 겨워 보였다. 지서 건물을 둘러싸고 모퉁이와 출입구에 하나씩 거꾸로 들고 인분을 바닥과 벽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걸쭉하니 놈들 입에다 확 들어 부우면 부드럽게 잘도 넘어가겠는걸!’ 사방에 골고루 뿌려 놓고 경고장을 한 장 문 앞에 놓아두고 두 사람은 그곳을 유유히 빠져나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만일 찾고자 발악하면 앞으로 열흘 안에 지서를 태워 버릴 것이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오물 투척 사건이 하루도 안 되어, 면전체에 퍼지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지서장은 면내 각 마을에 프락치로 심어 놓은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어느 마을 어떤 놈의 공작인지 네놈들이 비밀리에 정확히 파악해서 내일까지 보고하라. 범인을 알아내는 밀정에게는 두둑한 상금이 주머니를 채워질 것이야.”
지서를 나오면서 모두 ‘뭔일이래!’ 하면서 고소하다는 듯 웃음을 날렸지만, 일용인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건수 하나 올렸다는 듯 곧장 가래산의 암자로 향했다.
“일용이 자네가 웬일이야?”
“이틀 안에 백 원 준비해두쇼, 그럼 밀고 안 할 테니.”
“아니 이 사람이 가난한 절간에 와서 시주는 못할망정 돈 달라고 농담을 하네. 자네는 무고죄로 부처님이 용서 안 한다.”
“말 한번 잘하시네. 부처님 걸고 아니라 했지요. 그 말이 틀렸으면 이 절이 불타 없어질 겁니다. 그리고 현상금이 이백인데 백은 받아야 할 것 아닙니까!”
“아니 현상금이라니, 누가 내게 현상금을 걸었어? 이 망할 놈이 어디서 협박이야.”
“저 내려갑니다, 모레까지요.”
인근 숲에서 조용히 이 모습을 지켜본 불목하니 영감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스님에게 이곳을 떠날 것을 제의하였다.
“내가 볼 때 놈들은 며칠 내로 이곳으로 올 것이오. 우리가 당분간 이곳을 떠납시다. 좋은 날이 오면 다시 와서 불사를 멋지게 해야지요.” “우리 부처님은 고달프시겠습니다. 어쨌든 준비는 하겠습니다.”
중앙공원 폭행과 석유 밀매사건이 종결되었는지 아니면 이쪽으로 충원할 인력이 없는지 며칠 잠잠하였다.
폭풍 속의 전야라고 했던가, 일용이가 원전 씨의 집에 찾아와 방문을 두드렸다.
“저 좀 봅시다.”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오늘 지서를 갔는데 아무래도 절이 위험합니다. 인근 두 군데 주재 순사들까지 와서 절에 불을 지르고 폐쇄한다고 합니다.”
“아니 절에서 무슨 잘못을 해서 폐쇄한다는 거야?”
“분명한 건 제가 밀고해서 일어난 일은 아니니 빨리 가서 영감하고 스님하고 피신시키세요.”
원전은 즉시 가래산 중턱을 향해 몸을 날렸다. 비록 이름도 없는 토굴 같은 절이라도 부처님을 모신 도량이 훼손되고 욕보이는 만행은 반드시 막아야겠다는 생각과 음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영감과 스님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자신도 어쩌면 이곳을 드나들면서 반일 감정이 거품처럼 피어올라 합류하게 되었으니 빨리 대책을 마련하고 피해야 했다.
“스님, 그리고 영감님, 얼른 자리를 피하셔야겠습니다. 놈들이 내일 이곳으로 와서 일을 저지를 듯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들도 자신들의 최후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광분하여 약탈하고 파괴할 것입니다. 일단 자리를 피했다가 훗날을 도모하는 게 더 바른 판단이겠지요. 우리도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보는 어디서 들었습니까?”
“일용이 이놈이 오늘 지소에 갔다 와서 하는 말이니 틀림없을 겁니다. 자기 짓은 절대로 아니라고 하더이다. 내일 인근의 순사들까지 데리고 온다고 하니 우선 귀중한 물건은 은닉하고 증거가 될 만한 것은 태우고 당분간 믿을 만한 도반이 있는 곳으로 가세요.”
“우리가 도망 가면 인정하는 꼴이 되지만, 그래도 정리해야겠지요? 그리고 우리가 경고한 대로 열흘은 아닐지라도 수일 내로 지서를 불태울 것이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그날 밤 어둠을 이용해 스님과 자칭 불목하니 소성 거사는 그 누구에게도, 그 어디로 간다는 이야기도 없이 사라졌다.
다음날 정오 무렵 한 무리의 사람과 일본인 순사들이 가래산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중턱에서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더니 온 산을 덮었다. 마을 사람 모두 소화 장비로 곡괭이와 삽을 들고 암자에 올라와 보니 일본 순사들과 그들의 협력자들이 그곳을 불태우고 있었다.
“이런 천벌을 받을 놈들아,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
이곳에서 늘 치성을 드리는 팔순의 끝순 할머니가 대성통곡을 하면서 일본 순사를 나무라자 놈은 개머리판으로 할머니의 어깨를 내리쳤고 할머니가 넘어지자 화가 난 동네 사람들이 너나없이 그들과 난투극을 벌이고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원전은 수배고 뭐고 녀석들을 혼내야 한다는 생각에 몽둥이를 들고 나타나 일인 순사들을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이놈들아,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다 보니 그들과 함께 왔던 끄나풀들은 모두 도망가고 순사들만 남았고 성난 사람들에게 꼼짝없이 무기도 빼앗기고 잡히는 포로 신세가 되었다.
“너희들이 이곳에서 ‘대한독립만세’ 삼창을 하면 살려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희는 너희 총을 맞고 죽을 것이다.”
사정이 이쯤 되자 인근 면의 지소에서 지원 나온 순사들이 목멘 소리를 하였다.
“우리는 얼떨결에 따라왔으니 보내주어라.”
“다 똑같은 놈들이지, 애먼 사람을 범죄인으로 낙인찍어 놓고 이 절까지 태운 죄의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 똑똑히 보여주겠다.”
원전은 불을 지른 일본인이나 불을 끄기 위해 모인 모든 사람에게 만세삼창을 제안하였다.
“여러분, 모두 대한독립만세를 힘차게 외칩시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여러분 잔불 정리가 되면 모두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나는 이들과 같이 가서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그 죄에 대한 무게의 경중이 어떤 것인지 법정에서 따져보겠습니다.”

3

 

1943년 10월 13일 법정. 편집국장에게 소식을 접한 나는 급히 재판소를 향했다. 그곳에는 자진해서 재판을 받는 피고인 원전의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방청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그분의 무죄를 기도하며 방청석을 둘러보니 그동안 수염과 머리를 기른 암자의 소성 거사도 모자를 눌러쓴 채 나를 바라보며 눈을 찡긋하여 나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눈인사를 올렸다.
“피고 오*식, 선고에 앞서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가?”
“섬나라에서 불어온 서릿발 바람이 이 땅을 스치며 잡초 같은 우리를 뿌리까지 뽑아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나 봄은 오는 것이고, 온 산야가 얼음으로 꽁꽁 덮여 있어도 매화꽃은 피는 것이다. 다 잃었으니 이제는 찾는 일만 남은 것 아니겠는가! 재판장이시여, 부끄러움을 아시는지? 그렇다면 재판장 앞에서 서 있는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말해보시오.”
“물으니 답해 주겠다. 너는 대일본제국의 순사들을 능멸하고 대한독립만세 삼창을 하게 한 죄가 가장 크다.”
“하하하, 우리 민족은 하루에도 서너 번씩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는데 그깟 세 번 하라고 시킨 것이 어찌 죄라고 말합니까? 나는 재판장의 인간적 양심에 따른 판결을 원하는 바입니다.”
고개를 숙인 재판장의 고뇌하는 모습이 스쳐 지나고 잠시 침묵이 흐르며 법원 서기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설 것을 주문하였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시오.”
“선고하겠다, 피고 오*식 무죄.”
모두가 함성을 지르며 환호할 적에,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한 재판장은 자신에게 닥쳐올 고난을 생각했는지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법정을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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